<19. 8. 18 주일예배>
일시 2019. 8. 18. 3부 예배
찬양 거룩한 삶을 살아내리라┃ 주 신실하심 놀라워 ┃ 예수 좋은 내 친구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시선 ┃ 밤이나 낮이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본문 열왕기상 22:29-40
설교 김양재 목사님
오늘 말씀은 흉한 말씀도 길한 말씀도 여호와의 말씀이면 믿어도 안 믿어도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대박 맞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은 천하를 얻은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도 천하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또한 안타깝습니다. 안 듣고 안 들으니 참을만큼 참으신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하신 아합을 심판하십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의 심판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변장을 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29-30)
(29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지난주 22장 22절 말씀처럼 아합은 거짓의 영의 꾀임을 받고 자신의 욕심으로 스스로 팔려가는 영적 장애자였습니다. 그런 사람 옆에는 최고라고 해주는 이세벨이나 거짓선지자들이 연호를 합니다. 아니 세력과 돈이 있으면서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한 마디라도 반대를 하는 사람과는 놀지를 않습니다. 자기 생각에 두 차례나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긴 경험이 있고 이번에는 백만 대군의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형제나라, 여호사밧의 지원까지 얻었습니다. 남북이 연합하였으니 명분까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가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가 귀에 들어 올일이 없습니다. 바꿔 생각하면 그럴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명분이 있어도 하나님이 싸우지 말라고 하는 싸움은 하지 말아야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다들 모르지만 이것은 아합의 욕심으로 올라 간 거잖아요. 세상은 욕심이 전공이니깐 이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합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만큼 29절은 북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이름은 언급이 되지 않고 남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의 이름만 언급이 됩니다. 31절에는 아람 왕, 이스라엘 왕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믿는 아합이 이방인의 왕과 똑같이 여겨집니다. 이 말은 무언가하면, 하나님은 마지막까지도 아합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고 네가 이방인 왕과 똑같으면 안된다. 메시지를 계속 날리시고 계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결정하는 해야 되는 나라입니다. 제사장 나라입니다. 모든 조건을 갖춘 것 같아도 마지막 하나님의 싸인이 없으면 안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셔야 되는 겁니다. 이 아합의 본문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치르게 하시는 겁니다. 여호와께 묻는 것을 22장에서 길게 다루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400명에게 묻고 미가야에게 물었어도 아합은 들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장에서 처방 할 때 들으면 하나님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서 믿음도 주고 재물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듣는 것은 그대로 행하고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묻는 것이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가장 어렵습니다.
# 어떤 나눔입니다. 아내가 너무나 힘들게 육체 노동을 하는데 (그래도 사는 집이 있습니다.) 일을 안하는 남편이 어떤 아파트에 청약을 넣자고. 그런데 이 청약금은 다 아내가 갚아야 되는 거에요. 아내는 말이 안 된다고. 남편은 그럼 빨리 이혼해가지고 돈을 반으로 나눠 나는 청약을 하겠다. 이제 아니면 이혼을 하자. 아내는 갚아나갈 생각만 해도 아찔하여 이것을 목장에 묻자고 하니깐 절대로 목장엔 안 간다고 하는 거에요. 안 간다고 하는 사람들 다 이럽니다. 목장에 묻는 것은 시금석(試金石)같습니다.
이번 주 초원님 남편 간증도 남편이 주식에 몰빵을 해가지고 이러다가 우리 집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 그래서 집을 사고 주식을 하던지. 지금까지 두 분 다 엘리트인데 집이 없는 것입니다. 집을 사려고 계약금을 냈습니다. 주식을 팔아서 계약금을 내야하는데 팔기도 전에 계약금을 내는 순간부터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러니 남편은 계약금을 날리자. 이건 두고 있으면 올라간다 값이. 이것을 목장에 물었더니 목자부터 목원까지 벌떼까지 일어나 주식값이 내려가도 빨리 팔아야 한다, 집을 사셔야 한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셔야 한다고 하니 이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왠일로 대출받아 집을 샀습니다. 계속 궁시렁 대면서 손해봤다고. 그런데 날로날로 주식이 떨어지면서 안팔았으면 길거리에 나아 앉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이 남편이 너무 놀라서 아니 목원들이 전문가도 아니고 경제를 공부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지?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 알았죠? 이 남편이 매일 술은 마셔도 목장은 붙어있었기 때문에. 지난주도 막걸리를 두병 마시고 오셔서 굉장히 기뻐하시면서 나누시다가 술 기운이 떨어지면 입을 다물고 계신다고 해요. 그분 때문에 목장이 다 즐겁다는 거에요. 오며가며 들은 것이 있어서 이런 적용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장이 밥 먹여주냐, 가지도 않고 절대 안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되거나 안되거나 붙거나 떨어지거나, 말씀을 묻고 가면 말씀대로 됩니다. 우리는 길하고 흉하건 말씀대로 되는 것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아합은 물었지만은 열심히 묻습니다. 그런데 듣고는 끈질기게 자기 고집대로 나가려고 하면서 찾아낸 방법이 사기치는 변장인 겁니다.
30절입니다.
(30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여호사밧에게 총지휘를 맡기는 척하면서 뭐가 걸렸죠? 미가야의 예언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시편7장 12절을 보면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며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모든 것을 가져도 회개하지 않으면 매일 등골이 서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칼을 가셨기 때문에. 활을 지금 당기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인생이 모든 게 두렵습니다. 두려운 것을 잊으려고 목 마릅니다. 아합은 거짓의 영이 욕심으로 들어와서 지금 꼬임을 받습니다. 아합은요, 변장하고 자기도 변장하고 여호사밧도 변장시키고 엄청난 계략을 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이겨도 져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길르앗 라못을 얻을 것이고 변장을 해서 보낸 여호사밧이 죽으면 유다를 접수할 것입니다. 딸이 유다에 시집갔기 때문에. 그 남편만 죽이면 유다도 접수할 수 있으니깐. 사단이 머리가 좋습니다. 완벽한 계획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죠? 자기가 죽는 생각은 안합니다. 자기는 병사로 변장을 했기 때문에 죽을 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왕복도 여호사밧 보고 명령형으로 입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이 꾀를 못 읽어서 그 아합의 왕복을 입었을까? 미가야의 예언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합이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릇된 긍휼로 입어줬을까? 왜냐하면 아합이 죽는다고 그랬지 나는 죽는다고 안했잖아. 이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사람이 참 좋잖아요.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을 만큼 영적인 그가 아합에게 끌려 다니다보니깐 이제 와서 전쟁 못한다고 그럴 수도 없고, 내 백성은 네 백성, 당신과 나는 같고. 운명공동체를 얘기했으니 이제 안 갈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번 꾀면 물려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아도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듣지 않고 아합과 같이 나갈 수도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일원론이기 때문에 그 믿음 좋은 여호사밧도 이렇게 나갈 수도 있구나, 이것을 우리들이 읽으면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아합과 사돈이니깐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당시 32개국을 연합한 아람을 두 번이나 물리쳤으니깐 아합의 전략이 맞을 거야. 믿고 싶은 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깐 분별은 못했지만 묻고자 한 여호사밧의 연약함을 감싸 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가야가 홀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을 감옥에 갔습니다. 마지막 보루가 여호사밧 한 사람인데 아합과 같이 출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묵상하면서 이 대목이 너무 슬펐습니다.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어떻게 여호사밧이 미가야의 말을 안 듣고 아합과 같이 나갈수 있을까? 여호사밧은 말씀의 위력을 몰랐을까요? 여호사밧이 그때는 개혁을 해도 거기까지였나봅니다. 여러분들도 뭐가 안 될 때에는 거기까지 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믿음의 분량이 너무 다릅니다. 똑같이 나갔지만, 하나님은 둘을 다르게 대해주십니다. 아합은 이렇게 변장을 해도 심판의 예언 말씀과 같이 결국 속수무책으로 죽습니다. 모든 관계가 개인과 나라도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변장들을 합니다. 말도 감정도 옷도 자리도 외모도. 다 변장을 하고 이기기 위해서 합니다. 아비 마귀에서 난 사람이 거짓의 영으로 무엇인들 변장을 못하겠습니까? 여호사밧도 아합에게 넘어간 변장이었습니다. 서로 속이는데 다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이기기위해서 변장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오직 말씀으로 정공법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길은 항상 정공법(正攻法)입니다. 그거 밖에 없습니다. 변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이 이기기위해서 변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척, 있는 척, 배운 척, 이쁜 척, 아는 척 중에 (그 외에도 변장하는 게 더 많이 있겠죠?) 어디서 변장을 합니까?
두 번째는 병거를 의지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1-33)
(31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1절서부터 35절까지 쭉 보면 전쟁터에 나갔다가 아합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은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고집을 부리면서 변장까지 하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뭐가 그렇게 자신이 있어 나갔을까요? 아합은 뭐가 그렇게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예언을 하는데 나갔을까요? 모르죠. 아합이 죽기 직전인데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병거입니다.
31절에 병거 지휘관 32명 32절에 병거의 지휘관 33절 병거의 지휘관, 34절 병거를 모으는 자, 35절에 병거 가운데서 죽더라구요. 그 당시 병거는 지금의 미사일이나 탱크에 해당하는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람왕은 그러한 무기를 다를 줄 아는 지휘관 32명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이스라엘 왕만 죽이라고. 이 사람들은 아주 정예 부대 특공대였던 것입니다. 두 번이나 전쟁을 치르고 지고 나서 완전히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FBI 보다 더 대단해. 아합은 끝까지 병거를 하나님보다 더 위에 놓고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면서 전쟁을 하러 나갔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로 그 병거를 자유자재로 병거를 다루는 지휘관이 쫙~ 있었던 것입니다. 32명. 그 지휘관들이 이스라엘 왕만 노리고 달려들었습니다. 큰 자든 작은 자든지 그 왕 한 사람만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이 병거를 마지막까지 하나님 자리에 놓았지만 아합은 그 병거에서 죽었습니다. 돈 좋아하다가 돈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병거의 노련한 지휘관들에 의해서 죽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줄곧 아합을 보시면서 많은 주의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셨습니다. 그 많은 죄에도 늘 회개만 하면 늘 받아주실 태세를 갖추고 계셨는데. 그런데 이 성경은 마지막까지 아합이 병거를 하나님 자리에 놓았다고 하네요. 아합의 가장 큰 죄가 바로 이 것입니다. 아합의 그동안의 실수는 아합이 겸비함으로 용서해주셨습니다. 전쟁 없는 동안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끝까지 믿은 것이 병거였다는 것입니다. 욥은 사탄의 전쟁에서 이겼는데 아합은 사탄이 이긴 것 같습니다. 그를 병거가 최고라는 거짓의 영으로 꾀었는데 아합이 아무리 하나님이 아무리 막고자 막고자 하여도 드디어 넘어가서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거에요. 마지막 죽기 직전까지 병거 얘기만 나옵니다. 결국 아합은 이렇게 그릇된 긍휼로 벤하닷을 놓아주었기 때문에 벤하닷에 의해서 죽습니다. 사탄을 우숩게 보면 사탄의 밥이 됩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얼마나 나한테 목숨을 구걸했는데. 그것만 기억하는 겁니다. 그 대단한 왕이 나한테 살려달라고 그랬어. 형제여~라고 했잖아.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 구속사라는 것은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저한테 잘해주고 목사님이 최고야 이런다고 그 사람 무서워하면 설교를 하겠습니까? 벤하닷과 아합과 형제여~라고 했잖아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구요. 구원 때문에 해요. 사람 무서우면 이렇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정말 여러분들이 의지하여 자다가도 부르는 병거는 무엇입니까? 죽기 직전까지도 못 내려놓는 병거는 무엇일까요?
정말 본문을 보면서 아합이더라구요. 내가 미가야인지, 아합인지, 여호사밧인지.. 정말 비슷한 것은 아합입니다. 너무너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 많고 근심하고 답답한 것도 많고.
32절서부터 입니다.
(32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대단한 정예부대 훈련을 받은 32명의 장수들이 일시에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 한 사람을 보고 달려 듭니다. 여기서 살아나는 자 어디 있겠습니까? 100% 죽는 거 잖아요. 그런데 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일촉즉발(一觸卽發)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요? 수수께끼. 여호사밧이 내가 변장했어요. 나는 아합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왕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왕은 일반 병사 복을 입었어요.라고 소리 질렀을까요? Think!에요. 소리지르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외침을 의미합니다.
마침 병행 구절이 역대하 18장 31절에 있는데
(31...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똑같은 병행 구절에 이게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도우셨습니다. 표적이 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표적이 되었잖아요? 여기서 살아남을 자 누가 있겠어요? 내가 이들보다 전략이 더 있겠어요? 뭐가 더 있겠어요? 정말 홀로 서있는데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이 입혀주는 대로 나갔다가 죽을 위기에 놓여졌는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셨대요. 그 정예부대를. 그가 그들을 그로부터 깨어내셨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으로부터 그들을 꾀어내셨다는 거잖아요. 여호사밧이 자기들이 표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일촉즉발에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생각을 해봐요. 여보사밧이 주여~ 한마디를 했는데 그 소리가 남쪽나라 말인 겁니다. 평안도 사람이 제주도 사람이 주여를 뭐라고 해요? 한마디를 해도 이게 눈치를 채서 감동이 될 수 있고. 혹은 두 번이나 전쟁을 하면서 아합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유가 어떠하든지 하나님 하신 일입니다. 전쟁에 여호와의 개입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런 감동시키심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너무 재밌는 띵크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깐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불러야 돼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주여 내가 연약합니다. 이게 찬송이 돼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말이 안되는 겁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불러야합니다. 여호사밧이 전쟁터까지 따라오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마지막에 주여~ 그 한마디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돕고 지켜주셨습니다. 남편이 갈 때 나만 안타깝지 아무도 안타깝지 않아서.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기도를 해주겠다, 복음을 전해주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집인데. 내가 마지막 소리 지른 여호사밧처럼 주여 나를 도와달라고 악을 쓰고 눈물 흘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게 혼자서 병상에서 중환자실에서 주여~ 미친 사람처럼 주님을 불렀습니다. 주님이 들으셨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바로 그것을 안 합니다. 주여~를 안 합니다. 아합은 잘났잖아요. 자기가 너무 우상단지를 섬기고 있기에 우상단지를 섬기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부유해졌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착!하면 병거가 있고, 정원이 나오고 마음이 부유해져서 하나님 부르는 것을 잊아뿌렸어요. 어쨌든 여호사밧은 아합과 같은 사악하여서 전쟁통까지 함께 동행함으로써 위기를 겪었잖아요. 죽다 살아난 것이잖아요. 정말 아합과 같은 사람과 짝 한 것. 하나님이 가만두시겠어요? 이것도 반면교사로 성경에 언급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구속사로 절마다 읽어가는 것이죠. 신앙생활은 성도와 함께 하지만 일상생활은 너무나 세상 사람과 하는 게 재밌습니다. 여자도 만나고. 주식도 하고. 여기와서는 거룩하게 예배만 드리고. 그래서 사업을 이루고 한몸을 이루는 결혼 등에 있어서 세상과 짝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봅니다.
# 어제 초원지기님이 새벽기도를 인도하시면서 아들을 불신결혼시켰는데 며느리감이 외모, 대학까지 마음에 드니깐 불신결혼이라고 해도 마음이 혹해서. 또 며느리가 이제 열심히 교회 나오겠다고. 이러니깐 아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시켰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오다가 차가 꽉 막혀 아들이 화를 내니깐 며느리님께서 누구는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알아? 그리고 돌아가서 지금까지 안나오고 있다고. 계시록 18장 4절에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복음의 증거로 세상과 잘 지내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재앙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함으로 심판이 임할 때 그들과 같이 심판 받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결혼, 이혼 등을 막는 것에는 단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다 죽을 수가 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급할 때 무슨 소리를 지르겠습니까? (주여~)
여호사밧의 부르짖음 후에 아합의 계획이 될 것 같이 될 것 같이 가다가 마지막 판에 심판의 화살이 아합에게 향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무심코 당한 일도 말씀과 같이 되었습니다. (34-36)
(34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무심코란 한글개역에는 우연히 라고 되어있습니다. 원어에는 흠이 없는 완벽한 상태, 온전한, 성실한 뜻이 있습니다. 무심코 한 일이 하나님의 완벽한 세팅이래요. 한 병사가 아합을 죽이려는 특별한 목적 없이 우연히 화살을 다 쏘았는데 마쳤습니다. 아합이 화살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있는 병거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왕의 갑옷과 갑옷을 이어주는 솔기의 틈새를 맞힐 확률은 제로%로 보면 됩니다. 무심코 쏜 화살이 하나님의 흠이 없는 완벽한 세팅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거에요.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아도 구원도 하나님의 온전하심의 결과라는 것이에요. 우연히 내가 왜 중앙극장에 가서. 우연히 내가 왜 광화문은 왜 가서. 거기에 괜히 가서 남편을 만났잖아. 우연히 이 직장에 간 것 같아도 우연히 우연히 만난 것 같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완벽한 세팅이라는 거죠. 잘 못 만났다고 아무리 외쳐도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은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냐, 순종하지 않냐는 자유의지지만 그에 따른 구원도 심판도 하나님의 흠없는 온전하심이라는 거에요.
35절
(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그런데 이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합은 하나님의 세팅입니다. 심장을 맞았으면 즉사했을 텐데 심장에 맞지 않았습니다. 팔다리를 맞으면 상처가 별로 없어서 죽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솔기 쪽에 맞아 피가 계속 흘리면서 하루 동안 살 수 있는 화살을 쏜 거잖아요. 하루동안 살 수 있는. 그때동안 많이 생각하게 하셨을 거 같아요. 당장 탈출하게 하라고 했는데 전쟁이 맹렬해서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피가 바닥에 고였다고 했는데 아합의 죽음을 아주 비참한 것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화살을 맞아도 피를 흘려가면서도 강퍅한 마음으로 회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여호사밧의 주여가 아합에게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전쟁 나가기 전에는 되는 일만 있다가 안 나가야할 전쟁터에 나가서 안 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자기는 죽어가면서 나봇을 생각했을까요? 여러분들이 제 말을 안듣다가 급할 때 제가 생각나실까요? 그렇게 생각나는 제가 되길 축원합니다.
36절
(36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일반병사 옷을 입은 아합이 죽었는데도 백성들의 전의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합이 전쟁을 독려한 것이 백성들에겐 고통을 준 것입니다. 마치 전쟁의 최종 목적이 아합의 죽음인 것 같습니다. 목적이 달성되니 전쟁이 끝났다고 한 것 같지 않아요? 아합이 죽었는데 백성들을 다시 성읍으로 본향으로 가라 이러는 겁니다. 라봇을 탈환하고 안 탈환하고는 상관이 없네요. 그래서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고 평화롭게 귀환하는 이 상황이 미가야의 말씀대로 똑같이 되었습니다. (17절, 28절) 그러니깐 내가 이렇게 말씀을 이루는 인생이 돼야 하는데 우리가 같은 본향이 돼야하는데. 아합이 죽으니깐 다 같이 본향으로 돌아오잖아요. 누구는 죽어가지고 본향이 되는데. 한 사람이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의로 이끌고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멸망으로 이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죽어서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되는 인생은 되지 말아야 되지는 않을까? 또 나 한사람 죽음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하고 이 얘기는 다릅니다. 아합은 죽어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죽어도 영육간의 죽음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적용해봅니다] 우연히, 무심코 재수가 없어 만났다고 아직도 원망합니까? 이것은 완벽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라고 생각합니까? 생각해보세요.
네 번째는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과 같이 된 일입니다. (37-40)
(37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아합은 심판했습니다. 아합의 시신이 사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최대 전리품은 상대방 적국의 왕이나 장수이기 때문에 아합이 왕복을 입고 있었으면 시신이 못 돌아왔겠죠. 그런데 일반병사, 평범 병사로 변장한 것은 아합이 살려고 꾀를 낸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 꾀로 하나님이 정말 시신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아합만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지키십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를 누가 따라가겠습니다. 말씀대로 된 것이 얼마나 얼마나 대박 맞은 인생인줄 모릅니다. 큐티하는 것은 대박입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은 신전에서 매춘행위를 한 여사제들이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일종의 공공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합의 시신이 돌아왔잖아요? 이세벨과 사백명의 선지자, 백성들이 다 나와서 왕을 환영하려고 하는데 아합의 피가 엉겨 붙은 그 시신을 사마리아 못에 씻는 모습과 개들이 그 피를 핥아 먹는 모습을 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38절) 이 말씀을 전율하면서 들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켜보던 바로 그 모습 속에 아합이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리라. (20장 42절)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흩어지리라 (17절) 아합의 피를 개들이 핥으리라(21장 19절) 모두가 사실 그대로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했던 선지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사무엘상 8장에 그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하더니 세운 것이 얼마나 불행인 것인지 보게됩니다.
39절에
(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건축한 상아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아합의 아버지)부터 아합 왕시대는 최고 번영의 시기를 보냈던 시대입니다. 최고의 정치를 잘한 왕입니다. 그런데 아합의 숱한 죄악이 16장부터 쭉 나오는데 (19장 빼고) 6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그 많은 아합의 죄악 중에 치적은 오늘 39절에 딱 한 줄 나오잖아요. 정치는 잘 했어. 하나님의 평가는 인간들의 평가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행한 일은 상아궁 건축하고 성읍 건축한 것 밖에 없다는 거에요.
40절,
(40 아합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합이 말씀대로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상들과 함께 잤다는 이 말이 천국에 꼭 같이 갔다고 들릴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요. 우리가 성경을 처음부터 읽는 게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나다, 엘라, 시므리 같은 왕들은 조상들과 함께 잤다는 말이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은 하나도 선한 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역의 왕조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그 왕들 중에서 조상들과 함께 잔 왕이 몇 명 있더라구요. 정치를 잘 한 왕들. 오랫동안 왕좌에 있던 왕들. 이게 무엇을 뜻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나마 아합은 이방의 왕들과는 가치관에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이방왕들은요. 왕으로서 그렇게 가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지고 싶으면 다 가지고. 죽이고 싶은 사람 다 죽이면 되잖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아합은 미가야를 너무 미워하잖아요. 그런데도 늘 흉한 일을 데려다가 듣습니다. 그러고 또 물어봅니다. 또 열렬히 미워해. 너무너무 그렇습니다.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 맨날 나한테 흉한 얘기만 해. 나봇의 포도원 때문에 말씀 때문에 일국의 대왕이 식음을 전폐합니다. 다른 왕 같으면 근심하겠어요? 그러니깐 이방왕들은 독재,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말대로 바알 선지자 850명을 데려오라고 하니깐 네.하고 데려왔는데 엘리야가 다 죽여버렸습니다. 벤하닷과 싸울 때 그냥 이름 없는 선지자가 와서 야단을 치고. 그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엘리야에게 가뭄이 있으리라 흉한 예언도 받았습니다. 마음 고생이 심해. 엘리야가 보기만 하면 자기를 욕해. 가뭄이 있으리라, 네가 죽으리라. 라봇의 포도원에서 개들이 네 피를 핥으리라. 죽여버리고 싶지 않겠어요? 살면서 엘리야를 가장 괴롭혔다는 것은 엘리야를 가장 불세출의 선지자로 발매김하는데 수고한 공로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애(眷愛)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제사장의 나라로 이땅에서 잘 살게 하셔야 되는 겁니다. 이 땅에서 갈릴리처럼 못 살때도 있지만 예수가 들어가면 그 나라 자체가 잘 살잖아요? 이스라엘 나라를 잘 살게 해야하는 데 그러면 아합도 잘 살잖아요? 그런데 아합의 악은 막아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이 생기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사람은 부할수록 거짓 아비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에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믿음가지기가 어렵잖아요. 이스라엘나라는 잘 살아야 하니깐 부강하게 하시는데 아합이 점점 부자가 되니 말씀을 안 듣는 것입니다. 계속 선지자를 보내시고 끝없이 말씀을 주시지만 아무리해도 안되는 아합을 보면서 이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 역할 모델을 아합이 했던 것입니다. 아합이 너무 수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합도 불쌍하고. 하나님도 불쌍하고. 아합도 너무 수고하고 하나님도 너무 수고를 하시고. 하나님 나라는 구별된 나라인데 구별되게 살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이 세상은 왕족과 결혼하는 것을 큰 성공했다고 해요. 그런데 아합보고는 불신 결혼 해서 망했다고 해요. 이세벨과 결혼해서 망했다. 누가 이것 가지고 흉한 소리를 듣겠습니다. 쓸데 없는 포도밭은 왜 가져서 심판 받냐고. 그런데 우리는 아합이 너무 부럽기 때문에 악한 역할을 해주는 아합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반면교사 삼아서 이길을 안 가는 겁니다. 우리는 아합과 같은 길을 가면 안되겠다.
생각해보세요. 아합이 너무 이해되지 않아요? 우리가 당대 신앙만 해도 예배 보는 게 익지를 않아서 몸에 익지를 않아서 금세 돌아갔다고 하잖아요. 차가 막혀서 돌아갔다고 하잖아요. 쪼끔만 없어도 헌금도 안하고. 우리 다 그렇습니다. 아합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아합이에요. 6장이나 아합을 등장한 것은 아합이 나쁜 놈이다라고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저 아합 설교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아합을 계속 보고계시다고 했잖아요. 이세벨 보고는 그런 얘기 안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아합은 아람의 벤하닷과는 완전히 다른 왕인 겁니다. 벤하닷은 못 알아먹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을 계속 호호 불어가시면서 마지막까지 보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심판을 비참하게 당하게 하셨어요. 이렇게 살면 이렇게 된다. 모델을 보여주시고. 말씀의 성취를 보여줬기 때문에 저는 마지막에 피도 알맞게 흘리게 하셔서 하루종일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역할을 주시고 마지막에 회개하고 가지 않았을까?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아합에 대해서 눈물이 나도록 묵상하면서 내가 아합의 입장에서 말씀이 들리겠는가. 우리가 전쟁 없이 3년 만 있어도 아합이 심판의 길을 가는데 쪼끔만 편해도 우리는 과거를 다 잊어버리거든요.
[여기에 적용을 해보면은] 이러고 저러고 해도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최고야! 하십니까? 안 믿어도 착하면 돼. 공부 잘하면 돼. 행함을 최고로 치십니까? 몸서리치게 예수믿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합이 벤하닷보다 백 번 낫지 않아요? 우리 지금까지 아합이 나쁘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봇의 포도원 가지고 식음을 전폐하겠어요. 일국의 왕이. 어떻게 850명 데리고 오라고 하니깐 네하고 데려오겠어요. 죽였으면 엘리야를 잡아 죽였어야 하잖아요. 이 사람(아합)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너무도 안 되는 거에요. 돈이 있어가지고. 권세가 있어가지고 너무도 안 되는 거에요. 바로 성경을 구속사로 읽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제가 설교를 해도 본의 아니게 제 설교를 듣습니다. 전쟁이 없었더라를 다 못 알아 들으니 다들 말씀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내가 말씀 적용한 것인데. 말씀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제가 너무 슬픈 거에요. 말씀으로 이야기 하시는 분이 한 분도 없어요. 이게 구속사가 진짜 이 땅에서 세속사로 생각해서 너무 분하고 안 들리는 게 아닌가.
(말씀을 맺으며)
말씀과 같이 되었다라는 변장을 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대요. 병거를 의지해도 말씀과 같이 되었대요. 무심코 당한 일도 말씀과 같이 되었대요. 개들이 피를 핥아도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말씀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아합이 죽었다는 것이요. 우리는 말씀대로 구원 받을 수 있는데 그러나 마지막에 실날같이 희망으로 부끄러운 구원을 얻어야 되지 않을까? 나는 아합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아합이니깐 그나마 이정도로 살았다. 아합이니깐 그래도 날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마지막까지도 하나님께 물었다. 너무 이해가 되고 회개가 되고. 이렇게 구속사로 절절이 자기를 보지 않으면 다 옳고 그름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에요. 우리 너무 연약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주는 완전합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기도제목
여러분들이 이기기 위해서 변장하는 거를 내려놓고. 내가 말씀으로 정공법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내가 의지하면서 자다가도 부르는 병거가 하나님이 되게 해달라고. 정말 내가 급할 때 주님을 부를 수 있도록 평소에 정말 그 주님을 부르는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우연히, 무심코가 이 땅에 없다고 합니다. 우연이 무심코 일어난 일들이 하나님의 완벽한 세팅이고 하나님의 성실함임을 믿어지게 해달라고. 그래도 이래도 저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최고에요. 이것을 알게 해달라고. 이혼과 불신결혼 이것을 앞에 두고 예수 믿는 게 대박이고 말씀 묵상하는 것은 최고의 천하를 얻은 것인데 이것을 하찮게 보니 이혼도 하고 정말 불신결혼도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이런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이 올까봐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고. 지금 내가 당하는 수치도 말씀으로 된 일이라고 잘 당하게 해달라고. 주님 크게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합의 인생을 묵상하며 참 눈물이 납니다.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이스라엘을 세우셨는데 그곳의 왕을 부강하게 해줄 수도 없고 그러게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부강하게 해준 아합이 하나님을 믿기 어려운 것을 보면서 주님 이 모든 말이 하나도 남김없이 저에게 주신 말씀인 것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묻지 않으니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850명을 다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게 물을 수도 없고. 얼마나 생각해보니깐 하나님 뜻대로 해보고자 한 아합을 생각하면서 정말 우리의 노력으로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아합을 너무 사랑하셔서 무심코 쏜 화살에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하시는 그 우연히 쏜 화살이 하나님의 완벽한 성실하심이고 하나님의 세팅임을 알았습니다. 개들이 피를 핥는 이 수치가 내 살아온 날의 결론임을 인정하게 하옵시고. 마지막에 심판을 당하는 것으로 수치를 당해도 내가 내 하나님의 아버지 하나님. 내 하나님의 궁정에서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내 하나님 궁정에서 눈을 뜨고. 주여. 주여. 이 땅에서 부르짖은 주님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여하면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 구원받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옵시고. 불꽃같이 지켜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사단이 왕 노릇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모두 정공법으로 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8. 18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
일시 2019. 8. 18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이지민, 이은영
기도제목
이지민 아웃리치 다녀오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일상 복귀 잘 할 수 있도록
이은영 일자리 잘 구할 수 있도록, 한 주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한수진 혈기 부리지 않고 말씀을 잘 붙드는 한 주 될 수 있도록.
***말씀묵상 적용하는 것이 대박맞은 것이라고 천하를 얻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목장 한 주도 말씀 잘 붙들 수 있도록.
오늘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오늘 말씀 잘 새겨지를. 다음 주에는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