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4
열왕기상 22:1-12 전쟁 없이 삼년을 지냈더라
원하던 것이 이뤄지면 겸비하던 것이 사라지고 주님을 버리고 교만해집니다. 또 다른 과실을 위해 일을 꾸밉니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장으로 결론이 참담합니다. 오늘은 아합처럼 전쟁이 없는 삼년을 지낸 사람들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1. 또 다른 세상전쟁을 꾸밉니다. (1-4절)
(1절) 아람과 이스라엘이 3년 동안 전쟁 없이 살았던 평안은 아합에게는 좋은 일이 아닌 쥐약입니다. 아합의 겸비함이 오래가지 못한 비결입니다. 그 동안 가뭄, 벤하닷 전쟁,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사건으로 겸비함을 가졌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대가 아닌 자녀의 대로 유보해주었습니다. 자녀 또한 아합 같이 회개하면 유보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부모인 아합은 자녀에게 재앙을 주신다면 그 재앙을 나에게 달라며 자녀를 건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3년 동안 자녀를 위해 옷을 찢는 겸비한 태도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24장 다윗이 재앙을 당해서 나와 아비 집을 치소서라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재앙이 그쳤습니다. 재앙이 올 때 다윗은 나와 아비 집을 치소서 라고 했고 아합은 겸비함을 보였기에 네 죄를 자녀의 시대로 묻겠다고 유보하였습니다. 다윗의 때는 아비와 자녀 둘 다 치소서라는 기도가 맞고 아합의 때는 재앙이 내 자녀 대에 가지 않게 내가 재앙을 다 받겠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두 경우 다 맞다 하지만 아합은 수준이 낮아서 내가 재앙을 받겠다가 안됩니다.
Q.내 죄를 나에게 묻는 것이 좋습니까? 자녀 시대에 묻는 것이 좋습니까?
다윗의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소서와 아합이라면 재앙을 나에게 물으세요. 내 자녀에게 묻지 마세요. 여러분은 어느 쪽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아합에게 3년 이란 시간을 편안하게 지내다보니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합이 어떻게 이겼는지 알지만 아합은 자신이 대단한 책략가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악행은 이세벨의 율법을 빙자한 간교한 술책으로 백성들에게 가리어졌습니다. 죄를 아무리 가리어진다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내 실력이고 지면 남 탓, 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 성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를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합에 대한 여러 차례 심판의 예언이 사망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본문의 시작입니다.
Q.여러분은 지금 전쟁의 시대입니까? 전쟁이 잠깐 없는 시대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때가 더 유익했습니까?
(2절)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등장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본래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우호관계를 가지는 것이 범죄는 아니지만 일생동안 일평생 전쟁이 있었다는 것 기억하시죠? 동맹을 맺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같은 아브라함 자손이지만 한쪽은 여호와을 섬기고 한쪽은 바알을 섬기기에 전쟁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안 믿는 친척들과 잘 지내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아합과의 결혼동맹은 결국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의 노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 보기에 두 나라 다 선한 것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어머니 태후의 위도 물리치며 개혁을 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18장을 보면 아사왕은 바하사 왕이 쳐들어오자 성전과 왕궁 곳간에 모든 것을 아람왕에게 바치면서 형제 나라 이스라엘과의 약조를 깨달라고 요청합니다. 둘 다 문제만 생기면 아람에게 와서 붙었다 떼었다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 너무도 악한 아합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치, 경제, 군사력이 너무 막강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단한 벤하닷을 이긴 아합은 이세상의 이순신 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아합의 시대로 포스트모더니즘시대로 사람이 왕 노릇하는 인권의 시대가 맞습니다. 일곱 장이나 아합이 등장하고 역대하는 이스라엘 왕이 등장 안하는데 한 장이나 등장합니다. 끊임없이 예수 믿는 사람을 초토화 시키며 믿음을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아합은 국부입니다. 아합의 위상은 여호사밧 보다 높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사밧이 아들을 주며 혼인 동맹을 맺고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길 거라 생각하며 북으로 내려왔습니다. 북쪽은 올라가는 곳인데 내려갔다고 얘기합니다. 영육간의 끌어내린 악은 이토록 놀랍습니다. 역대하 19장 2절을 보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며 여호사밧에게 책망합니다. 정치를 잘하는 아합이지만 성경에서는 악의 대명사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Q.누구의 영향으로 지금 너무 대단해 보이지만(좋아 보이는 곳) 어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내려가고 있습니까?
(3절) 길르앗 라못을 탈환할 능력이 있는데 왜 잠잠하냐고 교만함을 보여줍니다. 20장 10절에 불신자 아람왕 벤하닷이 보여준 교만한 모습과 똑같습니다. 아합과 벤하닷이 다를 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아람과 연합했지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려 합니다. 열왕기상 20장 34절 돌려주겠다고 약조하고 벤하닷 목숨 대신에 받기로 한 땅입니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는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 러시아, 일본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벤하닷은 왜 약조하고 돌려주지 않았을까요? 묵상해보세요! 아람은 도리어 여호와를 무서워하는데 아합은 내가 잘나서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하나님 나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합을 지켜주었는데 아합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버리면 그날로 지는 싸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져 본 적이 없기에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벤하닷은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기 아까워 기회가 있으면 빼앗으려 하고 안 주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아합은 3년 동안 회개하지 않고 보냅니다. 결국 둘이 똑같습니다. 사단은 3년 동안 아합을 편안하게 해서 아합을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하려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아합이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믿으려고 흉내를 내려 해도 깨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없어도 깨어있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아합은 결국 교만이 올라와 아람을 물리치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전쟁이 없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아합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 세 도피성 중에 하나였고 동편지파의 므낫세, 르우벤, 갓 지파에게 주어졌던 땅 중 레위인의 성읍이었습니다. 산악지역인 이곳은 농업에도 적합한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 와야 하는 본디 내 것이기에 가져오려고 한 것입니다. 한국 또한 세계 강국 요충지 아닌가요? 다 모여 있잖아요...
(4절) 아합은 여호사밧을 꼬여내어 전쟁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도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고자 결단했습니다. 두 왕 사이에 연대의식은 매우 강했지만 영원히 남과 북은 영원히 원수로 지냈습니다. 남 북은 어떤 약속을 해도 결국 다시 또 원수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그럴까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고 어제의 적이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람과도 형제여를 외쳤지만 모두들 다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신문칼럼: 6.25당시 한미방위조약체결)
Q.여러분이 편안하니 본래는 내 것이라고 탈환하고 싶은 길르앗 라못의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2. 물을 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합니다. (5-9절)
(5절) 여호사밧이 모든 일에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아합을 계속 보시고 계시다는 사건을 뜻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또 하나의 선지자인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악해서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큐티하기가 어렵기에 옆에서 물어봐주는 것이 좋은 비결입니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걸려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물어보는 것이 우리들의 공용어 관용어입니다. (*목장나눔: 신도시 토지개발에 따른 투자를 물었더니 목장에서 한결같은 반대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일 돈이라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하지만 도박과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반대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기에 나중으로...)
사소한 것 같지만 묻는 것으로 온 집안이 살아나고 회사가 살아납니다. 아합이 잘나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아무리 들려줘도 듣지 못합니다.
(6절) 선지자 400명이 기도 없이 말씀을 찾지 않고 즉시 올려가소서 잘 될 것입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아합의850명은 다 죽었는데 어디서 400명을 만들어 냈을까요? 자격도 없는 선지자400명을 자신에게 네라고만 하는 어영선지자 들로만 모았습니다. 최고를 좋아하기에 이세벨은 죽을 때도 화장하고 죽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다 죽고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을 24절에 하는 것을 봐서 명목상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임은 분명하지만 입으로만 섬깁니다. 아합은 한 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나봇의 포도원 사건) 그렇기에 한 사람도 아니오가 아닌 네만 합니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분별이 어렵습니다. 나치가 독일 교회를 핍박을 했을 때 교회가 한 마디도 말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본회퍼 혼자서 얘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아합의 대적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850:1 대결에서 이겼지만 무명의 하나님 선지자가 그렇고 미가야를 위해서 400명을 준비했습니다. 1명을 대적하기 위해 400명의 어영선지자를 고용한 것입니다. 지는데도 또 만드는 아합을 능력의 국부라고 얘기해야 하나요?
(7절) 7절의 선지자는 대문자 Lord이고 6절의 선지자는 소문자 lord입니다.(영어성경표현) 주는 불교의 주도 있고 유교의 주도 있고 이슬람의 주도 있는데 여기서는 오직 여호와의 선지자 Lord로 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7장 여호사밧은 산당을 제거하고 말씀을 순회하면서 개혁을 주도한 영적분별력이 있는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18장에 아합과 사돈을 맺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기에 행위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부족해도 다윗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것 같아도 예수 씨가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8절) 아합은 미가야 한 사람이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하니 여호사밧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약간의 질책을 합니다.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 다는 것을 아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자기중심적이기에 하나님 말씀이 아닌 나에게 좋은 것인가만 중요한 것입니다. 미워한다는 뜻은 누군가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증오함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아합은 미가야, 엘리야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합니다.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진짜 선지자라면 나를 참을 수 없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웬만큼 잘 믿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이 죽일 만큼 미워하는 사람은 없어요. 한쪽에서는 좋아하고 한쪽에서는 죽을 만큼 미워할 수 있는 것만 있을 수 있어요. 아합은 자기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기에 여호사밧은 은근슬쩍 질책합니다.
(9절) 여호사밧은 전쟁을 앞두고 미가야 선지자에게 들어야 하는 것을 예견합니다. 이것은 아합을 죽음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입니다.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아합은 돌이키지 못합니다. 전쟁 없이 3년을 보내더니 아합은 하늘 끝까지 올라갑니다.
Q.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가깝게 지냅니까? 여러분은 물을 만한 선지자를 머리로 좋아합니까? 가슴으로 좋아합니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합니까?
3. 길한 말만 듣기를 원합니다. (10-12절)
(10절) 아합하고 여호사밧이 왕좌에 앉아있고 400명이 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임을 보여줍니다. 400명의 선지자 집단이 공개적인 예언활동을 하는 것으로 예수무당이 전하는 말을 듣는 풍토가 아합에게는 조성되었습니다.
(11-12절) 시드기야가 철 뿔을 만들어서 아람왕을 쳐 죽이면 된다고 예언합니다. 신명기 33장 16-17절 모세가 수소의 위엄과 들소 뿔에 비유해서 요셉지파를 축복한 내용입니다. 에브라임지파가 세상 열방과 싸워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는데 에브라임지파는 요셉지파의 후손입니다. 시드기야가 요셉지파를 축복하는 예언을 말씀으로 하며 철 뿔을 만들어 열방과 싸워 승리할 것이라고 하니 아합은 흥분하며 승리를 확신합니다. 400명이 한결같이 아합의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11절의 자기를 위하여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모이고, 사역하고, 기획안을 만들기에 보기에는 멋있는 철 뿔이지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입니다.
Q.여러분은 남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는 길한 말만 듣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장나눔: 지난 주 말씀 듣기 전까지 나는 아합한테 괴롭힘 당하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공동체 와서 계속된 악을 행해도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아합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간단하다.나는오늘 비가 와서 아스팔트에 주차 하고자 권찰님을 재촉하여예배에 왔는데 권찰님이 내게 양보하는 마음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네가 그러고도 목자냐며 나를 대적자라고 올바른 소리를 해주시니 내가 아합같다. 그렇게 흉한 말을 잘 들었는데 권찰님은 여기서만 회개하는 척 하는 것이니 속지 마시라며 흉한 말을 또 해주신다. 두 분의 나눔을 들으니 하나님이 계속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빚도 잘 정리되고 특별한 일이 없으니 앞으로 공동체에 잘 붙어간다고 말했더니 권찰님이 여가선용이 아닌 사명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흉한 말을 해주신다.
외도 사실 고백 후 회개했지만 목장에 새 식구 올 때마다 죄 오픈하라고 아내에게 구박 받으면서 사는 것이 내 삶의 몫인 것 같다. 흉한 말을 잘 듣는 남편은 열등감이 없기에 들을 수 있다. 열등감이 없으면 잘 들어내는 것이고, 열등감이 있으면 싸우게 된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열등감이다.)
[기도제목]
은우
3년의 전쟁을 계속 치르는 중인데 주님이 이기시도록
전시준비 하는 것 2% 시작하였는데 나머지 98%도 잘 끝날 수 있도록
해외 출장이 있는데 주님 동행 하시도록
연봉 협상을 해야 하는데 받아야 하는 것들 자세하게 잘 얘기 할 수 있도록
돕는 베필을 알아보도록
민주
동생의 앞으로 일들 기도로 묻고 분별하며 사명감당 하도록
말씀으로 묻고 인도 받도록
선택이 아니라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자립신앙 할 수 있도록
예선
매 순간 감사한 생활 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일들에 잘 인도 받도록
은실
말씀 앞에서 내 모습 보고 회개로 나아가도록
가족구원
큐티생활
현경
선지자들이 해주는 말을 가슴으로 좋아하고 흉한 말도 잘 들을 수 있도록
가족들의 사건과 상황들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고 부모님과 건강하게 분리하기
취업준비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