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8. 4 주일예배>
일시 2019. 8. 4. 3부 예배
찬양 내 맘의 눈을 여소서 #주 자비 춤추게 하네#Because of you# 거룩한 삶을 살아내리라 (큐페찬양) #십자가를 질 수 있나 # 아름다우신#
전쟁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본문 왕상 22:1-12
설교 김양재 목사님
우리가 입시 전쟁, 바람 전쟁이 끝나고 대학은 붙고 배우자는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났을까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는 하나님만을 부르며 겸비함을 보이며 아이만 붙는다면 남편만 돌아온다면 이번 사업만 해결해준다면 주님 하라는 대로 모든지 하겠습니다. 하면서 겸비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겸비함은 사라지고 주님도 멀리멀리 가버리고 이제 교만해집니다. 주님이 가버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을 버리고 갑니다. 또 다른 과시를 위해 일을 꾸미게 됩니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 장입니다. 결론이 참담하게 납니다. 여전히 계속 이겨야 하고 과시해야 하니, 오늘은 아합처럼 전쟁이 3년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 째로, 또 다른 세상전쟁을 꾸밉니다. (1-4)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아람과 이스라엘이 3년 동안 전쟁 없이 살았다는 이 평화는 아합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라 쥐악입니다. 아합의 겸비함이 오래 가지 못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가뭄도 오고 벤하닷이 쳐들어오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서 드디어 이제 겸비함까지 갔습니다. 겸비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대가 아니라 자식의 대로 재앙을 유보하신다고 했습니다. 자녀는 무슨 죄인가? 하겠지만 자녀에게도 아합과 같이 회개하면 또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부모인 아합은 자녀에게 재앙을 주신다면 그 재앙을 나에게 주세요, 우리 자녀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해야 되겠는데. 그리고 3년 동안 자녀들을 위해서 열심히 회개를 해야 (옷을 찢는 것이) 겸비함에 맞는 태도입니다.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이 재앙을 당해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했더니.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재앙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기억나시죠? 다윗은 재앙이 오니깐 본인이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시라 했고. 아합이 겸비함을 보이니깐 하나님은 네 죄를 내 자식 대에 묻겠다고 유보하셨습니다. 아합의 수준이 낮으니 호호 불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 때는 아비와 자녀 둘 다 치소서 하는 게 맞고 아합 때는 재앙이 네 자녀 대에 가지 않게 내가 재앙을 다 받겠습니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라면 이 경우 다 맞게 할 것 같은데 아합은 수준이 낮아서 오늘 보니깐 내가 재앙을 받겠다.도 안 되네요.
[적용해보세요] 내 죄를 나에게 묻는 것이 좋습니까? 자녀 시대에 묻는 것이 좋습니까? 또 다윗의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와 아합이라면 재앙을 나에게 물으세요. 내 자녀에게 묻지마세요. 자. 여러분은 어느 쪽 기도를 하겠습니까? 아이고 어려워라~ 듣기만 해도 어렵죠? 신앙이라는 것 이렇게 어렵습니다.
아합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줘보니깐 예전으로 도로 BACK, 돌아갔습니다. 저는 제 남편처럼 회개하자마자 천국에 가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아합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제 죄가 훨씬 더 많아서 이렇게 남았습니다. 우리는 아합이 어떻게 이겼나를 알지만, 시간이 가니깐 아합은 승리에 속아서 자기가 대단한 책략가라는 생각이 든 거에요. 그래서 위기를 잊어버렸습니다. 나봇 따위도 잊은 듯합니다. 아합의 악행은 이세벨의 율법을 빙자한 간교한 슬책에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가리어져 있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어서 엘리야를 보기만 하면 대적자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라 말합니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내 실력이고 지면 남탓, 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에요. 욕심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드디어 아합에 대한 여러 차례 심판의 예언이 드디어 사망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본문의 시작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전쟁의 시대입니까? 전쟁이 잠깐 없는 시대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때가 더 유익했습니까?
2절입니다.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여지껏 안 나오던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물론 두 나라 북이스라엘, 남유다는 이제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남북은 항상, 계속, 일생 동안 일평생 전쟁이 있었다는 것. 기억하시죠? 동맹을 맺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한 쪽은 계속 여호와를 섬기고 한 쪽은 바알을 섬기니깐 전쟁은 당연하고 싸움은 당연하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안 믿는 친척들과 잘 지내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더구나 아합의 딸이 이세벨의 딸이잖아요.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은 결국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의 노력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남유다의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두 나라 다 선한 게 없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어머니인 태후의 위를 물리치면서 개혁을 했습니다. 기억나실 겁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5장 18절을 보면, 아사왕이 이스라엘 바아사 왕이 쳐들어오자 성전 왕궁 곳간의 은금을 모두 베껴서 아람 왕에게 바치면서 형제나라인 이스라엘 간의 약조를 깨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둘 다 문제가 생기면 아람에게 와서 붙었다 깨졌다 하는 것입니다. 형제 나라도 형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다를 것 하나 없습니다. 남북은 둘 다 불순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도 악한 왕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치, 경제, 군사력이 너무 막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벤하닷은 알다시피 서른 두 개국을 연합한 아람 왕인데 그런 벤하닷과의 전투에서 두 번이나 물리친 것이 팩트가 되다보니깐 지금 생각하면 아합은 이순신 장군과 방굴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이길 수가 없는 7천 명을 가지고 10만명을 물리쳤으니깐. 그러니 아합에 대해서 7장이나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아합의 시대이기 때문에 즉, 포스터 모던니즘의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이 왕 노릇하는 인권의 시대가 맞습니다. 그리고 꽃을 핍니다. 아합이 7장이나 등장하고. 역대하에는 이스라엘 왕이 등장하지 않는데 역대하에서도 한 장이나 아합에 대해서 할애를 했습니다. 그러니깐 끊임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끌어내리고 초토화시키고 있는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갔습니다. 믿음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엘리야를 죽이고자 해도 나봇을 죽였어도 두 차례 엄청난 전쟁을 이겼기 때문에 국부(國父)인 겁니다. 이스라엘에서 국부인 겁니다. 아합의 위상이 여호사밧보다도 당연히 높았을 것입니다. 그즈음에 고대 근동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을 보면 아주 대단한 강대국 앗수르와 전쟁을 했는데 아람과 이스라엘이 이긴 것은 아니어도 앗수르가 소득 없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대요. 그것만 해도 이긴 것으로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아합은 세 번의 강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사람은 국부 맞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호사밧이 아들도 주면서 혼인동맹도 맺고 아람과 전쟁을 하면 이기겠지 싶어서 여호사밧이 북으로 내려갔습니다. 북으로 올라갔다고 하지 않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다운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백만 대군의 유다도 대단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백만 대군의 여호사밧을 영육간에 끌어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악의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예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악한 아합을 도우면 안되는 것입니다. 역대하 19장 2절에 보면, 예후선지자가 여호사밧에게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돕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면서 책망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치를 잘 해보이는 아합이지만, 아합은 성경에서 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무리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적용해보세요] 누구의 영향으로 지금 너무 대단해보이지만 어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습니까? 누구의 영향으로 어디로 좋아보이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3절입니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신하들 보고 길르앗 나못은 능히 탈환할 능력이 있는데 왜 잠잠하냐고. 자기와 자신이 소유한 군대 힘을 과시하면서 이것 탈환해야한다고 합니다. 20장 10절에 불신자 아람의 왕 벤하닷이 보여준 그 교만함 모습과 똑같습니다. 아합하고 벤하닷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아람과 연합을 했지만 이제는 예전에 전쟁을 통해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찾아 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길르앗 라못은 아람이 빼앗은 땅이고 형제요 하면서 빼앗은 땅. 20장 14절에서 돌려주겠다고 약조하고 벤하닷이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면서 약조하고 벤하닷의 목숨대신에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이미 벤하닷 1세 때 이 땅들을 뺏겼었습니다. 다시 주기로 했는데 벤하닷이 약속을 지키니깐 이제는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으로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곳을 미국이라 말해야 하나요? 러시아라고 해야 하나? 일본이라고 해야 되나. 벤하닷은 약조를 하고 지키지 않았을까요? 왜 돌려주지 않았을까요? 이런 것들을 띵크를 해봐야 해요. 아무리 봐도 아합이 실력이 없어 보이고 무시가 되는데, 7천명이 어떻게 10만 대군을 물리칠 수 가있지? 가만 생각해보니깐 결국 여호와라는 신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2차 전쟁 때도 여호와가 산의 신이라서 강하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형제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 또 졌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가 무서워요. 그런데 너무 우숩지 않아요? 아람은 도리어 무서워하는데 아합은 내가 잘나서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 나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아합을 지켜주셨는데 이것을 다른 사람은 아는데 아합만 모르는 것입니다. 네가 여호와를 버리면 그 다음은 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져본 적이 없으니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벤하닷은 이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기가 너무 아까워서 기회가 있으면 빼앗을 수 있다 생각하고 안줘도 된다 생각하고. 그런데 아합은 이 3년 동안 회개하지 않고 3년을 보내니 곧 둘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3년 동안 아합을 편하게 해서 아합을 여호와를 떠나게 하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3년을 편하게 하니깐 아합이 완전히 멀리멀리 가더라구요. 사단 쪽으로. 아합이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아합은요, 벤하닷 전쟁 2번, 가뭄 3년, 엘리야하고 할 때는 믿는 흉내를 냈는데 이런 인간이 되는 거 밖에 없으면요 깨어 있으려고 해도 깨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한테는 전쟁이 없는 것이 쥐악입니다. 아주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내가 전쟁이 없어도 깨어 있는 사람. 이 사람이 진짜 믿음 있는 것인데 대부분 그러기 어렵습니다. 교만이 올라오고 아람을 물리치겠다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전쟁이 없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아합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 동쪽 도피성 중에 하나였고 그 동편 지파의 르후벤 므낫세 갓지파에게 주어졌던 땅입니다. 그 중에서 요단강 동편 세 도피성 중에 하나인 레위인의 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빼앗긴 땅도 많았지만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산악지대인 이 지역은 농업에도 적합한 아주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무역의 중심지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종교, 농업, 상업적 이유에서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 와야. 본래 내 건데 가져와야하는 것입니다. 고구려 때 우리 영토가 중국까지 영토가 넓혀졌지만 그거 내거라고 찾으러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거 내거다 이러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꼬여서 이 전쟁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이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고자 결단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노래를 하면서. 여호사밧이 긍정적으로 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 두 왕은 어쨌든 간에 연대 의식은 매우 강했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남쪽 북쪽은 영원히 원수처럼 지냈는데. 둘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남북은 어떤 약속을 해도 결국은 다시 원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까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것. 너무도 수없이 봅니다. 그러니 아람과도 20장에서 형제여~하면서 내 것이 당신 것이라 외쳤지만 북이스라엘도 유다도 아람도 모두 다 자기가 한 약속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지금도 나라들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적용을 좀 해보세요] 여러분이 편안하니 본래는 내 것이라고 탈환하고 싶은 길르앗 라못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여러분 제 말이 이해되십니까? 우리가 경상도, 전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서로의 열등감입니다. 맨날 애매한 소리들을 서로 합니다. 무조건 도로 BACK 무슨 결정을 해도 도로 백. 도로하고 백하고 똑같으네. 이게 어려서부터 일본하면 나쁜 놈인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라 빨리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시간을 벌어서 실력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없으면
두 번째로, 물을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합니다. (5-9)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막으니깐.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여호사밧이 이처럼 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은 이제 아합에게는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계속 보고 계시는 사건입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엔 동참을 하겠는데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물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준 또 하나의 선지자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 다 아합같아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들어야 하는데 혼자서 큐티하기 어렵잖아요? 늘 곁에서 Movement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큐티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혼자서 하면 힘드니깐 물어봐 주는 것. 오늘 큐티했어? 오늘 뭐 깨달았어? 이렇게. 오늘 사건이 났는데 너는 어떻게 들었어? 이게 정말 일본을 물리치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큐티를 하고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걸러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어보라는 말이 우리들의 공용어, 관용어잖아요? 이렇게 목장에서 물어봤어요. 가지고 있는 농토의 이축권을 사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곳에 5년만 지나면 신도시가 완성되기 때문에 무조건 개발돼야지 되겠는데 개발업자가 그 땅은 허가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면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데 허가가 안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목장에서 물어보고자 합니다. 했더니. 목자부터 목원까지 한결 같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해주더만요. 그거 하나님 일을 위해 쓰일 돈이라는 마음 가짐이 있으면 해도 좋은데 그런 마음 없다면 하지 마시고. 이게 토지 보상 받는 것이 마치 꽁돈처럼 느껴지지만 도박과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 반대한다고. 또 당장 먹고 살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아니라도 자식대에서 개발할 수도 있어서 하시면 안좋겠다고. 수준들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그날로 결정해야 한다는데 부목자님은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물었다는 그것 때문에 가정이 살아나고 회사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합이 잘나서 벤하닷과 이긴 것이 아니잖아요.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잖아요. 그런데 아합은요, 아무리 들려줘도 듣지를 않습니다.
6절입니다.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물을만한 선지자냐라고 했더니 400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 400명이 기도도 없이 말씀도 찾지 않고 즉시 올라가소서, 잘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아합은 그 850명 다 죽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400명을 금방 뚝딱 만들어 냈을까? 그러니깐 이사람은 굉장히 조폭 두목 같잖아요. 마시는 거 의시되는 거 좋아하니깐 400명을 등장시키는 겁니다. 자격도 없는 이런 선지자를 400명이나 모아서 자기 말에 Yes 하는 어영선지자를 모았습니다. 이사람은 항상 최고를 좋아하니깐 맛과 멋을 좋아하니 오죽하면 이세벨은 죽을 때도 화장하고 죽더만요. 잠시후에 나옵니다. 그런데 바알 선지자들이 다 죽었고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 명목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임에도 분명한데, 그들이 여호와를 입으로만 섬기는 것이죠.
아합은 한 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가져야 되는 것을 봤잖아요? 나봇의 포도원 가지려고 나봇을 죽이려는 것 다 봤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여기에 한 사람도 No를 안하는 것입니다. Yes 부대만 있는 것입니다. 다수가 그래서 옳은 게 아닙니다. 맨날 한다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법이 있잖아요. 우리가 가서 행진도 해야할 일도 있지만, 이처럼 분별이 참 어렵습니다. 나치가 독일 교회를 히틀러에 의해서 핍박을 했어도 한마디도 소리내지 못했다는 거죠. 본에퍼 혼자서 하다가 순교를 했다고. 아합의 대적은 다른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850대의 대결에서 이겼잖아요? 그런데 무명의 하나님 선지자가 그렇고 또 미가야를 위해서 400명을 준비했습니다. 이 한 사람 대적하기위해서 400명의 어영 선지자를 고용한 것입니다. 지는 데도 또 만들고 지는 데도 또 만들고. 이 사람을 능력의 국부라 해야 하나요?
7절이에요.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6절에 선지자는 소문자lord고. 7절에 여호와의 선지자 Lord는 대문자 로드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그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주는 불교의 주도 있고 유교의 주도 있고 이슬람의 주도 있는데 여기서 주는 오직 여호와의 선지자 Lord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역대하 17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산당을 제거하고 특별히 말씀을 순회하면서 가르치면서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당연히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 아닙니까? 이 여호와 선지자를 찾았는데 역대하 17장에 개혁해놓고 역대하 18장에 아합과 사돈을 맺는 건 뭡니까? 그러니깐 보면 행위로 판단하시면 안됩니다. 부족해도 여호와를 믿고 나가는 것에 둬야 하는데. 다윗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듯해도 예수씨가 있는 것을 봐야 합니다.
8절에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미가야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나한테 흉한 일만 얘기해요. 여호사밧이 왕은 그딴 말 하지말아요. 하면서 질책을 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 선지자를 찾으니 미가야 한 사람이 있대요.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 다는 것을 아합이 알고 있습니다. 다 압니다. 다 아는데 아합이 자기 중심적이니깐 하나님 말씀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직 나한테 좋은 가 아닌가. 교회를 다녀도 이것만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깐 아합이 미가야를 미워하나이다. 그가 나한테 흉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내가 미가야를 미워하는데 미워한다는 뜻은 누군가에 대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증오함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아합은 이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미가야, 엘리야. 그냥도 아니고 죽이고 싶은 겁니다.
여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진짜 선지자라면 나를 참을 수 없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꼭 있어야 되는 구나. 그럼 여러분은 진짜인 것입니다. 어저께도 세 여인이 이단 관련 책 10권을 내 방 앞에 놓고 갔습니다. 제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은가봐요. 그런데 저 멀리 이단 갈 것 없이 예수를 믿는데 그렇게 웬만큼 잘 믿지 않으면 그렇게 참을 수 없이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 쪽에선 좋아하고 한 쪽에서는 죽으리만큼 미워하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자기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용서 못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은근슬쩍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9절에
(9 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전쟁을 앞두고 그렇게 듣기 싫은 흉한 말을 미가야로부터 들어야 하는 것을 예견하면서 사실은 지금 여호사밧이 미가야를 데리고와서 흉한 일을 듣게 하는 것이 아합으로 오는 죽음의 길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또 기회잖아요. 그러니깐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여호와께서 계속 아합을 보고 계시는 겁니다. 여호사밧을 보내서 또 메신저를 주시는 겁니다.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는데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합을 보고 있는데 아합은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 없이 3년을 지냈는데 사람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국부로 이순신장군 같이.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어느 사람과 가깝게 지냅니까? 여러분은 물을 만한 선지자를 머리로 좋아합니까? 가슴으로 좋아합니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합니까?
전쟁이 없으면
세 번째로 길한 말만 듣기를 원합니다. (10-12)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이제 아합과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왕좌에 딱 앉아 있고 400명이 그 앞에 앉아 있으니 이것은 개인적 의견이 아니고 공식적인 자리잖아요? 400명 선지자 집단이 공개적으로 예언 활동하는 것으로 예수 무당이 전하는 말을 듣는 풍토가 아합에게는 조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어영 선지자들.
11절.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이제 시드기야가 철뿔을 만들어 이 철 뿔로 아람왕 쳐 죽이면 된다고. 그렇게 실무 교육을 하면서 실감나게 예언을 했습니다. 교보재까지 써가면서 완벽한 브리핑을 했는데. 이 예언은 신명기 33장 16-17절에 모세가 숫송아지의 위엄과 들소의 뿔에 비유해서 요셉지파를 축복한 이야기입니다. 에브라임지파가 세상 열방과 싸워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는데, 에브라임은 누구의 후손이죠? 요셉지파의 후손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대표하는 아합이 시드기야가 요셉지파를 축복하는 예언을 말씀을 가지고 하면서 철 뿔을 만들어가지고 와서는 열방과 싸워 이렇게 하면 승리할 것이다고 하니 흥분한 아합은 맞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400명이 모두 한결 같이 아합 왕의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승리합니다. 왕이 최고입니다. 연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1절 처음보니깐 이 모든 것이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하여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자신을 위해 예언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모두 사역을 할 때 자기를 위하여 모이고 자기를 위하여 사역하고. 교회에서도 성경 가지고 수많은 우리가 기획안을 만들지만 다들 자기를 위하여 기획안을 만듭니다. 보기에는 멋있는 철 뿔이지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아시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남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는 길한 말만 듣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도 남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내가 하는 일에는 길한 말만 듣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눔이에요. 지난 주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아합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엘리야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와서 계속 악을 행해도 여호와께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눈길이 느껴진다고. 이게 말씀을 듣고 나눔을 했습니다. 아합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참 간단하다고.
오늘 비가 와서 아침 일찍 가야 진흙탕 운동장 보다 아스팔트에 주차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권찰을 재촉해서 같이 1부예배에 왔는데 권찰이 옆에서 지적을 했다는 겁니다. 집도 가까운데 멀리서 오는 사람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이 눈꼽 만큼도 안보인다고. 자기에게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네가 그러고도 목자냐! (나눔에 이렇게 그대로 나와있었습니다.) 이세벨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누워있는 아합한테 식사하라고 북돋아 주는데 권찰은 나한테 오히려 대적자라 부르고 올바른 얘기를 해주니 내가 아합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흉한 말 잘 들었잖아요? 권찰님이 또 뭐라고 했냐면, 그러면서도 운동장 진흙탕 지나 쌩 가는데 여기서만 회개하는 거다, 속지 마시라.했답니다. 흉한 말을 해주네요.
이 나눔을 듣고 목자님과 권찰님이 얘기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계속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깐 이제는 빚도 정리해가고 특별한 일도 없으니 앞으로 우리들 공동체 잘 붙어가면서 천국갈 때 까지 교회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깐. 또 권찰님이 집사님 훌륭한 고백을 하셨는데, 꼬투리 잡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재미난 일이 있어도 교회 일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여가 선용으로 또 재미난 일이 없어서 교회 일을 한다는 것은 좀 아니지 않아요? 계속 이렇게 흉한 말을 해주시네요.
또 다른 목장은 보니깐. 외도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지만은 목장을 새식구 올 때마다 그 죄를 오픈하라고 매일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그 얘기를 하는 것이 내 삶의 몫인 거 같다고. 여기도 흉한 일을 예언하라고 계속 얘기해주네요. 다 이렇게 길한 말이 아닌 것을 듣고 산다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지 않겠어요? 이말이 다 맞지 않습니까? 남편이 열등감이 없으니 다 이 말을 듣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없으면 네가 뭔데.이러지 않겠어요? 우리도 열등감이 없으면 일본놈! 이러지 않고 일본님 이렇게 되는 거죠. 열등감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내요. 열등감이 많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열등감 많은 것이잖아요. 그래서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요. 목자님께서. 아합이라고 생각하시니.
말씀을 맺겠습니다. 전쟁이 삼년간 없으면요, 또 다른 세상 전쟁을 꾸밉니다. 그런데 내가 워낙 꾸미는 것이 너무 갖고 싶은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라서 물어볼 만한 선지자를 싫어합니다. 가지 말라고 할까봐. 그리고 나에게 길한 예언을 해주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입니다. 정말 오늘 제가 하는 얘기도 이것을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고 주님 말씀하시면 잠시 멈춰서는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기도제목
일본 문제가 대단한 게 아니구요. 이런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아스팔트냐 진흙이냐. 참된 예배 구조 속에 있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목장예배 방학하지 말아야 되고. 내가 너무 힘들면, 휴가 가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 그 주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압니까. 날마다 우리의 문제들을 넘어서는 예배 구조 속에 말씀을 듣는 구조에 있을 때 이런 일본의 문제도 정말 합리적인 생각, 상식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는 우리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이게 틀렸다는 생각이 안들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어떻게 드리겠어요.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우리가 항상 묻잖아요. 길르앗 라못을 올라가야 됩니까? 안 올라가야 됩니까? 내가 이 싸움을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여러분들에게 전쟁이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전쟁이 없어서 이 세상 전쟁 꾸미지 않게 해달라고. 내 죄는 나에게 묻게 해달라고. 자녀 대에 묻지 않고 내 대에 묻게 해달라고. 나의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영적으로 내려가지 않게 해달라고. 물을만한 선지자를 머리만 좋아하지 않고 가슴으로 좋아해서 잘 듣게 해달라고. 그러니 듣기 좋은 소리보다 나에게 흉한 말이라도 잘 듣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 일본 문제를 기도해서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 못지 않게 우리에게 떨어졌는데 기도하여서 이 문제 잘 해결하게 해달라고. 우리나라 지켜 달라고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전쟁이 없는 잠시 숨고를 시간을 주셨는데 아합은 엄청난 심판의 예언을 받고도 옷을 찢는 회개를 멈추며 자녀 대에 재앙이 간다는 것에 심각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 누가 심각함이 있습니까? 예수 없는 사람들은 다 정말 100%로 죄인 일 뿐인데 우리가 정말 심각함으로 한국 땅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예수 믿는 다 우리 죄 때인 것을 알게 해주시고. 세계 최빈국이었다가 잘 살게 된 것, 예수님 때문인데 하나님이 이 시대에 세계 선교 대국으로 삼아주시기위해 축복을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고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해드리고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들이 온 것에 대해서 내 잘못을 회개하고 교회 잘못을 회개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이 문제에 대해서 물을 만한 선지자를 너무 싫어하고 우리에게 좋은 얘기만을 해주는 우리들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돌들이라도 소리지르라고 해서 아버지 하나님 내 하나님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들 모든 가족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교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여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위정자에게 지혜를 주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이 문제가 잘 해결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지 않으시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보고 옷을 찢고 겸비하며 이 회개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전쟁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닌 것을 저희들이 알기를 원하고. 우리들의 각종 전쟁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축복임을 알고 우리의 한국 땅에 오는 전쟁에서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고 겸비하며 회개하며 나갈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9년 8월 4일>
오늘은 L층 카페에서 수진언니 지민이 은영이 함께 모여 한 주 근황과 말씀 가운데 듣고 싶은 길한 말, 듣기 싫은 흉한 말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바자회로 너무 피곤했는데 여전한 방식으로 한 주 일어난 문제들과 말씀을 나누니 안식과 쉼이 있었습니다. 목장 내내 눈이 반쯤 감겨있으니일찍 집에 들어가 쉬라고다들듣기좋은 말 해주었는데부목자인 친구가부목자 모임 가자고 해서부목자 모임에도 갔습니다. 엘더님과 다른 부목자님들과 나눔 했습니다. 고단해서 말씀을 잘 못들은 것이 있었는데 목장에서 부목자 모임에서 말씀을 계속 듣게 되니 묵상도 깊이 하고 요즘 제 문제들을 꺼내놓고나눔해서 좋았습니다. 말씀 구조 속에 있으니 육은 고단해도 영은 살아나는구나!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들 기도제목★
지현이 어머니 치료를 위하여
예진이의 예배와 건강 회복 위하여
수빈이가 회사 생활로 영육 간에 다운되어 있는데 수빈이 영육간의 회복을 위해
지민이 다음 주 엄마와 여행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은영이 아버지 구원을 위하여, 한 주도 하루 하루 잘 보낼 수 있도록.
수진언니 큐페 은혜 받고 오도록, 송파- 파주 오고 가는 길 안전 운전 지켜보호해주시도록.
다음 주에는 우리 목장 식구들 모두 모여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