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나눔]
2019 0630 열왕기상 19:9-21 7000배의 응답
서론.
목욕탕 큐티목회 수고해주신 사모님이 열심히 해서 냈는데, 코멘트 하시기에, 죄를 안 본다고 피드백을 했다. 열심만가지고는 안되는 게 있다.
오늘 제목은 칠 천배의 응답이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 천 명이 남겨져있다는 것인데 엘리야에게 칠 천배의 응답을 받았다 하고싶다. 완전수 곱하기 십(완전수) 그의 백배라 완전한 응답이다.
- 자기 자리를 찾아야 칠 천 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9절, 천사를 통해 먹이고 인도하신 하나님. 호렙산은 굴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날때 지나갔던 반석 틈이다. 아직도 자기 자리를 모르는 엘리야. 부적처럼 모세의 굴을 반사이익을 위해 그곳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딱 꼬집는 것 같다. 지난 주에 간증중에, 누가 시집가서 걸레질 하라고 시킨 이가 없다. 모든 게 우리 욕심으로 갔다.
10절,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매우 질투하고 화났는데요. 하고 얘기했다. 싯딤에서 음행과 우상숭배로 4천명이 죽은 후에 엘리야도 나도 만군의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대단히 질투했다고 이스라엘을 향해 죽였는데, 나는 왜 비느하스처럼 축복받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입니까 따지는 것. 아합은 정말 엘리야를 정말 집요하게 죽이려한다.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 자리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세벨 킹메이커 열심을 따라갈 수 없기에 엘리야는 기분이 더 나쁘고, 그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더 부해졌지만, 영적으로는, 이세벨도 자기 자리를 못 잡는것이다. 자기자리 잘 찾는 것은 기적이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에 가야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다.
왕도 백성을 사랑하는 자리가 제 자리다. 남편도 아내도 자기 죄를 봐야 자기 자리를 찾는 것. 이것은 열심으로 X.
세기의 커플인 송송커플은 20개월 만에 이혼발표.. 얼마나 환상의 자리에 있는 그들이다. 또한 유명 베테랑배우 전미선은 자살을 했다.. 열심으로 그 자리에 가 있는 만큼 우상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자리를 못 찾고 떠난다. 영재인 아들을 놓고도 떠난다. 송송커플은 가정을 지키는 것은 연기로는 안되나보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내 한인 자살률이 타 인종에 비해 네 배다.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민족력이 맞다. 그나마 교회가 들어와서 자기자리에 갔지만 다시 자기자리를 못 찾고 하나님자리에 자기가 가니 이혼도 자살도 만연하다. 하나님이 필요할수 밖에 없는 고난의 자리로 간다.
죄가 없으니 당연히 아내 며느리자리를 박차고 이혼을 위해 나갔는데, 그 추운 겨울에 갈 데가 없어서 영세한 기도원에 찾아갔다. 조그마한 성전에 기도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끼니걱정 암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사람 팔 부러진 사람. 거기 끼여서 이혼하려다 회개하다 돌아왔다. 무엇을? 나는 늘 혼자서 착하다고 생각했지만 이혼을 앞둔 내가 자고 먹고 하는 와중에, 병이 옮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거길 떠났으면 좋겠지만 갈 곳이 없다. 가출을 했는데 남편이 안데리러오고. 친정집에 연락처를 남겨둬도 연락이 없다. 거기서 데리러오지 않으니 열흘 있었다. 그때 악을 많이 봐았다. 할 수 없이 악을 보는 열 흘이 필요했다.
여호와 앞에 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땅끝까지 가서 내 바닥을 보니, 얼마나 차별과 교만이 가득찼다는 걸 본 시간이다.
열흘 있다가,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제발로 들어왔다. 정말 쪽팔리고 낮아진 죄인의 자리로 섰다. 만세전부터 택자라, 남편의 동의는 없었지만 기도할 틈을 허락하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남편의 완고함은 당연히 내쫓는 것이었을텐데, 돌아오니 막상 받아줬다. 그 이후 말씀을 보며 제 자리를 찾고 며느리와 아내와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제자리 찾는게 가장 빠른 응답받는 기회의 자리다. 무서운것도 결국 내 죄 때문이다 내 교만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시어머니와 예배드리니 나를 주의 종이라고 해주셨다. 지금 담임목사의 자리는 사람 살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리다. 다섯달란트 이익을 내야만 하는 자리다. 네달란트만 내면 손해 낸 자리다.
내가 잠시라도 얼마나 눌릴 일이 많은가? 제 자리 알고 가는 게 칠천배 응답을 얻는 자리다.
적용) 여호와가 어찌하여 여기 있나 하는 남의 자리는 무엇입니까? 자기 자리는 어딥니까? 내 자리는 죄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의 자리입니까? 의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자리입니까?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이혼과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 기적이 아니라 세미한 말씀을 들을 때 칠 천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1-12, 여호와가 6번이나 나왔다. 크고 강한 바람이 지진까지 불러왔다. 땅은 산산조각날것같은 진동이 일었다. 불이 내려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는 그런 열정적인 엘리야의 성격과 같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기적을 보니 순간 큰 기적을 보니, 여호와의 말씀이 일시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일시적 기도제목이 드러나고 응답 받으면 교회도나오고 그런다, 그러나 본질이 깨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말씀이 안들리니 이세벨이 협박을 한다. 성도의 최고의 응답=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 집중적으로 코너에 몰리니 드디어 들린다. 택자다
여호와는 안전해 보이는 굴에서 나와 직면하러까지 나오라는 여호와의 말. 처참하다. 내가 너무 치사스러운 것이다. 환경이 안되서 몰랐다. 날마다 사건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게 쉽지만 가장어렵다. 여호와가 모세앞으로 지나가면서 (출애굽기13장) 당신을 계시하신 곳이 시내산이었다.
여호와 앞에 산에 서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지나가시는 하나님 앞에서 크고강한 바람이 산을 가리지만 그 가운데도, 지진가운데도,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산에 서라는 명령때문에 섰지만, 그 곳에 없으면 걱정할 일 없는 것이다. 바람과 불과 지진에 연연해 하면 안된다. 세미한 음성을 듣기위한 예비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때문에 방방뛰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세미한 소리다. 평소 큐티는 바람과 불 지진 가운데서도 큐티하는 것이다. 이것때문에 오늘날 쓰인다. 장로교 감리교 에서도 은혜를 경험했지만 바람과 불과 지진속에서는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니 믿음의 기복이 심했다.
부목자 나눔)
군 생활 복무한지 일년만에 동기들은 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본인은 제대후 자격증따느라 고생했다. 아들도 대학 졸업하고 딸도 졸업해도, 나는 연금만받는게 자존심 상하고 열등감이 든다. 동료들 모임에가면 초라해지는 부목자 - 초원님은 예전부터 정말 많은 자격증을 하시고, 연금 350 + 관리직을 한다. 그러므로 돈이 더 많은 것. 근데도 만족이 안되니, 그것만으로 살 수 없겠냐고, 차라리 묵상을 하고 우선순위정하시고 말씀가운데 감사할 것을 찾으라고 아이들은 아이들을 하나님께 넘기고 세상모임 끊고 봉사하라고. 세상을 끊으면 염려와 비교도 준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을 듣기 좋다는 처방을 한 초원지기.
결정적으로는 자기 욕심대로 행하는 인간. 남의 죄 말고 내 죄보는 설교를 써와야 한다. 행위로 넘어가려는 우리의 열심에 피드백은 내 죄를 보라고만 온다. 하지만 이것이 본질. 얼마간은 흉내내지만 본질이 안되면 여전히 내 죄보는 큐티가 안된다. 불 지진 바람이 지나야 세미한 큐티가 되고 이를 들으면 7천 배의 응답을 받는다.
적용) 여러분은 기적 < 세미한 음성/말씀 ?
- 삶의 목표가 영혼 구원이어야 7천 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3-14, 9-10절 똑같은 구절을 왜 두번 나올까? 여호와께서 양육한 번 하셨다. 양육으로 믿음의 분량이 달라진 이후 다시 물으신 하나님. 생명의 위협을 당한자는 엘리야다. 백성들은 범죄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 내놓고 엉덩이를 까놓는 결과를 놓고 바라볼때, 우리는 죄의 문제가 얼마나 강하고 뿌리 깊은지 알아야 한다. 한번의 승부로 뿌리 뽑히지 않는 다는 것을 두번이나 질문과 답으로 강조하시는 하나님. 어찌하여 여기있느냐 하시는때에, - 성숙의 과정에서 - 로뎀나무의 때와 호렙굴의 때에서, 남들이 그 굴에 있는 것을 대단하게 볼때에 - 그 굴에도 쳐 박혀 있을때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완전하다. 하나님 기준에 맞추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하루하루 말씀으로 살아난다. 그때 꼭 필요한 질문이었다. 누가 그를 그곳으로 불렀나? 왜 그곳에 있어야 하나?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바알 선지자를 죽였다면, 그곳에서 돌아선 백성들을 양육해야될텐데 왜 할일이 많아도 그곳에 쳐 박혀있어야하나? 남 할일은 너무 잘보이지만 내 할 일은 정말 안 보고 싶다.
로뎀에서 휴식을 맛보고 호렙(집)까지 다시 왔으나 여전히 걸레질이 힘들다. 좋은 교회를 겉으로는 - 예전에 부적같은 호렙굴에 핍박받으며 있지만 나오지를 못한다. 그게 이혼일까? 어찌하여 여기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다 의미를 분명하게 밝힌다. 도저히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서울대 간 환경이 바람같은 환경이다. 걸레질 순종까지는 좋으나 인생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일르신 하나님. ABDC 가 갈라지기전까지는 순종이 우선되어 순종했지만, 구원이 우선되어야 하니, 로뎀나무 시댁에서는 어루만져주셨다면 이제는 소명을 위해 삶의 향방을 물으신 하나님. 성경을 보며 띵크를 하니, 날마다 가르쳐주셨다. 날마다 피아노치는 사람이었다. 교수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밤낮 시간이 아까웠다. 대학교수는 뭐때문에 하냐. 명예때문이 아니냐. 처럼 질문이 쏟아질때 묶이고 내가 없어지는 수 밖에 없어졌다. 동여맨 땅이 이해가 된다. 내가 없어지고 주님만 남았다. 오년간 유학도 못가고 걸레질만 하던 때였다. 주님 교수가 아니라 피아노는 이제 주님을 위해 드릴테니 써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게 됨. 삼일 금식했다. 지금 어찌하여 여기서 뭐하니? 이럴때 삼일이 끝나자마자 총신대에서 오라고 했고 아무데도 갈 데가 없을때 15분 거리의 곳이기에 간신히 갈 수 있었다.
하나님앞에 서원했기에 피아노로 레슨도했지만 한 푼도 내것을 쓰지 못했다. 강사는 가능했다. 그랜드 피아노 두 대 따로 세대 더있었다. 이 강사가 정말 십자가의 길이었다.
처음에는 서울예고 전임 못했으나, 총신대는 기도해서 됬기에 담대해져서, 집에서 얼마안걸리니 얼른 시댁에가서 제가요.. 대학교 피아노 가르치러 가게 되었어요 하고 남편 허락 받았다고 하고 크로스. 서로 안물어보고 기가막힌 기적이 되었다..무조건 무서워서 못했다가 온전히 드리려니 또 담대해진다.
병원에있다가 아파트로 이사갈때, 내 레슨때 드러났다. 출근을 안해서 레슨시간이 다가오는데, 총신대에는 남자아이도 있다. 이제 걸려서 피아노방을 확 열면서 야!! 거렸다. 교양있게만 살았다면 목사할 수 없다.
남편은 돈을 하나 안주는데 ,돈을 벌어도, 내가 번돈을 내놓으라 하지는 않았다. 내가 공부한 것을 주님 만나면 은사대로 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서울대는 세미한 음성과는 비교가 안됨을 점차 알았다.
여자고, 상고 출신 집사님도 세미한 음성을 잘 듣기에 남자 담임목사방에 들어가 양육받는다. 일을 하기 위해 대학에 안 갔다. 얼마나 하나님을 나타내는 인생이다.
실력있는 평신도들을 등용하는 우리들교회. 평신도들이 리드하는 교회다. 삶의 목표가 구원이라면 세미한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
적용) 로뎀나무 음식이 고픈 아래있습니까? 멋진 사역의 호렙의 굴에 박혀있습니까? 나와있습니까? 날마다 세미한 음성을 듣고 큐티의 결론이 영혼구원임이 동의 됩니까?
-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7천 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4-17, 엘리야에게 처방은 구체적 일 거리를 주신다. 상처받은 위로는 합당한 일거리다. 우상숭배를 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아합을 지금 죽이지 않고 아합을 죽일 후일을 기약하는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심판의 도구로 아람의 왕, 이스라엘 왕, 선지자 엘리사를 세우라고 한 목적으로 도저히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나 이 사람들을 한 목적으로 모을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아합과 예후가 연합하지 않으면 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전 세계를 동원 할 수도 있는 하나님이시다.
아합은 연합전선을 펴야 걔를 죽일 수 있다. 하사 예후 엘리사에게 기름 부으라고 사명을 주셨다. 그러면 나랑 무슨 상관일까? 할 그렇게 보지만, 내 말씀이다. 집에만 있어도 삶의 향방이 정해지니 구체적 일거리가 날마다 생겼다. 가정의 문제들이 끝이 없었지만 하사엘은 나를 돕지않는 불신자 왕이다. 찾아오지 않을 그런 사람들 가운데 변하여 새 사람된 사람은 없었다. 하사엘도 절대 변하지 않지만 아합 죽이는데에는 일조를 한다.
유명한 사람 있다고 모임에 있다하니 다 보러왔다. 예후같은 개혁적 왕은 개혁 후에 여로보암의 길로 간다. 그래도 예후라도 세우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엘리사는 그때까지는 모르는 안수할 일을 하게 되고, 결국 이 모든 마지막의 일은 엘리사를 세우라고 하는 하나님. 전부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목사님께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들 개개인은 그 계획을 알고했는지 모르고 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오차가 없다.
성경공부 10년 후에, 모든 게 가능 성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목사님. 무차별 사람만보면 큐티하고 전도했었던 목사님. 매일 혼자라고 하지만 18절에서, 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 명이 남아있다고 칠 천배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
엘리야 통찰력으로도 그 남은자를 못 보는 것은 인간의 눈은 신뢰할 게 없다는 것. 의외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칠천명이 클지 난리치는 엘리야가 클지 하늘에선 알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도 없이 완전수가 있다. 은혜를 깨닫기 위해 하는 큐티다. 이것은 엘리야가 양육받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 후에 이뤄진 일이다. 아까 양육해주신 것 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다. 육의 일은 정말 짧은 것이다.
평신도들하고만 놀다보니 사역자들이 5-6년이 될때까지는 지원도 모집도 안했었다. 그러나 지금 제일 오래 된 사역자가 10년이 안된다.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 것 처럼 보여도 바알과 싸울 7천 명이 남겨져있다고 하는 것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죄를 죄라고 당연히 외치고 왔지만 너무 외로웠다. 매일 나혼자 떠드는 것 같았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난 주에 부천시의회에서 28중 23명이 찬성하여 부천시 기독교 협회의 반대로 통과의회를 하루 앞두고 철회하는 것이다. 상정되면 통과되는게 관례인데, 데모로 철회했다. 주 내용은 개인 집단의 언어 지역 종교 나이 신분 장애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시는 차별없이 지원해야한다 하고 차별금지법인데, 이를 철회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핍박으로 딱이다.
동성애는 평등에서 출발하면 안된다. 동성애자는 구원받을 수 있어도 동성애는 명백한 죄 다. 부천 기독교연합회 행사로 철회한 것은 부천 역사상 처음이지만 바알을 반대할 칠 천명이 있다고 보여서 너무 할렐루야다. 이런 응답도 기도와 싸워야 받는것이다.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곳엔 이런 복도 없다.
나라가 있어야 예배를 드린다.
적용) 여러분의 자리는 어딥니까?
지금 있는 법으로 가도 동성애는 판을 치고 낙태가 합법되는 판에 동성애까지 넘어가면 신앙생활은 핍박받을 일 밖에 없다. 핍박의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7천 배의 응답을 받는다.
18-19,
소는 쟁기 하나에 두 마리씩 매여있다 = 부자. 자기 삶에서 성실하고 준비된 사람이다. 생애가 알려지지도 않게 시작된 엘리사다. 엘리야의 사역을 이런 엘리사가 마감한다. 왕의 적으로 활동한 엘리야, 왕의 친구로 사역하면서 십자가로 마무리하는 엘리사. 이 엘리사는 엘리야의 최고의 선물이다. 엘리사를 배척한게아니라 시험한 것이다. 소명을 잘 받아들이는 가정이 최고의 가정이다. 엘리사는 가정 교육도 너무 잘 받았다. 쟁기와 멍애가 필요가없어 다시는 과거로 갈 일이 없기때문에.
적용) 내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자꾸 돌아보게 하는 옛 습관은?
일상적인 삶은 똑 같지만 결론은 넓어졌다. 일상의 삶이 가장 큰 능력이다.
칠천배의 응답은 자기자리를 잘 지켜야 받는다.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야 잘 지키는 자기자리.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 들려야 임한다.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칠 천배의 응답을 받는다.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칠 천배의 응답을 받는다. 이런 모든 구절 에서 살았고 원동이 있어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말씀으로 받자. 내일 일을 모르지만 날마다 일상을 살아내자.
[기도제목]
0630
박영준
구준호
- 7월에 가족들과 약속이 많은데, 큐티 운동 금연 잘 지킬수 있도록.
조동민
- 팔이 저리지 않도록. 회복할 수 있도록
- 무기력증의 회복을 위해서.
안식
- 큐티플 잘 마칠 수 있도록. 생색이 아니라 기쁨으로 섬길 수 있도록.
- 크루 모임가서 잘 말씀드릴 수 있도록.
- 아버지 면담을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