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30 주일예배
Intro) 감추는 죄인과 드러내는 죄인만 있을 뿐이다.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을 뿐이다.
'7000배의 응답'(왕상19:9-21) - 김양재 목사님
엘리야는 혼자 남았다고 줄창 부르짖는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 있다고 하신다. 그게 7천배의 응답이다. 7천배 응답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1. 자기 자리를 찾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어루만지시고 먹이고 마시게 하셔서 호렙산까지 인도하셨다. 엘리야가 호렙산 특정 어느 굴에 들어갔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지나갈 때 섰던 반석 틈에 있던 굴 같다(출33). 엘리야는 아직도 본인의 자리 모르고 부적처럼 예전 모세의 영광 바라보면서 그 굴에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기도 굴에 있다 생각하고 경건해보이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따끔하게 정곡 찌르시며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신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해 매우 질투했습니다.'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 앞두고 싯딤에서 음행과 우상숭배로 4천 명 죽은 후,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한 남자 시므리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죽임으로써 염병 그쳤다. 하나님은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나의 노를 돌이켰다고 칭찬하셨다. 엘리야도 나도 만군의 여호와를 위해 대단히 질투했다고 하며 '영적 간음에 빠진 북이스라엘 다 죽였는데 왜 나는 비느하스처럼 축복받지 못합니까, 왜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 하나요'하는 것이다. 이세벨과 아합은 줄기차게 엘리야 죽이려 한다. 그들은 은혜 모르고 하나님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열심 따라갈 자가 없다. 이세벨도 자기 자리 못 찾고 지옥 갈 사람이다. 자기 자리 잘 찾는 것은 기적이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 찾아야 자기 자리 찾는 것이다. 이것이 열심으로 찾아지는 자리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투적, 호전적 천자의 민족이다. 그나마 기독교 들어와서 자기 죄 보라고 할 때는 죄인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 있었는데 요즘 들어 인권이 하나님 자리에 가 있으니까 이혼과 자살이 더 기승부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자리가 죄인의 자리이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큐티하며 제자리 찾아야 한다. 제자리 찾는 것이 가장 응답받는 비결이다. 죄인의 자리인 제자리를 잘 찾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에게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시는 남의 자리는 어디인가? 여러분의 자기 자리는 죄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의 자리인가, 의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자리인가? 이혼과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자살 생각해본 적 있으면 있다고 열심히 얘기해야 한다. 입으로 말을 해야 자살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다고 한다.
2. 기적이 아니라 세미한 말씀을 들을 때 7000배의 응답이 임합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한 절에 여호와가 여섯 번이나 나왔다. 엘리야가 동굴 밖에 나왔을 때 크고 강한 바람, 불, 지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불이 내려와 불태우고 바알선지자 다 죽인 특심이 열심인 엘리야의 열정적 성격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기적만으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엘리야가 850명 바알선지자 죽이고 난 후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기적을 크게 경험하니까 여호와의 처방이 안 들렸다. 3년 6개월 기근이었던 땅에 비가 내렸으니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다. 일시적인 기도제목 이루어지면 우리도 목장, 교회에 나올 거라고 하는데 기적 가지고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큰 사단 물러가도 깨어있지 않으면 사단의 밥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이세벨이 협박해주는 수고를 해주는 것이다. 말씀이 안 들리니까 협박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의 최고의 응답은 여호와 자체가 상급이 되는 삶이다. 이제 여호와의 양육이 집중적으로 시작된다. 말씀 들린다. 택자라서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나가서 여호와 앞에 서라고 하신다. 안전해 보이는 자기 생각의 굴에 나와 말씀 앞에서 문제 앞에 직면하는 데까지 나와야 한다. 날마다 사건마다 하나님은 누구이신지를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 가장 어렵다. 여호와가 모세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34:6)이시라고 당신을 계시한 것이 이 시내산이었다. 성숙한 자라면 나한테 오는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이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가서 여호와 앞에 서라고 엘리야에게 명령하셨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 그런데 바람, 지진, 불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 처음에 여호와께서 나가서 산에 서라고 했다면 그 다음에 바람, 지진, 불은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람, 지진, 불에 연연하면 안 된다. 세미한 음성 듣기 위한 예비과정이다. 평소에 큐티해야 한다.
너무 열심인 사람은 말씀 들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염려, 비교, 근심으로 똘똘 뭉친다. 세미한 음성 듣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해줘도 기복적으로 듣기 때문에, 묻는 것 같지만 매번 자기 욕심대로 결정한다. 남의 죄 보지 말고 내 죄 보는 큐티해야 한다. 자꾸 행위로 죄를 넘어가려 하기에 큐티를 설교문 쓰듯 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기에 내 죄 보는 큐티는 방법론적 같지만 본질이다. 지진과 불이 지나야 세미한 음성 들린다. 미리 세미한 큐티하면 7천 배의 응답 받는다. 7천 배의 응답은 세미한 음성이 들릴 때 임하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기적이 좋은가, 세미한 음성의 말씀이 좋은가?
3. 삶의 목표가 영혼구원이어야 7000배의 응답이 응합니다.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9-10절과 같다. 왜 똑같은 구절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또 썼을까? 9-10절에 여호와께서 양육하셨다. 여호와의 양육으로 믿음의 분량과 영성이 달라진 후에 다시 물어보시는 것이다. 엘리야의 끝없는 노력과 능력으로 바알선지자들 다 죽었는데 결론적으로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 당했다. 백성들은 범죄를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이 모든 결과들 바라볼 때 우리는 죄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고 생명력이 강한지 알아야 한다. 죄는 어떤 한 번의 전쟁, 한 번의 승리로 뿌리 뽑히지 않는다. 인간의 죄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신다. 두 번 물어보신다.
성도의 성숙의 과정 생각해보자. 음식물로 어루만져주시는 로뎀나무의 때 있다. 호렙까지 왔는데 무엇 해야 할지 몰라 모세의 영광을 부적처럼 생각하며 굴에 쳐 박혀 있을 때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완전하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기 어렵다. 하루하루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 질문은 똑같은 질문 아니고 이 때 꼭 필요한 질문이었다. 바알선지자를 죽였으면 그들에게서 돌아선 백성을 양육해야 한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왜 그 굴속에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할 일은 잘 보인다. 근데 내 할 일은 머리 싸매고 봐도 어렵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
하나님 물으신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대부분의 번역본은 'What are you doing here(네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이다. 소명 위해서 다시 한 번 물으셨다. '너 걸레질에 순종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잖니' 이혼 안 당하기 위해 걸레질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그래서 걸레질했다. 이제는 목적이 달라진다. 구원이 목적이 되었기에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했다. 로뎀나무 시집에서 죽지 않게 어루만져 주셨다면 이제는 주님이 삶의 향방 물으셨다. 계속 think하니까 날마다 가르쳐주신다. 삶의 목표가 구원이라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잘 들어야 한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로뎀나무 음식이 고픈, 그래서 살려준 로뎀나무 아래에 있는가? 멋진 사역의 호렙의 굴에 쳐 박혀 있는가? 결국은 둘이 똑같다. 나와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잘 듣고 큐티의 결론은 영혼구원이라는 것에 동의하는가?
4.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엘리야는 절망에 빠져 있어서 주님이 큰 위로해주시는 말씀 기대했을 텐데 그런 얘기 하나도 안 하신다. 처방은 구체적인 일거리 주신다. 상처받은 심령에게 가장 위로는 합당한 일거리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이방의 왕, 선지자 세우라는 명령이다. 한 목적으로 도저히 연합할 수 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은 한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사람들 통해 아합 가문 멸절시키신다. 연합하지 않으면 아합을 칠 수가 없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에 나를 위해 전 세계를 동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구원의 목적 딱 정해지니까 구체적인 일거리 주어진다. 예후는 나중에 또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 하지만 그 예후도 세우라고 하신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엘리사가 하게 하라고 하신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역사하시고 오늘도 내일도 다 전도할 일이 생긴다. 왕이고 권세자고 상관없이 우리가 기름 부을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뜻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게 하셨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는 아무도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7천 명 남아있다고, 7천 배 응답 해줄 수 있다고 하신다. 엘리야의 통찰력으로도 은혜로 남은 7천 명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은 정말 신뢰의 대상 아니다. 항상 의외의 사람이 남겨진다. 엘리야가 양육 받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 나눈 후에 이루어졌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는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 말씀 보니까 바알과 싸워줄 7천 명이 있다는 것을 아멘으로 받는다. 낙태, 이혼, 불신결혼, 동성애가 죄라고 끝도 없이 말했다. 지난 주 부천시의회에서 28명 중 23명이 통과시킨 것이 본회의 통과 의례를 하루 앞두고 차별금지법 철회했다. 통과의례는 상정되면 그냥 통과되는 것인데, 부천시 기독교연합회 다 들고 나가서 데모했기에 하루 전에 철회되었다. 차별금지법은 기독교 핍박으로 딱 이어진다. 기독교는 유일신이라 남들이 보면 배타적이다. 동성애는 교회를 핍박하는 교묘한 죄이다. 인간은 100프로 죄인이다. 노력해서 하나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 된다. 동성애자는 구원받을 수 있지만 동성애는 명백히 죄이다. 경기도에서 부천시에 안건 올라간 것이 처음인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는 것 같아서 7천 배의 응답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7천 배의 응답은 기도하고 소원했을 때 받는 것이지, 기도도 안 하고 상관도 없다는 사람은 이세벨처럼 부들부들 떨 것이다. 7천 배의 응답은 기도한 사람만 받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람은 관심이 있다. 정말 기도해야 한다. 나라가 있어야 예배드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적용) 여러분의 소명의 구체적인 자리는 어디인가? 차별금지법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는 어떨까?
시국이 급하기에 매주일 설교한다. 통과되면 안 된다. 오직 교회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5.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소는 쟁기 하나에 두 마리씩 매여 있어서 24마리이다. 엘리사는 상당히 부자이다. 쟁기 앞에서 부르심 받았다. 자기 일에 성실하고 준비된 사람이다. 생애가 알려지지도 않고 등장했다. 부모 있고 부농으로 농사짓던 가정적인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마감한다. 엘리사는 유순한데도 왕의 친구로 사역하면서도 십자가 신앙 가졌기에 엘리야에게는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엘리사가 부모와 작별을 요구했을 때 가라고 한 것은 배척한 게 아니라 시험한 것이다. 좋은 가정은 자기 새끼밖에 모르는 게 아니라 소명을 잘 받아들이게 하는 가정이다. 쟁기와 멍에를 불태우고 고기를 삶은 것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일이 없다는 증거다.
(적용) 내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자꾸 따르게 되는 옛 습관이나 관계는 무엇? 일상의 삶을 잘 살고 있는가?
날마다 큐티하며 음성 들으니까 사명 깨닫고 영혼구원 때문에 자꾸자꾸 넓어진다. 일상의 삶이 제일 능력이다. 내일 일은 모른다. 날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Outro) 죄인의 입장에 서면 통과하지 못할 일이 없다. 나를 핍박하는 자는 내가 굴에서 나오도록 수고하는 자이다. 사람은 사랑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 공감할 수도 없다. 오직 죄인의 입장에 서야, 같은 입장이 되어야 동질감이 생기고 공감할 수 있다. 죄인에서 출발해서 직장을 가고, 결혼을 하면 7천 배의 응답이 온다. 비교, 염려는 말씀이 없어서 생긴다.
< 기도제목 >
공통 : 신교제와 신결혼
정지현
1. 직장에서 자리를 잘 지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를
2. 가족구원 : 가족과의 관계에서 연약함을 인정하며 갈 수 있도록
박소영
1. 자기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2. 작가교육원 과제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기를
3. 가족구원 : 내게 딱 맞는 세팅으로 주신 것임을 알고 낙심하지 않도록
목장에 못 온 작은 소영, 가영, 유리, 새로 온 혜림언니까지 모두 7000배의 응답받기를 기도합니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