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6. 16 주일 예배>
일시 2019. 6. 16. 16주년 창립 예배 & 전도 축제
찬양 놀라운 주의 사랑┃ 기뻐해┃ 주 발 앞에 나 엎드려┃내 삶은 주의 것┃ 하나님이시여
아 버 지 품 으 로
-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말씀 열왕기상 19: 9-10
설교 김양재 목사님
오늘 오신 모든 분들이 아버지 품으로 안기시길 바랍니다. 설교의 제목은 아버지 품으로입니다. 오늘은 우리들 교회 창립 16주년 감사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창립 예배 때마다 저의 간증을 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들 교회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라고 교회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가정중수를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해서 합니다. 오늘 꼭 일어날 힘없는 분이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입니다.
19장 9-10절
(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가 바알을 물리치고 이세벨의 협박으로 도망가서 굴에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저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두려움의 연속이고 승리했나 하면 늘 참담한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엘리야가 그곳에 들어가 여호와의 말씀이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십니다. 그러나 저 또한 때마다 하나님께 제 열심이 유별나고 특심 하여서 열심히 살았지만, 오직 나만 남았다고 나를 다 죽이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어루만지고 머무르게 하시고 말씀이 임했기에 굴에 있다가도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렇게 나를 향한 두려움에서 교회를 향한 두려움으로 점점 바뀌어 갔지만 그래도 늘 두려움은 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를 성실하게 효과적으로 돌보셨습니다. 제가 정신 줄을 놓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죽지도 않고 이혼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4대째 모태신앙이지만 저에게 감추어 있던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은 저를 낮아지게 하기 위해 용광로 속에서 훈련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저를 도우셨는지 제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안식하며 여러분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원해서 오늘 저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이 특심이었는지 주님은 그때마다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 하셨는지. 오늘 이것이 주제입니다. 들어보세요.
1. 어릴 때입니다.
어릴 때, 저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 고난은 아들 못 낳는 엄마 고난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엄마는 딸 낳는 제조기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셨고 아들을 낳으려고 기복적으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목사님이 아들 이름을 점지해주었는데 김자, 양자, 재자였습니다. 엄마는 딸 낳은 것에 대해서 해석이 되지 않아 쇼크가 컸습니다. 2-3년 헤매다가 서울로 이사 왔습니다. 새벽부터 남의 집 변소 청소, 빨래하러 다니셨습니다. 자녀들을 돌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입시 지옥 시절에도 유치원도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제 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성적은 아름다울 美자, 어질 良으로 도배했습니다. 어릴 때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정신연령이 30살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일류학교를 나온 재원이었고 테니스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화장도 안 하고 똥내 나는 몸빼바지를 입고 날마다 청소하시고 눈물로 기도하고 오셨습니다. 공부 잘해서 시집 잘 가라는 소리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들 못 낳고 헌금으로 무명으로 하고 이름도 없이 빚도 없이 다니다 보니 교회 사람들은 엄마를 무시했습니다. 엄마가 창피했습니다. 전혀 돌보지 않는 이런 가정에서 시험 봐서 들어가는 이화여중에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입학식에 안 왔습니다. 엄마는 공부 잘해서 뭐하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만 많아야. 엄마는 온몸으로 학교 들어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때마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성품으로 엄마는 믿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학교가 쓸 데 없어라며 시간 날 때마다 하셨습니다. 저는 막내 딸입니다. 이후로 엄마는 아이를 낳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완전히 내려놓으셨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어릴 때는 어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어떻습니까? 지금 성품으로, 믿음으로 무엇을 보여주시고 있나요?
2. 학생의 때입니다.
그 후로 집이 쫄땅 쫄딱 망했습니다. 그 당시는 유배지나 다름 없는 우의동으로 이사갔습니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봐야하는데 두 분의 주제가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지 하지 말라고 하니깐 그러니깐 공부를 하는 것 같습니다. 독립군 투사처럼 피아노 선생님도 학교에다가 독서실 하나 얻어 집에도 안가고 씻지도 않았습니다. 집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도 국립대학교로 장학금 받아야 되는데 실기는 물론 전과목 시험을 봤습니다. 재수도 안 하고 피아노과에 붙었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집이 쫄딱 망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 전화 없는 사람이 저 혼자였습니다.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도 할 수 없이 하고 생활비도 제가 벌어야 되고 집에 생활비까지 제가 내야 하니깐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살아야 됐습니다. 우의동 집 ampndash을지로 3가 학교- 신촌 알바.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제자 훈련의 슬로건처럼. 집에서는 나보고 돈을 벌어야 된다, 생활비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람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워낙 믿음이 좋았기 때문에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죽으면 천국 가야. 이것은 여기서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벌면서 생색 한 번도 못 냈습니다. 공부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돈도 생활비 내지 말라고 했는데 열심이 특심인 소녀 가정이었습니다. 4년 장학금을 받으며 당연 우등생이었습니다. 학교에 남아 피아노 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빈 공강 시간에 열심히 피아노를 쳤습니다. 시간이 없어 데이트를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막으셨습니다. 기계처럼 살았습니다. 성적이 좋으니 서울 예고 전임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교회를 나갔습니다. 어쩔 수 없는 집탕, 모범생이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학창시절은 어땠습니까? 돌탕이에요? 집탕이에요? 여러분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으세요? 일류로 키우고 싶으세요? 은사대로 키우고 싶으세요?
3. 결혼의 때입니다.
졸업 후에 부모님과 첫 선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유명한 집안의 장로님, 권사님 댁 의사 아들이었기 때문에 예고 선생을 할까? 시집을 갈까? 저울질을 했습니다. 시집가는 것이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피아노 선생을 했다면 교수 했을 것입니다. 무엇이 나았을까요?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모든사람들은 교회 반주하다보니 저렇게 축복받았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되는 인생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기막힌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 잘 만나서 회장 사모님이 되신 무학자셨는데 이분이 살림 밖에 몰랐습니다. 새벽기도 대신 새벽 청소를 늘 하셨습니다. 4시 반부터 헝겊 총채로 다다닥 털고 저한테 힘없다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아시걸레-젖은 걸레-마른 걸레-기름 걸레-윤내는 걸레- 방바닥 걸레- 창문 걸레 함지 두 함지 걸레를 네 명의 여자가 여덟게 함지걸레를 가지고 다니면서 온 집안을 윤을 냈습니다. 지붕청소- 댓돌 청소- 대문도. 점심 먹고 오후에도. 늘 어머님께 걸레를 잘 못 짠다, 총채로 잘 털지 못한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입시 때, 얼마나 돈 들이고 시간 들여 팔의 힘을 뺀 것인데 팔에 다가 힘을 주지 못한다고 날마다 야단을 치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저를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여자는 책을 봐서도 신문을 봐서도 안되고 텔레비전 봐도 안되고 당연히 피아노 쳐도 안 되고, 전화를 해선 안 되고 일 년에 친정아버지 생신에 딱 하루만 외출이 허락되었습니다. 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밟아야되고 여자와 사발은 내두르면 깨진다라는 사고 방식을 가졌습니다. 아무 때나 방을 열어 제끼실 때도 누워 있어도 책을 봐서도 안 되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여자라서 엄마에게 슬픔을 주었는데 시집을 갔더니 여자여자 더 합니다. 우리나라가 유교 국가라서 남자는 겉으로 무시하고 여자는 속으로 무시합니다. 시어머니가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실 때, 나를 안 봐준 친정엄마가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저를 못하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부자들은 아껴서 부자가 됩니다. 선풍기를 틀면 가난한 집 딸이 돈 아까운지 모르고 함부로 선풍기를 킨다고. 인격적인 모독을 하셨습니다. 부잣집에 시집을 갔는데 아무도 저에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돈은 표구해서 보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대학교 때, 얼마나 돈을 잘 벌었는데, 비단치마 속 넝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끼는데 따라 갈 자 없었습니다. 엄마는 새벽기도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걸레 못 빤다고 돌아가신 엄마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세 무학자와 한 명의 고학자가 아침-저녁을 함께 하는데 대화주제가 멸치의 똥을 땄냐, 안 땄냐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남편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여기있느냐가 늘 들렸습니다. 걸레 질 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저를 꼬여서 결혼했는지,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 네 눈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게 해주겠다, 일 년에 한 번씩 독주회를 열어주겠다고 하였는데 결혼하고 나서 그것을 믿었냐.고 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이 깨달아졌겠습니까? 월남치마 입고 빨래에 손에는 주부습진이 생겼는데 문제는 시장은 아줌마만 가고 저는 새댁이라 문 밖 출입을 못 했습니다. 교회도 못가고 시장도 못가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걸레질 하는 것 외에는 저의 삶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아버지, 남편 둘을 섬기는데 넷이서 얼마나 살림하는 게 힘든지, 시아버지는 유명한 재정장로, 수석장로였습니다. 교회 가는데 눈에 보이기 위해 가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았고 앉기만 하면 졸았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교회 가기 위해 고무신을 닦고 한복을 입었습니다. 제가 회개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착하고 믿음 좋고 상냥하고 예의 바르고 소녀 가장이고, 이런 딸을 기도해야 낳는 딸 아닙니까? 날마다 그런 생각이 안 났습니다. 회개를 해야 하는데 죄라곤 없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게 문제인데, 저의 죄라고는 열심히 산 것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야처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 특심이었는데. 모든 것을 제 힘으로 다 했습니다. 적금들어 제 열심으로 시집갔습니다. 인간 승리였습니다. 특심이었던 엘리야처럼 시집살이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원치 않는 나의 감정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착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인정이 안되고 아무도 내편을 안들어주고. 너무 착한 사람이 신약, 구약 하나도 안 듭니다. 고난이 오래되니 자신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시집가서 겪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가난과는 비교도 안되게 내힘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걸레질 하면서 시댁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몰랐던 것입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런 내 자신이 싫었습니다. 원치 않는데 시집와서 네네 하니깐 악어 비늘 속에 기생하는 물고기 같았습니다. 내 자신이 비굴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무능함, 남편과의 의사소통 불가. 멸치와 얘기를 했습니다. 나 혼자였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네네하니깐 아무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저는 교양이 8단입니다. 학창시절 열등감이 없었는데 시집가서 보니깐 원치 않는 것을 네네해야 하니깐 위선자 같았습니다. 아버님은 매일 출근하면서 너희 오마니 때문에 우리집이 일어났다. 너의 오마니가 하얀 것을 까맣다고 해도 예 하라우. 시어머니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남편 복과 자녀 복이 있으셨습니다. 친정아버지도. 시댁과 친정에서 저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말을 못 해서 죽음을 택합니다.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눈만 뜨면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나고 나서 보니 엄마 기도 때문에 이혼을 못했습니다. 교양이 너무 있어서 연기처럼 살아지자고 생각했습니다. 자살입니다. 교양 있고 여러 면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연기처럼 살아지는 것밖에는 없어 보였습니다. 집-교회-학교뿐이 없었기에 성경을 평생을 그렇게 읽었는데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갖추고 있어서 잘 안 들렸습니다.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세워지는 것인데,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이 제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5년이 돼가도록 회개도 못 하고 이혼도 못 하고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결혼의 때는 어떤 가요? 다시 돌아가도 지금의 배우자와 하고 싶은가요? 여전히 불신결혼, 이혼 하고 싶은가요?
4. 드디어 회개의 때입니다.
드디어 저에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왜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 둘 씩 있는데 내가 왜 걸레질을 해야지? 인간의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인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굴 속에 있는 저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라 빛이 온 줄 몰랐습니다. 저도 뭘 기도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숨쉬기 운동만 하고 있는데 소경을 보아준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저를 보아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저에게 도움이 안 됐습니다.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습니다. 배우지도 않은 분도 아닌데. 남의 집 심방은 가면서 나의 입학식, 졸업식에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에 미치셨습니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새벽기도 갔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추억할 게 없습니다. 엄마에게 생각나는 것은 똑똑한 엄마가 목사님 설교를 다 노트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수십 권 노트가 있었는데 가책도 없이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유산 뽑으라면 그 노트 아니겠습니까? 전쟁 후에 어떤 주제로 설교 했는가, 모든 것을 다 적어놨으니 기가 막힌 기록인데 중요한 것을 분별하지 못해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를 마주치면 기가막혀서 모른 척했습니다. 당시 몸으로 낳은 딸도 엄마를 차별했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합니다. 예수님의 인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발가벗고 채찍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유대인이 목수의 아들, 처녀에게 잉태된, 육적으로 사생아로 보았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저를 여자로, 과부로만 봅니다. 우리가 외모로 사람을 봅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착한 딸들이 특심인데, 이게 고난이 되어 아무도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땅끝까지 내려가면서 시댁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눈만뜨면 걸레질로 차별을 당했습니다. 목욕을 하더라도 마른 걸레질로, 세수를 해도. 눈만뜨고 잘 때까지 저는 못하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내려가니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타적으로 사느라 바쁘셨던 엄마의 소중함이 깨달아졌습니다. 내가 무시 당하는 것이 당연하구나. 엄마도 무시했는데 내가 엄마 발바닥도 못 쫓아가는 믿음으로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복음 16장에 예수님이 청지기 비유를 하시는데, 바리새인들에게 돈과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비웃었더라.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옳다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제가 딱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돈을 좋아해서 사명 때문에 공부하고 피아노치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야망 때문에 돈이 좋아서 했기 때문에 자기를 높이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인정을 받았으면 가난한 집 딸에게 피아노를 그냥 가르쳐 주었겠어요? 어떻게 서울 예고 강사로 뽑힐 수 있었겠어요? 이렇게 인정받은 것이 시댁에서는 안 통하니 저는 이제 모든 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기사 데리고 나오니깐 혹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댁인데 믿음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제가 시집살이 하는 것이 제 살아온 날의 결론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마땅했다는 것. 여호와 말씀이 들렸기 때문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진짜 회개를 하게하시는 하나님이 그 회개를 하게 함으로 내 죄를 보게 함으로 말미 암아 이제 그때부터 지금까지 흘리는 눈물을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의 기준이 엄마에 있게 되다보니 하나님의 거룩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살지는 못 할거 같아 늘 눈물을 흘리며 삽니다. 제가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제가 너무 가증해 보여 맞습니다 합니다. 그동안 공부하고 피아노 치고 한 노력은 제가 가정 지키기 위한 노력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정을 지키려고 천 만배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 지킨 것 때문에 저에게 노벨상을 주고 싶습니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고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까지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불신 결혼을 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심각하게 간증하는데 심각하게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녀들을 불신 결혼시키지 않기 위해 부모가 자녀들과 같이 예배드려면 삶을 나눌 수 있을 만큼 돼야 합니다. 자녀들을 그래야 사단에 빼앗기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 가도 쓸 데 없더라, 그 얘기를 하게 하기 위해서 저를 서울대학교에 보내셨습니다. 시집도 잘 가보고 나서 쓸 데 없더라, 얘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개를 하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변화시키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정곡을 찔렸지만 여호와 말씀이 임하니 원망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드리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뒤에 나오는 7천 배의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말씀이 들리는 회개의 때를 살고 있습니까?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부터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어요. 오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계세요? 어릴 때, 학생의 때, 결혼의 때를 어떻게 보내셨어요? 회개의 때를 살고 있나요? 항해자 노래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항해자 ★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 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 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 하여도
내 삶에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 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 하여도
내 삶에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 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 하여도 내 삶에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기도제목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물으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집에 나와 어디에 계십니까? 다른 여자, 남자입니까? 지금 부도의 때입니까? 무시의 때를 당하고 계세요? 무시하고 계세요? 부모에게 무시를 받습니까? 당하고 있습니까? 자녀에게 무시를 받습니까? 당합니까? 회사에서 무시를 합니까? 당합니까? 학교에서 무시를 합니까? 당합니까? 어찌하여 거기에 있습니까? 나혼자 남았다고 그만 말하고 말씀이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내가 아버지 품으로 가길 원합니다. 주여, 주여, 이제 말씀이 임하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내가 어찌하여 여기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일생을 너무나도 열심히 특심이 유별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마다 굴에 갇혀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아니라면 제 인생의 문제를 누가 해석해주실 수 있습니까? 나혼자가 되어서 엘리야처럼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소서.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교회를 다녀도 회개하기 전에 자살기도를 했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도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착하고 다 잘 했는데, 우리 인생이 100% 다 죄인이라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은 지금 어느 때에 있습니까?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 지금 여기가 어디입니까? 아내와 남편과 자녀에게 무시를 당합니까?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시를 당합니까? 매를 맞았습니까? 욕을 먹었습니까? 주님 저희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하여주옵소서. 내가 내 굴에서 오늘 주님께서 노크하셔서 여호와 말씀이 임하여서 회개의 말씀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이제 굴속에서 나오는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19. 6. 16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27th 이야기
일시 19. 6. 16. 4-7시
장소 수내역 개성떡볶이 & 스타벅스
참석 한수진, 우지현, 이지민, 이은영.
나눔 오늘은 모처럼 교외로 나가 목장을 했습니다. 떡볶이를 먹으며 한 주 근황과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오늘 아버지 품으로 오기까지 삶을 나누었습니다.
20대 초반 갓 목자된 수진언니가 혼성 목장 섬기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지현이의 다니엘 기도 학습법으로 학창 시절 응답받았던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흐르는 강물처럼 떠내려가다가 주님 만나 우리들 교회 오게 된 제 이야기... 우리들 교회에 붙어 가게 된 것이 정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이 깨달아졌던 시간이었습니다.

- 예배 때부터 함께 떡볶이 먹을 생각과 맛집 검색하셨다는 수진언니.
언니께서 섬겨주셨습니다. 마음 부자, 생각 부자^^
오늘 오지 못한 막내예진이, 수빈이 미안^^ 얼릉 시험 끝내고 다음 번에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