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5. 12 주일예배>
일시 2019. 5. 12 어버이 주일
찬양 #한숨을 바꾸셨네 # 내게 강 같은 평화 #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을 살리는 노래 # 비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말씀 이사야 6장 1-13절
설교김성우 목사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여, 입술이 부정한 입쌀롬 김성우 목사입니다. 5년 전, 이맘 때쯤 담임 목사님께 분별없이 말한다며 말금지로 치리를 받고 이후에 입살롬이라 놀림을 많이 받았었는데 많은 날이 지나고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속이는 자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죽이고 핍박하던 바울이 사울이 되었던 것처럼 많은 날이 지나고 이제 입쌀롬이 하나님의 샬롬을 전하는 입샬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벽설교를 하고 오늘까지 수많은 나눔을 읽으며 많은 위로가 되었고 또 성도님들의 화답을 보며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침 삼킬 틈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담임목사님의 간증과 에스겔 말씀이 그리고 우리들 교회 수많은 나눔과 간증들이 많이 생각났었고, 그로인해 다시 어그러짐에 회복을 얻어 조금씩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동시에 세 명의 여자를 만났을 때 저희 권찰이 늘 저에게 당신은 안돼, 당신은 변하지 않아, 당신은 또 그럴거야하며 말했었는데 예전에 제가 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만으로도 권찰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고백한다고 목장에서 나눈적이 있습니다. 제가 악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기에 얼굴에 BB크림을 바르고 음란하고 돈을 좋아하고 교만하고 입술이 부정하여 아무 소망 없던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정말 모든 것이 망한자였는데 십자가의 은혜와 공동체의 손과 발이 가는 수많은 수고로 많은 날이 지나 제 속에도 구원의 소망이 싹이 자라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오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저 곳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루터기는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모든 사람이 포기하고 저 사람 만큼은 안 될거다 저 죄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하는 그곳에 흑암과 고난이 있고 울부짖음과 빛은 가리어 어두운 아무 소망없는 저 사람에게 오늘 주님은 아직 씨앗이,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십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님을 대신해서 그 그루터기에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그 그루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나의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간혹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어제와 다를바 없는 오늘을 지내다가 내 삶에 일어나면 안되는 일들이 일어날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올 때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경험을 할 때, 혹은 내 거짓말인 것이 전부 드러나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수치스러운 죄가 낱낱이 드러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침 삼키는 것조차 힘이 들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으며 원망의 대상을 찾기도 하며 환경 너머에 누군가를 원망할 그때,
바로 그때가 오늘 본문 첫 절에 웃시야 왕이 죽던 때입니다.
#저 역시 이런 때를 몇 번 경험했습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어 집이 경매로 넘어 갔을 때, 살 던 집에서 쫓겨나 허름한 곳에 들어갔을 때,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로 하루하루 지옥을 경험하던 때,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던 그 때, 죽고 싶어서 신학교를 갔던 때,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고싶어 사업을 했다가 딱 1년 만에 쫄딱 망하게 되어 빚더미에 앉았을 때, 공황장애로 경부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자동차를 멈춰 세워 놓고 식은 땀을 흘리며 몇 십분 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때, 세 여자에게 사이에서 나의 수치가 모두 드러나 삼자대면을 했을 때, 바로 이런 때에 평범하게 흐르던 시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과 시간들을 경험하게 되며 평범하게 살았다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죽음과 죽음너머의 삶과 이 땅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무언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때가 웃시야왕이 죽던 그 때입니다.
평범하게 사역을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던 제게 이런 때가 2주 전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주 전 책 상앞에서 큐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기 너머 자기가 경찰이라 소개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을 안가겠다고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난동을 피우는 정도면 크게 다치지는 않았겠다 싶어 아버지를 바꿔달라하고 아버지 병원을 가라.고 계속적으로 설득을 했습니다. 안 가신다던 아버지를 설득해 결국 입원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저 역시 급하게 집을 나와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대전에 내려가니 아버지는 사고난 근처 항외과에 입원을 하고 계셨는데 갔더니 옷은 전부 뜯어져 있었고 노숙자 같은 몰골에 팔과 다리는 다 멍투성이였습니다. 발이 골절이 되어 붕대를 감고 계셨습니다. 입원한 병원이 항외과라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계셨기에 서울로 제가 있는 집근처로 옮기고자 했는데 절대 안간다고 또 고집을 피우신 것이었습니다. 또 설득하고 설득해서 아버지를 옮기려고 조금 움직였는데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아 버리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너무 아파하는 아버지때문에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다음 날 도저히 차를 탈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를 모셔오기 위해서 사설 구급차를 부르고 권찰과 함께 대전을 내려갔습니다. 그 주 말씀에 누가 우리를 위해 이 큰 돌을 굴려주리오. 근심하는 마음으로 세 여자가 무덤을 향했다고 하는데 저도 대전을 내려갈 때 정말 이런 여인들의 마음이 제 마음이었습니다. 누가 이 큰 돌을 굴려주리오. 고민하며 대전으로 내려가서 병실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아버지가 안계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가 없으셨습니다.
그 주 설교 말씀에 여인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혹시 아버지가 괜찮아지셨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침대 위에 아버지 옷 가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옷가지가 놓여있었던 것처럼. 순간 든 생각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셨나였지만, 이후 아버지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늘 술을 마시러 가는 장소에 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비명을 지르는 아버지께서 두 팔로 기어서 그곳에 가셨던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났지만 그곳에 제가 가니 병실과 꾀 멀리 떨어진 곳인데 이미 아버지의 신발과 옷은 누더기가 되어있었고 그런 아버지를 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사설 구급차를 돌려보내고 아버지를 버려두고 오고 싶었지만, 내려갈 때 묵상했던 시편 119편 말씀이 생각났고 119편 말씀을 읊조리며 주의 종을 후대해 달라고 기도하고 아버지를 다시 제 차에 모시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 주 설교 말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담임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올라왔는데 그때부터 평범하게 흐르던 저의 일상에 또 다른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한걸음도 못 걸으시는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내리는 것이 정말 십자가처럼 무거웠고 그런 아버지를 가까스로 휠체어에 태워 여러가지 검사를 받는데 검사를 받으려고 휠체어에 태워서 이동하는데 그 휠체어에서 아버지께서 오줌을 싸신 것입니다. 멘붕에 빠졌습니다. 오줌을 싸셨으니 옷을 벗겨야 되는데 갈아 입히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또 아프다고 난리를 치시고 이후에도 옷에 그런 실수를 잦게 하시고 병상 위에서도 오줌을 싸셔서 이불과 시트가 다 젖어 악취는 기본이었고 병실에서 욕설과 고성은 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정상적인 대화를 못하셔서 늘 고함을 지르십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얘기를 할 때, 생각을 얘기하시면 되는데 화를 내시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명령조나 단답형으로 이야기 합니다. 옷을 갈아 입히려고 하면 난리를 치시고 다 젖은 악취난 옷을 버리고 새 속옷을 사러 헤매고 또 변동에서 난리를 치시니 처음 간 병원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두번째 병원에 가서도 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가는 곳 마다 골절된 부분을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술 받기도 전에 또 쫓겨나고 또 소변검사, 혈액검사 CT를 계속 찍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지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수많은 검사를 받고 또 쫓겨나고. 또 병실에서 소동을 피우시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며 난동을 피우시기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경고를 받고 또 옮기고 결국 다섯 번째 병원인 서울 의료원에서 가까스로 받아주셔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것이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다고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정말 이때 우리들 교회 집사님들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자녀들 때문에 이 학교 저 학교 선생님들에게 빌고 또 빌었던 우리들 교회 집사님들의 간증이 생각났고 저역시 의사선생님들께 여러 경고를 받으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나뿐인 누나에게 전화를 거니 누나는 남이섬에 가족들과 함께 2박 3일로 놀러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할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의지할 곳이 아무 것도 없는 그 순간 내가 의지한 것들이 모두 다 무너지고 내가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무거워지는 그 순간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를 지며 골고다 언덕을 한걸음한걸음 옮기는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느껴지는 그 때, 바로 그때가 나의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이며 바로 그때가 나의 구원의 시간이 흐를 때입니다.
또한 바로 이때가 그루터기로 남아있는 자들을 위해 나를 부르시는 때입니다.
나눔질문드립니다. 52년간 평범한 삶을 살며 평화롭고 부유하게 나라를 통치하던 나의 웃시야왕이 죽었습니까? 나는 이때에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두번 째, 우리는 이 때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내 죄를 보아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내가 의지하던 나의 웃시야왕이 죽던 그 때가 나의 가족과 내 백성의 구원의 시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 나에게 특별한 사명이 주어지는 때입니다. 이 때 우리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사야는 어디를 봅니까? 1절 말씀에 높이 들린 지극히 높은 하나님 보좌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내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임재하고 계시는 우리 모임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봐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하나님을 어떤 환상과 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내 시선이 향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닌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닌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내 시선이 향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시선을 향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죄 고백이 있는 곳에 내가 임한다고 약속하셨듯이 죄고백과 말씀이 있는 예배와 목장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그곳에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것입니다.
# 저 역시 이 고통의 시간에 하루라도 큐티를 하지 않으면, 말씀이 없었으면 결코 견딜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새벽설교를 행정하시는 목사님께서 새벽설교를 빼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말씀이 없으면 하루라도 살수가 없다고 전하겠다고 해서 했습니다. 주일설교를 할 줄이야 몰랐습니다. 십자가 지려고 결심했는데 주님은 저를 못박아 버리셨습니다. 목장에 수많은 스랍들 수많은 천사들이 고난과 아픔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다는 간증과 고백을 하면서 이 모든 영광을 자기 얼굴을 가리며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돌리고. 어느 상황 속에서 자신이 영광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목장에 이 곳에 주님의 영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바로 이때에내가 감당하기 힘든 이 시간 이 곳에 나의 시선을 향하고 나의 발걸음을 옮겨야 되는 것입니다. 궁내대신인 오바댜처럼 높은 신분인 사람, 엘리야처럼 떠돌아 다니는 사람, 사르밧 과부처럼 연약한 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강한 자나 똑똑한 자나 약한 자나 모두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고 함께 모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십자가를 길러놓고 거룩을 외치며 화답하는 자의 기도소리가 있고 먼저 고난 당한 집사님의 기도가 향이 되어 온 천지를 요동시키는 바로 그곳. 문지방을 넘고 이곳으로 들어가야 문지방터가 요동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간증이 울려퍼지는 그 현장에 우리는 나아가야만 이 곳에서 우리는 좌정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우리는 이때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 시간을 바르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행복이 아닌 거룩을 위해 거룩하다 화답하는 함성을 들을 때, 이 기가 막힌 때를 살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과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사명으로 나아갈 수 가 있습니다. 환경을 넘어 문지방을 넘어 예배으로 목장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제가 우리들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지방이 참 낮아서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이곳에 앉아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전혀 어색할 거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우리는 이 문지방을 넘어가야 합니다.
나눔 질문 드립니다. 말도 되지 않는 기가막힌 상황에서 내 시선과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주차장에서 문지방을 넘어 예배를, 이 예배 채플로. 현관에서 문지방을 넘어 목장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 말씀과 죄고백이 있는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까? 이 기가막힌 사건에서 내 죄가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예배와 목장에서 화답하는 수많은 슬픔과 간증과 아픔과 살아난 적용을 들을 때, 결코 보이지 않던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5절에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때에 내가 문지방을 넘어 나아갔을 때, 주의 영광이 임한 곳으로 향했을 그 때에 5절에 하나님이 영광이 임한 그곳에서 내가 죄인임이 고백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5절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고백은 망하게 될 것이다가 아니고 이미 망하게 되었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 간 후 완전히 파괴된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고 모든 것이 파괴된 그 상태를 나타내게 됩니다.
# 저역시 말씀과 환경이 없었더라면 아버지 탓, 환경 탓, 그리고 환경 너머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지지난주 주일 말씀에 사르밧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을 때, 아들이 죽은 현장에서 말씀이 임한 엘리야를 보았을 때, 과부가 어찌하여 내 죄를 생각나게 함이니이까?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고 말씀을 들으며 엘리야가 완전히 죽고 파괴된 아들의 시체를 자신의 처소와 침삼에 누이며 살과 살을 맞닿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이 냄새나고 시체같은 아버지를 내 처소와 침상안에 결코 누일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목장 공동체에 나눴을 때, 나는 이 아버지를 섬길 수 없는 죄인임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말씀 오바댜가 말씀의 엘리야를 만났을 때, 그 의로운 오바댜가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하며 자신의 죄얘기를 하는데 공동체와 말씀 앞에서야만 내 죄를 직면할 수 있고 내 죄를 직면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자녀가 의로운 줄 알았던 나로인해 가장 사랑하는 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었구나. 나 뿐만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마저 죽였구나. 정말 큰 죄인임이 깨달아지고 모든 것이 무너져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행할 수 있습니다. 목장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번 아버지 교통사고가 없었더라면, 아버지에게 할 도리를 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생각하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을 무너뜨리고 망쳐놓았다고 생각할 때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적용한다고 하면서 10년을 하루에 2만원 씩 드리며 병원비와 생활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드리는 것에 돈을 드리는 것에 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저에게 받은 그 돈으로 매일 술을 사드시고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우시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실때 한 번 빨고 버리십니다. 아들이 재벌인 줄 압니다. 술을 늘 하루에 막걸리를 3병씩 마셨습니다. 노숙자와 다름 없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사시고 끝없는 외로움과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계셨는데 저는 좋은 집에 호의호식하며 아버지 구원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저 돈만 드리며 자식으로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고, 가끔 내려가 예배드리고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돈으로 아버지를 컨트롤 해서 아버지를 교회에 나가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냄새나고 시체 같은 아버지를 모셔오는 것에 너무 싫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구원보다는 내 편안함만 생각하는 저의 악함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내가 얼마나 구원의 값을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며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싫어하는 자인지.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하나님은 이 고백을 부정한 저에게서 받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저를 심판하셨습니다. 처가살이를 하며 돈이 없다 핑계하는 저에게 무단횡단을 해서 교통사고를 당하셨기에 병원비와 생활비를 저에게 다 감당하게 하셨고 이번 사고를 통해 아버지의 모든 숨은 질병을 고치시는데에 저에게 값을 물으셨습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아버지를 모셔오지 않았고 또 모셔올 생각도 없었고 구원을 위해 복음을 위해 나라를 위해 떠들어대면서도 아버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죽을 때까지 돈만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포기하는 저의 아버지를 형제도 가족도 자녀도 심지어 아내까지도 포기하고 버리신 우리 아버지를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누가 이 백성을 위해 심판 받아 아파하는 내 백성에게 누가 나를 위해 갈꼬? 하십니다.
세 번째, 우리는 탄식하시는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우리는 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이 고백을 하며 내 죄가 보일 때, 그리고 정말로 이런 죄인을 값없이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내 죄로 인해 탄식하고 무너진 삶속에서 내죄가 용서받은 은혜를 경험한 자만이 이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아버지를 위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주님은 오늘도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 저는 세계 선교를 한다며 떠들어대면서도 아버지 만큼은 근처로 모셔올 수 없다며, 목장에서 지체들의 나눔에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해왔었습니다. 음란과 거짓과 교만으로 지옥에 가도 마땅한 저에게 내 죄로인해 사망선고를 받은 것처럼 힘든시기를 보내왔을 때 제단에 피운 숯으로 내 죄를 사해주셨음에도 덤으로 준 인생을 늘 고백하면서도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부르심에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저였습니다. 도저히 적용할 수 없었고 도저히 주님을 위해 갈 수 없는 저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웃시야를 죽은 사건을 통해 저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부르셨고 힘든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마지막까지 수고하는 기회를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를 위한 일, 주님을 위한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적용질문 드립니다. 저 힘든 가족에게 저 힘든 사람에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시는 주님의 탄신하시는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목소리에 순종하여 나는 오늘 누구에게 가야합니까? 담임목사님께서 정말 힘든 내 남편, 정말 버리고 싶은 내 가족, 힘든 내 자녀를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서 나에게 맡기셨다고 하셨는데 나는 외면한 채 주님의 목소리를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가 남았다고 하십니다.
사건을 통해 들리는 주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며 가고 있지만, 지금도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 의료원에서 수술을 받았음에 감사한 것도 잠시뿐 그 병원에서 퇴원경고를 몇 번 받았고 강제 퇴원 경고를 받아 예상한 것보다 빨리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사정을 해보았지만,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엊그제 서울의료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퇴원하시는 그때도 한 걸음도 못 움직이시는 것이었습니다. 무릎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다고.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는데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시고 병원에서는 빨리 퇴원하라 독촉하시고. 그런 아버지를 퇴원시키고자 빨아온 새옷을 입히셨는데 그 새 옷에 오줌을 싸신 것입니다. 오줌을 싸셨으면 본인이 당황을 해야하는데 평안하십니다. 제가 당황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병원에서는 빨리 나가라고 하고. 서류를 떼고 이것 저것해야하는데 공황장애가 있는 제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속 조절하실 수 없어 기저귀를 차드렸고. 기저귀를 매일 갈고 하는데도 휠체어를 태우는데 소변이 마렵다고 하셔서 소변통을 드린 그때에 싸버리신 것입니다. 무릎이 아파 죽겠다는 육중한 아버지를 옮겨 드리고 짐을 싸고 또 다른 새로운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여러검사를 마치고 좁은 입원실에 들어간 첫 날, 여섯번째 병원 첫 날밤에 병실에서 소리지르시고 간호사들에게 고함을 지르고하셔서 강제 퇴원경고를 받았습니다. 첫 날에 아버지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할아버지 두분이 계셨는데 아버지께서 환하니 불꺼!하니 한 분 할아버지께서 불 끄시고 TV 소리가 크니깐 줄여!하니 줄이시고 더더더하니 결국 끄셨습니다.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니 원래 우리는 끄고 산다고.
아버지는 5일째 식사를 하지 못하십니다. 먹기 싫다고 죽고 싶다고만 하십니다. 대동맥 방이와 심근경색, 신장투석, 한 쪽 눈이 실명한 상태이며 다리에 알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시며 한 발짝도 못 움직이시고 대소변도 가리시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심전도가 심장마비와 너무 유사하여 오늘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라. 병원에서는 말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토요일에도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한발짝도 못 움직이신다던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1층에 내려가 집에 가겠다고 소동을 피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와야 겠다, 보호자가 와서 옆에 붙어 있어야 겠다고 해서 당장 병원에 달려갔더니 병원 원무과 과장님이 더이상 병원에서는 해줄 것이 없다며 오늘이라도 당장 퇴원하게 하라고 하셔서 또 빌고 빌었습니다. 주일설교를 해야하는데 아버지에게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갔더니 무릎이 아파서 꼼짝도 못 하겟다고 하시는 아버지는 짐을 혼자서 다 싸셨더라구요. 침대 위에 누워계셨습니다. 아버지께 따졌습니다. 아버지 어디를 가려고 했냐.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간다, 집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집이 없다고. 대전 집도 이제는 없다고. 도대체 집이 어딨냐고.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반겨줄 아내도 반겨줄 자녀도 사랑하는 가족도 아무것도 없는 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아버지는 자꾸 집에 가신다고 합니다. 걷지도 못하시고 몸으로 넘어지고 기시며 자꾸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는 아버지에게 갈 집이 없다고 하면 저를 보고 웃으십니다.
오늘 11절 말씀처럼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주여 어느때까지이니까. 하루하루 탄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함이 많아 질 때까지이다. 대답 하십니다. 주여 어느때까지이니까? 10분의 1일 무너져 황폐해질 때까지 라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하신 때입니다. 제가 5살때 아버지는 뇌를 크게 다치셔서 수술을 크게하셔서 생사를 헤매셨었습니다. 이제 머리까지 다치셔서 검사를 받으며, 아버지께서 어떻게 사고를 당하셨는지 잘 몰랐는데 경찰에서 영상을 확보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사고를 당했냐고 하니깐, 1톤 트럭에 부딪혀 1미터를 날아가셨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도 어지럽고 얼굴에 상처도 많아 뇌사진을 찍었는데 뇌사진을 찍은 의사가 놀라는 것입니다. 전두엽이 다망가져있다고. 이번 교통사고가 아니라 이미 망가져있었다고. 30 몇 년 전에 뇌 수술을 했을 때, 생사를 오간다고.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집에 안 계시고 아버지 병간호를 하셨습니다. 그 때 뇌가 망가졌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전두엽이 폭력, 폭언, 폭행, 인지를 컨트롤하는 부분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렸을때 중학교, 고등학교 때 기가막힌 폭력, 폭행을 입에다가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한 아버지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망가져서 모든 것이 망가져서 그랬구나.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나가신 어머니가 조금은 용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뇌부터 모든 것이 망가져 황폐해진 아버지이지만 오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말씀에 모든 것이 황폐해져도 남은 십분의 일만 남고 황폐해져도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루터기는 남아있어 거룩한 씨가 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기 전날 주일이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날도 평범하게 교회를 가야 2만원을 드린다고 주일 아침에 전화를 드리고 끝나고 교회 다녀온 것을 체크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서 물으면 대답에 갔다왔는지 안갔다왔는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한번은 교회를 다녀왔냐? 물으니 갔다 왔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들었나 물으니 살아도 천국, 죽어도 천국.이라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추상적인 답을 하시면 안가신 것입니다. 오늘 안갔다 오셨죠? 하니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부활 주일날 다녀왔냐? 물으니 아버지께서 갔다 왔다 해요. 뭐했냐? 했더니 술먹었다. 술먹었다 이말이 뭔가 하면, 성찬식에 포도주를 마셨다입니다.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하셨냐? 물으니 도마는 보고 믿었고 바울은 안 보고 믿었는데 안보고 믿은 바울이 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래서 아버지께 아버지는 보고 믿냐? 안보고 믿냐?. 아버지는 안보고도 믿는다고 하셔서 도마보다 아버지가 더 복되도다 말해드리며 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쫓겨나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차 안에서 아버지께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아버지 심근 경색으로 오늘 밤 갑자기 예수님 앞에 서실 수 있는데 그때는 아들도 없고 아무도 없고 예수님 앞에 설텐데 예수님이 아버지께 물으실 때, 아버지는 천국에 갈 수 있냐?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힘들게 사셨고 모든 것이 다 무너졌는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으니.
믿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믿냐고 물으니.
부활을 믿는다.
누구를 믿냐고 물으니,
예수 그리스도. 라 답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뛰어난 머리도 잘 생긴 외모도, 예쁜 아내도 쌓아올린 모든 재산과 건강, 경제적인 모든 것이 황폐해졌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루터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든데 술과 담배를 일주일 째, 하지 않는 아버지는 갈 수록 잘생지고 계십니다. 입원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머리 맡에 극동방송 말씀이 계속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성도님들의 수많은 댓글과 화답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초원에서 많은 지체들이 기도해준다고 수많은 응원의 글로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기도의 은혜로 어제 저녁 오일만에 처음으로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했던 아버지께서 밥 한그릇을 다드셨습니다.
남은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그 씨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 씨가 싹을 틔어서 열매를 맺도록 오늘 하나님께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강제로 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십자가를 강제로 질 수 없기에 주님께서는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나를 위해 이 씨를 자라게 할꼬? 탄식하시는 그 목소리가 죄사함을 받은 우리 귓가에 들려야 합니다. 우리가 적용하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도울 천사를 보내시고 오바댜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또 돈을 사랑하고 이기적인 저를 아셨기에 웃시야 왕이 죽은 사건을 통해서 저에게 구원의 시간을 허락해주셨고 이 영광스러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1년 동안 아버지를 뵌 것보다 더 많이 뵙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뵈면 거제도 바닷가에서 수영하던 이야기,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던 이야기, 누나가 피아노 치던 이야기, 엄마와 진달래 꽃 구경하러 갔던 이야기, 자신이 잘 생겨서 수많은 여자에게 구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할머니가 늘 새벽기도를 갔던 이야기. 초점은 흐려져가고 있지만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아버지와 그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다르게 번역하면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의 씨앗이 되어 거기에 싹을 틀 것이다 입니다. 거룩한 자손들이 거룩한 그루터기가 되어 거기에 다시 싹이 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가 죽는 사건을 통해서 저에게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구원의 씨앗이 자라게 하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주홍빛 같이 붉은 죄를 핀 숯으로 사하여 주셔서 거룩한 자손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통해 그 씨앗 이 자라는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눈물과 기도와 애통과 섬김과 물질과 나의 시간의 양분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 일이 너무 힘들고 힘든 사람에게 보내기에 너무 힘든 백성에게 보내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십니다. 그 탄식소리에 그 목소리에 반응하길 원합니다. 내 가족, 내 식구, 거룩한 씨, 정말 힘든 내자녀 내 부모에게 거룩한 씨, 남은 그루터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누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이 무너진, 들려도 듣지 않는 저들에게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해 갈꼬? 물으십니다. 힘든 그 사람에게 오늘 찾아가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하여 우리가 나아갈 때 이것이 바로 주님을 위함이다 말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지만 아직 그루터기는 남아있다고 하십니다. 그 그루터기에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시며 기가 막힌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내 죄를 보여주십니다. 망한 나에게 은혜로 용서함을 주시며 당신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하시고 아무도 가기 싫은 그곳 원수 같은 저들에게 모든 것이 무너져 황폐해버린 당신의 택한 백성 저들에게 남은 것 있다고 저들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목소리에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모두 찬양하고 말씀 붙들며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사망의 그늘에 앉아 (그날)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나의 백성들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저들은 내 마음에 오랜 슬픔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나는 이제 일어나 저들의 멍에를 꺾고 눈물 씻기길 원하는데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나는 이제 포기 못하네 나의 자녀들 사랑하는 그날
힘든 찬송소리 가득해 웃음소리로 가득한 그날
기도제목
모든 사람이 포기한 그곳에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말씀 붙들고, 주님,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주님의 탄식하는 목소리에 주홍같이 붉은 내 죄를 사하여 살아난 제가 모든 사람 포기하고 떠난 그 자리로 가겠습니다. 주님 저에게 힘을 달라고. 그 사람에게 다가갈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달라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그 사람을 생각하며, 힘든 내 목장과 내 식구들을 기억하며 이 시간 주여 부르짖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모든 것이 황폐해졌습니다. 십분의 일이 남았다고 했는데, 그 십분의 일조차도 황폐해졌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어 흑암의 그늘에 앉아 탄식하고만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아직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남은 씨앗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씨가 열매를 맺고 싹을 틔우기 위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탄식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하여 주옵소서. 주님 결코 이 십자가는 우리가 질 수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시고 정말 하늘 보좌앉은 수많은 천사들 돕는 천사들을 보내시어 정말 이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게 하시옵소서. 참으로 하나님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 구원의 현장으로 가는 귀한 성도님들의 발걸음에 주님 힘을 더하여 주옵시고. 상한 갈대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긍휼이 우리의 삶 가운데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 붙들고 내가 가길 원합니다. 어느 누구도 질 수 없는 십자가를 내가 지길 원합니다. 이 길을 먼저 가신 예수님 그리스도의 도우심과 능력이 자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여 주옵소서. 우리들 교회가 함께 가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우리들 교회가 지고 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목회자 세미나 목욕탕 세미나를 통하여서 수많은 교회에 이 능력의 말씀, 살아난 말씀을 증거해 나가는 데 있어 사단이 많은 조롱이 있습니다. 모든 방해와 사단의 괴괴를 꺾어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주홍같은 붉은 피가 극명히 드러나는 목욕탕 세미나가 되게 도와주시옵시며 말씀을 증거하시며 준비하는 목사님과 담임목사님께도 함께하여 주옵소서. 어느 누구도 질 수 없는 이 십자가를 함께 지며 갈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5. 12 목장예배>
한수진 목장 보고서(22)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일시 19. 5. 12. 4-6시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이지민, 우지현, 조수빈, 이은영
나눔 한 주 근황과 오늘 말씀을 듣고 나의 웃시야 왕이 죽은 사건과 같은 일이 무엇인지 돌아가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 각 가정에 화평이 무너져 황폐해진 사건, 현재 관계에서 온 수치스러운 일에 대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모두 내놓기 힘든 이야기였는데 오늘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말씀과 간증에 화답하여 문지방을 넘어 목장에 나와 나누어 주어 오늘도 풍성한 나눔의 목장예배였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준 목장 식구들도 참 사랑하고 식구들의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합니다. 남은 한 주도 잘 버티고 주일에 보아용^^
우리들의 기도제목
수빈
1. 수빈이의 웃시야 왕인 인간관계 집착하지 않기를
2. 학교에서 친구관계 현명하게 해결 할 수 있도록
은영
1.아빠 검사(수요일) 결과 잘 듣고- 입원-수술 절차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2. 상담 잘 받고 어그러짐이 회복되어 변화될 수 있도록.
지민
1. 동생에게 사랑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도록 존중해줄수 있도록
수진
1. 오빠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 주시길.
2. 건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지현
1. 감기 빨리 나아서 목소리 회복되도록
2. 다음주 면접 결과 나오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기를
3. 백성들의 죄를 자기 죄로 여기고 회개했던 이사야처럼, 우리 가족의 죄를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내 죄로 여기고 대신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