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4. 14 주일예배>
일시 2019. 4. 14.
찬양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 놀라운 주의 사랑 (Beautiful One) ┃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 ┃
주 발 앞에 나 엎드려 (One Way) ┃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 시선
내가 섬기는 하나님
본문 열왕기상 17:1-9
설교 김양재 목사님
여로보암의 끝판왕 시대에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악한 아합 왕을 대적하기 위해 가장 큰 선지자 엘리야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예전이고 지금이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으로 진정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목사고, 평신도고 하나님이 쓰십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셨어야 했습니다. 벌써부터 북이스라엘이 7대째가 되니 하나님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부터 8장에 걸쳐서 엘리야의 하나님을 볼 터인데 실로 모세가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아합 시대가 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대선지자가 나와도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합의 악한 시대에 쓰신 엘리야,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떻게 힘을 주시고 인도해 가시는지 보겠습니다.
첫 째로, 담대하게 해주십니다. (1)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우선 이 엘리야는 길르앗에 우거하던 디셉 출신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선지라면 가문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 이름은 없는데 대신 출신 지역이 나와 있습니다. 길르앗에서 우거하던 자라고 하였는데 길르앗이 어떤 지형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지파의 후손인 에브라임이 반역을 일으켜서 북이스라엘에서 정권을 잡은 것을 생각하면 에브라임지파는 북이스라엘에서는 황금수저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역대상 7장 14절에서 보면, 므낫세의 아들들은 그의 아내들이 낳아준 이스라엘 소신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이니, 즉 엘리야는 에브라임 형인 므낫세의 첩의 자손인 길르앗의 후손에 속했기 때문에 읽기만 해도 열등감과 차별 속에 살았을 것이고 사사기에 보면,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에브라임 사람들에 의해 제일 상처를 많이 받았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 12장 4절에 보면,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사사기에 입다는 천히 여김받은 길르앗 사람이면서 기생의 아들로 가족에게서 버림을 받은 더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경우는 길르앗에서 살면서 아예 가문조차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설명조차 하지 못하는 군번이던지 부모가 없는 고아이던지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는 또 불같은 성정(性情)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깐, 상처로 인해 분노조절이 안됐나 보다. 에브라임 지파가 무시하는 그래서 내놓을 것이 전혀 없는 성질까지 안 좋은 더러운 사람인데 그런 엘리야를 바알과 대적할 자로 아합에게 보내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의 일은 성품이 좋은 사람만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금송아지 숭배의 북이스라엘에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신앙 고백적인 이름을 가진 것은 그의 환경이 이렇게 겸손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바알 숭배가 국시로 되어 있는 북이스라엘에 남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 엘리야는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호칭을 했는데 문자적으로 내가 그 앞에 서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기도의 자세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고 재판할 때 진실과 정의로 여호와나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 앞에 선다는 것이고, 이 구절처럼 헌신과 충성과 복종의 표시를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엘리야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재판장처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선언하는 자라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복종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경외한다.라는 비장한 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담대해집니다. 이런 형편없는 출신이라도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면, 담대해집니다. 이런 담대함이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 때문에 이런 담대함이 나오는 겁니다.
# 지난 주 낙태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헌재소에서 내려졌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데 22주면 6개월에 가까운 태아인데 여성의 인권이 태아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자리에 인권이 가있는 것입니다. 뉴에이즈와 포스터 모던니즘의 끝판왕입니다. 온갖 수치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중학생·고등학생을 설득해서 낳게 하고 믿게 하고 가정을 이루게 하고 이래서 매주 유아 세례가 행해지고 있는데(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하나님의 섭리고 선물인데 장애아라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사과를 고르듯이 선택적으로 아이를 죽인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시험관 아이도 선택한다는 생명윤리 때문에 지금도 안타까운 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나아가서 그 아이는 안 보이는 생명이니깐 뱃 속에 있는 그런데 지금은 살아 있는 아이를 22주 째까지 낙태할 수 있게 한다니, 오므리의 악한 권세를 점점 더 합법화시키는 아합시대 맞습니다. 60여년 넘게 내려온 법을 폐지하고 지금 낙태를 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바알 숭배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께 돈을 꾸어서 갚는 남편이 싫으면 이혼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성숙이다.라는 현수막까지 붙여놔서 이혼, 낙태 막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나 허탈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정상이고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돈 많고 바람도 안 피고 그러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다 잘 살고 다 박사여 보세요. 감사할 것 같으세요? 비교할 사람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지옥입니다. 안 그래요? 마가복음 13장처럼 이 세상은 아무리 화려하고 성공해도 심지어 화려한 성전이라도 보이는 것은 다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미리 무너져서 예수그리스도의 징조를 보일 수 있는 것이 축복인데, 이 땅에 완전함이 다 인줄 알고 영적 시력이 마이너스라서 이런 징조를 보지 못하고 품질이 나쁘다고 다 골라내서 죽이고 이혼시킨다면 복음이 들어갈 기회가 원천봉쇄(源泉封鎖) 되는 것입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헌재의 7:2로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어떤 때보다도 위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도 물론 죄인이고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교회는 그렇게 이혼, 낙태를 죽자고 막았더니 2천명 청년들이 이혼하지 않고 낙태하지 않고 교회는 부흥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시대에 애국, 애족 아니겠습니까? 아이 낳는데 돈 얼마 준다고 아이 많이 낳나요? 정말 우리들 교회 애를 많이 낳습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되는데 그런데 가치관이 다르면 나는 아이 낳기 싫은데 남편이 낳으라고 하면 이것도 이혼 조건이 되는 겁니다. 가치관이 다르면 이혼하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 같아 보여도 집이고 나라도 다 망하는 결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중학교 고둥학교 때 임신하면 다 낙태하라는 말 아닙니까? 너무 기가 막하지 않습니까? 판결은 학벌로 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합니다. 힘든 환경에 처해 보아야 복음이 들어가는데 다 무너지기 전에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복음이 없는 사람이 영생의 복음이 들어가는 길을 다 막는 판결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이고 고난이 축복인데 그 길을 다 막아서 번데기를 다 가위로 잘라 나비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구속사의 가치관을 가지고 판결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소수인권이 사랑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100%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하면 방종의 시대로 돌입해서 겉잡을 수없는 악의 시대로 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권에 판결을 하고 인권이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가리켜 맹세하는데 수 년 동안 북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한 방울도 없는 가뭄이 있으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망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 말대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길르앗은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를 뜻하는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입니다.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의 증거를 가지고 예언을 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모두 증거의 돌들인데 엘리야처럼 광야에 사는 무시받고 평범한 사람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라는 신앙고백이 있으면 이렇게 왕 앞에 나아가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광야에 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섬기는데 어째서 왕이 바알을 섬길 수 있는가! (하나님은) 왕이 그렇기 때문에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우로를 끊는다고 호령을 하라고 지금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는 풍요의 신, 바알의 급소를 찔러야 됩니다. 이것이 가뭄입니다. 굉장한 기도이고 적용입니다.
# 큐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저도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병원에 우로가 끊어지는 즉, 망했으면 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픈 것 보다는 병원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됐습니다. 그래도 고난 중에 제일 쉬운 고난이 돈 고난이라는 생각입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피아니스트고 남편은 의사이니 병원이 망해야 밥 굶고 살겠는가. 그래서 남편도 안되는 것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남편도 참 성경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이렇게 남편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니깐 담대해진 겁니다. 제가 남편의 구원에 그만큼 목이 말랐기 때문에 기도를 했습니다. 내 풍요와 물질의 바알이 끊어지는 것이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임을 믿고 우로가 끊어지리라는 것에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바알의 문화가 끊어지려면 세상 가치관이 물러가야 하고 세상 가치관이 물러가려면 육이 무너져봐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합이나 이스라엘로서는 우로가 끊어지는 것,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한 방울 없으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복중에 복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망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 기분만 나쁠 것입니다. 성경은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단은 적용을 안 합니다. 적용을 안 하면 귀만 커지고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아침에 교회 오면서 매주 설교 말씀을 듣고 평생 왔는데 이것을 평생 한 번도 안 듣고 세상에 공부만 잘하는 사람과 살면 어떻게 살아지겠나, 매주 이렇게 듣는 사람하고 이런 거를 구속사의 구도 못 들어본 사람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돈과 권력과 학벌과 사랑의 우로가 비도 이슬도 하나 없이 끊어졌습니까? 아합과 같은 식구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여러분의 환경에서 담대하게 비도 이슬도 없는 우로가 끊어지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
두 번째, 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2-5)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엘리야가 아합에게 한 문장을 선포한 후에 아합이 엘리야를 당연히 해하려고 찾았습니다(18장 10절).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가 안전하게 피할 장소를 알려주시고자 합니다. 그릿은 분리와 단절을 뜻합니다. 어떤 두 지형을 분리하는 경계성 역할을 했거나 다른 지역과는 단절된 오지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을 것이고 숨기에는 좋았겠지만, 숨기에는 좋은 것은 살기에는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뭄이 계속되자 이것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일시적인 장소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서 가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영원히 가난한 사람도 없고 영원히 부자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아서 열등감과 교만으로 점철(點綴)되어 있는 겁니다. 동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동쪽으로 가서 시냇가에 숨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거했던 장소로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삼았던 장소입니다. 그러니깐 그릿 시냇가가 힘들어도 약속의 땅이라는 겁니다. 만나를 내려주셨던 장소라는 겁니다. 숨고는 스스로를 숨기다라는 뜻인데요, 말씀 듣고 스스로 숨은 것입니다. 적용인 겁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의 가뭄예언이 바알 숭배를 국시로 내민 자신들의 정책에 도전하는 반역으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처형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즉시 숨기도 했지만, 앞으로 이세벨과 아합을 넘어서는 바알 선지자 850명을 물리쳐야 하니 승리하기위해 영성을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습니다. 저는 13년 동안 문 밖 출입을 하지 못한 것이 정말 가장 지금 사단과 대적하는 큰 비밀 병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적용해보면, 내가 이렇게 분리하고 단절해야 하는 그릿 친정이나 시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반역을 위해 힘들지만 분리를 하면, 그것은 약속의 땅 들어가기 전 만나를 주셨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갈 것이라는 겁니다. 일시적으로 숨으라는 것입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생색내지 말고 숨으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감추고 숨으라는 것입니다. 때가 될 때까지는 숨어 있어야 될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전부 일시적으로 분리와 단절도 구원 때문에 하라고 했지만,
마가복음 10장 29절에는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처럼 아무리 복음을 위하여 다 버릴 수 있다해도 여기 안 나온 이가 있는데 아내나 남편이나 버리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도 다 버린 후에 엄마만 돌려주고 아버지는 돌려주신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늘 버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아버지는 확실히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버렸는데 돌려주시지 않네요. 자고로 좋은 엄마 많은데 맹모, 신사임당. 그런데 좋은 아버지 유명한 자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기대하지 맙시다. 그런데 이것도 구속사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 한 글자 한 글자가 중요합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하여 선교를 하기위해서 이혼을 한다, 이런 얘기가 없습니다. 부부는 항상 바늘 가는데 실이 가는 것입니다.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도 죽을 맛이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돌만 있는 광야 길르앗보다 더 살기 힘들어 보이는 그릿 시냇가로 숨으라고 하신 겁니다. 엘리야가 망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너도 가서 살아봐라는 겁니다. 이렇게 힘든 시대는 삶이 메시지가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겁니다. 말씀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기 때문에 삶이 육화되는 incarnation(成肉身)되는 말씀을 들려줘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내 고난을 얼마나 아는가.하는 편지를 받습니다. 나도 목사님과 같은 상황이면 얼마든지 사역하겠다. 맞습니다. 제가 모르는 고난 많습니다. 그러니 더 가뭄 같은 현장으로 숨어살아야하는데 ... 참 어렵습니다.
4절에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가뭄이 들어도 그릿 시냇가에 가기만 하면 마실 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고난이 없지만 적용해서 가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말씀이 안 들리는 분이 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의 살아나짐과 달라짐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가고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무시 받는 길르앗 출신으로 더 험한 시냇가, 그릿 시낸가로 가라고 해도 내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칼 같이 적용하는 분들 때문에 가장 최고의 MVP이십니다. MVP 엘리야 같은 힘든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도 맹목적인 순종도 아니고 기복적인 순종도 아니고 구속사적인 구원의 순종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이 들리는 구조 속에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공동체에 속하기 힘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속하도록 마음 속에 소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런 소원은 이루어주시더랍니다.
5절에,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원어로 보면 그가 여호와 말씀대로 같이 가서 행하였고 그리고 그는 가서 머물렀다고 원문에는 가서가 2번 나옵니다. 엘리야는 말씀 인도 따라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가라면 갔다는 겁니다. 요단 시돈 지방에서 사르밧으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또 갈멜산 정상으로 다시 기손 시냇가로 이스루엘 지방으로 남방 유다 브엘세바로 광야로 호렙산으로 그리고 다시 요한 계곡에 이르러야 끝납니다. 지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요단 동쪽에서 마감한 모세를 연상시킵니다. 엘리야의 메시지가 모세가 가르치고 선포한 신명기 언약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대단한 사역이 오직 말씀 인도 따라 했다는 겁니다. 주의 인도하심 따라, 말씀 인도 따라. 성도 최고의 삶은 말씀 인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 큰 영적 싸움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고독과 절제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살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늘 만나는 것을 떠나면 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시고 만나주시겠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인도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니깐, 내가 혼자 사는데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 너무 외롭다. 그리고 동성애도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 왜 하지 말라고 하냐. 합니다. 저는 누가 있습니까? 이게 말씀 때문에 너무 바쁘고 집에 오면 사람들 메일 읽어야지, 늘 준비하고. 그 틈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부르짖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동안 말씀을 사랑하는 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와 멀리 떨어진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였을 때 즉시 순종했습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경험하고 왔기에 명령하시면 뜻이 있을 줄 알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큐티를 하며 목장에 묻고 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결정적인 날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생명으로 인도되실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이 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워야 할 그릿 시냇가의 분리와 단절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 감정에 충실해서 분리하려고 한 것은 더욱 심한 가뭄만 가져올 뿐입니다.
# 오늘은 제가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개척하기 전에 2002년 6월에 6.15를 기념해서 남북이 연합하여 남북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자고 하여 갑자기 일주일도 안 되는 시기에 300명이 신청을 하여 평양에 갔었습니다. 그때 교계에 어르신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큐티인 식구들도 2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때의 본문이 열왕기상 17장이었습니다. 16장의 본문이 아합이 여로보암의 끝판왕이 되어서 바알을 숭배해서 점점 악해지고 있는데 17장에 엘리야 보고 아합에게 가라고 하는 겁니다. 이 본문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갔습니다. 이렇게 적용하고 기억합니다. 북한은 정말 우로가 없는 땅입니다. 우리는 정말 직항으로 갔기 때문에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빨간 민둥산이었고 황무함 그자체였습니다. 비무장지대조차 북한 빨갛고 이쪽(남한은) 파란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똑똑히 보았습니다. 중국이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체제가 우상이면 그 체제가 무너지면 돌아오기 쉬운데 북한은 김일성 개인을 우상숭배 하는 거라서 깨어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듯이 김일성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핍박이 와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배반하지 않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300년을 살아도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식으로 북한이 김일성을 믿기 때문에 그분들은 하나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행복합니다. 우리의 김일성이 있기 때문에. 산당에 김일성이 있습니다. 왜 북한이 안 무너지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다 핍박을 기쁘게 받는 것입니다. 떠나기 전까지 북한이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일정이 연기되고 그랬는데 세상 어느 땅에 가도 그런 감격이 있을지 남다르게 느껴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 땅 끝 나라는 북한입니다. 같은 외모에 같은 언어를 쓰는데 하나도 안 통했습니다. 70여 년 간에 무서운 주입식 교육 때문에 모든 것을 거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어디를 가나 경외하는 지도자 동지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양쪽이 다 이북이 고향입니다. 너무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평양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화장실이 푸세식이었습니다. 2002년도에. 21세기에 말이 됩니까? 어쩌면 이렇게 가난 할까보다 우상숭배 때문에 병들어가는 모습이 가슴 아팠습니다. 곳곳에 김정일 가족사진을 보면서 야~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아도 참 촌스럽구나. 정말 촌스럽습니다.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인생이 촌스럽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쫄보가 되어 좁은 집을 사면 떨거지들은 초대하기 싫고 상위층은 안 찾아줍니다. 쫄보가 되신 분들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셔서 우리들 교회 성도로 오신 것을 황송해 하며 부르시길 바랍니다. 집도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 집이 번제로 쓰임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30년 동안 정말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사를 가는 날, 이 집을 주님 드나드는 사람이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수많은 역사가 일어났고 우리들 개척 예배도 거기에서 드렸습니다. 우리 집에만 오면 오픈을 했습니다. 상담을 할 때도 우리 집에서 해야지 다른 집에 가면 전화 받지 얘들 울지, 계속 누가 띵동띵동. 방해하는 영이 많아서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도 주인이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 다 문열어주고 그래서 안 됩니다. 저희 집이 성산이었습니다. 이렇게 큐티 모임을 하고 거기에 가보니 내가 분단을 겪지 않았으면 남한 땅에 이렇게 살지 못했을 텐데 우리 아버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이 좌우를 했구나. 식구들도 많고 모든 식구들이 안내려 왔습니다. 제일 형편없는 우리 아버지만 내려왔습니다. 최고의 공항이 푸세식인데 다른 곳도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 도착한 첫 날은 하루 종일 300명 사진 찍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섯 장씩 사진을 냈는데 사진이 부족하다고 해서 직항까지 타고 간 우리가 하루 종일 300명 사진 찍느냐고 고려호텔에서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비자가 발급될 때까지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해서 보냈습니다. 거기 목적은 6.15 기념 예배드리러 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스케줄에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스케줄대로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식당에 내려갔더니 또 지시가 안내려 왔다고 식당 문을 안 열어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한 번 내려오면 있어야 되었습니다. 기도하면서 복도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어쨌든 7시에는 식당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측을 자극할까 메시지도 짧게 하고 조심스럽게 드렸습니다. 한 시간을 복도에서 기다리니 예배에 대한 소망이 커지고 이것이 무엇인가 안 되니 깊은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이 300명을 감시하느라 호텔 계단이 폐쇄가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두 대인데 300명이 두 대의 엘리베이터로 이동을 하니 300명을 감시하려고 1000명이 안팎으로 붙었습니다. 밖으로 전혀 못나간 것입니다. 밥 먹으러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지도자가 있더라구요. 권위적인 지도자 밑에서 못 사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9시에 그 날 일정이 시작된다고 하여 로비에서 모였는데 또 위에서 지시가 안내려왔다고 기다리래요. 가장 중요한 일정은 아리랑 축전 참여여부인데 100만 명 평양 인구 중에서 10만 명이 참여하는 그 카드섹션에 우리를 초청한 것인데 백불 이백불 씩만 내도 수입이 되니 갑자기 초청했는데 동부유럽에서 참가할 모집 인원을 내서 관광 수입이 몰리게 하는 것이 카드섹션의 주 목적이고 사업이었습니다. 오게 하려고 예배라는 미끼를 던졌는데 우리들이 갈 때 국정원의 입장은 참석불가였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우리가 아리랑 축전을 안 간다고 하니 모든 일정이 취소가 되어 아리랑 축전을 가냐 안가냐에 대해서 이틀째 회의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이틀 동안 못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는 의외의 사람이 돕게 하십니다. (6-9)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성경에서 까마귀는 부정한 새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후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 기사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온통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이 시점에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전하고자 하나님의 의로운 사자로 여겨지는 동물들이나 믿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까마귀와 같이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이방여인, 그것도 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라는 겁니다. 그런 분들이 오셔서 말씀이 들리는 것을 많이 접하면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감사가 있습니다. 왜 안들리냐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마가복음 본문에서도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섬기는커녕 예수님이 진리를 말함으로 다 죽이고자 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말씀이 들립니다. 말씀이 여기 와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욕을 해도 뭘 알아야 욕을 하잖아요? 말씀을 다 꿰고 욕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면 금세 바뀌어 지십니다. 그런데 정말 아합과 같은 교양 있는 분들이 여기 한 번 안 옵니다. 아무리 욕을 해도 앉아있는 것은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너무 사랑합니다. 욕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앉아만 계시면 I Love U. 진짜 다들 변합니다.
엘리야는 까마귀가 가져온 밥을 먹으며 시냇가에 숨어 있었는데 시내가 마르자 다시 여호와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합니다. 너는 일어나 사르밧에 가서 거기에 머물라. 하십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우리와 다른 것은 또 어디로 가서 혼자 어디에서 지내나, 이 불신의 갈등 없이 명령하신 바대로 행했다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혼자 사는 게 다 무섭습니다. 저도 30대부터 혼자 살았습니다. 저는 혼자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왜 이렇게 못 사십니까? 말씀이 없어서 그럽니다. 까마귀도 사르밧 과부도 모두 내 인생을 도와줄 것 같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목장이 다 지질해 보입니다. 그런데 목장이 우리를 돕는데 로타리 클럽에 가서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지 못해 난리입니다. 우상숭배가 극심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혈안이 되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면 나를 싫어하고 대적할 것이 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고 힘든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과부와 같은 사람입니다. 항상 의외의 사람이 나를 돕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면,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이 듭니다. 까마귀와 과부 같은.
고린도 전서 1장 27절서부터 보면,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이런 분들을 귀하게 여기니 우리들 교회가 부흥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제일 좋습니다. 교양있으면 뭐합니까? 말씀이 잘 안들리는데.
그래서
[적용을 해보세요] 내 고정관념에 치우쳐 영육의 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으로도 이단만 가도 교만해져서 공동체에 안들어온다고 합니다. 나를 도운 의외의 사람이 있었나요? 나를 도운 의외의 사람은 누구인가요?
# 제가 북한에 가서 말씀을 전하게 한 사람도 뜻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호텔에서 큐티모임하는 사람끼리 나누었습니다. 큐티인 사람들이 저를 이틀 정도 언제 하루 종일 보겠습니까? 큐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큐티인 식구들 중에서는 아내의 강권으로 가서 예수님 만나고 와라, 북한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소개로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천 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가자고 했는데 다들 비행기 값 아까워서 갈 사람이 5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깐 비행기 값 낼 수 있는 사람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거듭된 회의 끝에 투표 결과를 거쳐서 아리랑 축전에 갈 사람만 가고 나머지는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왕 갔는데 가서 큰일 날 줄 알고 아리랑 축전을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까지 후회가 됩니다.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 주일 아침이 되어서 우리는 봉수교회 칠골교회가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북한이 다시 재동을 걸어와서 나머지 사람도 아이랑 축전에 갈 것을 요구하고 오늘은 예배드리지 말고 묘향산 관광을 하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준비측에서 지나간 일정을 다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믿는 자로 주일 예배는 죽음을 걸고 사수한다고 그 식당에서 금식을 선언하고 아멘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그동안 도청당할까 조심했던 찬양을 식당에서부터 금식하자고 하고 돌아가면서 아멘하고 한 목사님이 나가서 기도하고자 하면서 주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게다가 찬양대까지 갔기 때문에, 찬양-기도-아멘-할렐루야, 거기에는 믿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갔습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나중에는 송구해서 300명이 바닥에 무릎 꿇고 종업원과 감시원이 감시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희한했겠습니까? 분단 이후 그런 관경을 처음 보면서. 그런데 주일 예배가 끝날 때까지 예배를 못 드리게 할 예정이라 6시간의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북한의 심장 부 평양 고려호텔에서 분단 이래 예배와 말씀이 선포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300명 중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6시간 동안에 제 차례가 오겠습니까? 여자 집사인 제가 어떻게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는 억류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긴장감이 연속된 상황이었습니다. 목숨을 내 걸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이름을 내걸고 할 것까지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큐티 모임에 오시던 도우미로 일하시는 집사님이 자기는 못가고 돈이 없으니, 전도를 하려고 그 집주인 보고 북한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 집주인은 돈이 많으니, 그 집중인에게 도우미가 항상 김양재 목사님을 자랑하니깐 그분이 저를 보기위해서 북한에 오셨습니다.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니깐, 목사님들이 차례대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데 본부측에 가서 오직 김양재 집사 때문에 평양에 왔는데 김양재 집사 말씀 한 번 들어봐야겠다고 왜 말씀을 안 전하게 하시냐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예배라고는 처음 평양에 가서 드려보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저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다가 그날 본문이 열왕기상 17장 17절에서 24절까지인데요,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엘리야가 살려주는 본문입니다. 아침에 큐티를 했는데 갑자기 시켰습니다. 그 어려운 자리에서 제가 안해야겠다는 것이 당연한데 갑자기 말씀대로 행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왕한테 갔던 것처럼. 저를 소개한 사람도 의외의 사람이었지만, 저도 그때 상황에서 너무 의외의 사람 아니었겠습니까? 이름도 없는 집사가 그 분의 이름도 생각 안나고 그분도 처음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본 사람인데 저를 소개한 이후로 교회 안나오시고 지금도 안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 17년 전에 설교한 영상을 누가 줬습니다. 가서 찍어서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17년 만에 그 영상을 입수해서 지금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상
[2002. 06 평양 고려호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었다고 했는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여로보암은 우상을 섬기는 자이지만, 르호보암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사람입니다. 둘 다 연약하고, 남유다는 예수님의 계보에 속할지라도 너무 연약해서 여로보암을 품을 만한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분쟁 상태가 300여년이나 계속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열왕기상 17장 19절에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모든 죽음의 일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아무런 해결책이 안 보이는 가운데서 엘리야가 그 아들을 달라고 한 것처럼, 이것이 내 문제로 다가오길 원합니다. 모든 일을 내 아픔으로 여기길 원합니다. 그래서 21절에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죽은 아이를 살리려고, 우리가 이렇게 몸을 세 번이나 엎드리고, 구체적인 수고가 따라야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생명의 영이 돌아오길, 죽은 뒤에 생명의 영이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22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아멘)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이 시험의 위기에서 살아나는 역사로, 우리의 예배가 살아나고영적 예배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제가 엄청 회개하고 북한을 위해서 남한이 회개해야 한다고 그런 설교를 했던 적이 있는데 어떻게 남아있죠?
말씀을 맺습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담대하게 하십니다. 고독과 절제의 영성을 배우게 하십니다. 또 의외의 사람이 돕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기에 때론 고독으로 때론 고통으로 훈련하십니다. 구원으로 응답해주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제가 코스타 갔을 때도 갑자기 하라고 했는데 준비되어 있으니 했습니다. 여기도 큐티도 했는데 했습니다. 설교고 상담이고 구제고 봉사고 큐티를 하면 모든 것에 답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왕 앞에 가서 전했습니다. 앞으로 엘리야가 전해도 안 변합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를 위해서 아직도 북한을 존재하게 해서 남한이 회개해야 될 줄 믿습니다. 찬양합니다.
말씀 후 찬양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같이 가려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후렴)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심판하실 자리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아보고
많은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후렴)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2
기도제목
길르앗 출신 디셉 사람 엘리야처럼 출신이 좋아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제가 무슨 직분이 있어서 30년 걸어 온 것이 아닌데 날마다 말씀을 보면 저절로 말씀에 있으니 토씨 하나 안 빠트리고 하니깐 그런 담대함은 저의 유익이 아니라 정말 구원 때문에 애통할 때 그런 담대함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출신이 좋아서 직분이 있어서 주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다음 주 전도 주일인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주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다시 생각해보아도 거기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잡혀갈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게 무섭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분리와 단절을 잘 하되, 부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누군가가 나를 돕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을 잘 접게 해달라고. 정말 구원은 악세사리가 아니고 지옥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인데,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평범한 삶에서 그 얘기가 저절로 나와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 많고 싫은 것도 많고 부끄러운 게 많은데 이렇게 엘리야처럼 환경이 겸손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환경을 불평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환경이라고 바꾸어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 되게 해달라고 다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바알을 숭배하고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얼마나 흉한 소식인 것을 날마다 깨닫게 됩니다. 저는 날마다 말씀 묵상을 했을 뿐인데 모든 일들이 말씀에 의거해서 기억이 되고 기록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서 저같이 계집종에 불과한 사람이 북한의 심장부 고려호텔에서 정말 아합에게 전하는 것처럼 그런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데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도 생명을 내놓았고 그래서 이렇게 그런 일들을 지나고 나서보니 하게 하셨는데 우리는 구원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교회를 채우려고 전도 축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주께 인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게 해주시옵소서. 참으로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시냇물을 마시게 하였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은 정말 의외의 까마귀와 이 부정한 여인 사르밧 과부가 도와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그런 차별이 있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주시옵시고, 모든 사람들을 주 안에서 다시 볼 수 있도록 예수 안에서 볼 수 있는 저희 심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여러분들도 같이 섬기는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정말 우리나라 사법부를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구속사적인 가치관이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수진 목장 보고서(18)
일시 19. 4. 14 4시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이지민, 조씨 자매(수빈, 예진), 이은영
나눔 나의 현재 고독과 절제의 그릿 시냇가는 어디인지, 의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지,
고정관념과 차별을 갖고 있지 않은지 나누어 보았습니다.
금주 기도제목
은영 감기 낫기를. 체력 회복할 수 있기를. 이번 주 상담 꼭 갈 수 있기를. 집에서 도망, 회피하지 않도록.
예진 걱정이나 불안이 생기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수빈 하나님의 사람을 지켜준다는 말씀을 믿고 오빠와의 문제를 불안해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평안한 마음으로 잘 지켜볼 수 있도록.
지민 운동 다닐 수 있도록. 과식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수진 회사에서 혈기 나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욕하며 푸는 것이 아닌 고독의 시간으로 견디며 화내지 않기를.
지현 이번 고난주간동안 기도와 큐티, 생활예배 회복할 수 있도록.
오빠와 새언니 가정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인간적인 걱정을 구분할 수 있도록.
***VIP 새언니(한수진), 친구(이은영) 예배 발걸음 인도해주시고 교회 등록 할 수 있도록
(목자언니 진짜 엘리야는 토달지 않고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네! 하고 아합왕한테 까지 가서 멸망의 예언을 했는데, 우리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전도를 위해서 엘리야처럼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잘 전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