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열왕기상 15:25-34)
바람과 나태로 요약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반대로 살았는데 사십이 넘다보니까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가는것을 보게 되었다는 부목자님의 나눔을 읽었다.
요즘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인데 7:10에서 예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모세의 계명을
예로 들으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부모 공경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
문자적으로 언급을 하신다. 하나님의 계명은 문자적으로 파악될 수 없고 반드시 사랑으로
해석되어야 된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한다고 공경이 아니고 싫어하시는 행동을 한다고
반드시 불효도 아니다. 우리가 윤리와 도덕적으로 잘하는 것만이 효라고 생각하기에 세월이 지난 후에
효자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괴물이 되어있는 자녀들을 보게되고 도덕적으로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만은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들 지나보면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아들 도리를 해야된하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이고 믿음이 없는 부모의 구원을 위해서는
단호해야 될 때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주 9~24절 까지는 남유다 제 2대 왕
아비얌과 3대 왕 아사왕의 행적과 통치를 보면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속에 있으니
견고케 하시고 일평생 온전케하였다고 마지막 평가를 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에서 벗어난여로보암 아버지의 아들과 그 후손으로 이어지지 않는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어떤 길을
가는지 보자.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이 무엇일까? 살펴보자.
첫번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길입니다.
아사왕 41년동안 북이스라엘은 3번의 정권과 6명의 왕이 바뀌었다. 부족해도 회개하는
구조에 있는 남유다와 그렇지 못한 북이스라엘을 이제부터 계속 비교하게 하시니까
여러분도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2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니라 했는데 이 2년은
남유다의 아비얌의 3년의 견줄수 있다. 아비얌도 짦은 통치기간을 주신 것은 죄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볼수있다고 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도 마찬가지이다. 그왕가의
종말을 선고받은 여로보암은 후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회개를
했다면 그에 대해서 심판을 받지 않고 왕위역시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므로 여로보암에게 선포된
심판의 경고를 앞당기게 되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가 나답에 대한
평가이다. 남유다의 왕 아사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했는데 나답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하니 너무 대조되지 않는가? 정직은 회개를 한 후에
나오는 반응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한명도 정직한 왕이 없으며 한명도 회개한 왕이
없으며 악을 행한 왕만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악이다. 주님의 시선이 상관이 없는 악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상숭배와 폭정으로
나타난다. 나답 또한 그의 아버지처럼 죄를 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인의 특징이다. 하나님이 명백히 보고 계시는데도 그분을 업신여긴다.
이 땅에서 성공해서 잠시 잘사는 것 같으나 결국은 그런 자는 그 누구도 내일이 없다.
내일이 없는 것이야말로 이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술먹지 마세요, 혈압도 높은데 고기도 좀 고만 먹으라고 말하면 우리 남편은 내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다가 콱 죽겠다 이것이 우리 남편의 이야기이다. 구질구질하게 안
산다고 하는 말이 굉장히 멋있어 보일겠지만 우리모두 구질구질하게 살아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할만한 일이다. 그 남편 앞에서 저야말로 얼마나 구질구질하게 보이지
않았겠는가?
적용) 1 하나님의 시선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이 늘 느껴지십니까?
2 그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3 여러분에게는 내일이 있습니까?
그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의 아버지는 바로 여로보암이고 그 아버지의 패역한 행위를
본받음을 나타낸다. 이 말은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간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관용어로 모두
사용되지만 남유다 왕이라도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같이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떠난 여로보암의 길을 모든 인류는 원죄의 형벌로 예외없이 똑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로보암과 여러분이 상관이 없지 않다. 우리는 다 여로보암의
길을 가고 있다.
여로보암 아버지의 길은
두번째, 아비 마귀에게서 난 길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 잘 나와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이며 폭탄선언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1:12-13절을 보면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니 예수를 거부하면 곧 마귀의 자녀이며 중간지대가 없다.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죽이려하므로 마귀에게 속하여 있었음이 객관적으로 증명이되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분해서 더욱 더 예수를 잡아죽일 계획을 짠다. 오늘 여기 오신 가운데도
아비마귀에게서 난 자라 하면 분한 분들이 몇분 계실것이다. 이것이 이세상사람들의 가는 길이다.
뭐라고? 우리 아버지를 마귀라고? 이렇게 듣는 분이 계시다.맞습니다. 마귀.
아비 마귀이기에 자녀들에게 모두 사명으로 금송아지 마귀권세를 물려주지
못해 안달이다. 이 마귀 권세를 벗어날 자가 없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가며 여로보암의 길로 간다. 북이스라엘은 한결같이 이 길을 가니 정말 놀랍다.
금송아지가 돈이고 재물이고 권세이니 하나님처럼 섬기라고 여로보암 아버지가 계속 가르
쳤으니까 다들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자식이라는 결정적 증거로서 오늘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욕심과 미움, 살인이 미움에서부터 비롯되며 거짓을 말한다. 마귀는
악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도 교회를 다니지만
그런데도 불신자 남친, 여친을 만나지 못해 안달을 한다. 처음부터 살인한자란 표현은
마귀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의 배후에서 역사한다. 모든 살인과 폭력의 배후에는
항상 악의 세력인 마귀가 있음을 보여준다. 거짓말장이와 거짓의 아비는 마귀자체가 거짓말
을 할 뿐 아니라 모든 거짓된 것의 배후임을 밝히는 것이다.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모든 것을 갖춘 지도층들이 죄를짓고 다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며 모른다고 한다.
배워서 거짓말을 안하는게 아니라 배울수록 교묘하게 한다. 요한복음 8:45절에 보면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현재 시재로 계속 반복하여 진리만을 말씀하신다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이 참이요
진리라는 것이 사실이다. 진리는 진리인데 그럼에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6절~7절에
갈라디아 교회안에 다른 복음을 쫓는자들이 있다고 했다. 총칭해서 다른 복음은 금송아지
복음인 기복이다. 인류 최대의 거짓말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메시아이시며 구원의 주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미혹하는 것이다. 최대의 살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사단의 하수인인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공권력을 사용해서 죽인 일이다. 여러분들, 진리를 말하므로
진리를 믿지않는다고한다. 행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얼마나 이것에 좁은 길인가?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은 참과 거짓의 차이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거짓의 여로보암이
섬기는 우상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섬기고 있다. 지난 주 나눔을 보니 부목자님들 나눔에서
하바드에 갈 수 있다면 십일조 안하고 하바드에 기부해서 하바드에 가겠다는 부목자님 들이
의외로 있었다. 금송아지를 섬기며 내가 성공했으니 아들인 너도 금송아지를 섬기며 성공해라 한다.
성공을 못하면 내가 성공 못했으니까 너는 성공해야만 해 한다는 것이 바로
금송아지이고 이 금송아지를 위해 예루살렘을 다 떠나서 벧엘로 가는 것이다.
인간은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다들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걷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가 저절로 된다.
적용) 1 여러분은 여러분이 아비마귀에게서 난 자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2 그렇다면 아버지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욕심, 살인(미움이나 증오), 거짓말 중에
무엇이 가장 닮았습니까?
예수 안믿는 아버지, 우리 모두가 그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것이다. 아멘이 되십니까?
우리가 여로보암이 얼마나 좋으면 다 따라가겠는가? 시진핑의 딸은 외동딸이고 너무 예쁘고
공부잘해서 하바드에 갔는데 건실하기까지 하고 전세계 권력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걸 다
갖췄는데 전대미문의 기독교를 제일 핍박하는 사람이다. 우리모두가 원하는 걸 다 가졌지만
분별을 해야한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세번째, 모반을 당하는 길입니다.
나답이 죄가운데 행하기 때문에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켜서 죽였다고 한다.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어디있겠는가? 바아사의 반란에 의한 나답의 죽음은 북이스라엘
을 열었던 여로보암 왕조의 멸망을 의미한다. 모반은 무슨 뜻인가? 기본적으로 어떤것을
다른것에 묶거나 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서로 유대관계를 맺는것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바아사가 나답을 모반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다른 이들과 묶여져서 공모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묶여져 인간의 유대관계를 맺는, 끼리끼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자기
레벨끼리모이는 것이 모반의 싹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인사람들이 반드시
이렇게 반역의 씨를 잉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끼리끼리를 좋아하지말아야 한다.
최고의 끼리끼리는 차별없이 모이는 우리들 교회 목장이다. 내가 어떤사람하고 모이고 싶어
하는 것에는 반드시 반역을 당하는 길이 있다.
나답은 바아사라는 부하만 잘못 다룬게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바아사 쪽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지혜가 없었기에 사람을 분별을 못한다. 물론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나답이 여로보암의 죄악된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대안이 심판인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우리 인간관계에 내가 믿었던 끼리끼리 관계에서 배신을 당하는것을
보여주신다. 바아사가 나답을 살해한 장소인 깁브돈은 언덕이라는 뜻인데, 갓지파의 성읍 중
에서 레위지파의 고핫자손에게 분배된 땅이었다.(여호수아 19장)
남북이 갈라지고 혼란스러운 분열왕국에 그 시기에 블레셋이 틈타 차지한 땅이다.
안에서 분열이되면 밖에서 와서 치기가 좋다. 부부간에도 분열이 되면 돈이 벌리지를 않고
자녀교육도 안된다. 이 땅을 다시 찾기위해 나답이 전쟁을 나섰다가 싸워도 못보고 자기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거룩한 전쟁같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이타적인 사랑이고
마귀는 전쟁은 자기 사랑이다. 명분이 하나님 일 한다고 깁브돈 찾으러 갔지만 정작
안의 사람을 다스리지 못하니까 전쟁을 나가자고 할때 부하들이 다 코웃음을 친다. 이 지도자를
아무도 호응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공모를 해 직분을 뺏고 등뒤에서 배신하고 죽이고 칼을
뺐었다. 무늬는 거기도 주님의 공동체였는데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가? 주의 일이라는 명분
을 만들어서 나를 괴롭히는 배우자가 이혼하고 싶은 분 있는가? 모반이라면 국가간의 전쟁이나
직장문제도 크겠지만 가장 가까이서 일어나는 일은 부부간의 모반이고 그것이 한사람의 삶에 대한
파괴력이 가장 크다. 그러니 부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부부간에 원만하니 회사도일도 잘 되서
이혼도 없다. 이것이 사회구원으로 연결된다. 그까짓 이혼이 교회하고 무슨상관인가? 하겠지만
제일 상관있다. 하나님이 제가 하도 가정중수 묵상을 하니까 교회를 부흥시키셨다.
우리는 부흥회를 한번도 안 했다.
부부간의 문제에 평원 목사님이 목자모임에서 이렇게 처방을 했다.
' 내가 회개하고 예배가 회복되면 부부관계에도 회복이 된다. 이혼을 하게되는 이유에는
성격차이보다 성의 격차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철저하게 회개하면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에
충만함이 있으면 서로 교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제가 결혼해서 목사님이신 아버지에게 그런
부분을 솔직히 이야기 했더니 그런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는 네가 너무 부럽다 나는 평생
그런이야기를 교회에서 해본적이 없다고 하셨다고 한다. 바람을 피우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된다. 저도 청년 때에 교제했던 자매와 음란했던
죄를 오픈한 적이 있었는데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배 가운데 계속 들어가다보니 아내와의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
회개하지 않고 사랑받기만 원하면 그 사랑은 자발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모반을 당한다.
사람이 영적이다. 영적인 것은 회개이다. 그렇게 서로 회개가 되면 서로 통하므로
저절로 사랑이 된다. 밖에서 아무리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도 아비 마귀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회개하면 아비마귀는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면
회개를 해야 한다. 양쪽 다 회개를 하면 좋겠지만 회개하지 못하는 배우자를 300년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진짜 회개가 되면 서로 교감이 된다. 회개가 안되니 음란과 살인으로 간다.
부부간에 하나가 되는 길은 서로 회개하는 것 밖에 없다. 깁브돈 전쟁과 백성 다스리는
일이 따로가 아닌 것이다. 안팎을 잘 다스려야 한다. 백성을 잘 다스려야 힘이 모아져서
나가서 자원함으로 땅을 찾지 않겠는가? 부부간에도 하나가 되어야지 나가서 회사일도
잘 된다 딴곳에 신경도 안쓰게 되니 돈도 모이고 한다. 교회에서 한마음이 안되고 교회를
신뢰하지않으면 교회도 부부도 한마음이 되지 않고 당연히 전도도 안된다. 신뢰하지 않는
교회에 누구를 데리고 올 마음이 들겠는가? 교회가 분열이 되면 영혼구원의 일이 스톱될수
밖에 없고 형식적이 된다. 바아사의 모반사건에서 보듯 백성들은 지도자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아는데
나답만 모른다. 내가 회개가 되지 않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니 어리석어서
모반당하는 일이 온다.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것은 전쟁에서 적들을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하나님이 심판의 주체가 되실때도 사용하는 단어이다. 신하의 신분이었던 바아사가
왕권을 뺏기 위해서 자기 나라 왕을 적을 쳐죽이듯이 나답왕을 쳐죽였는데 바아사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했다는 의미도 나타낸다.
너무 잔인하게 처죽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셨다는 두 뜻을 가지고 있다.
적용) 1 여러분은 모반당하는 일이 생겼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욕심과 그로인한 분별
못함의 삶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되십니까?
2 회개가 없는 금송아지 기복의 예배이기에 분별이 안되는 것을 인정합니까?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예배만 드리고 있기에 회개가 안된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네번째, 말씀대로 이루어질 심판의 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위기 정국에서 왕이 모반을 통해 살해가 되고
왕조가 교체되는 콩가루같은 상황이 하나님의 징계이기도 하지만 바아사의 욕심과 살인과 거짓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귀자녀의 전형적인 행태이기도 한것이다. 그러나 남유다는
징계를 받아도 다윗 왕조를 유지하며 어쩔 수없이 나라를 위해 뇌물도 주었지만 참된
예배구조에 구조 속에 있었기에 그래도 안정적으로 왕위 계승을 이루어 가는 것이 대조적
이다. 우리도 징계를 받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애통하는 예수님의 씨가 있는 징계를
받기를 기도해야 한다. 똑같은 장계인데 하나는 예수씨가 있는 징계이고 하나는 완전 심판의 징계이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집을 쳤다고 한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일 때 사용된 쳤다와 똑같은 동사를 써서 쳤다고 한다.
바아사가 나답을 살해하여 왕위를 뺏은것과 왕이 된 후의 여로보암의 온 집안을
친 사건이 똑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를 사용하셔서 나답을 왕위에서 폐하셨을 뿐 아니라
여로보암 왕가를 멸절시키셨는데, 멸하였는데는 파괴하다, 멸절시키다 라는
동사로 바아사가 얼마나 참혹하게 나답의 가족과 친족들을 학살했는가를 말해주는 표현이다.
이렇게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3대까지 왔다. 생각해 보면 여로보암은 병으로 일찍 죽은
아비야가 잠시뒤에 이 험한꼴을 보지 않고 죽은 것이 얼마나 상인지 이제 아시겠는가?
생명있는 사람 한명도 안빼놓고 잔인하게 학살했는데 웬일로 아비야만
택함받아 일찍 죽었다. 죽는것도 사는것도 다 하나님 뜻대로 하면서 100프로 옳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면 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이 참혹했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 종 실롯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계신다.
우리가 당한일이 너무 비참하고 참혹하고 처참해도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말씀과 같이
된 심판이고 사랑이라고 고백해야 된다. 말씀과 같이 심판이 이땅에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못알아 듣는다. 유다왕들은 사건이 오면 깨닫는다. 그게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과 여로보암 가문을 계속 대조시킴으로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말라고 계속
촉구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사랑인지 모른다. 말씀을 봐야 이루어질 심판이 있는지 이루어질
축복이 있는지를 알지 않겠는가? 심판이나 축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들 교회의 성도들도 고난이 별로 없으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걱정이 된다. 믿음의
후손들이 잘 이뤄가야겠는데 편안한 환경에서 살면 말씀이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다.
제가 너무나 안타까워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말라 외치고 싶다. 금송아지를 섬기고 불신으로
가게 되면 아히야가 말한 것처럼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딴 길로 가려고 하면
쫓아가 때려서라도 그렇게 하지말라고 하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체휼이된다.
왜냐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바로 제 자녀같기 때문이다. 이곳의 부모님들이 이렇게
믿음이 좋은데 아이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나님도 내 자녀가
딴길로 갈까봐 그러시는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일일히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북이스라엘들의 왕들이 모두 악하다. 악한 왕을 치기 위해서 선한 왕을 도구로 사용하시진
않는다. 악한이는 악한자로 심판하게 하시기에 선한 사람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주시면 약속주시고 경고주시면 피할 길을 주시니까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되었다고 고백하는 인생을 살면된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기에
악한 자를 치겠다고 방방 뛰어 나가고 나가서 도와야 할 대때는 침묵하고 말씀을 모르니
분별이 안되고 결국은 나답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당하는 일이 생긴다.
당연히 나답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겠는가? 백성들의 민심을 하나도 읽지
못했다. 늘 아부하는 사람들하고만 있었기에 바아사가 칼을 갈고 있는 것을 몰랐다.
경고하시고 말씀을 주시면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신뢰해야 한다. 말씀이 들려야 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이어지고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했기 때문에
이 심판이 왔다. 심판이 왔다고 하면 나의 범죄가 자녀에게로 이어지고 그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고 또 노엽게 할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관용어로 나온다. 믿음의 조상인 다윗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시는 것도 맞지만 여로보암 때문에 우리를 노여워해서
계속 심판하심도 맞다. 우리의 삶은 이것의 반복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조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지만 우리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라고 계속
여로보암 집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다윗 집을 향한 은혜를 서로 비교하게 하신다.
남북 모두 산당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똑같다. 그러나 여로보암에게는 진노하셨고 다윗
가문은 왕위를 끝까지 계승하게 해주셨다. 행위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공식처럼 등장하는
문구이다.
적용) 1 나를 망하게 한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심판이라고 인정을 하는가?
2 말씀대로 되어진 심판을 받은 적이 있는가?
3 하나님을 노엽게 만드는 나의 죄악은 무엇인가? 행위인가, 믿음인가?
바람 핀 행위가 노엽게 하는게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안믿는게 노엽게 한다.
예배를 안드리는 것이 노엽게 한다. 바람피고 가출한게 노엽게 하는게 아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다섯번째, 일생동안 전쟁이 있는 길입니다.
결국 나답을 살해한 바아사가 왕이 되면서 여로보암 왕조가 2대만에 참혹하게 무너졌다.
나답이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에 한 일이라고는 고작 깁브돈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했다는 것 밖에 없다. 역대기에는 나답의 이름조차 언급이 없다.
왕이 되면 절대적 권세를 누리고 그 권세가 영원할 것 처럼 보여도 하나님 없이 누리는
권세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한다.
전쟁 이야기는 왜 맨날 하는가? 우리는 늘 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아사가 41년간 통치하며 계속 전쟁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전쟁 기사를 계속 다루
면서도 역대하 15:19에는 같은 전쟁인데 다시는 전쟁이 없었다고 표현했다고 했다.
아사의 2차 종교 개혁 후에는 다시는 전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절
역대하 16:1에는 금새 전쟁 기사가 떴다. 우리 인생에도 계속 전쟁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전쟁으로 선포하면 이것은 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 전쟁을 할 때마다 계속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분열왕국이 시작되었으니 소소한 국지전이 있다. 이것은 다윗쪽에서만
심각하고 애통한데, 그럴때에 다시는 전쟁이 있지아니하리라의 전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쪽에선 애통하지 않고 유다쪽에서만 애통하다.
이번 전쟁은 남유다의 아사왕의 발에 병이 들었는데도 의원을 구한다고 했으니
교만해진 것이다. 교만해진 아사와 선한 것 하나 없는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쟁이다. 전쟁도 이렇게 성격이 때마다 달라진다.
유다왕 아사 3년에 바아사가 남유다를 제외한 모든 북이스라엘의 백성을 다스린 왕으로
등극해서 24년 통치를 했다. 바아사는 이스라엘 왕중에는 정치를 잘 한 강력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다.
시진핑은 굉장한 휴머니스트처럼 나이스하게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권력자인 장쩌민을
하루아침에 실각을 시키고 1인독재가 되었다. 무서운 바아사같다.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24년 정치를 잘하고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앙하면 무엇을 하는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의 죄중에 행하였더라-가 관용어처럼 계속 나온다. 모든 이스라엘왕들은 이렇게
간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항상 우상숭배의 죄악된 길로 대변되고 바아사가 비록
여로보암과 그 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도구가 되긴 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여로보암과 같은 죄악의 길로 빠지고 말아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을 타도하고 나답을 타도하고 부패와 개혁을 외쳤는데 왕이 되자마자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 독재정권 타도하고 또다시 독재하는것이 너희 아비마귀에게서
난 자의 이세상 모두가 가는길이며 누구도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패를 청산하자고 했는데 다시 정권잡으면 다 부패를 한다.
혁명을 일으킨 목적이 단순히 도덕, 윤리가 땅에 떨어져서 혁명을 일으키니 지나고 나서
보니 정권 탈취밖에 안되는 것이다. 자신이 왕으로서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목적 의식을 가질수가 없다. 선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선한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기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의 왕들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간다. 한명도 따짐없이 금송아지가 너무 좋아 간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결코 우리 사회를 새롭게 할 수가 없다.
적용) 1 여러분의 전쟁의 성격은 소소한 국지전인가, 일생 내 전쟁인가, 다시 없는
하나님의 전쟁인가? 있어야만 하는 일생 동안의 당연한 전쟁인가?
2 내가 주님의 시선으로 봐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
(공동체 고백)
큐티가 사소한 것 같지만 소소한 국지전에서 이기는 비결이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그날 그날 자기이야기로 풀어서 적용을 했다. 대단한 고난이 없어도 말씀을 읽고
묵상해 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
회개하지 않으니 모반을 당해 큰소리만 쳐댄다. 회개를 안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대로 이루어질 심판이 있는 길, 이땅의 모든길은 심판이 있는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일생 동안 전쟁이 있다.
이 전쟁이 종류가 달라지더라도 다시는 전쟁이 없는 전쟁을 하시기를 바란다.
목장 나눔
장소 : 오토웨이 A4
참석자 : 고은희(목자님), 김주영, 허재희, 손윤희, 김진나
기도 제목
고은희 목자님
1 예배와 큐티회복(주일말씀 필사. 큐티나눔 일주일 2번)
2 가족구원과 목장위해 기도하기
허재희
1 의지와 결단을 드리며 큐티와 예배 나아갈 수 있기를
2 엄마 목장 정착과 믿음의 친구 만나실 수 있길/예배때 말씀이 들리시길
요즘 아프신데 영육간 강건하시길/나와의 관계 회복되기를
김주영
1 매일 큐티하며 말씀 사모하기
2 인터뷰 결과가 어떻든 주님의 뜻임을 의심치 않고 주님 신뢰하기
3 영육 회복
김진나
1 힘든 가운데 말씀 들릴 수 있는 귀와 지혜 허락해 주시길
2 차기작 투고했는데 뜻에 합당한 곳 보내주시길
3 금전적인 나쁜습관을 회개하고 주님안에서 다시 세워질 수 있게
4 목장을 이끄시는 목자님과 목장식구들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