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3. 24 주일 예배>
일시 2019. 3. 24. 2시
장소 판교 채플
찬양 내 영혼이 은총 입어 ┃ 기뻐해 ┃ Everyday 날마다 ┃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 성령이 오셨네 ┃ 주품에 품으소서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
본문 열왕기상 15:25-34
설교 김양재 목사님
바람과 나태로 요약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반대로 살았는데 40이 넘다보니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을 보게됐다는 부목자님의 나눔을 읽었습니다. 요즘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인데요, 7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모세의 계명을 예로 드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에게 부모 공경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언급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문자적으로 파악될 수 없고 사랑으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한다고 공경이 아니고 싫어하시는 행동을 한다고 반드시 불효도 아닙니다. 우리가 윤리와 도덕적으로 잘하는 것을 효라고 생각하기에 세월이 지난 후에 효자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괴물이 되어있는 자녀들을 보게 되고, 도덕적으로 키우는 것만이 잘 키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들 지나고 보면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는 고백들을 합니다. 아들 도리를 하는 것에는 긍정적이고 믿음이 없는 부모의 구원을 위해서는 단호해야 되는 때도 있기에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말씀 구절 9장 24절까지는 남유다 2대 왕과 3대 왕 아사왕의 행적과 통치를 보면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있으니 견고케 하시고 일평생 온전케 하였다고 마지막 평가를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 속에 벗어난 여로보암 아버지의 아들과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지 않는 북이스라엘 왕들은 어떤 길을 가는지 보겠습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이 무엇일까요? 살펴봅니다.
첫 째로,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길입니다. (25-26)
(25 유다의 아사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6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아사의 41년 동안 북이스라엘은 3번의 정권과 6명의 왕이 바뀝니다. 부족해도 회개하는 구조인 남유다와 그렇지 못하는 북이스라엘을 계속 비교하게 하시니 여러분들도 비교하시기 바랍니다. 2년을 다스리니라 하셨는데 이 2년은 남유다의 아비얌의 3년과 견줄 수 있는데요, 아비얌도 짧은 통치기간을 주신 것은 죄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왕가의 종말을 선고받은 여로보암의 후손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회개했다면 그에 대해서 심판을 받지 않고 왕위 역시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 같이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함으로 여로보암에게 선포된 심판의 경고를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가 나답에 대한 평가입니다. 남유다의 왕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이 행하였다고 하였는데 나답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너무 대조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직은 회개한 후에 나오는 반응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한 명도 정직한 왕이 없고 한 명도 회개한 왕도 없고 악을 행하는 왕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악입니다. 주님의 시선이 상관이 없는 악들인 겁니다. 그것들은 우상숭배와 폭정으로 나타납니다. 나답 또한 그의 아버지처럼 죄를 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죄인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백히 보고 계시는데도 그분을 업신여깁니다. 이 땅에서 성공해서 잠시 잘 사는 것 같지만 결국 그런 자들은 그 누구도 내일이 없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아닐까요?
예전에 술 먹지 마세요, 혈압도 높은데 고기도 좀 그만 먹으라고 하면 저희 남편은 내가 먹고 싶은 거 마음 껏 먹고 콱 죽겠다, 날마다 한 남편의 얘기입니다. 구질구질하게 안 살겠다는 말이 멋있어 보이겠지만, 우리는 구질구질하게 살아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라면 할 만 한 일입니다. 그 남편 앞에서 저야말로 구질구질하게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하나님의 시선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늘 느껴지십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에게는 내일이 있습니까?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에 아버지는 여로보암이고 아버지의 패역한 행위를 본받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간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관용어로 모두 사용되지만, 남유다 왕에게도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같이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여로보암의 길을 모든 인류는 원죄의 형벌로 예외없이 똑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과 여로보암이 상관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여로보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그래서
두 번째, 여로보암의 길은 아비 마귀에서 난 길입니다. (요한복음 8:44-45)
요한복음 8장 44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한 것은 그들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이며, 폭탄선언이었을 겁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은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그러니 예수를 거부하면 곧 마귀의 자녀인 겁니다.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임으로 마귀에게 속하여있음이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분해서 예수를 잡아죽일 계획을 짭니다. 오늘 오신 분 가운데서도 너는 아비마귀에서 난 자라하면 분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마귀라고? 듣는 분들이 계십니다. 맞습니다. 마귀. 아비 마귀이기에 자녀들에게 모두 사명으로 금송아지 마귀 권세를 물려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마귀 권세를 벗어날 자가 없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여로보암의 길로 갑니다. 정말 너무나도 놀라운 겁니다. 북이스라엘은 어쩜 한결같이 이 길을 가는지. 금송아지가 돈이고 재물이고 권세이니 하나님처럼 섬기라고 여로보암 아버지가 계속 가르쳤으니깐, 다 따라갑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로서 오늘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욕심과 미움, (미움에서 비롯된) 살인, 거짓을 말합니다. 마귀는 악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간절히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북이스라엘이 교회를 다 다니지만, 불신자 여친·남친 다 만나지 못해서 안달을 합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한 표현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의 배후에서 역사합니다. 모든 살인과 폭력의 배후에는 항상 악의 세력인 마귀의 세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짓말쟁이와 거짓의 아비는 마귀 자체가 거짓말을 할 뿐 아니라 모든 거짓된 것에 배후임을 밝히는 겁니다. 정말 맞지 않습니까? 요즘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이 모든 것을 갖춘 지도층들이 죄를 짓고 다 아니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모른다고 합니다. 배워서 거짓말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울수록 교묘하게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5절을 보면,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는 정말 아이러니칼하게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안 믿는다고 합니다. 진리를 말하면 안 믿는답니다. 예수님께서 현제시제로 계속 반복적으로 진리만을 말씀하신다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이 참이요, 진리라는 것이 사실인데 진리는 진리인데,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6-7절에 갈라디아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쫓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총칭해서 다른 말로 금송아지 기복 복음인 겁니다. 인류 최대 거짓말은 뭘까요? 예수께서 메시아이시며, 구원의 주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사람들을 미혹하는 겁니다. 최대의 살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사단의 하수인인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공권력을 동원해서 죽인 겁니다. 진리를 말함으로 예수를 안 믿는다잖아요. 행위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진리를 말해서 안 믿는답니다. 얼마나 좁은 길입니까?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은 참과 거짓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거짓인 여로보암이 섬기는 금송아지 상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주 나눔을 보니깐, 부목자님들 나눔에서 하바드를 갈 수 있다면, 십일조 안하고 하바드에 기부해서 하바드 가는 길을 가겠다는 부목자님이 의외로 있더라구요. 우리가 금송아지를 섬기며 내가 성공했으니깐 아들인 너도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성공해라. 성공을 못하면 내가 성공 못했으니깐 너라도 성공을 해야만 해.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금송아지고 금송아지를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서 벧엘로 가는 겁니다. 인간은 정말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다들 그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걷습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 중에 행한지라가 저절로 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그렇다면 아버지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욕심, 살인(미움이나 증오), 거짓말 중에 무엇이 가장 닮았습니까? 예수 안 믿는 아버지, 우리 모두가 아비 마귀에서 났다는 겁니다. 아멘이 되십니까? 여로보암을 얼마나 좋으면 따라가겠습니까? 시진핑의 딸은 외동딸이고 너무 예쁘고 공부 잘해서 하바드까지 가고 건실하기 까지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갖췄는데 전대미문으로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이 무슨 무슨 핑이라고 할까? 정말 아비 마귀에서 난 자라는 겁니다. (그 딸은) 아버지 너무 훌륭하셔서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다. 우리는 분별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
세 번째는 모반을 당하는 길입니다.(27)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이에는 나단이 죄 가운데 행하고 있기 때문에 바아사가 일어나 모반을 일으켜 죽였다는 겁니다. 모든 사건에 우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아사의 반란으로 인한 아히야의 죽음은 북이스라엘을 열었던 여로보암 왕조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모반(謀叛)이란 무슨 뜻을 의미하냐면,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다른 것에 묶거나 꿰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서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아사가 나답을 모반했다는 것은 이미 다른 이들과 묶여져서 공모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묶여져서 유대관계를 맺는. 끼리끼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끼리끼리 자기 레벨 끼리 꼭 모반의 싹을 잉태하고 있다는 겁니다. 끼리끼리 모인 자들이 반드시 반역의 씨를 잉태하고 있다는 겁니다. 끼리끼리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최고의 끼리끼리는 차별 없이 모이는 우리 목장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하고 모이고 싶어 하면 반드시 반역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답은 바아사라는 이 부하만 잘못 다스린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바아사 쪽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안 보인 겁니다. 지혜가 없으니 사람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물론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나답이 여로보암의 죄악 된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대안이 심판이었던 겁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우리의 인간관계에 믿었던 끼리끼리에서 배신을 당하는 사건을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바아사가 나답을 살인한 장소인 깁브돈은 언덕이라는 뜻인데, 각 지파 성읍 중에서 레위 지파인 고앗 자손에게 분배된 땅이었습니다(여호수아 19장). 우리의 땅입니다. 남북이 갈라지면서 혼란스러운 분열 왕국 시기에 블레셋이 그 시기를 틈타 차지한 땅입니다. 항상 우리가 안에서 분열이 되면 밖에서 와서 치기가 좋습니다. 부부 간에도 분열이 되면 돈이 벌리지가 않습니다. 자녀교육도 안됩니다. 이 땅을 다시 찾기 위해서 나답이 전쟁에 나섰다가 싸워도 못보고 자기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 겁니다. 이것이 거룩한 전쟁 같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이타적인 사랑이고 마귀의 사랑은 자기 사랑입니다. 명분이 하나님 일한다고 깁브돈 찾으러 갔지만 정작 안에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하니 전쟁을 나갈 때에 부하들이 코웃음을 치는 겁니다. 지도자를 아무도 호응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공모를 해서 직분을 뺏고 등 뒤에서 칼을 꽂은 겁니다. 배신하고 죽인 겁니다. 무늬로 거기도 주의 공동체였습니다. 어떻게 적용해야할 까요? 주의 일이라는 명분을 만들어서 나를 괴롭히는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은 분 계십니까? 모반이라면 국가간의 전쟁이나 직장 문제도 크겠지만, 가장 가까이서 일어나는 일은 부부 간에 모반입니다.한사람의 파괴력이 가장 큽니다. 부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부부 간이 원만하니깐 회사도 원만하고 다 잘되는 겁니다. 부부간에 원만하니깐. 이혼하는 사람 하나도 없으니깐. 이것이 사회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그까짓 껏 이혼이 무슨 상관있나? 제일 상관있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하도 가정중수, 말씀묵상을하니깐, 하나님께서 부흥시키셨습니다.
# 부부간의 문제에 대해서 평원님이 목장에서 이렇게 처방을 하셨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예배가 회복되면, 부부 관계도 회복이 됩니다. 이혼을 하게 되는 이유가 성격차이보다 성의 격차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성의 격차도 내가 철저하게 회개하고 내가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에 충만함이 있으면 서로 교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결혼하고 이런 얘기를 솔직하게 했더니 아내하고도 나누었는데 아버지도 목사님이신데 그런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는 네가 부럽다. 나는 평생 그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셨대요. 바람을 피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데 저도 청년 때에 교제했던 자매와 음란했던 죄를 오픈한 적이 있었는데요.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배 가운데 계속 들어가다 보니 아내와의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사랑받기만 원하면 그 사랑이 자발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모반을 당하는 겁니다. 사랑이 영적인 겁니다. 영적인 것은 회개입니다. 서로가 회개가 되면 서로 하니깐 저절로 사랑이 됩니다. 배우자가 아무리 밖에서 바람을 피워도 그것은 아비 마귀에게 속한 것이기에 내가 회개하면 아비 마귀는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깐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양쪽 다 회개하면 좋겠지만, 회개하지 못하는 배우자를 300년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진짜 서로 회개가 되면 교감이 됩니다. 그런데 회개가 안되니깐 음란과 살인으로 가는 겁니다. 거기 뭐가 있을 줄 알고. 부부가 하나가 되는 길은서로 회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미모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등 동물이 그런 것을 찾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이지 못해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원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깁브돈 전쟁과 백성 다스리는 일도 따로가 아닙니다. 안팎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백성을 잘 다스려야 힘이 모아져서 나가서 자원함으로 땅을 찾지 않겠습니까? 부부 간에도 하나가 되어야지 나가서 회사 일도 잘 되는 겁니다. 생각이 딴 데로 안 쓰게 되니 하나가 되서 돈도 모이게 됩니다. 교회에서 한 마음이 안되고 교회를 신뢰하지 않으면 부부가 한 마음이 안됩니다. 전도도 안 됩니다. 신뢰하지 않는 교회에 누구를 데려올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매일 총동원 전도 주일에서 전도가 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가 분열이 되면 영혼 구원의 일이 스톱될 수밖에 없고 형식적이 됩니다. 바아사의 모반 사건에서 보듯이 백성들이 지도자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압니다. 그런데 나답만 모릅니다. 바아사가 모반할 사람을 모았습니다. 이처럼 내가 회개가 안 되니깐 아버지의 길을 따르니깐 이렇게 어리석어 모반 당하는 일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는 전쟁에서 적군을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데 또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체가 되실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신하의 신분이었던 바아사가 왕권을 뺏기 위해서 자기 나라 왕을 적을 쳐서 죽이듯 나답 왕을 죽였는데 그것은 바아사가 하나님 심판의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했다는 의미도 나타내는 겁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쳐죽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심판 한 것이다라는 이 두 뜻을 다 담고 있는 겁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모반 당하는 일이 생겼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욕심과 그로인한 분별 못함에 삶의 결론임이 인정되십니까? 회개가 없는 금송아지 기복 예배이기에 분별이안되는 것이 인정됩니까? 북이스라엘 사람은 금송아지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한 사람도 회개가 안된 것입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네 번째, 말씀대로 이루어질 심판의 길입니다. (28-30)
(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바아사가 나답을 살해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지금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위기 정국에서 왕이 모반을 통해 살해가 되고 왕조가 교체가 되고 있는 콩가루 같은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이기도 하지만, 바아사의 욕심과 살인과 거짓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귀 자녀의 전형적인 행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징계를 받아도 다윗 왕조를 유지하며 어쩔 수 없이 나라를 위하여 뇌물도 주었지만, 참된 예배 구조 속에 있었기에 그래도 안정적으로 왕위 계승을 이뤄가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우리도 징계를 받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애통해 하는 예수님의 씨가 있는 징계를 받길 기도해야겠습니다. 똑같은 징계인데 하나는 예수가 있는 징계고 하나는 심판의 징계 인 겁니다.
29절.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바아사가 왕이 될 때에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 온 집을 쳤다고 합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일 때 쳤다고한 동사와 똑같이 썼다고 합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살해하여 왕위를 뺏은 것과 왕위 돼서 여로보암의 온 집안을 친 사건이 똑같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바아사를 사용하셔서 나답을 왕위에서 패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여로보암 왕가를 멸절시켰는데, 멸하다는 뜻에는 파괴하다 멸절시키다라는 뜻의 동사로 바아사가 얼마나 나답과 그들의 친족들을 학살했는가를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여로보암-나답-바아사, 3대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병으로 일찍 죽은 아비야가 잠시 뒤에 이런 험한 결과를 안 보고 죽은 것이 얼마나 상인지 아시겠죠? 성경을 이렇게 처음부터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여기 생명있는 한 사람도 안 빼놓고 잔인하게, 참혹하게 학살했는데 웬일로 아비야만 택함 받아 일찍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만 믿고 가면 죽는 것도 사는 것도 하나님 뜻대로 하면 100% 옳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면 최고의 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 믿습니다. 내가 왜 암이 걸려? 내가 왜 망해?라는 소리 하지 마시고. 이 일이 참혹했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었기 때문에
29절 마지막에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도다라고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한 일이 실로 비참하고 참혹, 처참해도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말씀과 같이 된 심판이고 사랑이라고 고백해야 됩니다. 말씀과 같이이 땅에 심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은 이런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 왕들은 사건이 오면 깨닫습니다. 그게 다른 겁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여로보암의 가문을 대조시킴으로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말라고 계속 촉구하시는 겁니다. 얼마나 사랑인지 모릅니다. 말씀을 봐야 이루어질 심판이 있는지 이루어질 축복이 있는지 알지 않겠습니까? 심판이나 축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 교회에서도 고난이 별로 없으면 다음 세대 아이들이 걱정이 너무 됩니다. 우리들 교회도 믿음의 후손들이 잘 이루어가야 하는데 다들 이런 편안한 환경에서 살면 와서 닿지를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말라고 안타깝게 외치고 싶습니다. 금송아지 섬기고 불신으로 가게 되면 아히야가 말한 것처럼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이 다른 길로 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쫓아가서 때려주더라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 합니다.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히 체휼이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 제 자녀 같지 않습니까? 부모님들이 믿음이 좋은데 따라가지 못하면 얼마나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내 자녀가 다른 길로 갈까봐 그런 겁니다. 사랑은 구체적이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이 모두 악합니다. 그런데 악한 왕을 치기위해서 선한 왕을 도구로 사용하시진 않습니다. 악한 일은 악한 자에게 심판받게 하시기에 선한 사람이 구지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주시면 약속주시고 경고주시면 피할 길을 주시니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되었다 고백하는 인생을 살면 됩니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기에 악한 자를 치겠다고 방방 뛰고 나가고. 나가서 도와야할 때에는 침묵하고. 말씀을 모르니 분별이 안 되고 결국 나답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반당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당연히 나답과 같은 인간관계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 옆에 백성들의 민심을 하나도 못 읽었습니다. 와서 맨날 아부하는 사람들과 있었기에 바아사가 칼을 갈고 있는 것을 모른 겁니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을 자기 혼자만 모릅니다. 경고하시고 말씀을 주시면 반드시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신뢰해야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들려야 됩니다.
30절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여로보암의 범죄가 이스라엘 범죄로 이어지고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했기 때문에 심판이 왔다는 겁니다. 심판이 왔다고 하면 나의 범죄가 자녀에게로 이어지고 그것이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노엽게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관용어로 나오는 겁니다. 믿음의 조상 다윗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져서 도와주시는 것도 맞지만, 여로보암 때문에 우리를 노여워해서 계속 심판을 하시는 것도 맞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것의 반복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조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지만, 또한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라고 계속 여로보암집의 진노와 다윗집안의 은혜를 계속 비교하시는 겁니다. 남북 모두 산당제사를 지냈다는 것. 똑같습니다. 남쪽 북쪽 모두 산당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에게는 진노하고 다윗 가문은 왕위 가문을 계속 계승하게 도우셨습니다. 이럴 때에는 행위보다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나를 망하게 한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심판이라고 인정을 하시나요? 이게 참혹하게 다 죽였어도 아히야의 말씀 예언대로 된 것이라 적어놓으셨습니다. 이렇게 기막힌 일이 말씀대로 되어 진 거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심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행위입니까? 믿음입니까? 바람 핀 행위가 노엽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안믿는 게노엽게 하는 겁니다. 예배를 안 드리는 것이 노엽게 하는 겁니다. 바람 피고 가출한 게 노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입니까? 믿음입니까?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
다섯 번째, 일생동안 전쟁이 있는 길입니다. (31-34)
(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결국 나답을 살해한 바아사가 왕이 됨으로써 여로보암 왕조가 2대 만에 참혹하게 무너졌습니다. 나답이 짧은 2년의 재위기간에 한 일이라고는 고작 깁브돈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했다 밖에 없습니다. 역대기에는 나답의 이름조차 언급이 없습니다. 왕위 되면 절대적인 권세를 누리고 그 권세가 영원할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 없이 누리는 권세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합니다.
32절에.
(32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아사가 41년 간 통치하며 계속 전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전쟁 기사를 다루면서도 역대하 15장 19절에는 그게 같은 전쟁인데, 다시는 전쟁이 없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아사의 2차 종교개혁 후에 다시는 전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절, 역대하16장 1절에는 금새 전쟁 기사가 떴습니다. 전쟁이라는 표현을 안 하면서 전쟁기사가 또 떴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계속해서 전쟁이 있을 것인데 내가 하나님의 전쟁으로 선포하면 이것은 내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북 전쟁은 계속 할 때마다해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분열왕국이 되었으니 날마다 소소한 국지전이 있는 겁니다. 다윗 쪽에서만 심각하고 애통한데, 그럴 때 다시는 전쟁이 있지 아니하리라의 전쟁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쪽에는 애통하지 않습니다. 유다 쪽에만 애통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전쟁이 있지 아니하리라. 이번 전쟁은 남유다 아사 왕이 방에 병들었는데도 의원을 구한다 했으니 교만해진 겁니다. 교만해진 아사와 선한 것 하나 없는 북 이스라엘 바아사가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것은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쟁입니다. 전쟁도 이처럼 때마다 성격이 달라지는 겁니다.
33절.
(33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유다왕 아사 3년에 바아사가 남유다를 제외한 모든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해서 24년 통치를 했다는 겁니다. 바아사는 이스라엘 왕 중에는 정치를 잘한 강력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시진핑은 굉장히 휴머니스트처럼 나이스하게 보이지만 그 사람 옆에 가면 완전히 어마어마한 짱저민을 하루 만에 실각을 시키고 일인 독재가 되었습니다. 무서운 바아사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34절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아무리 24년 정치를 잘하면 뭐하겠습니까? 모든 북이스라엘이 추앙하면 뭐하겠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관용어처럼 계속 나옵니다.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이렇게 계속 갑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은 항상 우상숭배의 죄악된 길로 대비되고 바아사가 비록 여로보암과 그 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도구가 되었긴 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여로보암과 같은 죄악의 길로 빠지고 말아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을 타도하고 나답을 타도하고 부패를 외치면서 개혁을 외쳤는데 왕이 되자마자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고 합니다. 독재자 정권 타도하고 독재하는 것이 너희 아버지 마귀에서 난 자가 가는 길이기 때문에 누구도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패를 청산하자고 했는데 다시 정권 잡으면 부패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에 대해 또 응징을 하니 이러고 저러고. 다 여로보암의 길을 행합니다. 혁명을 일으킨 목적이 단순히 도덕, 윤리가 떨어져 혁명을 일으키니깐 지나고 보면 정권탈취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왕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목적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거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들이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갑니다. 금송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금송아지 타도하고 또 세우고. 이쪽은 돈이고 이쪽은 명예고 이쪽은 권세고. 이것만 바뀝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결코 우리 사회를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전쟁의 성격은 이제 시작하는 소소한 국지전입니까? 일생 내 전쟁입니까? 다시없는 하나님의 전쟁입니까? 있어야만 하는 일생 동안의 당연한 전쟁입니까? 전쟁의 성격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맨 날 달라집니다. 일생 전쟁, 일평생 온전함, 오늘은 일생동안 전쟁. 때마다 표현이 다릅니다. 전부 다 부목자분들의 일생전쟁이 음란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동영상보고 즐거워하시고 게으름과 안주하고. 선한 모습으로 남을 무시하는 교만과 나의 자랑으로 일생 전쟁. 인정중독, 나의 교만. 두려움. 다 전쟁이 있습니다.
# 공동체 고백
오늘의 공동체 고백은 큐티인에 이 날짜 간증, 오늘 설교 말씀대로적용을 잘해주신 집사님이 계셔서 읽어드립니다.
이분은 우리들 교회 와서 신앙생활을 하신 이제 6년 째 신앙인이신데 목자님이 되셨습니다. 이분은 우리들 교회 와서 신앙생활 할사람이 아닙니다. 돈도 많고 여자도 좋아하고 골프도 잘 치시고 바람도 피고. 그런데 교회를 오셨대요. 어떻게 우리들 교회를 다니겠어요. 그런데 교회 나오면서 음란, 술, 담배, 골프모임, 제사 다섯 가지 죄를 끊어 냈는데, 자녀들에게 인정받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교회를 다니더니 많이 바뀌었네 하면서도 조금 더 두고보자는 표정이 역력했대요. 그런데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시 되물림 되는 우상숭배 악행을 따랐기에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습니다. 저 또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며 더 여섯 가지로 늘어난 관습을 끊고 새로운 왕이 되었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아내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술, 담배 다 끊었다고 생색을 냈다는 겁니다. 끊은 중독보다 더 악한 의로움과 교만의 죄를 마구 저지르게 된 겁니다. 오늘 17절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게 행한 나답에게 바아사의 반란 사건을 허락하신 것처럼 교만으로 무장된 저의 악행은 아내의 유방암에 큰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난 앞에서조차 죄를 깨닫지 못하고 현실을 벗어나고 잊고자 병간호를 해야 하는데 캠핑카를 구해서 전국을 자유롭게 돌고자 했습니다. 결국사탄의 밥이 되어 아비 마귀에서 난 자와 같이 교회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 겁니다. 중독을 억지로 끊으라고 하니 교회를 떠나 죄를 짓습니다. 믿음은 바닥을 치고 스트레스가 되어서 불안증 강박증으로 이어져 전에 없었던 짜증을 부리고 매사에 화가 치밀었는데 결국 심한 두통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뇌혈관이 압력으로 두 군데나 부풀었는데 이 혈관이 터지면 30분 내로 즉사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뇌동맥혈색정술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 30절 여로보암 온 집안이 멸절된 것은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아무리 중독과 관습을 끊어도 자기 죄를 보지 못하니 다시 죄를 짓고자 언제 이 교회를 떠나자 하며 교회를 엿보고 있을 즈음에 비본질 때문에 본질을 버리겠느냐의 그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해 자신이 바로 여로보암처럼 여호와를 노엽게 한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었대요. 여러분 붙어있으니 말씀이 들렸어요. 붙어있는 것이 장땡입니다.
그래서 32절에서 아사와 바아사 사이에 일생동안 전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도 죄와의 전쟁이 평생 끝나지 않음을 느끼면서 이제라도 하나님 밧줄에 꽁꽁 묶여 살길 원한다며 마음이 요동치더라도 회개하고 즉시 돌이킬 수 있는 삶을 살길 원하다고 썼습니다.
적용하기는 마음이 요동칠 때 즉시 큐티 책을 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죽기 전까지 영적 전쟁은 계속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배에 자리를 잘 지키겠습니다. 할렐루야.
이 큐티가 사소한 것 같지만 소소한 국지전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그날그날 자기 얘기로 제 설교를 풀어서 적용했습니다. 뭐 대단한 고난이 없어도 말씀을 읽고 묵상해 간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가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로보암 아버지의 길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길입니다. 정말 주님의 시선이 아니고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는시선입니다. 아버지의 길은 아비 마귀에서 났다는 겁니다. 거짓말, 살인, 미움 이런 길을 갑니다. 당연히 모반을 당합니다. 회개를 안 하니 모반을 당합니다. 회사에서도 부부간에도 자녀에게도 반역을 당하는 겁니다. 큰소리만 쳐댑니다. 회개를 안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대로 이루어질 심판이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일생 동안 전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종류가 달라지더라도 다시는 전쟁이 없는 그 전쟁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시선으로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자고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시선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렴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기도제목
주님의 시선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지 않고 여호와 보시기에 참으로 우리가 선을 행하게 해달라고. 주님의 시선이 내 시선이 되게 해달라고. 내가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이지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달라지게 해달라고. 악한 욕심으로 미움의 살인과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기도하시고. 나를 망하게 한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심판이라고. 그것이 얼마나 감사인지 감사를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죄악이 행위보다 믿음이 없음임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모든 부부 관계에 회복이 일어나게 기도하시고.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족에게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서 상대방의 마음을 붙들게 해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여로보암아버지의길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길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내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에 참으로 욕심과 미움과 거짓에 아비 마귀가 남아있어서 날마다 내가 망해야 하는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주님, 인정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교만으로 당연히 있어야 할 전쟁이 남아있습니다. 이 전쟁은 늘 있을 것인데 내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으로 선포하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는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도록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참으로 우리가 부부간에 하나가 되고자 하고 부모-자식 간에 회사에서 나라에서 각자 몸 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하나가 되길 원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것은 회개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회개를 못하니 사람 마음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붙들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주님 정말 회개 역사가 일어나서 부부간에 회개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가족에게서 회개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고 목장에서 초원에서 평원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서로 회개하는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그래서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길로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3. 24 한수진 목장 보고서>
한수진 목장보고서(15)
# 모든 시선을 #
일시 19. 3. 24. 4시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한수진, 이지민, 이은영
나눔 셋이서 오순도순 나눔했습니다.
Q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1: 3/19 큐티 본문으로 큐티할까요? 투고했다. 지난 해 겪었던 이직-교통사고 문제를 가지고 큐티를 하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이직을 추진하다가 교통사건 당했던 일을 상기하면서 현재도 사건이 해결 되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많구나가 깨달아졌다. 투고 당시 적용으로 기도학교 등 양육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그 주 금요일에 연차를 쓰게 되면서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결국 회개하고 중보기도학교 갔다.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늘 CCTV처럼 항상 보고계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Q2. 여러분은 여러분이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그렇다면 아버지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욕심, 살인(미움이나 증오), 거짓말 중에 무엇이 가장 닮았습니까?
A1 : 부모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죄는 없는데 미움과 욕심이 많으신 것 같다. 사건이 왔을 때 나도 미움과 욕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요즘 집에만 있으면 안식이 없고 무기력하다. 혼자 말씀 보고 신앙생활을 하니 대화 가운데 가족이 화합되지 못하고 단절, 소소한 일에 상처만 남는 것 같다.
(목자 : 부모님께서 전도축제에 오셨으면 좋겠다. 기도할게!!!)
A2 : 어머니가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 있다. 현재 교제 중인 상대방에게서 기다려주는 것이 힘들다.
(목자 : 부부 관계 원만해야 화합을 이룰 수 있다. 부부 간에 같은 말씀 가치관이 있다면 일이 되었다 함이 없어도 말씀을 기반 하면 잘 풀어 갈 수 있다. 배우자 선택도 같은 가치관에 무게를 실어보는 게 어떨까? 내가 잘 되더라도 그분을 잘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내 시간 잘 지낼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주 과제적용###
나에게 현재 온 전쟁, 임한 사건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데,
각자에게 온 외로움, 무기력, 오빠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 왜 이 사건이 왔는지 묵상하고 큐티 나눔해 보았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은영 1. 무기력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길.
(적용 : 자소서, 기도학교 독후감 쓰기)
1. 가족 구원을 위해 언어습관이 달라질 수 있도록
지민 1. QT 왜 이사건이 왔는지 묵상할 수 있도록
1. 조급한 마음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 주시길
1. 현명한 말, 지혜로운 언어 가질 수 있도록
수진 1.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것이 있는데
(적용 : 팀장님께 순종 잘 할 수 있도록)
1.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도록
(적용 :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기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전쟁 가운데 있으면서도 예배드리는 선한 마음 주시고 목장예배가 끊이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 소견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참된 예배 속에 잘 붙어가는 것도 참 감사합니다. 오늘 지현이와 수빈이가 감기로 나오지 못했는데 한 주도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 잘 붙들고 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또 우리 목장 한 주 큐티 나눔으로 생활 속에서도 예배 잘드리는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내 작은 마음 돌이키고자 일하시는하나님 시선 느낄 수 있는 한주가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