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찬송
날짜 : 2018.04.15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본문 : 요한계시록 15:1 ~ 8
마지막 찬송하면 숨질 때 부르는 찬송 아니에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이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고 마지막 시간을 향하여서 가는 오늘의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찬송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마지막 재앙이 마지막 찬송입니다.
마지막 이적이고 완전한 심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1절입니다. 오늘은 지난주 14장보다 앞에 있는 게 맞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알곡과 포도송이 추수가 끝났는데 무슨 또 마지막 재앙이 있다고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연대기적으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을 말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전시간에 인, 나팔, 대접 재앙의 세가지 시각으로 보여준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이에요. 그야말로 심판의 인을 떼고 나팔 경고를 하고 대접을 쏟아 붓겠다는 것인데 초점과 예언을 한가지로 두고 예언한 것이에요. 그러나 인을 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나팔을 불어도 회개를 안 하더니 대접을 받고 보니까 내가 주님을 만났다 이렇게 말하면 내 인생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죠.
요한이 하늘의 또 다른 크고 이상한 이적을 보았는데 요한이 세 번 이적을 보았어요. 첫째가 12장의 해를 입은 여인의 교회의 영광을 보았어요.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했죠? 두 번째는 붉은 용의 이적을 보았어요. 이것은 사단을 의미하고 이세상 모든 것이 마귀의 조정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라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이제 세 번째 이적은 마지막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대접으로 부어서라도 마귀에게서 구원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진노 하시기 때문에 이 에서 진노를 맛보게 함으로 정말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것이 사랑이죠. 진노가 마치는 것이 구원이 되어야지 심판이 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도 이적을 보여주신다고 그래요. 이적은요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하는 데 표시를 뜻하는 세마에서 파생한 명사로 증거나 상징이나 징조 기적 등의 뜻을 의미하고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이해하거나 통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이적이란 이 땅에서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지를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기에 교회인 나를 알고 사단을 알고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는 것이 이적이라는 거이죠. 다시 말하면 내 고난을 통해서 마귀의 계략을 알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 알게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통찰할 수 있는 것, 우리들 교회에서 해석이 됐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이적 중의 이적 이라고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는 끝났다는 것이 아니고 충만하다는 뜻이 있어요. 진노가 너무 완전해서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완성이 된다는 거죠. 진노가 완전하면 한편으로 믿는 성도에게는 완전한 기쁜 소식이고 그것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표지인 이 싸인을 보고 가는 것을 이적이라고 했잖아요?
돈이 벌리고 건강해지고, 잘 사는 것이 이적이 아니라 자식이 돌아오고 이런 게 이적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하는 구속사적인 성경 묵상이 이적 중의 이적인 것을 믿습니까? 성경이 그러잖아요. 성경은 표지에요 표지, 그런데 여기서 이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내렸다고 하는데 일곱 천사는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고 내 존재가 해를 입은 영광된 신분인 것을 알고 마귀도 알고 고난의 때도 알고 가면서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적 중의 이적인데 그런 얘기를 해주는 목자 천사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그런 얘기만 하면 뭐 이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라. 왜 남편이 바람 피는지 자신을 좀 돌아봐라, 이러면 교회를 나가는 거죠. 그런 이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이에요. 이 땅에서 마지막 찬송을 하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알 때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구원의 찬송을 부르지만 내가 육을 떠나는 날 내가 부르는 찬송이 어떤 찬송이 될지 진정 마지막 찬송이 남아있죠. 내가 마지막 날 찬송하며 갈지 저주하며 갈지 누가 알겠어요. 전적인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정말 그것을 위해서, 찬송을 못하고 간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에요. 제 남편은 찬송하고 갔지만 어떤 장로님은 부인하고 떠났다고 그러죠? 예수님을. 계시록 8장 13절에 보면 일곱 나팔 재앙 속에서 다섯째 여섯째 나팔이면서 세가지 화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어요. 화화화, 첫째 화는 다섯 번째 나팔 재앙으로 황충의 재앙이고, 두 번째는 유브라데에 이만 명이 처들어오는 재앙인데 재앙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했었어요. 회개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그니까 인과 나팔 이 기가 막힌 재앙에도 살아남아서 회개하지 않는 이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은 끝까지 짐승과 바벨론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큰 선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 대접 재앙은 마지막 재앙이기에 16장부터 나오는데 일곱 대접이 끝나면 진짜 마지막이고 진짜 중요해서 오늘 서론을 대접재앙이 서론이 막 있어요. 오늘 본문이 서론인 것이에요. 그런데 표지판이기도 하지만 이적에는 기적이라는 뜻도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크고 이상한 이적이라고 했을까요? 아까도 말했지마는 진노의 완성인데 재앙이 끝나기 까지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이 이제 표지를 따라오면서 믿고 기다렸는데 어느 날 세상과 하나님 백성의 운명이 이 재앙 속에서 송두리 체 뒤바뀌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실제로 놀라운 이적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 설명을 하려고 남편이 간 거에요. 남편의 영접이 마지막 재앙에서 믿고 기다리던 구원이 눈앞에서 펼쳐졌잖아요. 남편의 운명이 송두리 체 바뀐 크고 이상한 이적이 되어서 그 남편이 마지막 찬송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삼십 년을 생각해도 그것이 이제 크고 이상한 이적인 것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할 이적이 되어서 또 다른 사람에게 표지와 싸인이 되고 있는 것이죠.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이적이 하나님의 싸인 표지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표지를 따라가려면 큐티를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큐티를 하세요? 또 제대로 하는 것이 이적중의 이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제대로 하는 것이 뭡니까? 교회인 나와 마귀와 재앙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큐티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이게 정말 장성한 자의 분량에 큐티인거죠.
두 번째 마지막 찬송은 불바다를 지나야 합니다.
(2절) 유리바다가 지금 어딥니까? 유리바다는요 물두멍 에서부터 바다 비슷한, 물두멍이 커져서 바다가 되었어요. 세례 등을 의미하는 회개를 의미해요. 지금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지나서 유리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모세 하면 홍해바다가 생각나죠. 출애굽기 14장에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는데 근데 홍해바다가 갈라졌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힘들어 해서 기도하니까 갈라졌나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이 불쌍해서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하셨나요? 성경을 쭉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하죠. 언약 말씀 약속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들은 짐승과 우상을 이기고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넜어요.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서 그냥 유리바다에서 지나갔는데 이는 모든 것이 투명해 지는 것이 마지막 찬송의 특징이에요. 불이 섞여있는 유리바다는 불이 섞여 있어서 잘 안보이잖아요? 불이 섞여 있어서, 그런데 이것이 유리바다로 옮겨졌다는 것은 투명해졌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다 죄인이에요. 그래서 인생은 죄를 감추고 사는 게 인생이잖아요.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우리 인생인데 그 부패했던 것들이 회개하면서 다 투명해졌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자기 죄에 민감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가 보이니까 그래서 유리바다에 도달한 성도들은 누구나 자기의 흠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자기는 그냥 죄 때문에 이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너갈 수가 없어요. 자신의 부족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너무나 아파해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고 주님만 부르짖을 수 밖에 없으니 주님이 그 손을 붙잡고 건너갈 수 있게 해주시는 자인 것이에요. 그래서 이 활활 불타는 바다에서 나도 모르게 유리바다로 건너오면서 내가 평온해지고 일관성이 있어지고 그리고 이제 전적인 은혜로 건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 부족하니까 그래서 이제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소리로 도구인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찬양을 해도 전쟁을 해도 내 방법이 많아요. 총칼 들고 혈과 육으로 전쟁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온유하게 부드러운 거문고를 가지고 찬양을 하면 구원의 찬송이 되는 거죠. 말씀을 붙들고 언약을 붙들었다고 했잖아요. 말씀을 붙들고 약속을 기억하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참 그런 것 같아요. 신천지가 우리들 교회를 그렇게 공략한다고 하는데 우리를 뚫지 못한다고 하는데 말씀으로 자기의 죄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에요. 아무리 데려가려고 해도 자기 죄를 보는 것은 흉내가 안되거든요. 또 신천지들이 흉내를 내겠네요. 십 년이나 섞여 있으면서 공략하는 게 프로젝트라고 하네요. 그냥 여기서 죄보고 계시면 안될까요? 왜 그렇게 신천지로 가려고 그러세요? 결국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 교주를 경배하는 것인데 그래서 이제 그러나 유리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심판의 바다가 되는 거잖아요. 유리바다를 건너지 못했기 때문에, 열불이 끓어오르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에요. 이 땅의 전쟁이 다 혈과 육의 전쟁이 되어서요. 그냥 너는 틀렸고 나는 맞고, 이렇게 되는 거 잖아요? 이분들을 위해서 수요예배 드리라고 권해요. 불바다 잘 건너라고요. 말씀을 수요예배에서는 자주 보잖아요.
정신병 환자와 그리스도 인들이 참 비슷한 게 많아요. 뭐가 비슷한가 하면 자기의 죄 때문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차이는 그 환자는 그 죄를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나 괴로운 거에요. 그 괴로운 만큼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거에요. 그런데 그리스도 인들은 자기 죄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자기 죄는 이만하니까 겸손해지고 이제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의지하게 되죠. 다윗을 보세요. 그가 믿음의 용장이라고 할 구석이 어딧습니까? 일생의 불바다를 건너면서 찬송을 부르게 됫잖아요? 그런데 사울은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했기 때문에 다윗을 평생 탓하면서 미워하다가 죽었어요. 그니까 이제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의 사위임에도 그를 죽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겉모습은 너무나 경건하고 예배 중독자였어요. 다윗을 여자가 즐비하지만 사울은 여자도 없어요. 아시죠? 그 담에 눈만 뜨면 예배를 드려요. 사무엘, 신접한 여인, 자기가 제단 쌓고 예배를 드려요. 그러니까 초대 왕 이었잖아요? 환경도 너무나 감사한 환경이었어요. 40년이나 왕노릇을 했는데도 다윗을 미워하는 것을 고칠 수 없었어요. 마음대로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똑같은 죄인인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표지를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이적 중의 이적인지 이게 정말 기가 막힌 이적인 것이에요. 내 죄를 보고 하나님께 해결 받을 수 있는 것. 평생 불바다를 건너면서 저 또한 미워할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는데, 제가 너무나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했던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오게 하신 것이 이적 중의 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워하면서 왔다면 옛날에 정신 줄을 놓지 않았겠습니까?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지려고 합니까? 내가 늘 넘어지는 것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맡깁니까? 여러분은 편한 사람입니까? 불편한 사람입니까?
세 번째 마지막 찬송은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노래가 아닙니다. 3~4절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그 무서운 애굽이 홍해바다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 따라가다가 죽었어요. 정말 내가 기가 막힌 애굽이 죽는 것을 눈으로 본거에요. 어떻게 훨씬 잘난 애굽이 죽지? 어떻게 내가 구원됫지? 애굽의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전혀 부를 수가 없는 노래인데, 정말 내가 어떻게 구원됫지? 남편이 마지막 재앙에서 찬송이 시작 됫듯이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해주셨어요. 여러분도 그 마지막이 문자적으로 마지막 아니고 오늘 이시간에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뭘 찬양 했냐하면 전능하신 이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이 4~5절 가지고 찬송을 만들어야해요. 대단한 찬송이죠?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간증을 때마다 하잖아요? 출애굽기에서 시작된 것이 계시록에 까지 흘러퍼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출애굽 얘기기 때문에 날마다 얘기를 해야해요. 그러니까 저도 날마다 남편 간증을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휴 저얘기 또하네, 또하네 그런사람들이 또있어요. 이게 세상적으로만 들으면 fact의 나열 같으면 어떻게 두번을 듣겠어요. 두번 못들어요. 세상없는 예능 프로그램도 두번은 보기 싫잖아요? 그냥 저도 삼십 년 동안 구원의 일이 너무 크다고 놀라워하니까, 인간적으로 하면 똑 같은 애기를 하는데 사람들이 구원으로 초청이 되겠어요? 제가 그냉 놀라워가지고 제가 큐티선교회를 2000년도 7월 17일날 옥한음 목사님께서 사랑의 교회에서 하라고 빌려주셔서 했는데 여러분들도 다 큐티 모임에 왔던 여러분들이 다 구원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이 넘쳐가지고 남편아들 다 데려오느라고 2000명이 넘게 왔잖아요? 광고 한번 안 했는데? 어떻게 하면 구원될까? 그리고 그날 300명이나 영접했어요. 그러니까 집사가 구원에 대한 애통이 흘러 넘치니까 여기 있는 사람도 놀라고 다른데 있는 사람도 놀라고 이게 진짜니까 그러죠, 가짜면 어떻게 영접하겠어요? 또 날마다 구원얘기 맨날 하는데 이게 인간의 이야기면 놀라운 일이 되겠습니까? 몰라요? 제가 날마다 놀라니까 점점 더 놀라게 될 일을 행하시는 거에요. 구원 때문에 놀라니까 큐티선교회, 우리들교회 점점 놀랄 일을 많이 주시죠? 여러분 구원 때문에 놀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전하고 흘러 흘러 프로그램이 없어도 우리들교회가 구원의 공동체가 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길이 의롭고 참 되시도다 라고 찬양했어요. 주님은 내가 구원 받을 만해서 구원하신 게 아니에요. 내가 생각한 수많은 일들에 말씀을 보면서 주님이 맞습니다. 옳으십니다. 참되십니다. 했습니다. 남편을 데려간 날 그날 주님이 이 일은 공평하다 그랬잖아요? 기억나시죠? 그러니까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 이렇게 과부가 되어도 주님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난 것이기에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 하리이다 하고 찬양을 했어요. 그렇게 제가 이렇게 의롭고 참되시다고 하니까 수많은 사람이 설교와 문서와 큐티 사역 등으로 경배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의 연속인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제가 찬양하면 여러분들도 똑같이 찬양하시기를 바라요! 목사님은 정말 똑 같은 것을 끝도 없이 잘 갔다 붙이시네, 어떤 성경을 봐도 어쩜 그렇게 잘도 갔다 붙이시나, 제가 이거 갔다 붙이려고 일주일 동안 골싸바리 흔들리는 겁니다. 이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 인생을 이렇게 해석해서 내놓게 되기를 바랍니다. 용의 세력은 열뿔 일곱머리 열 면류관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에요. 이름만 들어도 이름값이 느껴지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들이 패했어요. 애굽이 패했잖아요? 그리고 음지에 서있고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이름값이 전혀 없던 이들이 구원 쪽에 서있던 거에요. 자격과 공로로는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에 입성을 한 거에요. 출신성분으로는 명함 을 내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불렸어요. 역대상 계보를 보니까 계보에 올라간 사람들 보니까 살인자, 남의 것 빼앗은 자, 남편의 아들과 동침한 첩 이런 사람들이 다 계보에 올랐어요. 자 유명한 라헬의 몸종이자, 야곱의 첩이자, 야곱의 맏아들과 동침한 정말 만고의 죄인 빌하가 계보에 올랐는데 납달리 지파가 한절 딱 나오는데 거기 그녀의 이름이 찬란하게 올라갔어요.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유다지파에도 자매지파인 스루야가 올라갔고 갈렙의 두 아내, 60세 마길의 딸인 헤스론, 헤스론의 아내 아비야, 열하므엘의 다른 아내, 오난의 어미. 세잔에게는 아들은 없고 딸 뿐이라서 야르하라는 애굽종을 줘 아내를 삼게 했고, 야르하라는 흑인 노예 종 이름 올라갔죠. 갈렙의 첩 마가, 딸 악사, 그런데 이렇게 다 나왔는데 그당시 유명한 사울 왕 딸, 미갈 적통이잖아요? 예수 믿는 미갈 빠졌어요. 거기도 이방여인 중에 아히노암 발매의 딸 마가, 학깃의 딸 다 들어갔어요. 강간당한 다말도 나와요. 아들이 없는 슬로보핫의 딸들도 나와요. 미리암도 나오고 베냐민 지파의 사하라임의 두 아내 후심과 바라를 내보낸 후에 모압땅에서 자녀를 낳았다고 하는데 내어버린 두 아내도 나왔어요. 유다지파의 야베스는 존귀한 자라고 했는데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던 자래요. 에브라임 지파의 자손 에셀과 엘르앗이 가드의 짐승을 빼았아서,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해요. 그 후에 잉태하여 낳은 아이의 이름을 브리야 재앙으로 이름을 했는데 재앙으로 이름을 지었어도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갔음을 믿습니다. 이름은 자고로 겸손하게 지어야 합니다. 맨날 큰 대자 이런 거 좋아하지 말고. 일일이 언급을 못하겠지만 모두 첩, 버림받은 아내, 당한 자, 강간당한 자, 이방 여인, 애굽의 종을 남편으로 둔자,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던 자, 재앙이라는 이름, 그런데 우리가 또 아는 대단한 믿음의 여인 사라, 리브가, 레아 언급이 안됫어요. 얼마나 은혜의 족보입니까? 마태복음 1장에도 다말, 라합, 우리아의 아내, 마리아의 이름이 찬란하게 올라갔어요. 하나님이 음란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음란에 연루된 자들이 다 올라갔어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도 역대상에도 사라, 리브가, 레아가 다 빠졌는데, 마태복음에도 본처들이 다 빠졌더라고요. 제가 본처가 제일이라고 해놓고 오늘은 또 본처가 다 빠졌다고 이렇게,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하나님이 음란보다, 죄인중의 죄인들만 언급이 됫는데 음란보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인데요. 하나님의 진노를 깊이 경험하면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자기의 신분으로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인데 우리가 막 듣기만 해도 눈물의 신앙고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잖아요? 우리는 막 피리를 불어도 그냥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환경이 겸손한 것이 겸손하다고 했는데 이런 사람들이 찬란하게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숨질 때 되도록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윤복희씨를 보면 얼굴이 눈물로 찬양을 하잖아요? 살아온 인생이 기가 막혀서. 그래서 인간으로서 마지막 심판 속에서 마지막 찬양을 한 자들이었던 거죠. 이렇게 기가 막힌 일곱 대접의 심판가운데서 마지막 찬송, 위대한 찬송을 불러야 된다는 거에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 지는데 하나님이 나를 품에 안고 친히 홍해 바다를 건너가시는 거에요. 이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나를 버리려면 또 하나님이 나를 안고 건너가서 버리셔야 되는 거에요. 짐승의 이름의 수를 이긴 것은 주님이 안고 가셔서 이긴 것이지, 내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닌 거에요. 믿음이란 하나님께 헌신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보호하시는 것을 믿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우리들 교회도 정말 아프고 힘들 성도들이 너무 많아요. 그니까 정말 날마다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정말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린양이신 주님이 목자와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먼저 안아주시고 업어주시고 가는 거에요. 이 목자와 선생님들도 오늘이 마지막처럼 어린양의 마음으로 이끄는 본을 보여주고 가시기 때문에 간증이 나오고 모든 성도들도 아이들고 마지막 찬송을 부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자님들 선생님들 마지막 찬송을 부르느라고 애쓰십니다. 박수로 격려를 합시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일곱 대접 같은 심판에서 위대한 찬송 마지막 찬송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네 번째 마지막 찬송은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의 성전이 열리는 것이죠. 5절입니다. 이제 유리바닷가에서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증거장막의 성전으로 옮겨지는 것이에요. 이 재앙의 출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에요. 증거장막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데 그곳에 두 돌판 십계명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언약에 의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언약을 거절하면 심판을 초래한다는 것이에요. 이 모든 것은 약속의 말씀에 의거해서 집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편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날 말씀이 에스겔 18장이었잖아요. 그가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였으니 정녕 죽지 않고 살아나리라. 내가 정말 악한자가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일이 공평하다. 그것은 제게 언약궤,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감동을 주신 날이에요. 아 말씀이란 것이 이렇구나, 하나님의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니까 진짜 남편이 죽는 날이 왔는데 이게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남편이 죽은 게 뭐가 잘난 척, 자랑할 일이에요. 너무나 우리 남편이 운명이 뒤바꼈고, 내 운명이 뒤바꼈고 너무 놀랐고, 주님하신 일이 너무 위대하다고. 여러분 가운데에도 저를 닮아서 행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안 그러면 어떻게 부흥하겠어요? 우리의 모든 시련과 환란은 모든 증거장막 성전에 예배가 열리는 것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져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드리는 언약을 위해서 약속을 위해서, 약속이 중요해요. 서양은 약속이 중요해요. 기독교 국가 잖아요. 한국은 안 그래요. 제일 중요한 게 외식이에요. 배고파도 배부른 척, 없어도 있는 척, 큐티를 하면서 이게 쉐어링 하는게 너무 힘든거에요. 미국사람들은 믿음이 없어도 약속을 잘 지켜, 믿음이 없어도. 우리가 약속, 계명, 언약을 위해서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 큐티예배 등의 언약궤 말씀예배는 우리가 이땅에서 모든 전쟁 사단을 이기고 이기게 하는 최고의 비결이고 방법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냥 와 계신 것 같지만 와 계신 동안 사단의 모든 것이 물러가는 것이에요. 마귀의 궈계를 물리치고 있는 것이에요. 나는 똑 같은 날이 계속되는 것 같은 날을 사는 것 같지만 삼십년 동안 예배의 설렘이 없었던 적이 없었어요. 예배의 설렘이 있어요. 매너리즘에 빠진적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예배의 설렘이 있습니까? 그니까 예배의 설렘이 있기에 사단이 물러가는 것이잖아요. 말씀의 설렘이 있어요. 계시록은 400구절 정도 중에서 300구절 정도가 구약을 인용했어요. 이단이 푸는 게 아니에요, 직통 계시가 아니에요. 계시록이 상징적 내용을 직접 설명하듯이, 구약을 통해서 모든 계시록은 성경으로 풀어지게 되어있어요. 이상하게 직통계시 받아가지고, 정말 위험한거죠.
6~8절 보니까, 일곱 대접은 마지막 재앙이에요. 6~8절은 대접 재앙에 서론인데요. 앞장에서 보면 일곱인 일곱 나팔은 진노의 일곱인 진노의 일곱 나팔 이런 표현 안 썼는데, 일곱 대접에서는 진노의 일곱 대접이라고 이제 이렇게 쓰이고 있어요. 16장 1절에 보면, 이렇게 뭔가가 그냥 참고 기다리다가 참고 확 부어지는 게 진노의 대접인 거에요. 일곱 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역사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어요. 심판이 기정사실이라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빛난 세마포 입은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만 구원 받고 애굽은 잘먹고 잘 살았기에 나만 구원 받는 거 마땅해! 나를 괴롭혔으니 쌤통이다. 이러면서 나는 끝났어~ 저사람 심판 받아서 끝이야! 그러면 되겠습니까? 나는 구원이고 너는 심판이야! 그러면 되겠습니까? 나는 예배만 혼자 거룩하게 드리고 다른 사람이 심판 받는 것이 아무렇지 않습니까? 그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들은 이미 형벌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해요. 하나님 없이 사는 것 자체가 벌이잖아요. 이 진노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되는 거죠. 남편이 안믿는 것 같았지만 제가 제사장역할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구원을 받고 갔잖아요? 그시간 놓쳤으면 영원한 심판이 될 수 있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다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안되.. 이거 어머니 아버지 지옥에 가도록 고이 모시겠어! 이얘기다.
구원의 확신이 이만큼 간절하면 여러분이 못 할 일이 없을 텐데,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맨날 욕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고아와 고부가 왜 불쌍합니까? 울타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영적으로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에 남편이 간 후에 수많은 영적 과부들을 주께 인도하는 제사장이 된 줄 믿습니다. 믿는 내가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식구들이 누리지 못하는 천국 때문에 내가 천국에 모델이 되야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보여주는 천국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을 해보세요. 여러분은 사건마다 말씀의 성전이 열려서 제사장으로서 사명 감당하는 것이 마지막 찬송이라는 것이 아멘이 되십니까?
못 알아들어도 할 수 없어요. 제가 이야기 하는 것에 꼭 반응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들이 흘러서 전파되게 하시는 것이 굉장히 우리는 빨아들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옆에 사람 보고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장 기도제목
성은기도제목
1. 엄마아빠동생의 영적 육적 건강
2. 여러가지로 맘에안드는 동생을 미워하지말고 긍휼히 여길수 있도록..
3. 일하는데 있어서 만남의 축복 주시기를
4. 저의 사업장에 기름부음, 지혜와 평안함..
5. 회피하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해나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ㅠ
6. 엄마아빠 사업장의 축복
7. 이사의 과정에서 가족이 모두(동생놈도좀!) 힘을합해서 수월하게 할수
보화 기도제목
1. 나의 죄를 보고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 주시길
2.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길
3. 중국여행을 계획중인데 모든 과정에서 인도해주시길
4. 사업에 기름부어 주시고 체력을 허락하셔서 빠르게 움직이고 아이디어대로 행할 수 있기를
5. 언니의 구원을 위해 언니에게 시간을 쏟고 애통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6. 동생의 마음에서 불신을 걷어주시고 하나님이 긍휼하신 분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시길
은경 기도제목
1.오늘부터 아빠 방사선 치료 받으시는데 하루빨리 일과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은 시간대로 편성되길.. 더불어 엄마도 같이 수고하시게 됐는데 두분의 건강 지켜주시길!
2.조카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새언니가 충분히 쉬며 건강 회복하길
3.이직을 준비함에 있어 기도하면서 나아가길
4.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을 기도하며 나아가도록..
소지 기도제목
1 하나님만이 나의 표지판되심을 알고 마지막날까지 자기죄를 보며 말씀따라가는 삶을 살기를.
2 나의 체면을 내려놓고 건강한 나눔과 오픈을 할 수 있기를
3 건강회복_팔의 통증 잘 치료받고 회복되기를
4 엄마가 사업장을 운영하는데 있어 말씀을 표지삼아 지혜와 인내의 축복을 주시기를
5 형부의 구원, 언니가정의 회복
6 나의 기복의 원인이 내가 우상삼고있는것 때문임을 알고
덜어내는 적용 할 수 있기를.
아름 기도제목
1. 자기 합리화시키지않고 표지판 잘 보고 잘 따라갈 수 있도록
2. 개인사업 인도해 주시길
3. 환경에 맞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길!!
4. 동생이 교회에 계속 나갈 수 있는 환경 주시고 가정에 사랑과 평안 있길
5. 조카 피부 가려운 것 치료해 주시길
6. 신교제,신결혼
인학 기도제목
1. 큐티 제대로 하고 사건마다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기를
2. 이직, 알바 말씀으로 인도함 받기를
3. 유치부 내려놓을 수 있기를(ASAP)
4. 가족 친척 목장 직장 등 중보하기
5. 구원과 거룩을 위해 나태함 회개하고 성실, 부지런해지기를
6. 신교제, 신결혼
♡♡목장 스케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