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분
요한계시록4:6-11
자신이 암에 걸린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공포 분노로 그 소식을 받는다. 병원 사례 연구에 보면 이성적인 대학 교수님이 자기가 암에 걸린 소식을 듣고 무당을 불러 굿하다 죽었다고 한다. 또 어떤분은 덕을 오도록 쌓은 수도자인데 말기 위암 이라는 얘기를 하고 정신적 쇼트에 급사한다. 어떤분은 정신과 치료 받다가 죽는다. 종교를 핍박하던 사람은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종교 입문해서 용서를 구하고 생을 마감한다. 어떤분은 항암하는 것이 싫어서 여행을 하고 끝까지 붙잡아 보는 환잔 분도 계신다. 이렇게 안좋은 소식을 듣기 싫어 하니깐 위암은 위괴양으로 바꾸고 나쁜 소식 잘 전하는 것이 의사 교육 중에 하나라고 한다. 이세상은 흉한 소식 듣는것이 두렵다. 그런데 이런 소식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계시록에 여러 생물이 나오는데 생물은 사람을 뜻한다. 그때 시대때 핍박이 심해서 사람 성도라는 말을 쓸 수가 없었다. 로마 핍박 시대였기 때문에 그래서 생물에 대비해서 이야기를 풀어쓴다. 본문에서 사람을 뜻하는 생물을 통해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1.사람의 본분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6절 4생물 앞뒤에 눈 가득하다. 투병한 유리가 바다가 나오는데 이 바다는 물두멍 제사장 손 씻는 곳과 비슷하다. 바다라고 가리키는데 궁창의 형상을 나타내는 심히 두려운데 유리 바다가있다고 한다. 창세기 1장 7절 궁창의 물 하나님의 창조를 연상 시킨다. 아주 큰 바다 보좌와 생물 사이에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리가 있다.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리가 있는것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보좌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요동 함이 없는데 고요하다고 한다. 지난 번에 하늘 보좌에 하늘 문이 열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곳에 번개와 뇌성이 있는데 6절에 나타나는 곳에는 수정과 유리 바다가 있다고 한다. 그 바다는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번개와 뇌성을 주기도 하시지만 수정 유리 바다 같이 조용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사건앞에서도 수정바다처럼 고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오히려 요동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악을 바다에 씻어내어 유리바다의 고요함으로 거룩하게 나와야 한다.우리는 고난 속에서 왜 요동치나?이러한 고난 속에서 수정 유리 바다 같은 곳에서 자신의 악 분노 미움을 씻어야 한다. 이렇게 씻는 것을 할 줄 아는 모델이 필요 하다. 돌아 보게 하는 역활 자신을 돌아 보려면 앞 뒤 눈 통찰력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이 거룩해서 볼 수 없어서 모세도 수건을 쓴다. 너무 거룩하면 감당이 안 된다. 감당이 안되는것이 무슨 뜻인가? 손녀딸의 뇌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우리집에 있어야 하는 일이고 이일로 기도 해야 한다는 담대한 모습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감당이 안된다. 목사님도 젊어서 남편이 죽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믿음이 너무 좋으면 저런 일이 온다고 했다고 한다. 요동 하지 않는다. 요동쳐야 할 때 요동 치지 않으니 두렵게 느껴진다. 뇌성과 번개도 무섭지만 고요한 수정 바다도 무섭다. 이거 저거 달라고 울고 불고 하지 말아야 한다. 감량이 안되서 주시지 않는것이다. 얼마든지 유리 바다 처럼 고요 하게 하실 수 있는 그곳에서 나를 돌아 봐서 두려움 악을 씻고 거룩하게 나오라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 번개 뇌성에 요동 치나 번개의 사건에 수정 유리 바다와같은 고요함으로 주님을 신뢰 해야 한다.
2.사람의 본분은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40가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여러 가지 얼굴이 나오는데사자, 송아지, 사람 얼굴, 독수리 같은 4생물인데 날개와 눈이 가득하다고 한다. 에스겔 1장 5절 4생물 형상이 이러하다. 이 얼굴이 많은 생물이 사람의 형사이라고 한다. 에스겔도 바벨론 시대 때 성도라는 말을 쓸 수가 없어서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한다. 그래서 하늘에서 하나님을 보이시는데 사람을 형상을 보이시는데 미가서 6장 8절 내게 보이시는데 내가 구하는 것을 공의 겸손 행하는 것 우리가 이것이 내 생물의 인자 사랑 공의 사랑 하나님의 겸손으로 섬기는것이라고 하신다.이것을 4복음서에 비추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나열하여서 알레고리 같은 풍유적으로 해석 하기도 하는데 복음을 전할 때 사자 처럼 용감하고 소처럼 인내 하고 사람처럼 지혜 롭고 독수리 처럼 민첩하게 모든 것을 얼굴을 책임지고 성실하게 균형 잡힌 얼굴을 보여야 한다고 합니다. 핍박받을때 주눅 들지 않고 민첩하게 주님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에스겔 1장 5절과 미가서 6장 8에서 네 생물의 본분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라 라 했다. 결국 복음을 전할 때 사자처럼 용감하고 소처럼 인내하고 사람처럼 지혜롭고 독수리처럼 민첩하게 하여 균형잡힌 모습으로 성도로서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핍박으로 고난 중에 있지만 하늘 보좌를 바라봄으로 주눅들지 말고 담대하게 섬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내 인생이 해석되어서 내 사명을 깨달을 때 얼굴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아무리 잘 나갈 지라도 하나님 없으면 얼굴의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것이다.
3.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는 없다.
6절과 8절에 4생물에 눈이 가득하고 각각 6날개가 달려있다고 했는데 8절에도 눈이 가득하다.
6날개 가진다. 이사야 6장 2절에 나오는 스랍의 모습도 날개가 여섯이 있어 위의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자기 영광 취하지 말고 겸손하게 가라는 것이다. 6날개가 둘이서 연합해서 연결된다. 책임 져야 겸손하게 가려야 한다. 영광을 얼굴로 나타내지 않고 발은 근면 성실함 생색을 가리운다. 그리고 나머지 날개 두개로만 난다. 눈이 가득한 것은 나의 모습을 숨을 수가 없다. 눈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살피고 통찰력을 가지고 보좌하는 것이다. 내가 가리고 있어도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기에 자기 얼굴에 책임도 지지만 가리고 가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책임져야 하는데 가리우며 나가는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그렇게 할 때 통찰력을 주셔서 ~ 몰랐네! 가 줄어들게 된다.
착한 것 믿음 혼동 하지 말아야 한다. 착한것이 아니라 분량이 눈이 없어서 안보이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눈이 있는데 욕심때문에 분별 못 하는것이다. 하늘 보좌가 열려 있는데 was opened 인데 사기 당하는 것은 내 앞뒤에 달려 있는 여러가지 하나님의 눈을 써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통찰력있게 보고 속고 속은 것이 다 들어난다. 하나님 앞에 숨길 자가 없다. 성령을 받으면 안과 주위의 눈으로 통찰력이 생기게 되고 언젠가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4. 쉬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여섯 날개와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고 외치는 것 과 같다. 나는 당신과 구별 되었어 자신을 돌아 보는 것 요동치는 것 아니라 책임지고 용감하고 인내하고 지혜 롭고 민첩 한 것 구별 되게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것이 성도의 인생이다.나는 하나님을 경배 하는가 우상을 경배하는가? 돈, 사람 우상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경배를 짐승과 우상에게 하면 안식이 없다. 그렇게 외치면 바로 그 뒷 구절에 전능 하신 이요 전능한 하나님 능력이 임한다. 전능한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행복이 찾아 온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 야 하는데Westminster 목사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겁게 하는 것이 사람의 제 1 목적이여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목적이다. 내가 영화롭게 해서 영화로운것이 하나님이 우서이 되는 삶이 되는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이타적인 생각을 조롱한다. Humanist들은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고 노예가 아니라면서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의존적은 존재이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목적이 되고 최고의 이타적인 일이라고 해도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것 정도인데 이것으로 인류 전체에 유익을 줄 수가 없다. 세상 사람은 믿는 사람을 자주성, 독립성이 결여된 사람이라 조롱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삶에서 하나님 영화롭게 해 드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사람의 본분은 자기 면류관을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24 장로들이 주님앞에 엎드려 흰온과 면류관을 던진다. 내 노력으로 안되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면류관인다. 세상적으로 잘 되는 인생을 살았는데 구원의 면류관이 내힘으로 안되는 것을 알았다. 폴리 갑 안디바는 순교 하면서도 존귀를 돌리는데 내가 죄인인데 영광을 취할 것이 없다. 이사야 6장 5절에도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고 이사야가 고백한다.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그러한 고백이다. 그것이 첫 고백이다. 죄인이 된다. 실체를 내려 둬야 한다. 나는 죄인이다. 세상사람을 그렇게 하는 것 제일 싫어 한다.
최고의 면류관은 구원의 면류관인데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기에 주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게 되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아무 영광도 취할 수가 없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죄인인 자기의 실체를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할 때 사람의 본분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로마황제보다 더 높은 하늘보좌를 보여 주시면서 구원과 심판은 마땅히 될 일이니 고난 중에 잘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수종들고 가되 자기 면류관은 던지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신다.
기도제목
김희정 성도로써 얼굴에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조은우 나를 돌아 보고 얼굴에 책임지고 주님께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수정 유리 바다 같은 목장에서 나의 모습 회개 하면 갈 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서지연 영육 건강 할 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