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1 주일설교]
제목 : 내가 너를 아노라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절 ~ 7절
설교 : 김양재 담임목사님
어릴 때의 친구가 찾아와 너를 안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두 반응이 공존할 수 있다. 너무 좋을 수도 있고 나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싫어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죄를 짓고 고생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 오셔도 이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를 아신다고 하신다. 주께서 편지를 하신다고 하신다. 죽으신 예수님이 편지를 하신다고 하실 때 두렵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주님은 왜 편지를 쓰신다고 하실까요? 책망도 하시지만 위로도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에 있음에도 로마의 식민지 권에서 자치령이 내려져 있는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는 아데네 신전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신전 때문에 그 지방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신전 때문이 아니다. 신은 사람이 세울 수 없는 것이라고 사도행전에도 나와있다. 그것을 알게 한 바울 일행을 그 지방 사람들은 죽이려고 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즉 핍박과 고난 가운데 세워진 교회인 것이다.
전도를 하려면 생명을 내 놓아야 할 때가 있다. 브리스길라, 아골라, 사도요한 등 대단한 교회 목회자들이 여기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성공한 교회이며 목회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를 엄청나게 생각을 하였는데, 설립 후 40년이 지나 복음보다 전통을 더 우선시 하는 것이 생겼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베드로 성당에 베드로의 신체가 있어서 더 신격화 하는 것 같이 에베소 교회는 아데네 신전을 가지고 장사를 하였다.
오늘 말씀에 촛대 사이에 주님이 다니신다고 하신다. 교회를 다니시는 주님이 에베소의 꼴을 보신 것이다. 주님은 무엇을 아신다고 하십니까?
1. 첫사랑의 행위를 아신다고 합니다.
(2절,3절)
대단한 수고가 에베소 교회에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했다고 하였는데 이처럼 사랑의 수고는 믿음의 역사로 이루어 진다. 믿음 때문에 수고를 하는 것이다.
너무 힘이 들 때 사랑의 수고가 절로 나오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수고가 사역자들의 수고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 교회에도 먼 곳에서 수고를 하고 힘들면서도 수고가 넘치면서 아깝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 고난이나 자식 고난이나 사회에서 고난이 있음에도 수고를 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있다.
수고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니 널 부러져 있다. 선생님들은 내 자식이 산만하니 다른 아이들이 산만한 것을 잘 이해 한다. 근본적으로 겸손함이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 더 대단한 것이다.
우리들 교회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명을 발견하면 인내로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영혼 구원이 되는 것이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 이다
그러나 아무 것에나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악한 것에는 인내가 있어서는 안된다. 인내를 하지만 용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주님은 악한 것을 용납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식이나 도박 등이 그러하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중 대다수는 기업을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 단기 판매로 이득을 얻기 위해서 한다.
주식으로 내가 얻게 되면 잃게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의리가 있는 사람은 주식에서 돈을 벌 수 없다. 주식은 의리가없다.
한국의 이단 중에 자칭 사도라 하면서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성이 있어서 아무말이나 다 믿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거짓된 신앙은 조금만 들여다 보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들 교회에서 돈 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로 가난한 자를 왜 도와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돈 문제로 시끄러운 교회들을 비판한다.
신천지가 들어와 불신자를 전도하지 않고 우리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공략하기도 한다. 윤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짓을 한다.
거짓된 사도들을 분별하는 것은 말씀에 입각을 해야 할 수 있다.
(3절)
에베소 교회에 핍박이 전대미문으로 찾아 옵니다.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지 않았지만 황지를 숭배하지 않으면 고난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인생을 살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견딘다는 것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 교회에서 부자가, 사회적인 엘리트가 있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견디는 것을 자랑하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부러워 하여야 한다. 즉 거짓된 것을 분별해내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첫사랑을 버린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4절)
책망은 버렸다 라는 한 단어로 사랑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내와 수고와 모든 것을 한마디 사랑을 버렸다고 표현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에서 비롯하셨는데 우리가 사랑을 버렸다고 하신다.
사랑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것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말만 듣고 외형만 보고 그 사람 없이는 못 살 것 같다고 생기는 감정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노력이 없이는 자연 현상으로 유지되는 것은 없다.
남자가 나중에는 첫사랑을 찾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집착을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누구나 처음 사랑은 다 버린다. 부모도 자식을 사랑하여 수고를 하지만 자식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면 내가 잘못 살았다고 하면서 사랑을 버린다. 그것은 대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대가를 받지 못하니 그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렸다고 말을 하는 것이 있다. 부모들의 ‘내가 헛 살았다’라고 하는 말은 대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결국 생색만 넘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이나 행위가 나쁜 사람을 판단한다. 자신은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도 화한다. 판단하는 것은 똑같이 죄를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판단은 과시를 하고 싶어 하기에 나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나야 말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할 자이다.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죄 짓는 것에 들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거리낌이 있겠나?
예로 어떤 이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 천사가 들어갈 만한 이유를 대라고 할 때 자기가 한 일을 일일히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들어갈 수 있는 점수가 천점이었는데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한 것으로, 남을 도운 것으로 여러 일을 말해도 몇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만한 일을 한 것이 없다고 회개를 하였는데 그때 천점이 채워졌다고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고 한 것이 많다고 생각되는 메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이것을 잃어버린다.
하나님은 아신다고 하신다.. 우리의 약점을 다 아신다고 하신다. 믿음을 아신다고 하신다. 전도를 시킨 다음 잘 돌보고 있는지, 헌금을 잘 하는지, 십일조를 깍아 먹고 있는지, 자녀를 사랑하는지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이 정확하게 아신다고 하신다.
사람은 누군가가 내 모든 사정을 안다고 생각을 하면 부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이 다 아시는 것, 즉 축복을 받으면서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핍박의 시간을 허락하시어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시고 핍박속에서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신다. 고난 받는 입장에서 너무도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이 다 이시기 때문이다.
3.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5절)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시면서 경고를 쎄게 하신다. 처음의 수고와 열정이 다 없어지고 자신들의 기쁨이 다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모태신앙인들 중 처음행위 이후 그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환란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내 속에 사랑이 식은 것을 무서워 해야 한다.
식는 것이 오래가면 예수를 잘 믿는 부모가 있어도 주님은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셨다.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철저한 자기의 오픈과 죄 고백을 통해 촛대가 옮겨 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흉한 과거라고 해서 멀리하지 말고 더 형편 없던 자신의 모습에 다가오신 주님의 모습을 느끼는 것을 통해 얼마나 자신이 육적이었는지 이전과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달랐는지 솔직하게 고백을 하였다.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찬양고백이고 자신의 심판 고백이며 하나님께 재평가를 받겠다는 고백이었다.
우리들 교회는 날마다 회개를 하고 죄 고백을 하고 자기 오픈하는 것을 강조한다.. 내가 오픈할 것이 죄 밖에 없음을 알고 첫사랑의 회복을 위해서 오픈을 하라고 한다.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홀로 니골라 당에서 믿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을 보지만 은혜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내가 성경이 읽어지지 않는다고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을 하여야 한다. 이 고백을 통해 문제의 해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믿음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고백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6절)
니골라 당은 초대 교회에 일곱 집사중 한사람으로 이단집단으로 육은 더럽다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육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강조를 하였다. 에베소 교회는 비록 첫사랑을 잃어버렸지만 니골라 당은 미워했다. 첫사랑을 잃어버려도 가능성은 있다.
(7절)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다. 성령에 의해 준비된 귀만이 이기는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에베소 교회의 영적 교만은 풀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비판의 칼날만 세우는 것이 영적 교만이다. 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죄를 통해 구원의 길이 생기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슬픔의 길만이 슬픔의 길을 해결해 준다고 하신다. 얼마나 교만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오늘 주님은 내가 너를 아노라고 하신다. 다 아신다고 하신다. 그 가운데 우리가 진정한 죄고백과 자기 오픈으로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회개를 하고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한다.
장소: 교회 3층 식당
참석자: 이재웅, 정율, 정의현, 김성필, 고재홍, 정현수, 황태훈
나눔: 오랜만에 진지하게 나눔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의 첫사랑에대해 그리고 본인들의 근간에 대해 좋은 시간이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