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요약
어렸을 때 친구가 찾아와서 “내가 너를 알아”라고 하면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두려움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두 반응이 공존한다. 우리는 다 죄를 짓고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2장 1~7절까지 에베소 교회를 아신다고 한다.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에베소 교회를 안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에베소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아봐야 한다. 주님께서는 오늘 특별히 편지하신다고 했다.
옛날에 <편지>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남편이 암으로 죽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도 계속 남편 이름으로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 너무 기쁘면서도 죽은 사람이 편지를 보내니까 굉장히 두렵다. 오늘 본문과 똑같이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됐는데‘예수님이 편지하노라’라고 하니 무섭고도 두렵고도 또 위로도 되었을 것 같다. 사랑의 편지이다. 오늘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려고 이 편지를 쓰셨지만 그 뒤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의 편지 인줄 믿는다.
그럼 이제 에베소교회에 왜 이런 편지를 썼는지 알아보자. 로마의 굉장한 핍박 가운데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준다. 책망과 위로의 편지이다. 에베소교회에게는 책망의 성격이 강하지만 네 고난 가운데 네가 왜 이런 고난을 받는지 생각을 해보라고 하신다.
첫째,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의 행위를 안다고 하신다.
책망을 하기 전에는 얼마나 칭찬을 많이 하시는지 모른다. 책망 하나를 하려면 칭찬을 열 개를 해야 되는 것이다.
‘에베소 너의 첫사랑의 행위를 안다! 너의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칭찬하신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대단한 수고가 에베소에 있었다. 데살로니가 1장에 너희 믿음에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했다고 했다. 사랑의 수고는 믿음의 역사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믿음 때문에 내가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데 나 같은 것을 구해주신 예수님 때문에 사랑의 수고를 하게 된다. 사랑하면 수고가 저절로 오게 된다.
어떤 수고인가. 은장색 아데미가 우상이라 은 5만을 불사르는 수고를 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이 것은 믿음의 역사이다. 내가 너무너무 힘들 때, 핍박이 올 때는 저절로 사랑의 수고가 나온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거기서 사명을 발견하고 나중까지 견디면 누가복음 21장 19절에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했으므로 내가 수고하고 인내할 때 영혼 구원이 된다. 결국 나한테 좋은 것이다. 모든 힘든 식구들 때문에 우리의 영혼 구원이 이루어져 간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다 인내하면 안된다. 도박, 이단, 거짓과 사기는 안된다고 이야기해야 된다. 악한 사람들을 용납지 아니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죄를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3절에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는 그때 도미티아노스 황제 숭배 때문에 전대미문의 핍박이 왔는데 여기는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지 아니하고 자치령이 내려진 곳이라 황제를 숭배하면 아무 고난이 없는 것이다.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데 왜 황제를 숭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저히 황제를 숭배할 수 없으니 고난이 너무너무 극심했다. 그에 대한 핍박을 잘 견디고 인내를 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세상적으로도 끝까지 참으면 뭔가 결실이 있다. 일생을 살면서 견딘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 참을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이 자리까지 서게 되었다. ‘견딘다’는 것은 치사한 일도 많고 육적, 영적, 정신적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오늘 이렇게 칭찬을 해주신다.
우리들교회가 자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교회는 견딘 것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도 견딘 것을 자랑하고, 견딘 것을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견디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게 된다. 수고에는 인내가 따르고, 인내하게 되면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게 되고, 그러면 거짓 사도들을 분별해내고, 거짓된 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창찬을 받다가 ‘그러나’ 의 교회가 된 것이다.
둘째, 첫사랑을 버린 것을 아신다고 하신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책망은 딱! 한단어로 하신다. 다른 이야기 안하시고 버렸다고 하신다. 그 모든 수고와 인내와 악한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사랑을 버렸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수고할 수 있지만 사랑이 밑바탕되지 않으면 이제 우리는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말만이 아니라 진실로 ‘저 사람 없이는 내가 못 살 것 같다’고 느끼는 이런 순간이 확실히 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18개월 간다고 알고 있다. 호르몬이 18개월 나온다. 특별한 처방이 없이 자연 현상으로 이 사랑이 이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까 누구나 처음 사랑은 다 버린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도 없다고 한다.
주의 사랑이 아닌 것은 나중에 다 헛살았다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정의감이 강해서 이단을 척결을 하고 있다. 은을 5만을 버리고 믿었으니까 예수님께도 칭찬을 받았다. 다른 사람한테 ‘너는 은5만을 버린 나를 모를 거야~ 너는 버린 게 뭐가 있어~?’ 이렇게 되니 비판하는 수준이 사도바울과 요한을 부르짖어 가면서 하나님 수준이 되었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가 있게 되니까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죄를 지은 자나 행위가 나쁜 자 판단하는 자나 똑같이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다고 로마서에 있다. 내가 옳은 말로 누군가를 판단 할 때는 자기는 옳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는가.
여러분들, 하나님은 여러분의 전부를 정확하게 아신다. 얼마나 잘 믿는지, 얼마나 가짜로 믿는지. 약점도 아시고 장점도 아신다. 예배 시간에 일찍 나오는지, 늦게 나오는지 다 아신다. 큐티를 하는지, 안하는지, 목장 예배를 즐거워하는지, 억지로 하는지, 아까워하는지 다 아신다.
행위를 아시고, 말을 아시고, 믿음을 아신다.
그런데 회복할 방법을 주신다.
셋째, 회개하여 첫사랑을 회복해라고 하신다.
회개하여 첫사랑의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다.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이 에베소 교회를 사랑하셔서 전대미문의 도미티아누스 박해를 허락하셨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회개 하라고 하신다. 그 제일 무서운 것은 내 속에서 사랑이 식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식는 것이 오래가고, 식는 것이 오래가다보면 세상으로 완전히 가버린 사람도 있다. 촛대를 옮기리라 경고를 하셨다. 아무리 인정받는 것 같아도 촛대를 옮기시면 막을 자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를 하는 것이 정말 회개하는 방법일까?
어거스틴의 고백론을 보면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철저한 자기 오픈과 죄의 고백’이라고 한다. 어거스틴 시대 박해 이후의 크리스천들은 다 자기의 개인적인 죄와 의심 등 그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함으로 교회 공동체에 의해서 검증을 받았다. 어거스틴도 이런 관례를 따라서 흉한 과거라고 해서 멀리하고 덮어버리고 망각해버리지 아니하고,도리어 형편 없던 자신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오신 주님의 모습을 느꼈다고 한다. 형편 없는 내 모습- 얼마나 육적이었는지 이전과 지금의 모습을 아주 솔직하게 다 고백을 했다. 하나님 앞에서와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앞에서 죄의 고백과 믿음의 고백, 그리고 하나님 찬양의 고백이 포함된 자기 심판적 고백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발가벗기고 진실된 규범의 잣대로 하나님께 재평가 받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계속 더듬었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들교회가 날마다 부르짖는 회개이다.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죄 고백과 자기 오픈을 하라는 것이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그냥 이 공동체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6절에 그래도 칭찬할 만한 게 있다고 한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당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니골라로부터 비롯되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이단 집단인데 ‘은혜와 복음의 시대가 도래 했으니까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육과 물질 세계는 더러운 것이니까 영혼 구원과 상관없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쾌락적으로 살아도 된다.’ 이것이 니골라당의 주장이다. 이 에베소 사람들한테는 너무 매력적인 원리 아닌가. 그런데다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니골라로부터 시작이 되었으니까 말도 못하게 위력을 떨쳤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비록 첫사랑은 잃어버려도 니골라당은 미워한다. 이러니까 에베소교회 사람들을 실컷 책망을 하면서도 가능성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이 모든 얘기를 귀가 있어야 듣는다. 성령에 의해서 준비된 귀만이 이 설교를 알아듣는다.
이 에베소 교인의 문제는 ‘영적 교만’인 것이다. 영적 교만은 풀 수가 없다. 늘 선악의 문제로 보고, 옳고 그름으로 따진다. 이 비판의 칼날만 갖다 대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그것을 생명의 문제로 보고, ‘나를, 우리 집 구원을 위해 수고를 했구나.’ 이렇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야, 너희는 이제 옳고 그른 것 그만 따지고 이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해석을 해라.’ 이것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처방인 줄을 믿는다.
교만한데 어떻게 생명이 탄생되겠나? 열매가 없다. 그래서 너희에게 고난이 왔다는 것이다. 슬픔의 길만이 슬픔 없는 길로 인도해준다. 교만은 슬픔이다. 그런데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슬픔의 길을 허락하셔서 교만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2. 기도제목
원영
1. 함께 일 할 충성된 일꾼을 보내주시길 기도해주세요
2. 저 또한 충성된 일꾼이 되게 기도해주세요
3.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모든 일 가운데서 첫사랑을 회복하는 회개의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지민
1. 건강이 속히 회복되길
2. 여러 가지 활동들에 기름부어 주시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마음 주시길
3. 부모님과 동생이 구원 받을 수 있길
서연
1. 훈련의 광야가운데 감사함으로 견뎌낼 수 있도록
2. 가족구원...동생이 예배를 회복할 수 있도록.
3. 일터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4. 사명을 다시 세우고 인도하심 잘 따라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