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23_일3_송민창목사님_내입에주신말씀_민231-12
[주일예배 설교]
지난 주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해주셔가지고 좋으셨죠? 모습만 봐도 너무 기쁘더라구요. 왜 그 다음 주에 제가 설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처음엔. 제가 지난 주 시작하면서 악몽에 시달렸어요. 하루는 연쇄살인범이 저를 계속 쫓아다니는 거에요. 그 다음 날은 밤새도록 귀신이 저를 계속 쫓아다니는 거에요. 제가 배를 내놓고 자서. 살다보면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오늘 발락과 발람에 관한 본문인데.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신 말씀만 전하면 되는데 우리는 우리 생각을 꼭 더하고 싶어요. 하나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여러분들 주무시면 저처럼 악몽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발람을 선지자라고도 하고요. 마술사, 복술가, 술사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가 발람이 분명히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방법이 어땠냐면 딱 이방신을 섬기고 있는 방법으로.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불렀다고 23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하니깐.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하나님은 그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끝까지. 자기들도 저주를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럴 수 있다는 거죠. 말씀과는 상관없이 축복이 축복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해야 되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게 임한 말씀이 진짜 내게 임한 말씀이 되기 위해서.
1. 나를 위해 제단을 쌓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1,2,3절
이 모압 왕 발락이. 그 전쟁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모리왕 시혼의 군대. 어떻게 자기들도 두려워하던 이런 나라들이 이러한 일을 이스라엘 나라에게 당할 수가 있는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 발락과 발람은 이것이 시험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수 많은 인생의 대단한 간증과 말씀들을 해주셨어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구나, 저분들이.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런 대단한 간증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분노가 나고 생색이 나고 시험거리가 된다면. 발람도 이것을 하나님이 막으시는 줄을 알았어요. 그런데. 끊임없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나귀를 타고 떠났어요. 나귀가 길을 벗어나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나귀는 도리어 사람의 말을 하며 발람에게 따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언가 막으시는 일이 있죠? 내 인생에 계속해서 하나님이 막으시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내 인생에 분명히 하나님이 막으시는 일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것이 힘이 드세요? 어떠세요? 예배 드리는 게 힘든 때도 있어요. 근데 우리들교회 같은 공동체에서는 은혜받는 사람이 예배드리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에요. 예배의 결론이 결국은 이타적인 삶에 있는데. 힘든 가족들에게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제단을 쌓는 것으로 간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십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시편127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마치 구멍한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 같이. 스펙을 쌓고 결혼과 일을 통해서 나의 만족과 행복과 풍요를 쌓는데만 정신 팔려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갖고 계신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립니다. 무너질 때가 있더라구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일하셨구나. 깨닫게 돼요. 승리를. 어떤 한 경계점에 이를 때마다. 우리를 영적으로 더 성숙시키시기 위해서.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흔드시는 사건 속에 있다면 우리를 업그레이드 시키심을 믿어야 합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 귀한 영적 유산을 물려주셨는데. 제가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암송도 잘하고. 이런 아이였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정작 중요한 때. 무너지는 사건 앞에서. 우리들교회 와서 저의 신앙을 생각해보니깐 이런 거에요. 옛날 얘기.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저희 부부의 모습. 목사님의 삶이고 저와는 상관 없습니다. 그런 청년들이. 제가 사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결혼해서 참 죄송했다고 찾아오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저저번주 간증하셨던. 지지난주 청년부 출신 집사님 기억하시죠? 혼전임신에 입양까지 한 죄가 있다고. 그런데 저 청년이 청년부 목자까지 섬기고 있다는데서 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제가 놀라움에 거의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제가 그냥 놀랍게 여겼으면은. 놀랍지만은 나랑은 상관없어.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제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던 성경의 지식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하나 나오는 것을 경험했어요. 음란, 간음했던 그 사마리아 여인. 밧세바와 간음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던 다윗. 그런 이야기가 우리들교회의 간증을 통하여서. 마치 제 앞에서 하나님께서 제 앞에 꾸짖어주시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너도 저렇게 죽어 마땅한,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이 아니었냐? 왜냐하면 사실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제가 방황을 하기 시작했어요. 365일 대부분 친구들과 술에 젖어 살았습니다. 음주와 음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성추행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삶이 아니구나. 머리 속에 확 스쳐갔어요. 이렇게 좋은 문화가 있고 세상 쾌락이 있는데 그것을 막아주시는 사건이었다는 것이. 결혼을 해도 제가 정욕으로. 저희 아내가 출산 후에 산후 우울증으로 깊어졌어요. 아내와 몸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저는 그냥 내리치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저의 모습이었다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이 임하는 공동체, 말씀으로 인생을 해석해주는 공동체에 있음에도 불구화고. 친구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와요. 그게 그거야. 너무 익숙해져가지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이 결국은 발락과 발람으로. 엄중히. 그것이 나를 위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에는 전혀 익숙해보이지 않는, 서툴은 모습이 있어요. 3절에. 혹시. 하나님과 제대로 교통을 해본 경험이 없어요. 하나님과 제대로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언약관계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는데. 대속제물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의 죄가 사하여지는 경험을. 그런데 우리는 지지난주 요한계시록 말씀처럼. 때마다 훈련 받으면, 부흥회나 집회 몇 번 참석하면. 그것이 하나님과 만나는데 충분한 경험처럼. 발락처럼 발람처럼 하나님을 이방신을 대하듯이 여기는. 우리들교회에 와서 쪼끔씩 알게 됐어요. 매일매일 말씀을 보는 것이.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의 죄에 대해서 회개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저는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3년 4년 부부목장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신앙의 여정을 겪으신 분들을 경험을 해요. 신혼부부인데. 한 11개월? 이제 막 아이를 낳았어요. 여자 집사님. 대학생 때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 할 정도의 열심이 있으셨던 분이었어요. 결혼이 안 돼서 괴롭잖아요? 그쵸? 나름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이 자매가 기다리지 못하고. 부모님이 소개해주신 남자를 만났어요. 재력이 있는. 급히! 결혼했어요. 만나자마자 몇 개월 안 돼서. 결혼을 해서 잘 살려는. 물론 좋았겠지만. 결혼을 해서 남편이 무시가 되는 거에요. 영적으로 무시가 되고. 외모로 무시가 되고. 남 얘기가 아니에요. 니가 목사가 아니라고. 예. 무시가 되죠. 무시가 되니까.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겁니다. 이 남편 집사님이 아내가 자기를 무시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거에요. 폭언을 하시고 폭력적인. 이 집사님이 목장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때 가족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시잖아요? 큰일나요. 가족은 객관화가 안 돼요. 내 가족을 어디 이 미친 사위가.. ㅎㅎㅎㅎ 친정에 가서 남편을 고발하기 시작하니까.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을 했습니다. 이 결혼 잘못됐다고. 집안 싸움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둘이 별거하고 그 가운데 우리 목장으로 오시게 됐어요. 광야 공동체가 있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말씀으로 끊어줄 수 있는 제사장이 있는 공동체. 모세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넘어갈 수 있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도 알만큼 아는데 어디 젋은 집사가 우리 애들 인생을 책임질 수 있냐고 전화가 왔어요. 저는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밀어붙이면 저는 할 말을 잊어버려요. 하지만. 무수히 받은 공동체의 훈련이 있기 때문에. 맞다고. 저는 책임질 수 없지만. 부모님이 결혼시키시지 않았냐고. 쪼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시라고.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시면 아실 거라고. 예배를 통해서 아내를 먼저 설득시켜주시고, 목장을 통해서 남편을 설득해주셨어요. 이런 부부들 말고도. 우리 청년들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말도 안 통하고 소통도 되지 않는 그런 부모님들이 있어요. 서로 정죄하기 급급할 때는 정말 보이지 않던. 모든 패턴이 다 똑같애요. 일만 성도의 패턴이 다 똑같아요. 말씀이 들린 이 여자 집사님이 자신의 죄가 깨달아졌어요. 불신결혼. 내가 선택한 결혼이 불신결혼의 결론이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섬기게 되고 남편이 목장을 나오고 예배를 나오고 양육을 받게 되셨어요. 결혼이란 부부란 뭔지도 몰랐는데 이분에게 성경적 가치관이 생기게 되셨어요. 카톡 프로필을 보면은. 애 사진이 있는데 둘이 같이 찍은 부부사진은 하나도 없어요. 얼마 전에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저희 이제 이혼얘기 안 하고 같이 잘 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회 잘 정착해서 교회 잘 나가고 지금 그런 얘기 절대 안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구요. 이분들이 특히 위로 받으신 게. 목사도. 자기 마누라 머리 때리는구나. 목사도 목장에서 참 이상하게 싸우는구나. 그게 참 이해가 되었데요. 우리의 맹목적인 제단을 쌓다보면은 인생이 맹목적이 되어버려요. 무엇을 위해 결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이미 늦게 된 것은. 하나님은요. 우리 인생의 목적, 결혼의 목적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수 많은 대안 중 하나가 아니세요. 유일한 이유를 주실 수 있는. 바알을 섬기는 우상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
적용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흔드시는 사건, 그 흔드시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흔드시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락과 발람의 가치관으로 예배드리시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말씀과 간증을 들으면서) 두려움과 분노와 시험꺼리를 삼고 계십니까? 나를 막아주시는 나귀가 무시가 되어서 때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2. 자신의 수고와 공로를 자랑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4,5,6절
맹목적으로 예배하고 있는 발락과 발람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우리 인생을 해석해주시는 말씀이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내가,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발락이 발람을 초빙하는 것은. 이 사람이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브올의 아들 발람, 그는 선견자였고. 그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 실존하는. 발람이 어땠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유명하고 명성이 있는 사람인데. 내가 능력을 보여줘야 된다. 발락이 이스라엘 그 무서운 대군들을 이겨낸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고. 중요한 것은 믿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이 이들에겐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믿는 게 중요한 것인데. 정말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포기해야 될 순간에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악이. 악이라는 것은 우리의 죄된 본성 중에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잔느 귀용. 믿음 안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의 뜻을 꺾는 것이고. 그것이 믿음 안에서 포기하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잊게 되고. 우리는 과거의 후회와 상처들을. 현재를 나의 것으로 삼고 싶은 욕망이 가득가득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성향이라는 거에요. 40대 중반의 한 남자 집사님이 오셨어요. 세균성 감염으로. 목장에 오시기는 하는데 집을 찾아가지는 못하세요. 꾸준히 목장을 빠지지 않고 나오셨어요. 항상 하시는 말씀이. 천벌을 받았다고. 1년 동안 병원에 누워가지고 뼈 밖에 안 남았다고. 그런데. 가족들이 아내가 자녀가 떠나는 그런 위기들을 겪으셨어요. 그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깨닫고 의지하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자기 어떤 차 있었는지 기억도 안난다고. 차 여러 대 있었다고. 자기의 시계가 우리 나라에서 한 대 밖에 없었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셨어요. 기억력도 돌아오시고. 근데 건강이 회복되시니까. 사업을 회복해야겠다고 하시면서 공동체를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열심으로 드리는 제사. 포기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결국은 진노에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믿고 이겨내는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큐티본문이 나귀보다 못한 발람. 왜 그런 본문을 내게 결혼 말씀으로 주셨을까? 우리 부부가 이혼했을 거라고. 하아. 왜 저럴까. 근데 이혼을 생각하면은. 제가 이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이 쥐똥만큼 있었다는 거에요. 결혼이든 사역이든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순간순간들이 저에게 찾아올 때마다. 아,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구나. 저는 작년에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을 하루에 열 두 알. 열 두 알을 먹다가 보니깐. 아무리 내가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내가 아무리 애써도 우리 청년들이 실족할 수 있고. 정말 터질 상황은 터지게 되고. 그런 자책감 가운데 불안장애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어떤 마음이 있었냐면은. 하나님. 제가 그래도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한다고. 목사로써 제가 불안장애까지 겪는 게 정말 하나님 뜻입니까. 목사를 한다면 불안하지 않을까. 저는 원래 불안한 사람이었어요. 과거 30년 전, 40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항상 불안한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면은. 뛰쳐 나가서 숨어있었어요. 교회에서. 교회는 저한테 피난처가 되어 주었어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는 순간순간들이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순간들이었습니다. 모든 청년들의 생명이 하나님께 맡겨진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겪는 청년들을 체휼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어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안 되냐고. 발락의 기도가 그런 기도입니다. 근데 발람은 어땠냐면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냐고. 고등기복의 신앙이 바로 발람의 신앙이라고.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 지금 어떠한지. 내 수고와 공로가 어떠한지를. 발람의. 계속 내가 안 오겠다고 하는데 저놈의 모압 왕이 꼬셔가지고. 지금 내가 저주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나는 돈 주면 축복도 하고 저주도 하는 가짜라고. 스스로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채가 그런 것이에요. 나는 잘 되고 저 사람은 잘 안 되게 해달라고. 참된 예배라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여전히 이 정도 했고 이 정도 할 수 있고. 라는 마음이 앞서가는 예배는. 공동체보다 앞서가는 예배고. 그 밑에는 돈과.
두 번째 적용질문입니다. 지금 내가 흔들리고 있는 사건 가운데 나는 무엇으로 이겨내려고 하고 계십니까? 여전히 내 안에 포기되지 않는 끊지 못하는 나의 쓴뿌리, 과거의 상처와 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내 생색과 공로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에 방해되지는 않습니까?
3. 저주의 말과 행동을 끝까지 피해야 합니다.8,9,10,11,12절
완악하지 그지 없는 발락과 발람입니다. 세 가지 예언의 말씀 중에 첫 번째 말씀입니다. 이거는 그냥.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긍정적인 강조의 의미에서. 홀로. 이들이 뭔가 다른 비범하고 탁월함이 있는 그런 민족이 될 거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얘기하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 마지막까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그 약속.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했던 것처럼 10절에. 그들을 통해서 구원 받을 사람들이 티끌과 같이 될 것이라고. 발람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발람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말만 앞서는 사람이었어요. 입이 둥둥 뜨는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저주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믿음이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포기되어야 될 것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하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제가 쪼끔씩 쪼끔씩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나의 죄와 나의 쓴뿌리가 진정한 원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영성을 떨어뜨릴 것 같은 누군가가 나의 원수가 되고.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거는요. 이스라엘만 망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리려고 했어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계획을 망가뜨리려고 했어요.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되어. 여전히 우리가 저주하는 것이 있어요. 여전히 내가 원수 삼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요. 저는 원수, 라고 할 때 항상 빠뜨리지 않고. 마누라가 원수라고.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그런 나눔을 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우리들교회 나오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셨고. 왜 저분을 우리 목장에 보내주셨을까? 근데 다들 본인이 그런 사람인줄 몰라요. 왜 저 사람을,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을. 이 집사님이. 재채기 나신 분이 갈비뼈가 뿌러지셨어요. 하나만 뿌러진 게 아니라 2개, 4개. 6개의 갈비뼈가 골절되서 숨쉴 때마다 힘들고 삐끗하면. 그 집사님이 그렇게 목장 다니는게 힘드셨는데. 최근에. 아 이 목장에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곳이 나의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지만 우리 집사님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조금씩 조금씩 이 집사님을 우리 목장에 붙여주신 이유가 제 마음 속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내 사역을 막고 있는 내 인생을 막고 있는 나귀 같았어요. 우울증이란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선교도 사역도 발람처럼 맹목적으로 쫓다가. 아직도 니 배우자의 원망이 니 마음 가운데 잊지 아니하냐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끝까지 니 죄를 보고 가라. 망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으로 저주의 말들을 축복의 말로 바꿔야 합니다. 여전히 내 원수 같은 가족들. 구원의 사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안다고 하지만. 너무 좋은 것을 달라고. 너무 기복적인 기도가 있기 때문에. 지지난주 수요예배 때 초원님께서. 그래도 우리는 목자 아니냐고. 제 귓가에 몇 주 동안 맴돌았습니다. 그래도 목자. 그래도 목자 아니냐. 사람 살리라고. 공동체 기도 받고. 하나님은 저 하나로.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 되라고 불러주신 게 아니라고. 성공하고 대단한 사람 되라고 불러주신 게 아니라고 합니다. 교회를 오라고 오라고 해도 안 오다가. 왜 저런 사람이 내 처남일까. 그런데 제가 우리들교회 부목사로써. 저희 부모님이 빠지지 않고 저희 담임 목사님 설교를 들으세요. 아마 이 설교도 들으실 거에요. 그냥 한 명의 가족, 한 명의 지체를. 내 양을 돌보는 것처럼 돌봐주면 안 되겠냐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원을 위해서 서로 묶여가라고. 너무 그것이. 결혼이 엄중한 일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야 되는 엄중한 일이기 때문에. 육신이 무너지고 암으로. 목사님을 보십시요. 나와는 상관없다고 하기에는. 내 삶의 전 인격을 사용해서.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도 이것을.
마지막 적용질문 드리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전히 끊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저주의 생각과 말은 무엇입니까? 나의 가족과 지체들을 붙여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지 나누어보시고.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의 저주의 말을.
[목자님의 목장 스케치]
우리 목장으로 새로이 78박철 형제가 편성되었습니다. 멀리 전주에서 올라온다고 하는데, 목장모임 후 수내 중국집 도삭면 맛집<특히 짬봉>으로 이동해 짧지만 환영식을 가졌습니다. 멀리서 오셔서 역시나 열정적인 형제였습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