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주님을 향한 고백과 사랑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베드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한 후, 절망감, 실패감, 비참함, 수치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를 너무 잘 아시는 주님은 끝내 베드로를 회복시켜 내신다.
오늘은 이 회복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첫째, 회복은 철저한 실패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이 먼저 실패의 장소로 찾아오신다. 베드로는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을 옆에서 지켜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하며 부인했다는 절망감에 마음이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런데 주님이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자신이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3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내가 그동안 주제파악 못하고 설쳤네. 나는 다시 물고기 잡으러 돌아가려네.’
그리고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3년 전 그날처럼 또 다시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지. 난 정말 되는 일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바로 때, 주님이 실패의 장소로 먼저 찾아오셨다.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다정하게 이름도 불러주신다.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추워 불 쬐는 가운데 부인하는 베드로를 멀리서 바라보셨던 주님은 추운 아침 디베랴 호수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를 위해 숯불에 고기를 구워 함께 밥을 먹이셨다. 그리고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름을 불러주시며 마음을 만져 주신다. 평소엔 베드로를 반석이라는 뜻의 애칭으로 불러주셨다. 만약 베드로가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이 때에 ‘반석’이라고 불러주셨다면 베드로는 정죄감에 더 비참해졌을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는 그 옛날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불러주신 이름이다. 순간 주님과의 추억이 영화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체면도 세워주신다. 수제자로서 예수님을 3번 저주, 맹세, 부인했으니 다른 제자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물으신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이렇게 다른 제자들 앞에서 수제자 베드로의 구겨진 체면도 세워주신 것이다. 너무 세밀하고 좋으신 주님이다.
[적용질문] 나의 처절한 실패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베드로처럼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던 모습은 무엇입니까?
둘째, 회복은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15-17절을 자세히 보면 주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기에 다시 세 번 물으시며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고, 베드로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아신다고 세 번 대답했다.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한글 성경은 다 똑같이 ‘사랑’인데 원어인 헬라어로 보면, 주님이 앞의 두 번은 ‘아가페의 사랑(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베드로는 다 자기는 “십자가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제 사랑은 너무 누추합니다. 제 사랑은 친구의 사랑(필레오, friendship) 정도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골고다 언덕과 디베랴 호수가 있는 사람(인생)은 결코 망할 수 없다고 한다. 디베랴 호수에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서 조금씩 회복시켜 가고 있는 장면이다. 너무 엄청난 장면이다. 베드로는 배신자, 사랑의 실패자이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계속해서 필레오의 사랑 정도로 사랑한다고 대답했는데 .. 너무나도 여기서 놀라운 것은 마지막에 주님이 ‘필레오’의 사랑으로 내려오셨다.
“그럼 베드로야, 네가 친구의 사랑 필레오의 사랑으로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돌이켜보니 자신이 친구의 우정과 의리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7절에 베드로가 근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근심이 여기서는 ‘슬퍼서 마음에 상처를 입다’라는 헬라어 뜻이 있다. 가슴이 칼로 저미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친구의 사랑도 못했잖아요. 근데 주님이 처절한 실패의 마음, 친구의 사랑도 못한 마음까지도 다 아십니다.’ 라고 고백한다. ‘아시오매’는 ‘야다의 앎’을 뜻한다. 벌거벗고 만나는 것-주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완전히 공유되는 그 인격적인 앎을 뜻한다. “주님, 저를 다 아시지요. 주님은 저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너무 누추한 사람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이 마음도 진심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제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하고나니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그토록 듣고 싶으셨던 말이다.
겉의 베드로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3년 동안 주님이 이것을 이뤄놓으신 것이다.
[적용질문] 주님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사건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셋째, 회복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15.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회복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라고 하신다. 영혼 구원의 대상이 15절에는 ‘어린 양’으로 16-17절에는 그냥 ‘양’으로 나온다. 어린 양과 성숙한 큰 양을 잘 분별해서 그에 맞는 공감과 처방으로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이다. 주님은 형편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어린 양, 성숙한 큰 양을 넘어서 18절에 그 양을 위해 순교하는 사명까지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겸손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능력이 많나, 얼마나 완벽하나 묻지 않으신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겸손’이다.
[적용질문] 주님이 오늘 나에게 내 양을 먹여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넷째, 회복은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참 마음이 뜨거웠다. ‘주님의 양을 먹이겠습니다. 큰 양까지. 사명까지 감당하겠습니다.’ 사명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요한을 보자 그 마음이 식어버린다. 베드로와 요한은 참 너무 달랐다. 베드로는 엄청 급했다. 그래서 주님 일에 늘 앞장서는 축복을 받았지만 실수할 때는 여지없이 사탄의 밥이 되었다. 반면 요한은 너무 신중하다. 말수가 적고 나서기 싫어하는 진중한 성격이었다.
여러분은 베드로 같은가? 요한 같은가?
요한복음에 끝까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만 봐도 얄밉다. 자신을 20절에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또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 23절에서는 ‘그 제자’라고 말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둘 다 주님 지척까지 쫓아갔는데 자기만 걸렸지 않은가. 그러나 요한은 안 걸리지도 않았다. 또 자기만 부인했다. 요한은 부인도 안 했다. 요한이 너무 꼴 보기 싫었을 것 같다. 그런데 자기만 또 순교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한을 끌고 들어간다. “주님, 제는 어떻게 되요? 저 인간은요?” 그런데 물었다가 야단만 맞는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넌 나를 따르라!” 이것이 야단치는 것, 양육 받는 것으로 묵상이 되었다.
베드로는 맨날 야단맞고 혼난다. 회복 시켜주시면서도 야단치신다. 이 것이 사랑이다. 자꾸 딴 데 쳐다보면서 비교하지 말라고 하신다. 순교의 사명이 불타올랐는데 비교의 마음이 들면 금방 마음이 식어버린다. 그래서 23절에서 넌 상관하지 말고 더도 덜도 말고 네게 맡겨준 한 가지 일이나 잘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나 자심이 못 살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살아서 힘들다. 사명도 비교하고 고난도 비교한다. 그렇다고 요한이 장수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을까?
요한은 말년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서신을 썼다. 다른 제자들이 먼저 순교하는 것을 끝까지 살아남아서 다 보았다. 장수하면서 본 것이란 지체들이 모든 고문과 투옥, 핍박당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같이 가야되는데‘ 하는 마음이 더 지옥이었을 것 같다. 사명은 각자 마다 다르다.
24-25.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은 드디어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이 책 저자인 자신이었다고 넌지시 밝힌다. 베드로의 사명이 목양과 순교라면, 자신의 사명은 예수가 행하신 일들을 증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요한이 이 기록의 사명을 잘 감당해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베드로의 처절한 실패와 회복의 과정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참 요한을 닮고 싶다.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이런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의 존재는 감추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피날레에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로 부각시킨다. 너무 겸손하다. 베드로가 수제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밝힌다. 베드로를 베드로되게 한 것이 바로 요한이다.
[적용질문] 나는 베드로 과인가요, 요한 과인가요. 질투하나요 질투받나요. 내가 질투하는 것은 뭔가요? 잘 묻고, 잘 듣고 있습니까? 내가 잘 듣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2. 기도제목
장원영
1.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사건이 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허락하신 모든 자리에서 맡기신 사명 감당할 때 잘 묻고 들을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3.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
4.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5.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민선애
1. 건강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2. 민수기랑 함께 가는데 하나님께 계수되는 군사라는 말씀으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3. 아버지 사업을 돕기 시작하는데 말씀으로 여러가지 어려움 이겨낼 수 있도록
류지민
1. 영혼육의 건강을 속히 회복시켜주시길(운동, 음식, 수면 등 주관해주시길)
2.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천한 생각을 물리치고 복음, 나에게 주신 사명, 은사 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길
3. 맡겨주신 업무와 프로젝트를 위해 기도하고 요한의 겸손을 가질 수 있길.
4. 직장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악을 이용하여 사단이 파놓은 함정을 주님 은혜로 메꾸어주시고 은혜의 강물이 넘쳐흐르길
5. 성당 다니는 엄마와 동생이 예수님 십자가 복음을 믿고 교회 나올 수 있길
이화진
1. 말씀 빼먹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도록
2. 미술 수업하는 가운데 마음이 어렵지 않도록
3. 잘 깨달으면서 매일을 보낼 수 있도록
4. 나쁜 마음 생각 가지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