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가 오늘 약하여서
사무엘하 3:21-39
요즘 시국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본문이라 생각해서 다시 한번 하려고 합니다.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오늘은 약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약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십자가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1. 다윗이 약하여서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어디서나 힘듭니다. 기브온 전쟁에서 다윗 쪽이 승리했어도 끈질기게 괴롭혔습니다. 악한 이웃, 불의한 이웃을 이기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사단의 끈질긴 공격이 쉬지 않고 가해집니다.
사울은 자기 삶의 결론으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에 기회주의 간신인 아브넬을 끼고돌았습니다. 사울은 사람 분별이 안 되어서 죽을 때까지 자기를 배반할 아브넬을 믿고 죽었습니다. 믿으면 안 될 사람을 죽을 때까지 믿고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했을 때 남도, 나도 죽을 수 있습니다.
지식을 행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있는데 돌이키는 행함이 없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이 가득해도 자기 죄를 모르는 진짜 무식한 인생이 무엇인지 사울과 아브넬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정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유익인지, 참 띵크를 잘 해야 합니다. 항상 잘 믿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나하고 연관이 안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 환경에서 내가 살아야 하니까 참을 수밖에 없으니까 참았던 것입니다. 내가 참았으니 남들 보고 못 참느냐고 이야기를 쉽게 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의 기회 주의는 어디까지입니까? 욕심이 기회주의에 넘어간 것을 인정합니까?
2. 다윗이 약하여서 신복의 배반을 처리하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이 그 속에 들어갔을 때 평안한 것이지 그 사람이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나의 앞 날을 보장해줄 것 같지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보장해주십니다.
요압의 원수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 평안히 갔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이 왕을 속이려 왔다고 따집니다. 다윗은 신복인 요압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원수인 아브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아브넬이 약속을 지켜서 왔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압은 이해하지 못 하고 아브넬이 나쁜 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속사가 안 깨달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도 오늘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영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이 무섭기에 한 마디도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친척인 요압은 원한이 많고 작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기에 자기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인간론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창립 공신 요압이 다윗의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복으로 있으면서 일을 너무 잘 하면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압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데 누구를 믿고 가겠습니까?
내 발걸음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입니다. 무엇이든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 없기에 겸손하게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면 우리 자녀에게 그대로 내려갑니다. 끊어지지 않고 내려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것이 끊어지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맞습니다.
다윗이 요압을 편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아브넬이 죽고, 요압까지 없으면 통일 왕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요압에게 의지하는 것이 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요압은 야망으로 가득 찼기에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사사로운 원한과 권력욕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힘든 것이 자녀를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것입니다.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권세가 있고 자리가 있을 때 우리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윗의 원수를 요압이 전부 처단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에게 점점 약점을 잡혔습니다.
구속사를 모르면서도 그 똑똑함으로 다윗의 의중을 깨뚫어 보는 요압은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다윗의 지경이 넓어지듯이 내가 힘든 사람이 없다면 요압이고 아브넬입니다. 우리에게 힘든 시험이 오는 것은 우리를 특별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바람피웠을 때 하나가 되었을 때 구속사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가장 가까운 사람이 뒤통수치는 배신을 겪어본 경험이 있습니까? 같이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오늘 내가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아브넬을 위하여 에가를 불렀습니다. 자기의 왕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왕권을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객관적인 상태를 보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하나님께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윗의 강함인데 어떤 지도자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원수에게 기름을 붇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계속 높은 자리에만 있다 보니까 그런 것이 잘 안 됩니다. 목장에서도 목자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마지막 절은 다윗이 오늘 약하여서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항상 어렵습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하니까 오늘이 어렵습니다. 이제 정말 내가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이 다윗의 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정말 생각해봐야 합니다. 교회는 할 일 없는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에 우선순위가 기름 부은 자입니다. 기름 부은 자를 끝까지 일관성 있게 사랑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내가 오늘 약하고 힘들다고 은혜로 밖에 이 고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오늘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하는 것이 최고의 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맺음: 말씀대로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가는 것이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목장 나눔 및 기도제목
나눔질문: 나의 악한 부분은?
전성현: 큐티 꾸준히, 미래에 대한 걱정
한민호: 큐티 꾸준히, 운전면허 한 번에 따고, 크리스마스 안 외롭도록, 신교제 할 수 있도록
박성률: 관계 맺는 것에 대한 걱정 내려놓고 맡길 수 있도록, 약함을 인정할 수 있도록
박예랑: 음란에 대해 기도하고 양육 교사 숙제 성실하게 할 수 있도록
정찬: 음란에 대해 합리화하지 않고 내 약함을 인정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