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주일말씀*
기도에 힘쓰더라(사도행전1:9~15)
교회 사명을이루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서 증인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사명 입니다. 오늘 제자들이 보는데서 올려져가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육신은 한계가 있기에 구름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그럴때 남은 사람이 증인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1. 사명을 위한 기도
이 말씀은 지난시간 1장 8절입니다. 사실오늘 제일 중요한 건 승천교리입니다. 실제 어떻게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동참하는 가를 이해하는 관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곤고하고 가난한이들을 위해 소망을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고 억눌린 자 갇힌 자를 풀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가르쳐야 할 것이 성령이기에 사십일 동안 여기저기 나타나시고 마지막으로 가르치신말씀이 8절이죠. 그렇다면 성령이 왜 임하셔야 하나요? 구원 받기 위해서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하지만 죄에 대해 죽은 성도라 해도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죄와 싸워야합니다. 거듭나고 나서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고 나면 죄의 무게를 느낍니다. 전에는 영으로 죽어서 문둥병처럼 무감각하더니성령이 임하면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애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고 입니다. 거듭나기 죽었다는말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고 거듭난 후 죽었다는 말은 육이 죽었기에 육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거예요. 이때 성령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도우십니다. 단번에성화된 인격이 되는 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 26절에우리가 세 번 나올 만큼 공동체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이라고 하는 프뉴마는 로마서에 34번이 나오는데요, 8장에 21번이나올 만큼 로마서 8장은 성령장이라고 합니다. 피조물이 탄식하고사람이 탄식하는데 그걸 보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육신에 있지 않도록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되라고 탄식하십니다. 탄식은 해산의 고통이라는 뜻이고, 결국 희망의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탄식을 하면 희망의 고통이고, 또 우리를 위해해산의 고통을 해주시는 성령님이 계셔서 우리가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승천은 예수님의성육신과 십자가의 부활의 부속물 정도가 아니에요. 승천은 탄생으로 믿음이 확신된다면 부활을 확신을 가지게되지만 그걸 넘어서 희망을 얻고 변화로 나가게 한다는 거예요. 승천하신 하나님, 곧 통치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승천의 모든 의미 중 가장으뜸은 하나님 보좌 옆에 예수님이 앉으셨기에 모든 이름과 권세 위에 높아지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승천은최악의 실패와 고생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거죠. 내가 믿는 부활하신 주님이내가 보는데 직접 올라가심으로 내가 누릴 영광을 확고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나를지켜 보시면서 나를 닮으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분처럼 보고 말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자 성령을 보내셨고 지금도 보내고 계시며 앞으로도 보내실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통해 사신다는 것이 성령이 나에게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니었다면아무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할 사람이 너무 많은 거에요. 우리자신은 그리스도께서현재 이 땅에서 하고 계신 일에 대한 그냥 메신저일 뿐인 거에요. 표지판일 뿐인 거예요. 내가 뭐가 됐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죠. 육신은 구름에 가리워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근데 가리워 보이지 않게 했을 뿐이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실존의세계로 가신 거예요. 지점에서 살다가 본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시간에서 이제 하나님의 시간으로 그냥 바뀐 거예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거듭난 믿음의 눈으로는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적) 여러분은 증인되기 위해 승천의 영광을 보여주신 주님이 가신 그대로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까?
지금은 안 믿어도 식구들에게 성령님을 기다리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이 땅을 떠날 수 있습니까?
2. 사명을 위한 기도
이 본문의 자세히보다는 정신 없이 열중하여 몰입한 상태로 계속 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만 남은 것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를 경험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니까 일상에서 활력을 상실해버리는 무기력감, 영적인 외로움과 상실감속에 너무나 슬퍼하는 거예요. 이렇게 제자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에 천사들을 통한 책망을 듣게 됩니다. 주님이 명하신 데로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한 준비는 하지 아니하고, 또 주님의 증인으로서 사역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기에 책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양육해 주시고 떠나셨는데,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요. 땅의 부흥만 꿈꾸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오직 하늘만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경건주의로 나가는 거예요. 세속적이거나, 경건적인 것 다 똑같이 잘못입니다. 조금 전에 야단쳤는데.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두셨다고 하는데도 또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제자하고 똑같습니다. 승천은 열한 명의 제자만 보았지만 재림 때는 허다한 증인들의 찬양을 받게 되기 때문에 승천의 영광과 나중에 오실 재림의 영광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고난은 현재의 것입니다. 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주님도 극심한 십자가 고통은 6시간만 당하셨어요.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었지만 2000년 동안 영광을 보이시고 앞으로도 영광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때까지 고난을 당해도 현재의 고난입니다. 그렇게 현재의 고난을 좀 생각하라는 거예요. 생각하고 장차의 영광과 비교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생각과 비교를 거꾸로 하기에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
(적)사명감당의 기도를위해 현재 나의고난에서 남의성공과 비교합니까, 장차의 영광과 비교합니까?
남의 성공과 비교합니까, 장차의 영광과 비교합니까?
아직도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며 자세히 쳐다보고 있는 하늘은 무엇입니까?
다행인 것은제자들 옆에 천사가 있는 거예요. 이 두 천사는 주님이 부활하신 그 무덤에 있었던 그 천사들이었을 거예요. 이 천사들은 막달라 마리아 등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나타나서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자 가운데서찾느냐? 책망했던 천사들이었어요. 이제 하늘로 떠나신 주님을대신하여서 주님의 뜻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택한 자의 곁에는 동역자가 있어서 때마다 책망해주는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 책망해줄 천사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천사들은 제자들을 또 ‘갈릴리 사람들아’ 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사들이 ‘사도들아’ 부르지 않고 ‘갈릴리 사람들아’라고부른 거를 생각해 봐야 돼요. 이 말은 너희는 아직 사도의 자격이 없다, 어부와 세리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내 자신에 억매여 있지 말고 성령이 임하시면 하늘 보좌에서 온 세계를 다스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거예요.그러나 현실에서 갈릴리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갈릴리 출신 너희 제자들에게 이 교만한 곳과 열등감이 있는 곳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그 모든 난관을 넘으라고 사도들에게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런 걸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특정한 감정, 사람, 지역, 민족, 국가를 넘어서 나가야 하는 것이 사명받기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건 진짜 복음만이 바꿔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적) 여러분은 어떤 갈릴리의 열등감 때문에 아직도 사명의 기도를 못하고 있습니까?
그 천한 갈릴리 제자들이 12사도잖아요. 증인이 되어서 열심히 전도를 한 결과 주 166년에 로마 제국 내에는 기독교인의 숫자가 하도 빨리 성장해가지고 벌써 당시에 유대교의 수를 넘어 섰다는 거예요. 기독교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퍼져가는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이 얘기는 한 마디로 삶으로 보였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 초대교회 시절에도 전염병 환자가 있으면 믿는 사람들은 가서 다 빨아주고, 자기가 전염될 것 하나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막 가서 다 도왔다는 거예요. 어떤 종교도 그러지 못했다는 거예요. 한 마디로 삶으로 보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교리서도 없고, 예배당도 없고, 노회장, 총회장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가장 위대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3. 현실을 인식하는 기도
이것은 예루살렘으로돌아오는 기도에요. 감람산은 벳바게와 가까운 곳이었고 벳바게는 베다니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었어요. 감람산과 예루살렘과의 거리는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로 2000규빗(1km 이내)정도 된다는 거예요. 간단하게 말하면아무리 여행을 가도 반드시 안식일을 지키라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승천의 장소는 그래서 안식일에 가기알맞은 감람산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의놀라운 승천을 체험을 하고, 너무나 환상 속에 있으면 어디 딴 데로 가야 되겠는데, 산으로 들로 가야 되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그냥 따라서 제자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요. 우리의 모든 체험과 기쁨의 말씀은 성령받기 전에는 내 예루살렘을 떠나서는안됩니다. 고난도, 영광도 다 내 환경에서 이루어집니다. 지체의 교제와 간증 등을 통해 양육 받으면서 내 사건에서 성령받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기 위해 내 모든 감람산의 승천의 체험은 나의 즐거움과 쾌락보다는 힘들고 어려운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승천의 체험,고난의 체험이 참 다 필요합니다.
(적) 여러분의기도는 예루살렘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는 기도
주님은 원래 12명의 제자들은 다 사도들로 택하셨어요. 사도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둘이 있네요.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이잖아요. 근데 한 유다는 완전 예수님을 배반해서 완전히 저주받았고, 한 유다는 제자로 남았어요. 참으로 이렇게 제자훈련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는 비극이 있던 거예요. 우리는 마지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야 되요. 생명책에 우리 식구들의 이름이 다 올라가야 됩니다. 유다 외에 나머지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예수의 아우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오늘 제가 아까 읽은 것처럼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은 각각 콤마가 있지만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둘로메등은 짝꿍으로 콤마가 있어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관심사가 같은 수 있죠. 변화산, 겟세마네, 야이로 딸 등의 사건을 같이 겪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다 수제자들이에요. 같이 따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사도끼리, 평신도끼리 또 육적인 지방색, 학벌. 이렇게 다 끼리끼리 모일 수 있지만, 그걸 다 떠나서 영적인 파워풀한 사역을 하기 위해서 끼리끼리는 안되지만 영적인 짝꿍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홀로 골방기도도 해야 되지만은 짝꿍기도, 15절에 120명의 합심 기도로 각자 증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참 쉬운 얘기가 아니에요. 그 당시 상황에서 남녀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죠. 근데 동등한 위치에서 남성들과 함께 성경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를 생각해봐도 2000년 전에 120명이나 되는 사람이 다락방에서 같이 먹고 교제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은 마음을 나눴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또 누가는 예수님 모친 마리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냅니다. 마리아가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녀는 예배의 대상은 아닌 거예요. 그냥 구원이 필요한 한 여인이었어요. 그래서 동일한 위치에서 기도하는 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아우들도 직역하면 형제들인 거예요. 과거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지 않고 다 미쳤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가족으로서 그러다가 같이 봐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니까 가족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가족은 누구보다 비참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이 양극단의 감정을 가족들이 누구보다도 겪으면서 주님의 큰 형인 야고보에게 나타나 주신 것은 그 가족 전체의 회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육신적으로 주님의 가족이다가 이제 영적으로 영원한 주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양육대로 맏형인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썼는데, 완전히 팔복의 산상수훈을 쓰는 듯한.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결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변화시켰습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 자녀가 속을 썩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수님의 가족들은 사도들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교회사에서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이 되었어요. 야고보는 기둥 같은 초대교회의 존재가 됐고, 유다는 신약성경의 유다서를 기록을 했어도. 다른 형제들도 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여자들, 제자들, 예수님의 형제, 모친 다 한마음으로 차별 없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하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공동체 의미와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어떻게 오로지 기도에 힘쓸 수 있을까요? 앞 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약속을 붙들었기에 기도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 약속을 모르면 개인의 육적인 필요만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기도하기 위해 성경을 알아야 되요. 응답받는 기도는 절대적으로 약속의 말씀을 자기 소원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에 힘쓸 수 있어요.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약속하셨는지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약속을 붙들기 위해 열심히 큐티를 해야 합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기 위해서 또 큐티로 결론이 납니다.
(적) 더불어 함께 하는 형제, 친척, 지체들이 있습니까?
기도하기 위해 이제 편견으로 믿음이 있는데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오로지 기도하기 위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기도나눔*
조승현 - 1. 기도시간 갖기 2. 결혼준비순적히 해 가길 3. 맡은 역할 감당하도록
유한진 - 1. 회사에서 잘 버티기 2. 큐티를 여유있게 볼수 있도록 3. 공부에 전념할수 있도록
황명운 - 1. 깊게 묵상하며 큐티할수 있도록. 2. 여자친구 아버지께서 결혼이 이르다 하시는데 때와 시기를 잘 준비하도록 3. 아파트 입주준비 잘 진행되도록
박민영 - 1. 수요예배와 주일예배를 지킬 수 있는 직장을 분별해서 잘 들어갈 수 있도록 2. 경제적으로 힘든 이 시간을 매일 말씀보며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전 훈 - 1. 직장에서 업무적으로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하도록 2. 정죄하는 마음 사그라지도록
고영기 - 1. 회사에 동료가 이직을 하면서 근무가 힘들어졌는데 좋은 사람이 와서 빨리 정상화 되기를 2. 부모님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