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돌탕집탕 누가복음 15:11~32
잃은양 한마리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
돌아온 탕자, 집에 있는 탕자의 본문을 통해 한 영혼을 찾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1. 돌아온 탕자
(11절)둘째아들은 틈만나면 계획 세우고 내뜻을 펼치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걱정어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서빨리 죽어야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 유산에 대해 소유권만 가질 뿐 처분권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의 부르심에 따라 떠났다. 허랑방탕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이후 재산 다 없어진다. 열등감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허랑방탕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한 아버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 할 것이다. 겪어야 할 일이다.
@적용 내뜻대로 하고싶은 강한 욕망 있는지, 허랑방탕 사연 있는지, 무 분별한 내 삶 결론 깨닫는지,
(14절)아들도 아버지 입장에서도 다 없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나라에 흉년은 징벌이다. 우연이 아니다. 궁핍이 인생의 약이다.
(15절)궁핍만으로는 낮아지지 않았다. 쥐엄열매까지 없어져야 내려간다. 대부분 가난을 수치로 여긴다. 그래서 큐티하면서 되는일이 없다고 한다. 자랑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한계이다. 부끄럽다면 징벌이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스스로 돌이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적용 비로소 궁핍한 단계 중 나는 어떤단계인지,
(17절)너무 치사하지만 배가 고픈 것이다. 욕심 허풍 없어진 상태이다. 내려가야 자기 주제를 알게 된다.
(18절)고난으로 먹을것이 없어지니 백프로 죄인임을 깨닫는다. 죄의 특징이 원망이다. 하늘과 아버지께 지은 나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적용 회개가 아닌 원망만 품고있지는 않은지,
(19절)자기 죄를 보게 된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자라고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모습으로 회개한다. 참된 회개의 모습은 이렇게 겸손하다. 회개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감정은 회개의 감정이다.
(20절)아버지는 측은히 여기며 달려갔다. 회개는 마음 먹은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행함이 되어야 한다.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죄의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창피를 줄 수도 있지만, 달려 나가 안아주었다. 아버지의 자발적 수치가 아들을 살렸다. 탕자가 회개 했기 때문에 받아준게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동일하게 기다리는 아버지이다.
(21절)둘째아들은 입으로 시인하는 회개를 하였다. 말로 해야 한다. 회개는 옆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쳐야 한다. 나 혼자 회개는 없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낌없이 재물을 쓴다. 신분도 회복시켜 준다. 종이 아닌 집주인으로서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회개하는 마음만 먹어도 축복하시는 하나님 믿어야 한다.
@적용 하나님이 나를 돌아온 탕자처럼 귀히 여기심을 믿는지, 돌아갈 생각 하면 아버지 떠오르는지 품에 안겨있는지
이를 기뻐하지 않는 맏아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2. 집에있는 탕자
(25절)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도 많으니 아쉬운 소리 들을일도 없고 손가락질도 받을 일 없는 아들이 일하고 집에 돌아오는 맏아들은 의아해 한다.
(26절)아버지와 같이 살아도 아버지에게 묻지 않는다. 종에게 묻는 것으로 봐서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해가 안되는 상태이다.
(27~28절)남보다 못한 가족이다. 그리고 분노한다. 탕자와 모범생이 예수가 없으면 똑같이 문제이다. 차별없이 권해야 한다.
@적용 큰 일 작은 일 분노하는 자녀 배우자 있는지, 혈기로 대응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대응하는 사랑 있는지,
(29절)주인과 종의 관계로 인식하고 살아 왔음을 드러낸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했는데 사랑을 사랑으로 응답하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하는데 충성한다고 하는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1/9가지고 나갔으니 8/9내것이라 생각했는데 둘째아들이 오니 자기몫이 없어져 분노한다. 맏아들은 열심으로 아버지에게 종으로 섬기는 사람이었다.
@적용 착한아이 컴플렉스 있는지,
우리는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애시당초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31~32절)아버지는 맏아들에게도 찾아간다. '이 아들'이 아니고 '네 동생'이다. 아버지의 소유는 다 자식의 것이고 아버지는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네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찾아오길 원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딸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파하시고 기다리신다. (불교에서 방자 이야기 비교했을때 은혜의 개념이 없고, 행위로 인한 용서의 개념이다. 맏아들이 좋아할 비유이다.)
하나님은 탕자를 찾으셨다. 은혜로, 인간의 불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아버지의 집이 있기에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아직 죄인일 때에, 회개하기 전에 사랑하시며, 그 사랑으로 인해 죄인의 회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교의 방자는 먼저 그가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하고 받아 들여준 것이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주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맏아들은 구원 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맏아들에 대해서도 애통해 해야 한다. 유대인,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인물들이다. 더 힘든 죄인인 것이다.
마무리
아버지 잊고 지내는 중인지 떠올리는지,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인지, 우리는 둘중 누구인가, 결국 돌아온 탕자나 집에있는 탕자나 주님앞으로 돌아오는 것 밖에 없다.
*기도제목
- 소담 유년부에 나가도록, 취업준비 위해서
- 나래 교회적응 잘 하도록
- 은지 체력관리, 가족에게 혈기내지 않도록, 실험실생활 감사히 하도록
- 예빈 정신차리고 규칙적생활 하도록, 언니 한달반 뒤 독일가는데 생색 안내고 잘 챙겨주도록
- 혜민 휴일 알차게 보내고 평소에 시간관리 잘 하도록, 경계 잘 지키기, 회사업무 감사한 마음으로 하도록
- 유진 목금토 가족여행 가는데 혈기내지 않고 좋은시간 보낼 수 있도록, 배우자기도 하도록, 생활예배 회복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