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말씀
"남은자" (이사야6:8~13)
모두가 안 듣지만, 그래도 남은 자가 있기에 남은 자를 향한 사명을 이사야에게 주셨습니다.
남은 자를 찾기 위해,
1. 주의 목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부르심 받기위해 웃시야가 죽어야하고, 주의 보좌를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조건은 입술에 핀 숯을 대야하고, 응답으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해야하며 목적은 남은 자에게 헌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 때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주님이 쓰시는 사명자가 되는 길입니다.
Q. 부르심받기 위해 웃시야가 죽어야하고, 높이들린 주의 보좌를 봐야하고, 입술에 핀 숯을 대야하고, 사죄의 은총을 경험해야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주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순서에 있습니까?
2. 남지 못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도 구원도 메시지가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두 가지 반응은 회개와 무시인데, 무시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어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이사야가 외칠 때 사람들은 너무나 강퍅해서 도리어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요나 선지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굳센 믿음으로 전했지만 모두 회개를 했기에 요나 선지자가 심히 성냈다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 속에도 회개할까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나의 외침에는 니느웨사람 12만명이 돌아왔는데 이사야는 외쳐도 아무도 안듣는다고 합니다. 선지자는 듣든지 아니듣든지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활과 천국의 영광만 좋아하고 십자가와 죄에 대해서는 듣기 싫어합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된 건 아닙니다. 교회를 다녀도 남지 못할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Q. 복음적인 교회에 출석하고 모태신앙으로 경건하게 신앙생활했어도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나의 죄를 지적해주고, 빛가운데 나오라는 설교가 부딪히는 돌이 되어서 마음에 걸립니까? 천국가는 티켓을 양보하시겠습니까?
3. 황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라고 했더니, 황폐할 때까지라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메시지를 바꿔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지독히 안 믿는 사람이 있으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무너짐의 황폐가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심고 건설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듣지 않기로 고침 받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망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망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길 수 없습니다.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Q. 육적인 성전이 황폐하고 무너지는 만큼 영적인 성전이 세워집니다. 내 인생의 황폐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망하기까지 내버려두신 것이 깨달아 지십니까? 완전히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4. 그루터기가 남은 자입니다.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또, 모두가 멸망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베임을 당했어도 그루터기가 남는 것 같이 그루터기가 이 땅의 거룩한 씨앗이 됩니다. 나 한사람을 통해 우리 가정에 믿음의 씨를 남겨두십니다. 큐티는 하나님 말씀으로 내 욕심과 죄를 가지치기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도 전문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전하는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으로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사랑이 우리를 남은 자 되게 합니다. 기도응답은 세상적으로 보기에 흥하고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양은 차야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귀한 것인지 모르기에 반드시 망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의 사건을 주실 때 반드시 소망도 주십니다. 그루터기로 남아있게 하시려고 삼키운바 되고 불태워진바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잎사귀와 가지만 보는데 비록 보잘것없는 그루터기이지만 이 땅에서 사명자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망하고 힘들어도 그 사람의 그루터기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심판과 정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남은 부분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씨가 그 속에 들어가 썩어지고 죽어지고 밀알이 될 때, 그 씨가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겁니다.
Q. 하나님도 버리신 것 같은 사람, 도저히 남은 부분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잎이 섞어지고 다 썩어진 것 같아도 거기 남은 밑둥을 봐야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 목장나눔
Q. 부르심받기 위해 웃시야가 죽어야하고, 높이들린 주의 보좌를 봐야하고, 입술에 핀 숯을 대야하고, 사죄의 은총을 경험해야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주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순서에 있습니까?
A: 아직 웃시야가 죽지 않은 것 같다.
B: 하늘보좌와 핀 숯 사이
C: 복합적이다. 부분마다 단계가 다른 것 같다.
D: 웃시야가 안 죽었다.
E: 나도 복합적인 것 같다. 그런데 대체로 숯을 입에 댔다 뗐다 하는 것 같다.
Q. 복음적인 교회에 출석하고 모태신앙으로 경건하게 신앙생활했어도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나의 죄를 지적해주고, 빛가운데 나오라는 설교가 부딪히는 돌이 되어서 마음에 걸립니까? 천국가는 티켓을 양보하시겠습니까?
A: 천국가는 티켓을 양보하진 않을 것 같다. 설교가 마음에 걸려서 가끔 화 날 때가 있다.
B: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남은 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말씀이 걸려 화가 나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천국행 티켓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C: 남은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꼭 남은 자로 살고 싶다. 천국행 티켓을 양보는 못한다. 그런데 아빠라면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D: 가족에겐 천국행티켓을 양보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눔을 들으면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는 한다. 내 죄와 수치가 드러날 때, 특별한 사람 앞에서는 화가 난다.
E: 남은 자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천국행티켓은 절대 양보 못한다. 설교가 마음에 걸릴 때가 있지만 또 넘어가게 하시는 것이 있다. 결국은 다 맞는 말이다.
Q. 육적인 성전이 황폐하고 무너지는 만큼 영적인 성전이 세워집니다. 내 인생의 황폐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망하기까지 내버려두신 것이 깨달아 지십니까? 완전히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A: 믿는 자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무너져야 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B: 더 무너져야하나 생각한다. 그런데 건강해지면 믿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C: 인정한다. 황폐는 싫으나 땅끝까지 내려갔다는 생각은 없다. 내게있어 기다려야 할 사람은 믿지 않는 가족들이다.
D: 인정한다. 그래서 기도도 잘 버티게 해달라는 기도로 점점 변화되어갔다. 내가 기다려야 할 사람은 가족 중에 있거나 나와 친한 사람들이다.
E: 인정한다. 그런데 그만 망하고 황폐해지면 좋겠다. 믿지 않는 친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