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_일3_김양재목사님_남은자_사68-13
[주일예배 설교]
너무나 악한 시대, 복음을 전하기가 아주 어려운 시기에 모두가 안 듣지만 남은 자가 있기에 그 남은 자를 위해 가야 하는 사명을 이사야에게 주셨습니다. 이 남은 자가 무엇인지. 남은 자를 찾기 위해서는.
1. 주의 목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8절
부르심 받기 위해, 조건으로 웃시야가 죽어야 하고 주의 보좌를 봐야 한다고 그랬어요. 조건은 입술에 핀 숯을 대야 하고. 응답으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며, 목적은 남은 자에게 헌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남은 자를 구하기도, 남은 자가 되기도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너무 힘든 사명이기에 주님도 미안해서 가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누가 갈꼬~ 하시면서. 탄식하시면서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때!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해야지. 처음부터 난 못 가요, 와 나는 아닙니다, 와 내가 가겠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하는 사람과 누가 믿음이 좋아보입니까? 못 가요~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아보입니까, 가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좋아보입니까. 여러분들 아주 헷갈릴 거에요. 부르심을 위한 자원함이, 주님이 쓰시는 사명자가 되는 길입니다.
적용
부르심 받기 위해 웃시야가 죽어야 하고 높이 들린 주의 보좌를 봐야 하며 입술에 핀 숯을 대야 하며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주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러분은 어느 순서에 지금 있습니까? 이게 순서가 정확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2. 남지 못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9-10절
자, 내가 가겠습니다, 했을 때 이런 메세지를 주실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주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구절을 마태복음과 로마서에서 인용하셨는데. 우리는 부르심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가라, 그러면 뭐가 쫙 열릴 거라고 생각하지요. 이사야가 그래서 1장부터 5장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죄된 배경을 써놓았어요. 심판도 메세지가 있고 구원도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르심을 받았는데 근데 니가 봐도 하나도 못 알아 들을꺼다? 이러시는 거에요. 복음이 전해질 때 두 가지 반응은 회개와 무시인데. 무시 하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어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에요.우리 나라 초대 기독교사를 보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때는 세례받을 사람이 너무 늘어서 있어가지고 선교사가 자리를 다른 지방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막 시간이 없어서 세례를 못 줬다는 거에요. 단시간에 기독교가 그렇게 부흥을 한 예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몇 년 안 된 요즘. 잘 사는 요즘. 들어도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립니다. 성경이 즐비하고 교회가 많아도 말씀이 안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3장 10~15절. 예수님이 이사야의 이 구절을 인용하셨는데.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부르심 받은 예비된 선지자인데. 이사야가 외칠 때 사람들은 너무 강퍅해서 도리어 깨달아 고침 받을까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나 선지자가 그 앗수르의 니느웨 사람들이 너무 악하니까 그들에게 전하라고 했을 때 전해도 아무도 깨닫지 못할거야! 이런 굳센 믿음으로 가서 전했는데 글쎄 그들이 다 회개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요나 선지자가 심히 싫어하고 성냈다는 표현이 있어요. 뭐 그런 선지자가 다 있어요~ 회개했는데 이 악한 것들은 돌아오면 안 되는데.. 예.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이 회개할까 두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고침을 받으면 안 되는 더 악한 백성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는 거에요. 얼마나 악했는지 아시겠죠? 여러분들. 이렇게 주의 말씀을 읊조리면서 악을 행하면 우리가 더 기분 나쁜 거 있죠? 그거에요. 아니, 교회를 다닌다고 말이나 하지 말지. 그런 거 하고 똑같습니다. 로마서 11장 7~8절. 이제 우둔은 굳은 살이 박혀서 딱딱하고 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찔러도 반응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에 감동이 없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아도 혼자 은혜를 못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둔한 자, 택한 자 중에 둘 중에 하나입니다. 택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완악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혼미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모릅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거짓말 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도 속고 남도 속입니다.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해도 무엇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사람은 대화를 해도 핵심을 모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대화를 하려니까 그것이 비극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이 바리새인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어요. 딱딱하고 둔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에 감동을 못 받습니다. 혼자 은혜를 못 받습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입니다. 택하신 심령과 완악한 심령입니다. 혼미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 하는 줄도 모릅니다. 보지 못할 눈을 가진 사람은 핵심을 모릅니다. 듣지 못할 귀를 가진 사람은 대화를 할줄 모릅니다. 더러운 일곱 귀신을 데려와서 나중 형편이 더 심각하게 된 악한 세대가 나옵니다. 이 비밀은 시크릿이 아니라 미스테리. 묘스테리온, 이라고 해서. 신기 입니다. 통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계시를 통해 알려주셔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있는 자는 더 부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는 거라고 하십니다. 저는 부해지는 것이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생활에 적용한 얘기를 하면. 신학자들은 더 확실한 이야기를 구하면서 거절합니다. 이 적용을 시시한 것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아까 이 청소부 집사님에게 말씀이 들리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일상 생활의 비유를 통해 더 확실히 알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확실히 문을 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다하다 안 되서 이 비유를 설명하셨는데. 이 비유를 기점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완전히 문을 닫습니다. 비밀은 알맞게 닫아두는 것이고 계시는 완전히 열어젖히는 것인데.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들으라 하셔도 보지 못하는 듣지 못하는 말 못하는 벙어리 이기에. 이 말씀을 들을 때 분이 나면 여러분은 바리새인이에요. 요나의 외침에는 니느웨 사람이 12만명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사야는 외쳐도 아무도 안 듣는다고 하는 거에요. 누가 훌륭해보이나요? 요나가 훌륭해보이지 않습니까? 이사야가 안 듣는 것 같아도 그렇게 전하는 이사야가 곳곳에 있습니다. 선지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똑같이 에스겔 2장 3장에 나와 있습니다. 방언이 아니라 이 백성에게 보내는데 그들이 니 말을 하나도 안 들을 거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부활의 영광과 천국만 좋아하고 지옥과 죄는 싫어합니다. 자꾸 그런 설교를 좋아하면 남은 자가 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나눔이에요. 여러분, 교회를 다녀도 이렇게 남지 못할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 사람도 나처럼 말씀을 사모하지만, 끊지 못하는 정욕 때문에 괴로워하는구나. 조건만남 운영 사이트 관리자가 우리들교회 성도인지. 목사인지. 여러분. 정말 누가 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분은 너무 말씀이 들린대잖아요. 정말 누가 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용
복음적인 교회 출석하고 모태신앙으로 경건하게 생활했어도 남은 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부딪치는 돌이 되어서 화가 나십니까? 천국 가는 티켓을 양보하시겠습니까?
기도
내가 남지 못할 자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천국 가는 티켓이 한 장 부족하다면.
3. 황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11-12절
한 마디로 그 사람 망할 때까지는 안 돌아온다는 메세지입니다. 꽂고 파괴하며 넘어뜨리며 무너짐에. 4가지가 먼저 나오고. 에스겔 2장에서도 에스겔이 부름받는 6절에. 이 말은 아무도 안 들을 거라고 하셨어요. 주님은 극단적인 요법을 쓰십니다. 모든 것에는 정해놓은 때가 중요해요.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하며 멸망하여 잡혀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큐티를 안 하면. 심판과 멸망의 메세지를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편하고 싫어했겠습니다. 로마서 11장 9-11절.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다윗은 심술궂은 기도를 합니다. 다윗이 진짜 심술로 이런 기도를 했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밥상이 올무이고 덫임을 깨닫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특권이 많을수록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혼수가 올무가 되고. 강남 생활비 교육비가 다 거치는 것이 됩니다. 내 체면 내 이익 때문에 보험으로 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등이 굽을 수 밖에 없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등이 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다고 해도 듣지 않기로 고침받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기에, 간절히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구요? 오늘 말씀대로 완전히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거는 세상적으로 보면 완전히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랑의 표현이에요. 망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거에요. 근데 거기에 내가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길 수가 없어요. 그냥 기다려야 해요. 없어서 못해놓고 그것을 적용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있는 사람 부자는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부자 쫓는 설교를 해요.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들교회 오는 부자는 정말 존경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육신이 망해서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망해서라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기도는 하기 어려운 기도였습니다. 제가 수많은 간증을 듣지만 망해서라도 믿게 해달라는 기도는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제가 주님이 상급이었고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육적인 성전이 무너지는 만큼 영적인 성전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이 귀한 줄 몰라 하나님이 나를 망하기까지 기다려주신 것이 깨달아집니까?
기도
외모와 학벌, 불신결혼으로. 무너져도 세워지지 않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육신이 무너지는 것은 정말 세워지는 최고의 챤스이기 때문에.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영이 세워지게 해달라고.
4. 그루터기가 남은 자 입니다.
13절
로마서 9장 27절은. 남은 자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2백만 명으로 추정을 하는데. 광야를 건넌 사람은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말씀을 이루사 우리를 거룩한 씨, 구원을 이루신다고 해요. 나 한 사람을 통해 우리 가정에 믿음의 씨를 남겨두십니다. 유업을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큐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적용할 때 하나님이 남겨두신 구원의 씨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구원을 위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있으면 의학지식이 없어도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영의 생명을 살리는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호세아가 하나님 때문에 억지로 고멜을 데려왔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호세아에게도 고멜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호세아 시대는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입니다. 콩가루 같은 자기 가정의 문제를 통해서 다른 가정의 문제를 애통했을 거에요. 그래서 이 망하기 직전에 함께 애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힘써 전하게 됐습니다. 사랑이 우리를 남은 자 되게 합니다. 아무리 용서할 수 없고 가망이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살릴 수 있다는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기도응답은 세상적으로 흥하고 잘 되어 보이는 게 아닙니다. 고난의 양이 차야 하고. 하나님은 그냥 주시지 않고 반드시 이런 일을 겪게 하십니다. 귀한 줄 모르기 때문에 망하기 까지 내버려두시는 거에요. 징계의 목적은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인데. 뿌리가 시냇가에 내려 어떤 환경에서도 다시금 말씀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잎사귀만 봅니다. 우리가 자녀를 봐도 눈도 마주치기 싫은 아들인데. 거기서 남은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자로써. 내 속에서도 남은 부분을 봐야 하고 내가 전하는 그 사람에게도 남은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씨가 들어가서 썩어지고 죽어지고 밀알이 될 때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거지요. 잎이 다 썩어지고 가지가 다 썩어졌어도 거기 나무 밑둥을 봐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11장 2,3절.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9절에 다윗을 예로 들어요.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처럼. 엘리야를 죽이려던 아합처럼. 스데반을 죽이려던 사울 자신처럼. 쫓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무섭고 힘듭니까?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숨이 안 쉬어집니다. 다윗도 엘리야도 힘이 들 때 하나님께 고했다는 거에요. 같은 백성이고 믿는 사람인데 나를 죽이려고 해요! 내 가족은 송사를 못합니다. 교회 와서는 더더욱 못합니다. 직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못 합니다. 숨이 턱에 차서 죽음이 임박하기 까지는 절대로 못 합니다. 마지막에 가족을 내려놓는 것이 비결 같습니다. 우리들교회에는 비교적 남은 자가 정말로 많은 것 같습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교통사고. 남편 손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것을 보고 남편을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채소가게. 저희 사정을 들은 당시 병원장님은 병원비 780만원의 십분의 일. 78만원만 받고. 죽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기에 목적 없이 영적으로 끝난 삶을 살던 저희 부부가 곤고한 환경 가운데 각종 예배를 사수했지만은. 남편의 직장이 해결되지 않으니. 그저 몸이 회복되면 되겠지 하며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나의 찌질한 환경은 하나님이 방문하는 사건이었는데. 주님의 방문하심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드디어. 우리들교회에 그렇게 오래 다녀도. 남편이 9년 째가 되니 드디어 자신의 죄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팔목이 아프니 24시간 남편과 함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감사하며. 고백을 했는데 저한테 질문을 했어요. 목사님의 처방을 받고 싶은데. 38년 전 병원비. 780만원 병원비가 마음에 걸려요. 돈이 하나도 없어요. 그 돈을 현재로 치면 8천만원 되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그 돈을 전남예수병원에 보냈는데. 그게 연합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남편을 구해준 군인 김우택 상사를 찾아 꼭 보은을 해주고 싶다고. 이분이야말로. 두 아들을 제가 다 주례를 해주었어요. 부유해서 말씀도 안 들리고 안 나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은 가족이 있습니까? 내 가족들도 남은 자로 세워진 것을 믿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 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남지 못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남은 자인 것을 믿고 내 자신의 남은 부분, 다른 사람들의 남은 부분을 봐야 합니다.
[목자님의 목장 스케치]
지난 주일 3층에서 목장모임을 가졌습니다. 81또래 이성규 형제가 새가족으로 왔습니다. 소감은 복음적인 교회인 것 같고 첫 인상이 좋았다고 나눔해주었습니다. 목장에 잘 정착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