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창세기 50:15-21
형제들이 화해를 하고 최고의 유언을 하고 아버지의 화려한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해결이 안 되는 용서가 있다고 합니다. 용서하기 힘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더 단단한 것일수록 내적 고통은 상처로 남은 것 ..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초점으로 바라보아야 용서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용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그만큼 성숙의 단계는 끝이 없습니다.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주고 내 죄를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 용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용서는 받아야합니다.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죄책감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오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지금 17살 때 형들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형들의 마음에 걸리고 있습니다. 연결고리가 끊어지니 불안한 것입니다. 대단한 요셉의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형들이 있습니다. 권력보다는 형들의 죄책감에서 입니다.
2) 요셉의 형들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로 메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절 당신의 아버지 , 친 아버지를 양아버지로 생각하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어야 하는데 눈치를 복면 안 됩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내 고통과 직면하는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형들도 당사자 요셉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입으로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사람 사이에서 고백하고 용서가 되지 않는 죄는 나를 평생 따라다닙니다. 그 과정을 따라서 고백해야합니다. 화해를 가져다준 것은 유다형님의 적용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악과 직면해야합니다. 악이 주는 고통과 직면해야합니다. 용서의 단계를 이야기해줍니다. 내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고 분노인지 절망감인지 이름을 붙여야합니다. 고통에게 있어서 책임을 가져야합니다.
16-17절 용서해달라고 말을 전하기위 해 전령자를 보냈는데 아마도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하나님께 저지른 죄라고 생각을 합니다.
17-18절 그렇게 죄의 고백을 했는데 요셉이 울었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뛰어가서 친히 엎드렸습니다. 직접 꿇어 엎드려야합니다. 겸손과 비하가 섞여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드러납니다. 형들이 요셉의 노예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저 두려운 것 같습니다. 요셉이 총리니 유다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을 넘어가기가 어렵습니다.
* 용서받기 어려움으로 받기위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남으로 느껴지나요? 고통에 직면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합니까?
둘째, 용서는 해야합니다.
섣부른 용서가 문제를 키웁니다. 내가 편하자는 화해를 하면 안 됩니다.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면서 머리로는 화해를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용서가 안됐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힘으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눌림으로 병이 든 것입니다. 요셉이 이 문제를 금새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고통의 평가를 제대로 해야 책임을 지게 됩니다. 용서를 하면 책임은 따릅니다. 요셉에게 간첩누명을 받았을 때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이 용서를 한 것 같은데요. 당신의 아버지로 호칭을 하고 있죠. 왜? 형들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편애한 것을 무의식 중에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피해자였지만 가해자인 것처럼 용서를 하였고 등등 혼자서 다 해먹었습니다. 점점 위화감이 생깁니다. 도와줘도 돈으로 다해결할라고 하잖아! 라고합니다. 형제들은 돈벌기전에 화해해야합니다. 야곱집도 돈이생기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유다가 잘 믿는데 돈은 요셉이 잘 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편애한 것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아들들에게 장자권까지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기에 아무리 허벅지를 찔러도 구속사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이제서야 무릎 꿇고 울며 인정을 하였습니다. 자기가 원인제공이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부자가 되기 전에 인간관계에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용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19절 요셉은 용서를 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요셉이나 형제들 둘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피해의식입니다. 자신의 증오심을 밖으로 분출하는 것만 찾습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5-60이 되어도 안 풀립니다.
* 피해의식과 피해의식이 뭉쳐서 전혀 해결 할 수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용서해야하는데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요?
용서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용서의 종결자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화가 나도 참는 것은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특권입니다. 내가 용서 한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교만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외에는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피해의식이 너무 심해서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저 나는 상대방을 보며 불쌍하게 여기는 것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용서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뜻인데 요셉은 인간적으로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학교폭력이나 왕따 그 외 등등 당했던 것은 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용서는 내가 어떤 사건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위로자가 되는 것이 용서입니다. 무조건 믿음으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속에 슬픈 생각 천한생각이 다 물러갔습니다. 다 이 모든 일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용서는 내가 어떤 사건이 달라지는 게 용서가아니라 내가 가진 피해 받은 것..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약재료처럼 쓰는 것이 용서입니다. 용서의 키는 요셉이 쥐고 있습니다. 요셉이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문을 열여야 합니다. 강자는 용서의 표증을 보여줘야 합니다.
21절 갈기갈기 찢어진 소생입니다. 간곡한 말은 결정적으로 형들의 마음을 찢었습니다. 용서는 맨입으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가장 힘든 상황에서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서 드디어 종결케하 시고 용서에도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벗어나서 믿기만 하면 됩니다.
* 용서를 위해 지금 책임져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기도제목 *
다혜언니
- 질서에 순종하도록
- 큐티하도록
- 목사님 책 읽도록
지현
- 종강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 공부 열심히할 수 있도록
- 큐티 아침에 하도록
- 아빠구원을 위해 기도하도록
혜령
- 팀플 잘 마무리하도록
- 술에 미혹되지 않도록
- 종강 잘 마무리하기
세영
- 종강잘마무리 할 수 있도록
- 기숙사 묻고 나아갈 수 있도록
- 배우자 기도하도록
- 체력관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