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통계인데 부모가 육적으로 잘 살면 자녀가 잘 살 확률이 7%로 밖에 없고 부모가 힘들게 살면 자녀가 잘 살 활률이 70%라고 합니다. 알맞은 가난은 최고의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이를 갈고 돈을 법니다. 후일에 당할 유언을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언인데 유다 처럼 내 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의 유언이고 그것은 각 사람의 주신 은사 대로 분량대로 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듣기 힘들어도 객관적으로 말 해주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경계를 지킬 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경계를 넘어가면 해롭게 합니다. 8명의 지파가 경계를 지킬 때와 넘어갈 때 각인의 분량대로 보겠습니다.
1. 거하는 은사 스불론
해변에 거한 스불론, 한절로 나타나 있는 많은 사람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해변에 배만 있으면 망망대해로 나갈 수 있기에 경계가 있습니다. 해상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해변에 위치 한 것입니다. 야곱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시돈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경계선을 일러줍니다.
2. 낮아짐에 은사 잇사갈
다른 사람의 짐을 얼마든지 져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령도 안 부리고 우직할 정도로 손해를 감수 하고 남이 놀려도 놀리는 줄 모르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다 잊습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그 자체가 남을 세워주는 은사가 됩니다. 어제 주인 하다가 오늘 종이 되어도 상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잇사갈 같은 사람이 경계를 넘어가면 쉴 곳을 보고 만사를 재끼고 노니 문제입니다. 변화를 하기보다 현상을 유지하고 만족을 합니다. 꾸물거리고 뒤로 무르고 완고해집니다. 평소에는 명령대로 순종하며 자기 일과 조직에 만족해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일이 전개 되지 않으면 조급해하고 짜증내다가 그것과 는 무관한 곳에 감정을 폭발하고 맙니다. 이런 방식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유다처럼 자기 희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잇사갈 처럼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면 하루 아침에 주인에서 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3 심판의 은사 뱀인 단
단 지파는 규모가 작아도 이스라엘을 너무 정의롭게 판단해서 한 지파의 구실을 톡톡히 해줍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얼마나 결정이 빨라지는지 모릅니다. 문제를 바로바로 해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단 같은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가 탄력을 받습니다. 그러나 17절 길섶에 뱀이요 샛길의 독사니라 말굽을 물어 뒤로 탄자를 떨어지게 하리로다. 뱀의 특성이 몰래 독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것입니다. 판단을 잘하다 보니 월권을 합니다. 약속의 땅을 받아 놓고 초점에서 벗어난 순종을 했습니다. 유다는 120개의 성을 우직하게 다 정복을 했는데 단은 여호수아가 할당한 성을 쳐다도 안보고 평화롭게 사는 이방인을 약탈하고 정복해서 이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이라고 부르짖으며 넘어갑니다. 안에서 해결할 문제를 밖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족이 죽어도 못 살거 같은데 그것을 버리고 선교사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고 가족들을 보기 싫어 떠납니다. 단 지파가 선택한 라이스성읍 은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를 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단 같은 사람은 경계를 넘어가면 공동체를 완전히 망가지게 하는 사람이다.
4. 추격하는 은사 갓
갓 지파는 요단 동편이 좋아 그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곳은 다른 나라들 이 원하기에 자주 침략을 받게 되고 추격을 받다보니 추격을 하기 에 이릅니다. 상처가 있지만 목표의식이 분명하기에 추격 합니다. 공동체는 추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적극적이라고 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갓은 괴롭히다, 약탈하다가 어근인데 추격하다로 변한 것입니다. 갓처럼 추격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경계를 넘어가면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느낍니다. 외부적인 성취와 업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늘 공격을 받고 해야하니 강박관념으로 일중독이 됩니다. 그러나 목표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지나치면 거짓과 기만에 취약해 집니다.
적용 #8211; 스불론 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경계를 넘어서고 잇사갈 처럼 낮아지다 쉴 곳을 찾아 해매이고 단처럼 심판하다 월권을 하고 갓처럼 추격하는 은사 중에 일중독이 되는데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5. 공개하는 은사 아셀
아셀의 은사는 남에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장년 목장예배는 함께 밥을 먹을때가 많은데 그 은사가 사람을 많이 세웁니다. 요즘엔 이쁜 사람보다 밥 잘해주는 것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셀 처럼 밥을 잘 해주는 것은 좋으나 음식 자체가 우상이 되어 봉사가 중독이 되면 예배를 넘어가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6. 납달리 는 암사슴
납달리 은사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은사입니다. 21절에서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고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좋은 소리이고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은사를 가졌습니다. 교회에서는 문자적으로도 찬양의 은사가 중요합니다. 납달리는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납달리는 야곱의 첩 빌하의 소생으로 르우벤과 빌하의 통간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가 별이 되어 찬양할 때 는 좋은데 평소에는 문제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찬양을 하면 남들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믿음이 들어가기가 힘들어 집니다. 경계를 넘어가면 노래를 하게 됩니다.
7. 보여주는 식물의 은사 요셉
요셉은 얼마나 보여줄 것 이 많은지 유다처럼 5절이나 보여줍니다. 요셉의 이름은 “나에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는 뜻이고 다시 내게 다른 자녀를 더하시기를 원하노라.”입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찬양하다입니다. 요셉은 적용을 잘 해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전혀 다른 장르인 식물입니다. 가지를 담장을 넘어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고상한 축복으로 레벨이 다른 축복을 받습니다.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 이런 축복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동체에도 반드시 보여지 는 축복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잘 믿는 재벌을 보면 예수를 잘 믿어 재벌이 되었다라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신자에게는 유다의 찬양도 있지만 반드시 요셉의 형통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무성한 가지로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받을 수 있는 복은 다 받아서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도리어 이런 복이 고약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나는 할 수 있다 인데 자만심은 나는 가지고 있다가 됩니다. 개인의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을 때 자만심이 될 수 있습니다. 훗날에 보면 방종하게 되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되고 앗수르 에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8. 물어뜯는 이리의 은사 베냐민
아침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엔 움킨 것을 나눈다고 합니다. 배냐민은 지고 는 못 삽니다. 그러나 물어뜯어도 나누니까 교회에서 일이 됩니다. 언제나 물어 뜯어서 대려다 앉혀 놓습니다. 전도를 해도 지는 법이 없고 그래서 다 필요합니다. 경계를 잘 지키면 공동체를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나 배냐민 지파의 땅은 유다와 요셉 지파의 후손인 애브라임 지파가 남북으로 막아주고 있어서 이방인의 침략을 덜 받습니다. 부족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데 그러면 감사해야 할 텐데 자기 밖에 모르고 남에게 줄 주도 모르며 물어뜯는 이리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쉽습니다. 헌신적, 이타적으로 섬기고 물어다 대려다 놓고 이기심으로 한 것은 혼란을 유발 시킵니다. 이기심을 합리화하다 보면 신앙생활이 피폐 해지게 됩니다.
정리를 하면 복음은 경계라고 했습니다. 민수기에서 동서남북으로 정해주셨는데 부족해도 넘쳐도 안 됩니다. 부족하면 사명을 못 한것이고 넘치면 사명을 넘어간 것입니다. 자기 자리, 자기 위치, 자기 주제를 아는 것입니다.
적용 - 아셀 처럼 공개하는 것이 봉사 중독이 되거나 납달리 처럼 찬양을 하다가 노래를 하며 요셉처럼 무성한 복이 교만해 지며 배냐민 지파처럼 잘 나누다가 물어뜯고 죽이는 은사중 어떤 은사 인가요?
결론적으로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을 받으려면 회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계가 축복의 비결인데 그 은사대로 쓰임 받습니다. 경계를 많이 넘어간 두 지파를 언급을 합니다.
첫째 단 지파는 태생부터 첩 빌하의 자식으로 억울하게 태어났습니다. 눈치보며 살다보니 아무 죄책감 없이 거짓말하고 변명하며 자기 합리화를 함,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함, 옮고 그름을 판단 하는것 같지만 자기 유익을 쫓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떠나 금송아지를 섬기고 이스라엘을 도탄에 빠지게 합니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을 위해 야곱은 특별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경계를 넘어가고 야곱의 기도도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녀들을 위해 구원에서 떠날 12분지1에 속하지 않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요셉지파 입니다 요셉지파는 단 지파와 똑같이 이스라엘에 금송아지 숭배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표상과 차이는 엄청 납니다. 요셉은 마지막 분별도 그러했지만 결혼도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 보디발의 딸 아스낙과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인으로 완전 귀화했습니다. 총리가 되고 이름도 바꾸게 됩니다. 야곱은 애굽인으로 살아가는 요셉을 보며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간절히 너를 축복하기를 원한다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을 합니다. 유다는 아들이지만 예수님 자체이고 조상이었기에 더 이상 축복할게 없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보이는 복을 다주어도 2% 부족해서 더 간절히 축복 합니다. 요셉의 복이 많이 있고 완전해 보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거절했고 형제들이 죽이려고 했어도 다 용서 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배풀기 까지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복은 복을 시들하게 볼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품이 좋아 영적 복도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니 야곱도 마지막까지 분별을 못했습니다. 요셉은 깨끗하게 살아서 그거 자체가 축복이지만 진짜 축복은 험악하게 산 사람이 하는게 진짜 축복입니다. 험악한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요셉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우월하다고 여기기에 다른사람들 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고 남들에게 내가 주장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계속 자만 합니다. 단지파는 결국 빠졌지만 요셉은 이스라엘을 기근으로부터 구한 공로가 있으니 계속 공동체를 괴롭혔어도 결국엔 입성을 합니다. 우리가 남을 도와준 것은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십니다. 요셉같은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지만 그 복을 다 좋게만 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은사를 가졌든 천국에 똑같이 천국에 입성을 합니다. 잘났던 못났던 어쨌든 천국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나? 요셉을 부러워 하지 말고 가자는 뜻입니다. 회개전에는 공동체를 해롭게 하다가 회개이후엔 공동체를 유익하게 합니다. 공동체는 회개 전,후인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바람 잦을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고 회개까지 기도가 필요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남을 보며 자기보다 옮도다 하고 부르짖으며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가 고난이다라는 것은 내가 회개가 안되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적용 - 은사는 좋고 나쁘고 없기에 회개하면 최고로 쓰십니다. 여러분의 은사는 회개전입니까? 후입니까?
기도제목
양희윤(80)
1. 아버지 재판 결과에 대해 사람 환경 원망하지 않고 말씀으로 잘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2. 아버지 건강 위해서(당수치 안정될 수 있길)
3. 심적으로 지친 시기에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중수할 수 있도록
안정환(82)
1. 큐티 깊이 묵상하기
2. 회사일울 통해 나의 죄 보길
3. 가족의 평안함
최문상(82)
1. 금연 할 수 있도록
2.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임을 알고 회개할 수 있도록
3. 진실한 회개할수 있도록
4. 부모님과 오해를 풀고 감사함과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조윤성(84)
1. 큐티 묵상 잘하기
2. 아버지 건강(왼쪽 눈 시력이 안좋으심,고혈압)
3. 진로 잘 묻고 준비할 수 있도록
4. 태국아웃리치 은혜가운데 준비 되어지기를
5. 신교제
박기수(80)
1. 이사 잘하기
2. 이직 잘하기
3. 신앙을 진심으로 섬길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