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말씀
“화 해” (창세기 44: 32 #8211; 45: 15)
1. 생명 내놓는 사랑 때문입니다.
요셉이 방성대곡한 이유는 유다의 생명 내놓는 변론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베냐민과의 지독한 사랑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베냐민을 지키고자 합니다. 내 자신을 내어주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유다가 알았습니다. 유다의 생명을 내 건 진실한 변론은 도무지 하나님을 만난 자가 아니면 안 되는 고백입니다. 유다의 자기를 버리는 사랑은 그 후로 아버지와 요셉을 다 설득하며, 형제들의 대화합을 이루어 내었고 결국은 예수님까지 이 가문에서 오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죄 범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셔야만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학벌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말씀이 들리게 되어있습니다. 형들이 회개를 하니깐 요셉이 운 것처럼, 내가 회개를 하면 주님이 기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유다의 생명 내놓는 변론은 요셉을 결정적으로 치유했습니다. 치유라는 것은 항상 회개 역사가 일어난 후에 일어납니다. 유다의 간절한 회개와 책임지는 사랑으로 진정한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변호는 결국 요셉의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을 향한 요셉의 모든 시험을 종결케 하였습니다. 이 눈물은 회개, 감사, 사랑, 용서의 눈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우십니까? 예수님은 실로 불의한 자들로 인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불의한 우리들로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성도도 생명 내어놓는 사랑으로 화해자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Q. 생명 내놓는 사랑을 받고 감동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사랑으로 누군가를 위해 변론한 적이 있습니까?
2.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피해자 가해자가 없습니다.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클 때 은혜가 임하는데, 요셉은 유다의 사랑을 보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아버지하고 베냐민만 끼고 도는데, 아버지에게 사랑도 받지 못한 유다형님이 아버지를 위해, 베냐민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겠다고 합니다. 그 사랑이 요셉을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화해를 하려면 피해자, 가해자가 없습니다. 유다의 변론을 들으며, 요셉이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니고 가해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해자, 가해자 해도 기근이 오고 먹을 것이 완전히 바닥나고 그래야 화해를 할 수 있는 토양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내가 가해자인 것을 알아도 먹을 거, 지위, 권세가 있으면 화해가 안됩니다. 야곱 집도 먹을 것이 없어질 때까지 22년 걸렸습니다. 요셉이 가까이 오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가까이 보고 싶고 가고 싶고 있고 싶은 것입니다. 거리가 느껴지면 진정한 교제가 아닙니다. 만일 요셉이 가까이오라고 그러지 아니하였다면 형들이 요셉에게 가까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피해자이고 능력자이고 권세자이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는 것은 요셉이어야 합니다. 유다와 형들은 죄인이고 노예이기 때문에 회개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등감 많고 가진 것이 없을 때는 절대로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날마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가해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있어도 전혀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만 화해와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 최고의 감정은 사랑도 미움도 증오도 아닌 회개라고 했습니다. 서로 죄인 된 입장에서 회개를 하니 화해가 됩니다. 치유는 회개에서 비롯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용서와 치유는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우리를 먼저 오라고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라고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가해자인 것입니다. 내가 가해자라고 그 소리만 해도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3. 구속사적인 해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할 때 진정화 화해와 용서를 하게 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악한 행위도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섭리였기 때문에 원망이 하나도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만큼만 사건을 해석하고, 인정하는 만큼만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화해가 안 되는 이유는 내가 태양 보다 더 큰 주님을 아직 못 만나서 그럽니다. 진정한 회복은 내 사건을 구속사적, 영적으로 보는 것 입니다. 자기가 구원받게 되면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되고 고난 중에서 기가 막힌 화해와 용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육적인 꿈 밖에 모릅니다. 예수를 믿어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원망합니다. 이 세상 모든 꿈과 비전은 메시아 죽인 것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 다 동화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꿈과 비전은 다 동화입니다. 요셉이 십자가를 건넜습니다. 그냥은 안됩니다. 하나님을 아직 못 만나 화해가 안되고 원망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만난 사랑이 절절하다면, 영육간의 나에게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나의 사건이 걸어오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사건을 해석을 잘해서 돌아보지도 말아야 할 이 아픔을 털어버리고 가기 바랍니다.
Q.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환경은 힘들거나 아니거나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주신 것인데 지금 나를 보내신 곳은 어디입니까?
4. 화해에는 책임이 수반됩니다.
내 입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자기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모셔오기 위해서 자기의 지위와 부도 얘기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형들을 위해서 내 재산을 먹고 마시라고 이야기 합니다. 요셉이 2년이나 참았지만, 결단이 되니깐 속히 모셔오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버지라도 내가 인내해야 될 일과 속히 해야 될 일을 구별합니다. 이것이 참 지혜입니다. 형들의 진실한 회개가 없었다면, 요셉은 두려운 심판자로 머물러있었을 것입니다. 회개를 했기 때문에 기쁨 가운데 구원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죄 짐에 눌려서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형들의 사랑보다 더 큰 주님의 사랑으로 부르시는 그 사랑에 반응해서 주님께로 나와 화해와 용서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목장나눔
이번주 목장나눔도, 희정 목자언니와 진영이, 은실이, 미정이와 제가 모여서 목자언니의 산뜻한 간식과 함께 했습니다. 윤정이는 많이 아픈지 이번 주에도 못봤는데,,, 빨리 건강 회복하고 함께 목장나눔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Q. 생명 내놓는 사랑을 받고 감동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사랑으로 누군가를 위해 변론한 적이 있습니까?
A: 목사님의 사랑을 보면서 생명 내놓는 사랑을 아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경험은 없다.
B: 주님의 사랑이 그렇다고 느낀다. 사람한테는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해선 같이 울어주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C: 생명 내놓는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것 같고 남을 위해 변론한 적도 없다.
D: 나도 없다.
E: 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목사님을 보면서 그런 사랑을 배운다.
Q.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환경은 힘들거나 아니거나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주신 것인데 지금 나를 보내신 곳은 어디입니까?
A: 세상이 다 힘들다.
B: 어딘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뭐하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C: 내 삶 전체가 나를 보내신 곳이라 생각된다. 봉사하는 부서나 가족, 직장 등. 그런데 과연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무얼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D: 집, 특히 요즘은 막내딸의 위치로 나를 보내신 것 같다.
E: 요즘 사는 게 재미없었는데, 섬기고 있는 부서에서도 그냥 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며 나를 보내신 곳이 지금 몸담고 있는 부서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