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6. 03. 20
본문 : 로마서 1:1
제목 : 자기소개
인도 : 김양재 목사님
부지중 오살을 하고 도피성에 숨어 있으면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무엇이 훈련이 되어야 할까? 자기소개가 달라질 것 같다. 집안이 자랑인가? 학벌이나 외모가 자랑인가? 아니면 자랑할 것이 없어서 남들 앞에 설 때마다 항상 주눅이 드는가?
2000년 전의 바울의 자기소개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바울은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합니다.
로마서는 음행의 도시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 쾌락의 도시였던 이곳에 12개의 신전이 있었는데, 한 신전에 창녀가 천명쯤 있었다. 이 죄 많은 곳에서 로마서를 썼기에 로마도, 고린도도 변하였다.
우리나라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으나, 악한 성공과 음란이 난무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려면 예수님을 소개해야 하는데, 그 때 예수 믿는 자기소개를 잘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로마의 형제자매들에게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본 적 이 있는가?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세상에서 보면 망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장가도 못간 분, 집도 한 칸 없었던 분,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분, 고생고생하다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 그분이 훌륭하여도 나는 그분을 닮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자랑스러울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는 낮아져서서 오신 성육신과 부활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것은 대단한 사건인데, 그분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인생의 그리스도되신 것을 당연히 자랑스러워야 한다. 내 마음가운데에 이렇게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전도의 기회가 열린다.
나에게 복음의 소개장이 준비되어 있으면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자기소개로 예수님을 자랑할 줄을 믿는다.
적용) 어느 자리에서나 그리스도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가? 면접이나 맞선자리에서 믿음으로 소개하고, 소개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임을 알고 있는가? 앉으나 서나 예수님 자랑이 나오는가? 자기자랑이 나오는가? 상처를 얘기하며 은근히 자랑하지는 않는가?
2. 소개의 내용입니다.
(1) 파울로스, 바울입니다.
파울로스 즉 작은자라고 소개한다. 바울의 본래이름은 사울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을 배출해 낸 가문의 후손이다. 사울의 뜻은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라는 뜻이다. 베냐민의 희망이고, 사울집안의 희망이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석학이 되었고, 다소시 출신의 로마시민권 등 가질 것을 모두 구하였으나, 결론은 세계적인 설교자인 스데반을 돌로쳐 죽였다.
자기 자신의 열심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을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은 만족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주님이 만나주신 사울은 거듭난 다음 못난자, 작은자, 멸시받는다의 뜻인 라틴어의 바울로 이름을 바꿨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것은 얼마나 눈물을 흘릴 일인가? 사울을 겪고 지나면서 인생의 헛된 것을 알게 되었고 유대인의 기득권, 가말리엘의 문하생, 다소시 출신 등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적용) 여러분의 사울은 무엇이고 누구였는가? 무엇을 지나고 겪으면서 작은 자가 되었는가? 아직도 돈과 학벌, 명예가 좋아 사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둘로스, 종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작은자라고 인정을 하니까, 이웃에게 자신을 둘로스, 종이라고 소개하였다.
종은 무엇인가? 종은 노예이다. 2000년 전의 로마인구의 절반인 육천만이 노예였다. 시장에서 반나체가 되어 진열이 되어 있어 흥정을 하여 사가는 물건이다. 귀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귀걸이를 하면 그 주인의 소유가 된다.
종에도 차등이 있었는데, 집사인 종은 약간의 자유가 있었다.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은 그래도 높은 계열의 종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하위계급이 둘로스였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고, 전혀 자유가 없고, 빚지고 갚지 못한자, 중죄인으로 사형시키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자, 배밑창에서 바깥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노를 저어도 새 한 마리 값도 되지 않아 바다에 버리던지 산에 버리던지 해도 되는 것이 ‘둘로스’라는 계급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엘리트이자 로마시민권인 바울이 자신을 목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둘로스라고 소개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둘로스보다 더한 비참함은 영원히 죄에 매여 종노릇 하는 것임을 알았다. 죄에서 나를 자유하게 해 준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예수님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하였다.
(히브리서 2:15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이들에게는 어떠한 자유함도 없다. (출애굽기 21장 6년 노예생활 후에 7년째에 자유를 준다.) 그런데 둘로스보다 더한 비참함이 영원히 죄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죄에서 자유하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즉 죄에 매여 종노릇한다라는 것은 노예에게 육적으로 자유하게 해 주었더라도 주인이 좋아 스스로 주인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하기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신분을 떠나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만이 진정한 노예해방,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내가 자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나도 못박히겠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종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내가 그 예수님의 종이라면 상대방을 예수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구속사이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죄를 사함 받았다면 상대방도 그 구원을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생사여탈권이 내가 믿기를 원하는 모든 식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
적용) 예수님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족과 동료를 섬기는 종으로 둘로스로 자처하는가? 복음 때문이 아니라 배우자의 경제력, 자식의 성공, 육신의 정욕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둘로스인가? 남편의 둘로스인가? 자식의 둘로스인가? 돈의 둘로스인가?
(3) 아포스톨로스, 사도입니다.
사도는 원어로 아포스톨로스 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자를 의미한다. 당시에 전쟁이 많았는데, 사도를 보내 분쟁의 원인을 알아보고 타협점을 찾곤 했다. BC490년 그리스의 사도가 42.195km을 뛰어서 승전보를 전해준 것이 마라톤의 기원이 되었다 그때 외친 유한겔리온(기쁜소식)이 복음의 어원이다. 죽음에서 살아나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사도이다. 그러나 타협이 안되면 적군의 사도를 죽였다. 사실 사도는 끔찍한 직분이다. 타협이 되지 않으면 다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다. 생사의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사도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현재는 우리가 만인제사장, 만인 사도 시기이기 때문에 전부 사도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인데, 생사여탈권이 주님께 있는데 감히 우리가 사도를 한다, 안한다라고 할 수 있는가?
파울로스는 라틴어, 둘로스는 히브리어, 아포스톨로스는 헬라어 어원이라고 하였다.
복음의 길이란 ‘작은 자’ 임을 알게 되면 ‘종’으로 가게 되고, 그러면 목숨을 걸고 ‘사도’로 보내심을 받는 그렇게 저절로 가는 길이다.
적용) 하나님의 사도로 보내진 가정, 직장을 인식하고 복음을 외치고 있는가? 체면, 열등감, 죄의식 때문에 사도직을 버리는 비겁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3. 소개의 목적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내가 복음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배후에 나를 복음 속으로 밀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지게 하신 하나님의 밀치심이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도로 세우시게 한 것이 하나님의 밀치심이다. 그의 전도로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 것이 하나님의 밀치심이다. 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는가? 너무 열심히 죄에 매여 종노릇 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제동을 걸어주시기 때문이다. 택정함 보다는 구별됨이 맞는 해석인데, 성경에서 구별의 어원은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이, 끄트머리 미말에 두셨음과 같은 어원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땅끝까지 내려가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택정함을 입다’라는 것은 바리새인의 바리새와 같은 어원으로 ‘분리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나는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고 분리된 영적 바리새인이다.
육적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택정하심이 아니라 스스로 구별되어서 영적 교만으로 치닫은 결과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영적 바리새인들은 복음을 위하여 죽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복음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 ‘부름받은자’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것을 사랑으로 ‘깨닫는자’ 만이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죽기 살기 위해 노력하는가?
적용) 세상목적을 향해 달려가던 나를 복음 속으로 밀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 사건으로 나를 구별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았는가?
오늘 내가 힘들어서 곧 죽을 것 같아도 사도바울처럼 내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지키신다. 우리 중에 자신이 원해서 못난 자가 되고, 노예가 되고 사도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 헛된 것을 쫓는 사울을 겪으며 하나님이 뚫고 들어오셔서 내 죄를 보게 하시고 그 은혜로 내가 작은 자, 종, 사도가 되는 것이다.
유교정신의 투철한 보수집안의 조덕삼은 김제의 큰 부자였는데, 자신보다 더 부자의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와 헌신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테이트 선교사의 용기에 감동하였다. 1905년부터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금산교회가 시작이 되었다. 이자익은 어려서 부모가 돌아가시고 떠돌다 전라도로 가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였다. 우연히 이자익이 천자문을 외우는 모습을 본 조덕삼은 그때부터 자신의 아들과 동일하게 교육을 시켰다.
금산교회는 조덕삼과 이자익을 중심으로 부흥하게 되었고, 당시 교회의 총책임자인 장로로 주인인 조덕삼 대신 머슴 이자익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조덕삼은 신분을 뛰어넘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데려가 입학을 시키고, 공부가 끝난 후에는 당회장 목사로 죽을때 까지 깍듯하게 모셨다.
조덕삼장로는 어떻게 시기와 기분과 수치를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작은자이고, 종이고, 사도라는 자기 자신의 소개가 확실하지 않다면 이자익목사와 같은 열매는 없었을 것이다.
<기도제목>
보영
1. 구원을 위해서 가정과 모든 관계에서 작은자가 될 수 있도록
2. 직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들에 책임감 갖고 나에게 주신 환경 잘 묵상하면서 이번주 잘 버티도록
3. 전도축제에 아빠 올 수 있도록
4. 가족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 병원 알아 보는 적용 하기.
경화
1. 아빠에게 종이 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2. 동생에 대한 애통한 마음 가질 수 있게
3. 대학원을 준비하는게 내 욕심이 되지않게, 대학원에대한 마음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의 마음가짐으로 준비 할 수 있도록
4. 규칙적인 생활 할 수 있도록
5. 친구 전도축제에 올 수 있게 연락할 수 있도록
6. 아빠 전도축제 오실 수 있도록.
민정
1. 아빠 전도축제에 오실 수 있도록
2. 엄마의 건강회복과 체력을 위하여
3. 감사한 마음으로 시험 준비 잘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