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중 독 (여호수아10장15-27절) 2016.2.21.주일설교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지난 1월에 한 정보컨설팅 업체가 두 차례에 걸쳐서 20여만명의 정보가 담긴 성매매 리스트를 공개했다. 의사, 변호사 뿐 아니라 경찰까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 매체는 이 가운데 목사로 추정되는 이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도층 인사들이고 심지어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고 사역자가 되었을 목사까지 왜 이런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까?
갈수록 단절되고 깨어지는 관계들 속에서 수많은 죄의 세력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죄가 중독으로 이어지면서 숨겨온 아버지의 죄, 숨겨온 어머니의 죄가 자식의 죄로 이어지는 것도 보게 된다. 이토록 무서운 죄와의 전쟁, 중독으로 이어지는 전쟁에서 어떻게 철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세상은 끊임없이 속은 자, 속인 자가 있고, 속은 자가 속인 자를 끌어안고 간다 해도 왕급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듯이, 속인 기브온과 같이 가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기도할 때 해가 멈추고 달이 멈추는 응답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아직 굴 속에 숨은 아모리 다섯 왕이 남아있다고 한다. 끝이 없는 것 같다. 목사님은 끝이 없는 전쟁이 중독과 같은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중독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는,
첫째, 숨겨진 죄를 처리해야 합니다.
죄는 공개된 죄가 있고 숨겨진 죄가 있다. 여호수아 7장부터 보면 아간의 죄는 모든 사람에게 폭로되고 공개된 처벌을 받아 돌에 맞아 죽었다. 절도, 살인, 험담, 중상, 자랑, 술취함, 원한, 질투 중 한 가지만이라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번에도 7살 딸을 엄마가 암매장한 사건이 이번 주에도 있었다. 이런 죄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처벌하지 않으면 죄를 제해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공개된 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숨겨둔 죄가 더 무섭다. 이것은 더 제하기 어렵고 발견하기 어렵고 오픈하기는 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불순종, 자만심, 이기심, 악한생각, 의심 등 이런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다.
15절.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지난 시간에 아모리 다섯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물리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달도, 해도 멈추었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길갈예배로, 길갈교회, 길갈목장으로 돌아왔다. 항상 키는 길갈이다. 우리가 부족해도 승리해도 다 길갈 교회로 돌아왔다.
16절.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막게다는 예루살렘 남서쪽 32km지점에 있는 석회암동굴이 많은 지역이다. 100프로 기도응답을 받고 전쟁에서 다 이긴 줄 알았는데 가다보니까 다섯왕이 숨어있는 것이다. 명예, 쾌락, 물질, 정욕 내가 포기하지 못한 세상 다섯왕을 다 포기하고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숨을 곳이 있으니까 딱 숨은 것이다. 우리가 숨을 곳이 없으니까 숨지 않는 것이지, 숨을 곳이 있다면 다 숨게 되어있다. 사채를 내서라도 마지막 망할 때까지 가는 것이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시작되고 이제 사건이 닥쳐오니까 왕이건 화려한 집이건 큰 교회 직분자, 모태신앙도 다 소용이 없다. 인내도 없고 들은 말씀도 없어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당을 못하니까, 자식들 부하들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목숨만 지키겠다고 굴속에 숨었다. 다섯왕. 잘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숨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면 자식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 자기만 피해서 숨어버린다. 부도가 나도 숨어버린다. 이것이 대적의 실상이다. 진짜, 가진 사람들은 나와서 오픈하기 어렵지 않은가. 사실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는데 오픈한 사람들은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화려한 겉모습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약속의 길갈이 있는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절.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그 참 여기서 숨은 죄를 누가 고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수요일에는 혈루여인의 혈루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숨어있는 깊은 죄 또 다른 죄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숨어있어도 고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만심, 이기심, 음란한 마음, 의심을 얼마든지 숨기고 살아갈 수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기연민과 위선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자기연민은 겸손함과 착한행동으로 숨기고 자만심과 이기심은 의로움으로 숨길 수 있다. 반대의 겉모습으로 죄를 가장할 때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것이다. 그래서 숨겨진 죄는 공개된 죄보다 발견하기 어렵고 제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드러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탄은 끊임없이 죄를 숨기는 역할을 한다. 숨어서 은밀하게 죄를 행하면 그 죄가 지속적으로 나를 속박하고 중독과 집착에 빠지게 만든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고 비밀이 알려지면 힘을 잃어버릴텐데 계속 혼자만의 비밀로 두면 그 중독의 힘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중독은 개인의 약점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놓기가 쉽지 않다. 누구든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독자가 하는 첫 번째 거짓말은 “문제는 무슨 문제~” 라는 것이고, 두 번째 거짓말은 “ 그래, 나쁜 습관이라는 것은 알지만, 언제든지 그것을 버릴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독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 당장 끝내버릴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면 강박적인 충동이 살아나서 다시 그 사람을 찾고 다음날 아침이면 사탄에게 이용당했단 느낌으로 스스로를 증오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든지 이 관계를 끊을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생각보다 큰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제랄드메이의 책을 인용하겠다. 중독이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마약, 술, 담배 비 물질적인 중독도 너무 많이 있다. 일과 성취, 책임감, 친밀감, 호감을 얻는 것, 사람을 돕는 것을 누가 중독이라고 하겠는가. 친구 중독도 있고, 오늘 말했듯이 거식증도 있다. 호감을 얻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계속 하는 것이라면, 또 그것을 안하면 죽을 것 같은 것은 다 중독이라는 것이다. 중독은 좋은 중독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자녀를 신앙생활(큐티시키고 교회오게 하는 것)시키는 것, 사랑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도 강박적으로 하게 되면 속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좋은 중독은 없다. 그래서 수많은 행위들에 중독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은 일들에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들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중독이 존재한다.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신앙고백 없이 이기적으로 하는 모든 착한 일에 중독이 존재한다. 아모리 다섯 왕들은 많은 전쟁을 치루었지만 하나님께서 해도 달도 멈추게 할 정도로 강력한 사탄의 하수인들이기에 아직도 굴속에 숨어있다. 중독도 하루아침에 끊어지지 않기에 집착과 중독의 관계는 보기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다. 뇌는 한 번 가졌던 집착을 결코 완전히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구를 자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집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 마음속의 속임수로 인해 수많은 중독이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우리를 좌절시킬 때, 갈등을 유발시킬 때 비로소 그 집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우리가 많이 가지게 된다. 다들 우리가 그럴 줄 몰랐어, 내가 그럴 줄 몰랐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굴 속에 숨어있는 아모리 왕은 이미 결박당했다. 그럼에도 화려한 아모리 다섯왕의 겉모습을 보고 놀란다. 왜 겉모습에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인데 그리 놀란다. 여러분의 숨겨진 중독은 무엇인가? 목사님은 내 속의 중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많이 있겠지만 인정중독이 제일 심각한 게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일생을 살면서 두려워한 걸 꼽으라고 하면 자다가도 꿈에서 너무 놀라는 게 피아노 시험친 것이었다. 수많은 실기시험을 치고 칠 때마다 몇 분 안되는 심사위원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렇게 해서 대학입시를 치루고 대학가서 수없이 실기시험 치고 연습을 했다. 근데 왜 그렇게 떨렸을까? 그런데, 그것이 항상 성적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또 좋은 성적을 안받으면 큰 일나기 때문에 그것이 다 좋은 것 같지 않은가. 날마다 떠는 게 뭔지 실체도 몰랐다. 인정받아야 하고, 철저히 나의 유익을 위해 했기에 떨렸던 것이다. 입시와 직결이 되니까, 최고의 대학과 직결이 되어있고, 나중에 진로와 직결이 되어있으니까,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날마다 떨리는 것이다. 그 몇 사람 앞에서 평생 떨리던 목사님이 구름떼와 같은 우리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이게 이해가 되는가? 목사님이 설교할 때 떨릴까요? 목사님이 긴장은 하지만 나의 이해타산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기에 설교할 때 떨리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해 안타깝고 긴장하는 것은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으려고 부들부들 떠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목사님 뇌에는 인정중독이 기억되어있기에 지금도 남아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시는. 설교도 완전주의가 있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다. 두려운 것은 항상 욕심 때문이다. 아무리 힘든 사람도 다 나의 밥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 공개된 죄도 처리하고 숨겨진 죄도 처리해주실 주님을 믿는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 힘으로 중독을 끊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가장 첫 단계가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나는 인정중독자입니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싶은가요?
마지막 단계는 보다 더 큰 힘을 신뢰하는 것이다. 보다 더 큰 힘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중독은 우리 본성의 일부인 동시에 본성의 대적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중독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러므로 그 중독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한다는 것이다. 은혜는 억압과 중독 밖에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외적 힘들을 다 능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중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은혜 밖에 없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이다. 큐티야말로 중독치료소라고 생각한다. 매일 큐티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며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힘을 공급해주신다. 그러나 신앙고백 없이 큐티를 문자적으로 하는 사람은 문자중독자라고 한다. 나는 큐티를 하는데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라는 사람은 문자중독자이다. 우리 가운데 바리새인 같은 문자중독자들도 많이 있다.
적용)오늘이라도 끊을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중독과 숨겨진 죄는 무엇인가? 내가 인정하지 못하기에 내 죄를 드러나게 하심이 축복임을 믿는가? 그렇게 해서 드러나게 하신 것이 있는가?
둘째, 중독에서 해방되려면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18절-19절)
다섯 왕이 숨은 것을 여호수아가 알았다. 그런데 그들을 바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굴어귀를 막아서 지키게 하고 그 다음 무엇을 지시하는 것을 보니 남은 적군을 물리치라고 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리고 전쟁, 아이 전쟁 다 겪다보니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 여호수아가 알았다. 목사님 같으면 다섯 왕이 숨었다고 하면 부하장병 앞에서 내가 아모리왕을 물리쳤다고 자랑할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이 우리들교회와서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아서 목사님이 복음제시하면 영접할 것 같을 때 목사님이 으스대면서 가지 않겠는가.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두라. 남은 적군을 먼저 물리쳐라. 결국 여호수아는 사탄의 모든 것을 알고 장악하고 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어떤 때는 두목부터 쳐야하고 어떤 때는 졸개부터 쳐야하는 것이 때마다 다르기에 인도함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전쟁에서는 두목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이기에 내버려두라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 이것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뒤에도 그 이유가 나온다. 20절부터다.
혀를 놀려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은 비방하는 사람이 그 동안에는 있었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포기 못하니까 어떤 것도 진멸을 못한다. 자꾸 욕심을 남겨두니까 혀를 놀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부하, 남은 적군을 다 물리치고 나니까 혀를 놀려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사람이 없다고 대적하는 자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 찾아가 전도할 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중독을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은 아모리 왕의 입장, 여호수아, 군졸의 입장에 따라 이것이 큐티고 오늘 말씀이 내게 임하는 것이다. 환란당하고 빚진 한 영혼은 대통령 한 영혼이다. 일년 내내 환란당하고 빚진 자 보내달라고 했더니 우리들 모든 교회에 비방하는 소리가 많이 줄었다. 목사님은 여성목회자이다. 얼마나 비방할거리가 많았겠는가. 우리나라가 1600여년에 불교문화와 500여년에 유교의 제사문화, 여성비하문화에 익숙한 사회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정관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견고하다. 이런 가운데 여성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비방 받고 조롱받을 일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이 힘든 사람 오라고 하니까 비방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계속 어렵고 힘든 그런 곳만 찾아다니셨다. 우리가 믿는 목적이 그게 아니겠나. 핑계댈 것이 없다.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혀를 놀려 비방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맨날 왕들하고만 놀려고 하니까. 숨은 왕은 내버려두고 내 할 일부터 하라.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들으시길 바란다. 영혼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섯왕보다 군졸을 전도하기 쉽다. 힘들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면 비방을 덜 받는다. 핍박증후군에 속하는 것도 중독이다. 누가 핍박을 합니까? 자기가 자기를 핍박한다. 혀를 놀려 비방할 때 나의 잘못인가, 의의 핍박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혀를 놀려 비방할 때 상처가 되면 숨게 되어 가서 중독으로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비방당하지 않기 위해서 낮은 자, 힘든 자를 먼저 돕고자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어딜 가도 상처, 목사님도 평생 댕겼지만 상처 때문에 옮긴 적은 없는 것 같다. 항상 그냥 사역을 하면서 이 교회도 틀렸고, 저 교회도 틀렸고, 우리나라 틀려서 이민 가고, 이러면 안된다. 낮은 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중간은 간다. 때를 잘 알아야 한다. 급한 일인가. 중요한 일인가. 영적인 일인가. 육의 일인가. 구원을 목표로 두지 않으면 분별이 안된다.
적용)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영적 전쟁에서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난한 형제와 친구는 부담스러워 피하고 교회 데리고 갔을 때 나의 체면을 살려줄 사람만 전도하진 않는가?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믿는 자로서 비방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셋째, 중독에서 철저하게 승리하려면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합니다.(24절)
시편110편 1절 “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으라 하셨도다” 했는데 원수로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원수의 목을 밟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교회도 가정도 성장한다. 로마서 16장 21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의 군장들이 사탄을 상징하는 다섯왕의 목을 밟았다. 은밀한 죄는 거듭 우리를 미혹시키고자 하기에 우리는 그 죄를 발아래 놓고 밟아야 한다. 근데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외도, 부정을 행한 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 배우자가 바람을 처음 피웠을 때는 찾아가서 모두에게 알리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굴욕을 당해야 딱 끊는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처럼 불륜을 해서 수치를 당하는 것이 죄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는 수치를 당했지만 그것으로 천국 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도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가서 아무리 난리쳐도 끄떡없다. 그래서 그것도 분별을 잘해야 한다. 어쨌든 다섯왕이 발로 밟히는 굴욕을 당하면 빨리 끊어질 수도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발로 밟을 수 있음에도 전쟁에 참가했던 군장들을 불러 발로 밟으라고 했다. 승리를 직접 체험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양육과 훈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엇다. 목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교회를 목사 혼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이 각자의 삶에서 끊지 못하는 죄목을 밟고 왕 같은 세상가치관을 물리치는 이런 승리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가 성장하고 한 영혼이 성장한다. 큐티는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발견하고 그 죄에 대한 목밟기를 날마다 행하는 것이다. 외도의 목을 밟고, 왕따 문제의 목을 밟고, 끊기 힘든 술, 담배, 음란 이런 목을 밟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적용하고 결단하니 하나님이 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멀리서는 목을 밟을 수 없다. 가까이 가서 죄의 실체를 보고 내가 적용을 해야 한다. 직접 가서 적용해보라고 여호수아가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훈련이다. 25절이다.
그런데 아모리왕들은 죽은 상태가 아니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다섯왕들이 살아있는데 두려워서 어떻게 목을 밟겠는가.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여자 문제를 적용하겠어, 내가 어떻게 술담배를 못끊었다고 말하겠는가, 돈의 목을 밟고, 쾌락, 명예, 체면의 목을 밟는 적용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교만한 자들이다. 그래서 땅 끝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아모리 왕들처럼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은 숨고, 지연으로 숨고, 학연으로 숨고 끝까지 숨는 것 밖에 못한다. 아주 확률적으로 가진 사람들은 드러내기 어렵다. 하지만 죄를 짓고 드러내지 못하면 최후는 멸망과 심판이다. 그래서 숨을 데가 없는 것이 축복이다. 여호수아는 두려워말라고 군장들을 격려했다. 목밟기 적용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다른 이들을 돕게 되면 여호수아와 같은 리더십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다.
적용) 오늘 어떤 목밟기 적용을 할까요? 중독의 목을 밟기 위해 커피를 줄이는 것이 어떨까요? 말도 안되는 이 나라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에 비싼 커피를 너무나 많이 마시는 거 아닌가. 커피를 줄이세요. 가정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는가. 마실려면 자판기 커피, 다방커피도 있고. 중독이라는 것이 딴 게 아니다. 게으름의 목을 밟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고 충동의 목을 밟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두고 외출하기,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부터 해보길 바란다.
26절이다.
죽인 왕들을 나무에 매달고 선포하는 것이 목장 나눔이다. 우리의 숨겨진 죄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처리받아야 한다. 처형되어야한다. 나의 중독을 끊어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면 구원받은 자리에 가는 것이다. 내 죄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처형되어야 한다. 힘들게 하는 아이가 집을 나갔다. 이 엄마가 어디 가서 나눌 데가 없는 것이다. 나눌 데가 없어서 우리들교회 와서 나누니까, 나누기만 해도 너무 기뻤는데 아들이 돌아왔다. 나누고 기도하고 돌아오니 다들 내 일처럼 기뻐해준다. 근데 아모리왕 같은 사람들은 다 숨기느라 바쁘다. 그렇게 막게다 굴에 숨으시면 치료가 안된다.
27절이다.
그렇게 매달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기억도 안되게 소멸되어진다. 죄가 죽으매 넘겨지면 승리의 행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는 여호수아가 이기는 전쟁만 하게 된다. 내가 한번 오픈한 것은 굴에 던져놓고 도말한다고 하신다. 세상의 모임과는 절대 다르다. 영원히 굴에 던져놓고 굴어귀를 큰돌로 막아놓고 오늘날까지 있더라고 한다. 절대로 하나님은 기억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정복하길 원하신다. 자백은 했는데 아직도 굴에 끼고 있으면 열매가 없다. 이제는 목을 밟고 십자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한번 매달면 승리와 부활 밖에 없다. 군장들이 다섯왕들의 목을 밟았어도 마지막에 진짜 죽인 사람은 여호수아이다. 내가 적용했다고 하루아침에 다 죽지 않는다. 누군가 적용을 했다. 목사님이 재료 삼아 계속 설교했다. 목장모임 가서도 대롱대롱 매달렸다고 고맙다고 한다. 서로 나누고 해석하고 선포하고 가는 것이 죄를 이겨가는 방법이다. 28절이다.
28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열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모든 사람을 진멸했다고 한다. 진멸의 원어가 헤렘이다. 아간과 같은 단어다. 우리도 헤렘이다. 우리도 진멸당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21가지 죄의 목록으로 인해 사형에 해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진멸 헤렘의 종지부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이 헤렘 사상이 하나님의 복음을 더 은혜롭게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를 7장부터 보면 그 죄의 핵심내용이 다 들어있다. 죄의 실체는 탐욕이다. 아간의 탐욕. 그 탐욕으로 죄를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죄의 실체를 모르기에 우리가 심각하지 않는 것이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눈물을 흘리면 내 죄가 보이는 것이 해결과정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여호수아는 이후로 계속 승리의 전쟁을 한다. 죄와의 전쟁은 이렇게 이겨가는 것이다. 중독에서 이렇게 철저한 승리를 하려면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한 연구를 하고 묵상을 하고 적용을 하고 나눔을 하고 선포를 하고 이것이 바로 완전히 이기는 비결인줄 믿는다. 어디서도 그 치료책이 없다. 바로 말씀, 이 길갈공동체가 죄의 중독의 치료소라고 생각한다.
한 중년 법률가가 특정성관계에 중독이 되어있었다. 오랬동안 한 동료에게 매력을 느껴왔는데 어떤 장기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서 밀접한 관계가 되면서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 사실을 아내가 모르게 하면서 아내를 속이는 것이 싫었지만 그의 연인은 수년 만에 내가 처음으로 살아있게 해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것이 중독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짜 로맨스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인을 만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 관계에 강요되어진다고 느꼈다. 그는 매주 한번 찾아오는 자존감과 성적해방을 위한 마약주사를 갈망했으나 만남 후에는 매번 우울해졌다. 가고 싶지 않았으나 가야만한다고 느낄 때도 있엇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불륜을 끝내려고 했으나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아내에게 들키거나 연인이 앙심품을까봐 점점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가 의사를 만나고 믿을만한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오픈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그에게 사랑이 아니라 강박관념에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알려주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었고, 드디어 마지막이라고 안만나기로 하고 그렇게 끝이 났다. 싱겁죠... 너무나 힘들었다. 그녀를 생각하고 감탄하고 함께한 일을 회상하게 됐지만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녀도 그녀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 이 법률가는 믿음도 없는데, 이 불륜 사건 외에도 다양한 많은 여성에게 끌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재빨리 단순하게 빨리 끝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술을 커피로 대체하려고 하면 안된다. 중독이 큰 것이다. 법률가의 특징은 솔직한 연약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스는 유혹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들교회 성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중독의 노출 아래, 목장에서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나누다 보면 그 중독의 마음이 사그라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중독을 즐기고자 하기에 절대로 목장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목장에 나가시기 바란다. 우린 예외 없이 중독과 더불어 살고 있다. 결국은 끊어낼 수 있음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본다.
<부목자 모임> - 정정환 목사님
오늘 주일설교 말씀처럼 숨겨진 죄, 중독. 찾기도 힘들고 숨겨져서 가지치기하기도 힘듦.
숨겨진 죄와 중독으로 인해 회개할 수도 없는 상황. 이 말은 곧 숨겨진 죄와 중독으로 인해 예배가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 간혹 목자들이 예배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수 년 동안 목장을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그런 것 까지 오픈을 하나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까지 오픈하라고 공동체가 있는 것.
나도 속고 남도 속는 믿음.. 영적 생명은 진실한 것들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의 성숙은 얼마나 진실한지가 중요. 죄와 중독의 문제..드러내놓고 가야 한다.
죄로 꽁꽁 싸매고 있으면 안됨. 어떤 말을 듣더라도 고질적인 죄와 상처의 문제가 있다면 드러내기. 낮은 땅이 옥토가 된다는 말처럼, 내 안에 있는 중독들을 고백할 때부터 치료가 시작됨. 중독보다 더 큰 힘을 믿는 것이 중요.
청년의 때에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축복인지 모른다.
나는 청년 때에 ‘나는 잘 되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이런 사고 방식. 기복주의적인 사고 방식. 은연 중에 내가 잘되어야 나에게 하나님께서 복주시리란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에 젖어있으면 내가 생각한대로 내가 노력한대로 일이 안풀리면 생색과 원망이 밀려온다. 가족 구원에 대해서도 요원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 때에 우리들교회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중 구속사, 구속사적인 관점.. 말씀이 정말 ‘들리니’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됨.
여러분들이 양육교사훈련에 대한 사모함은 큰 것 같다. 양육교사훈련모집 얼마안되어서 마감이 되었음. 훈련이 다른 것이 아니다. 목사님 설교말씀을 자주 듣고 녹취하고 자주 보기, 말씀 곱씹기. 이렇게 되면 내 삶의 디엔에이까지 흡수가 되어, 급성장하게 된다. 주일 수요 예배, 큐티까지.
말씀이 들리는 것이 정말 축복. 칼빈 또한 ‘성도의 최대 축복은 말씀이 들리는 것이 축복’ 이라고 하였다. 스바냐서 큐티 때 깨지고 무너지는 그 사건이 바로, 이를 통해 다시 세워지는 사건을 뜻함.
<기도제목>
송미:
1) 엄마와의 관계 회복.
2) 관계 중독인 것 같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나누는 편..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면.. 남친보다 내가 더 감당이 안될 것 같다. 그 친구의 구원보다, 우선 내가 하나님보다 그 친구를 더 찾는 게 큰 문제인 것 같다. 하나님 뜻 물으며 분별 잘 하고 가기를.
3) 회사에서 그 분이 어떤 말을 해도 요동함 없이 듣고 넘길 수 있길.
장미:
1) 일 중독인 것 같다. 일에 집중하고 있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뿐. 중보 부탁.
2) 안힘든 척 괜찮은 척 하는 게 있는 것 같다. 힘든 내색 안하는 게, 건강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내 성격인 것 같다. 지금의 상황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3) 큐티 빼먹지 않고 할 수 있도록.
4) 가정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아빠 생각이, 아빠 마음밭이 강퍅하지 않고 유연해지셨으면 좋겠다. 교회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윤지:
1)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잘 기도해보고 하나님 뜻 알 수 있기를. 감당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에 대해 미리부터 두려워하게 됨. 나의 정욕으로 나의 의지로 하나님 뜻을 거스를까봐, 일을 그르칠까봐 걱정이 앞선다. 물으며 갈 수 있도록.
2) 박사과정 앞두고, 교수님께서 슬슬 부르기 시작하셨다. 대학원 생활 잘 보낼 수 있기를.
게을러서 체력이 부족해지고, 체력이 부족해지니 게을러지는 악순환. 선순환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3) 공부도, 교수님도, 교제도 두려움 가운데 있다. 내 상황 알아주는 길갈 목장에서 각자 중보 부탁..
혜주:
1) 동생이랑 아빠가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 갖기를. 둘 다 강퍅한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부디 둘 다 교회에 함께 나올 수 있기를.
2) 학교 생활에서 거절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동료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도, 직급 높은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번에 부장을 안하게 되어서 내심 좋지만 불편한 마음 있음. 곧 학기 시작하는데, 교장, 교감선생님과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 부탁.
3) 예전 그 제자에게 줄 청큐를 준비해놨는데, 아직 보내주지 못하고 있다. 어서 주소 물어보구 전달 할 수 있길.
신정:
1)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텃세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먼저 잘 수그리고 잘 지낼 수 있도록. 겸손할 수 있도록
2) 중독들에서 끊어질 수 있도록.
3) 매일 큐티 빼먹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알럽 울 조신정목자목장 차차라추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