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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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이번 주일 목장 모임은 송민창 목사님의 목장 탐방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참석하셔서 보다 풍성한 나눔이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설교요약>
영적예배 (롬 12:1-2)
김양재 목사님
어떤 믿음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산기도도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배우자를 만나겠다고 기도 하였습니다. 믿음의 자매라면 무조건 결혼하겠다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어떤 자매를 소개받았습니다. 너무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영 아니었습니다. 결혼이 너무나 하게 싫어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다 영적인 것인데 실상은 육적인 것을 위해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닌데 보이는 것을 본질로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영적 예배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는 것입니다.(1절)
영적인 예배는 윽박질러서 드릴 수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로마서 1-11장까지 그동안 반복해서 들어온 이야기는 인간은 100% 죄인이라는 것과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동원하셔서 원가지인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서도 이방인의 충만을 이루실 만큼 많은 사람을 수고시키셨습니다. 1-11장까지가 믿음부분을 가르치며 교리부분이 단호했다면, 그것은 진리이고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수많은 설교를 통해 인생이 100% 죄인이라는 것을 외치며 주님밖에 구원자가 없다고 눈물로 협박으로 호소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 부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가정과 도덕에, 윤리 등의 삶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복음 부분이 잘못되면 이단 뿐 아니라 교회에도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모두 믿기만 하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 되어 하는 일 마다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히신 이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의 사건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보물창고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어도 보물창고인 십자가의 사건을 지니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형제들아’ 라 부릅니다. 복음이 우리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형제인식입니다. 교리 부분은 사람이 인정을 하든안하든 변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단호하지만 12-16장까지의 행함부분은 사랑으로 밖에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강제로 행함을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나도 먼저 믿어서 권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그렇게 강조를 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넘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먼저 믿은 자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인 이유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그러므로’는 나도 최고의 믿음의 사람 스데반을 살인한 자이다. 그런데 나같은 죄인도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형제이다. 그래서 그 은혜를 너희에게 권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에 도전을 주기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이런 순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고백과 형제인식과 사랑과 인내가 있어야 삶에 적용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의 삶은 이런 자비와 사랑으로 권면하는 삶이고 또 그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더디 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나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있고, 마음은 원이로되 늘 육신이 약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깨닫고 삶에서 적용하는 자마다 성숙의 단계가 다 다릅니다. 복음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확실하고 단호하지만, 삶의 적용은 각자 믿음의 단계에 따라 다 다른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에게 삶의 적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오죽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한다고 하겠습니까. 인간의 자비함이 너무도 얄팍하기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은 끝이 없이 반복되는 사랑과 인내이기에 이런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끝없이 반복해서 권면해야 합니다. 가르침을 잘 받고 잘 듣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잘 받는 것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권면도 수없이 사랑으로 자비하심으로 해야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끝없이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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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붙이기 싫은데 구원을 위해 형제들아 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 바람피우지마라, 가출하지마라 라는 수많은 말보다도 부드러운 자비와 사랑이 나와 상대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습니까?
- 십자가를 잘 지도록 도와주는 형제가 있습니까?
2. 몸을 드리라고 합니다.(1절)
온 인격과 삶을 주님께 다 드려야합니다. 교회만 주님의 것으로 드리면 안됩니다. 주님을 예배당에 감금시키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으로 주님께서 항상 동행하여야 될줄로 믿습니다.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예배라고 하니까 모순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몸을 드리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몸은 무가지한 별 것이 아닙니다. 몸은 영이 거할 처소이기에 몸이 없으면 영도 없습니다. 헬라인은 몸을 무덤으로 여기고 정신을 가두어놓는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몸은 무가치 하니까 몸의 욕구를 무시하고 극도로 절제하는 경건주의가 되구요, 또 몸은 무가치하니까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방치하는 쾌락주의로 극단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바로 몸을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기막힌 원리로 움직이는줄 아십니까? 우리 몸은 눈을 한번 깜빡이는데 1/40초가 걸리고, 콧구몽은 3-4시간마다 활동을 교대하는데 한쪽은 냄새를 맡고 한 쪽은 쉰다고 합니다. 성인의 뼈는 206개인데 그 중의 절반이 손발에 있다고 합니다. 피부는 천연완전방수가죽옷인데 허물이 끊임없이 벗겨지면서 한달에 한번씩 새 피부가 공급되어 완전히 새것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우리 몸속의 혈관의 총길이는 11만 2천 킬로미터로서 지구를 두 번 감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차 한 대를 만드는데 1만 3천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보잉 747기를 만드는데 300만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우주 왕복선은 500만개의 부품이 필요한데, 사람의 몸에는 10조개의 세포가 있다는 거죠. 계산 할 수도 없는 엄청난 양의 세포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25조개의 적혈구가 있고, 250억개의 백혈구가 있으며, 혀에는 9천개의 미각세포가 존재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최고로 정교한 기계를 만든다고 해도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솜씨에는 누구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 몸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 몸이야 말로 가장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는 성전입니다. 그 몸을 거룩하게 만들려면 몸을 굴뚝으로 만들거나 술독이 되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그것이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면서도 육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원하시고, 시간을 원하시고, 봉사를 원하시지만 그것만 드리면 우리는 우리자체가 만족되지 않는 것을 느낍니다. 제물로 우리 자신을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산 제사의 반대가 죽은 제사인데 차이가 무엇일까요? 죽은 제사도 제물을 드리기는 합니다. 그런데 드리는 자의 삶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죽은 제사입니다. 내 자신이 제물로 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것이 죽은 제사입니다. 아직 돌아가신 부모님, 조상의 제사를 폐하지 못한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고 정성으로 드리는데, 그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죽은 제사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계실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육신의 아비를 성경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8:44에서 육신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없으면 마귀이고 거짓말쟁이이고 살인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우리는 똑같이 마귀고 거짓말쟁이고 살인한 자고 그 속에 진리가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아비가 죽었는데 그 죽은 몸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귀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폐하면 부모도 몰라보는 자식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살아계신 부모님께 잘하는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살아계실 때의 삶을 추억하고 기억하며 남아있는 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모여서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산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은 내 자신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 식구들을 섬기는 것은 죽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큐티로 개인예배를 드리고 공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도 내가 죽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릴 수 없습니다. 더 자야하고, 더 일해야 하는데 어떻게 쉽게 드리겠습니까? 힘들어도 낢마다 시간을 드리고 내 손발을 드려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래야 저절로 가족 사랑이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너무 좋으니까 사랑하는 식구들과도 함께하고 싶어지고, 이웃과 동료들과도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려니까 내가 죽어질 일이 더 많아집니다. 참을 수 없는 일도 참아야하고, 귀찮은 일도 앞장서서 처리하고, 가정과 직장에서 더 적극적인 제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도 예배입니다. 예배 순서의 일부가 아니라 내 수입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인 것입니다. 로마서 11:6 십의 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는 십일조가 거룩한 것이라면 나머지 10분의 9도 거룩하지 않겠습니까? 십일조를 드리면서 나머지 돈도 하나님께 주권을 이양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거예요. 그 물질의 9/10도 하나님의 것이예요. 십일조를 드렸다고 나머지를 함부로 방탕하게 쓰는 것은 십일조의 의미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느라고 십일조를 드렸어요. 그 최소한의 신앙고백이 없는 사람은 나머지를 함부로 사는 것이지 절대로 영적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내 시간도 애정도 감정도 표정도 다 하나님 앞에 드렸을 때 나머지도 거룩해지는 영적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정리해보면 영적예배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인데, 참 오해가 많습니다. 주여주여 외쳐서 영적인 예배는 아닙니다. 영적예배란 reasonable worship이라는 그런 의미도 있어요. reasonable은 합리적인, 이성적인, 마땅한, 합당한 이라는 뜻이 있고, worship은 경배와 섬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적예배는 합당한 경배, 마땅한 섬김이 바로 영적예배의 뜻입니다. 영적예배란 마땅한 예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예배 다음에 따라와야할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개인예배인 큐티가 있고 가정예배 공동체예배 공예배 모두 드린 후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섬기는 것이 영적예배입니다. 어떤 것도 죽어지지 않으면 못합니다. 개인예배는 결국 생활예배까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금을 해도 피땀으로 수고해야하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도 아무 일이나 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도 내 몸이 가야하는 것입니다. 부인과 자식이 대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몸이 가고 몸이 움직일 때 믿음의 실체가 보입니다. 결론은 생활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삶에서 향기가 나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물은 말이 없습니다. 영적예배는 변명도 없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죽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수많은 동안에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영적 예배를 잘 이해하고 기억하셔야 합니다.
- 하루 24시간 나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고 있습니까?
- 내가 기뻐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려면 어떤 습관부터 바꾸어야 합니까?
- 하나님께 특별히 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왜 드리지 못하는지 묵상해보십시오.
- 큐티가 잘되십니까? 일주일에 몇 번 하시는지, 점점 늘려가시기 바랍니다. 수요예배는 참석하십니까? 목장예배는 참석하십니까?
3. 마음에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2절)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거듭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드리려면 먼저 영혼의 구원이 있고야 몸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몸을 드리려면 구원받은 몸의 삶도 계속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꾸 분별이 없어지고 가볍게 여기기에 오늘 사건이 오면 제물이 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해야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하지말아야 할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말고라고 합니다. 이 세대의 특징은 마 15장 39절에 악하고 음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가지말아야 될 곳이 있고, 보지말아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에 있으니 이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대를 너무 본받고 싶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이것은 끊고 저것은 본받지 말아야지 하며 매일 적용해도 아직 세상에 속해 살고 있어서 본받지 않기가 참 어렵습니다. 세상에 속해 살면서 세상을 거부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참 안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애굽에서 400년동안 종노릇 하다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나안으로 금새 갑니까? 못갑니다. 400년동안 속해있었기 때문에 나를 붙잡는 것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했어도 이스라엘은 너무 찌질해 보입니다. 종살이 했어도 애굽이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강퍅해져서 붙잡습니다. 나는 이제 끝났어 세상 욕심 다 끊었어 해도 10가지재앙을 거쳐야 겨우 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가 이 세상에서 갖춘 것 순도가 99.999%이기 때문에 그냥은 믿는 백성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바로가 마음으로 아무리 보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술이 말을 듣지 않고, 나는 믿으려고 해도 그것이 마음대로 안됩니다. 재앙도 갖춘 것에 비례해서 와야 포기가 됩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본받았던 것을 포기하기 위해 40년 광야생활이 필요했습니다. 본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하셔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 광야훈련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광야와 같은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이 세상을 본받지 않도록 막아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 중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십니다. 애굽 400년 뒤에 광야 40년의 훈련을 거쳤는데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또 바벨론을 본받고 있기에 바벨론 포로로 보내실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이 짧은 인생에 자꾸 없어지게 하시고 자꾸 망하게 하십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최고의 비결이자 방법입니다. 제 인생을 통해봐도 어려서부터 연민에 젖을 환경이 많았지만, 잘못하면 너무나 이 세대를 본받을 뻔 했는데 저를 어떤 환경에 가서도 막아주셔서 지금 하나님을 본받게 하는 환경이 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의지적으로 보지 말고 듣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두 번째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에게는 선하신 뜻이 있고 선하지 않은 뜻이 있다는 이야기 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조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십니다. 왜 이런일이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에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의 영적인 분별을 위해서 끊임없이 묵상하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훈련이야 말로 큐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말씀으로 깨끗이 청소하라는 것입니다. 거울을 닦으면 자신이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하루만 닦지 않아도 잘 안보입니다. 지난주 큐티 디도서 2장 10절을 보면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빛나게 하는 것, 보석이 빛나려면 자꾸 닦아야 되지 않아요?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내고 닦기 위해서 사건이 옵니다. 사건이 안 오면 말씀이 하나도 닦아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한 사건도 사건이 없으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릅니다. 사건이 올수록 내가 보석처럼 닦아지고 빛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내 사건도 내 마음도 반짝반짝 닦아야 합니다. 몸을 드리기 위해서는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2절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는 수동태입니다. 내 마음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나님이 바꿔주셔야 합니다. 몸에 탈이 나면 의사의 처방을 받듯이 마음에 탈이 나면 하나님의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교회에서는 말씀으로 처방을 받는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성경으로 내 자신을 진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방을 받고 그래서 마음에 변화를 받는 것이 큐티의 능력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기 위해서 날마다 씻어야 하는데, 화장실은 냄새가 나지만 꼭 있어야 합니다. 멀리 있어야 할 화장실이 드디어 안방까지 들어왔습니다. 수세식 덕분입니다. 그래도 더러움은 꼭 씻어야 하기에 내 옆에라도 화장실은 꼭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데, 그것을 알기 위해 눈만 뜨면 갈등을 할 일이 많습니다. 성령충만은 갈등충만이라고 늘 말하듯이 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알려면 계속 씻어야 합니다. 이 씻는 물이 말씀입니다. 구별된 목적을 가지고 걸어가는 지체들과의 만남이 변화를 받는데 꼭 필요합니다. 목장 모임을 통해 변화 됩니다. 형제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물질이 가고 물질이 가는데 마음이 가고 몸이 가면 마음이 따라 갑니다.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생활의 예배를 올바르게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면 내가 기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기쁘게 잘 살 것 같아도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기에 조금만 지나면 평강이 없습니다. 모두가 죄 가운데 있어서 평강이 없습니다. 변화를 안받으니까 교회 나온지 오래 되어도 아직 억지로 교회 나오고 헌금도 아깝고, 그래서 늦게 오고 와서 졸고, 그래도 복받아야 하니깐 교회는 꼭 옵니다. 저는 우리들 교회에서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기뻐하는 분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냥 만나면 좋습니다.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있습니다. 아파도 부도가 나도 죽게 되어도 거기에서 만난 하나님을 전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을 행하면 기쁜 것입니다. 내 삶의 전 영역에서 ‘그러므로’의 삶인 영적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지난주 큐티 디도서 2장 12절에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도 똑같습니다. 오늘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버릴 것이 있고 살아야 할 것이 있고 기다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본래 인생은 경건치 못하기 때문에 경건치 못한 것과 이 세상 정욕을 사건이 와야 은혜로 조금씩 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못 버립니다. 내가 늘 버리기만 하면 안 되고 버릴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내가 너무 죄책감을 느껴서도 안됩니다. 내가 예수님 믿으며 애통한 자는 복이 있지만 그러나 또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도 있습니다.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자기의 의가 자기의 경건이 아닌 하나님의 경건과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드리는 것이 경건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욕을 버리려면, 경건에 이르는 예배에 참여하고 큐티를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천국에 가면 남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성경보고 남들을 위해서 나눔하고 기도하고 나눈 것만 천국에서 남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임종을 앞둔 마지막 메시지.. (나는 일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상실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쉬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면 결과적으로 비뚤어진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바로 나같이 말이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물질은 잃어버리더라도 되찾을 수 있지만 절대 되찾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삶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다.) 믿지 않는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남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경건의 연습을 하려면 내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기 위해서 계속 욕심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경건하고 의롭게 살기를 소망하게 되니 소망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13절의 복스러운 소망으로 바뀝니다. 내가 지금까지 세상과 남편과 자녀와 돈이 소망이다가 복스러운 소망, 바라크의 복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복스러운 소망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에서 내 자녀를 통해서, 내 남편의 바람사건을 통해서, 내 자녀의 불신앙을 통해서도 장애아인 자녀를 통해서도,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녀가 낫는 것이 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복스러워서 잘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양육이 잘 된 사람은 잘 버리고, 잘 살고, 잘 기다리게 됩니다.
- 무엇을 잘 버리고, 어디에서 잘 살고, 어디에서 잘 기다립니까?
예배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금식한다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 어떤 집사님은 직장을 구하는데 연봉에 상관없이 수요예배 목장예배 드릴 수 있는 곳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예배를 간다고 일찍 퇴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있는 날은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공예배만 예배가 아니라 그 예배를 방해받지 않도록 일주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고 유행을 쫓아 열심히 이 세대를 본받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내게 정신이 번쩍 드는 사건이 찾아왔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분별하고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에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아파도 부도가 나도 배반을 당해도 이혼을 해도 거기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되어 사명이 됩니다. 암에 걸리고, 부도가 나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돈이 없고 병에 걸려서 본받고 싶어도 본받을 수 없는 환경이 있다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눈만 뜨면 이 세대를 본받고 싶어하는 나를 왠 은혜로 십자가에 달려있게 하시는지 어찌하여 ‘그러므로’의 삶을 살게 하시는지요. 입이 다물어질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사명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영적예배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먼저 우리가 형제인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변화를 받기 위해 큐티와 공예배 목장예배 생활예배를 잘 드리기 바랍니다. 예배하는 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라혜지(83)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 지도록
2. 긍휼한 마음 주시도록
3. 영적예배가 회복되고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4. 가족의 건강과 구원
임지혜(84)
1. 회사 내에서 관계의 질서에 순종하도록
2. 일을 잘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팀원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주는 관리자가 될 수 있도록
3. 하나님의 계획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4.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를
이수라(87)
1. 하루하루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2. 영적예배가 회복 되도록
3. 가족 구원
장미라리(85)
1. 영적 예배가 회복되도록
2.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너무 깊이 묵상하지 않도록
3.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를
4. 진로를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인도함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