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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주일
로마서 15장 1~13절
사명공동체
김양재 담임목사님
행복 박사 탈벳샤르는 ‘행복의 기술’은 관계맺기, 베풀기, 집중하기, 극복하기라고 했고 이것을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이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려면 고통이 따르는데 사람은 고통 당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고통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고통이 없는 이는 죽은 자 이거나 싸이코패스 라고 합니다. 성화에서 영화로 가는 과정에서 복의 개념이 바뀌어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거룩을 목적으로 두는 삶에는 알 수 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구원의 사명을 매일 깨닫게 해줄 사명 공동체가 필요하고, 사명 때문에 사는 우리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줍니다.
1.사명 공동체는 강한 우리 공동체 입니다.
1)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한 자는 누구일까요? 사장? 아버지? 어머니? 부자? 지식인? 건강 있는 자? 아무거나 먹는 자?
깡패 출신의 목사님이 말실수가 많아서 100명의 성도가 30~40명으로 줄었습니다. 어느 날 부장집사님이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아 걱정했는데, 예배 후에 여 집사님이 장례 때문에 부장집사님이 나오지 못한 것을 알려주니, 안도와 함께 분이 올라와 욕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 집사님은 욕은 전하지 않고 목사님의 진심만 부장집사님에게 전해 오히려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여기에서 강한 자는 누구입니까? 여 집사님입니다. 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객관적으로 강한 자였지만 자가가 강하다고 하지 않고 강한 우리 라고 합니다. 강함과 약함은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세상은 이 특권을 얻기 위해 난리입니다. 연약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건강 지수를 알 수 있습니다. 특권은 그저 주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강합니다. 연약한자는 약점을 담당할 우리가 없는 자입니다. 내 약점을 담당할 우리 공동체가 없는 자가 약한 자 입니다. 예배만 드리거나, 학연과 지연으로 모임을 가지는 자가 그러한 자입니다. 약한 자는 자기의 기쁨을 구하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이해타산으로만 모이는 자입니다. 영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자기와 영적으로 비슷한 사람하고만 모이려고 합니까?
2)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
이 기쁨은 영적으로 세워주는 기쁨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틴 셀그만의 ‘무기력의 심리’에서 아기가 울 때 엄마가 부정적이라고 반응을 주는 것에 아이는 자신이 태도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미움보다 나쁜 것이 무관심과 무시입니다. 솔직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연약함을 담당하는 것은 반응하되 진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하고, 긍정적인 확신을 얻습니다.
3) 비방 받을 때 성경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중독 습관 끊기 어려워,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비방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 있습니다. 잠과 시간을 포기하고 섬겼는데도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 고난 어렵게 오픈했는데 비방 받을 때 있습니다. 물론 오픈은 매우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고난 당한 이에게 찾아가 알맞게 오픈해야 합니다. 이때 성경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내 자신 돌아볼 때 안위를 얻습니다. 구속사는 잘되고 좋은 이야기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위로를 얻는 공동체가 사명 공동체입니다.
적용) 내가 담당해야 할 우리와 약점은 무엇입니까?
나의 약점을 담당해줄 우리가 있습니까?
강한자 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고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비위 맞춥니까?
믿음 때문에 비방 당해도 믿음공동체에 소속되지 않겠습니까?
타인의 약점을 담당하려고 하지 안으니 나의 약함을 담당할 이가 없습니다.
2. 사명 공동체는 뜻이 같은 우리공동체입니다.
인내의 길은 지치고 어렵고 안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내가 길수록 한마음, 한입으로 외칠 수 있게 됩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것을 외치게 됩니다.
야망이 뭐가 나쁩니까? 한마음 되기 어렵게 합니다. 부부관계에서 한마음 되기 어렵습니다. 박성덕 정신과 의사는 큐티인 칼럼에서 ‘접근’과 ‘반응’을 이야기했습니다. 연합을 위해 접근(내 마음을 드러내고)과 반응(배우자에게 다가감)해야 합니다. 비난과 지적을 하지 말고,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배우자를 원망하거나 비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든 부부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복을 위해 넘어야 할 것이 있을 뿐입니다. 용기와 회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드시 회복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쁘게 살면 하나님께서 회복 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접근”이 얼마나 안 되는 인생인지 정말 모릅니다. 부부 뜻 같아지기 위해 인내와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 부부가 하나된 공동체가 됩니다.
적용) 우리 가정과 교회는 한마음 한 소리를 냅니까?
혹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자기소리를 냅니까?
먼저 주님과 하나될 때 자녀, 가정 하나됨을 믿습니까?
3. 사명공동체는 용납하는 우리공동체 입니다.
사도 바울과 성경위인 모두 약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이가 다 약점이 있습니다. 한 부분이 쓰임 받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 비방하면 안됩니다. 먼저 예수님 믿고 직분을 받았다고 강한 이 아닙니다. 내가 자랑할 것이 없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을 연구했더니, 7년의 수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랑보다 용서가 어렵지만 용서해야 건강한 공동체 됩니다. 형제를 용서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것입니다. 요셉은 용서와 화해 했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다고 생각해야지 용납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가해자 일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장자와 차자를 차별했고, 형들의 아픔을 이해 못했습니다. 용서는 금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 입니다. 기근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 먹을 것과 지위, 권세 있으며 어렵다. 용서가 얼마나 어려우면 성경에 이렇게 지면을 할애 했을까?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심을 알아야 용납하고, 화해한다.
적용) 용납하고 화해하기 싫은 이 있습니까? 나의 이해타산을 위해 잠시 화해한 것뿐 아닙니까?
그런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사명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임을 압니까?
피해자입니까? 가해자 입니까? 내가 가해자일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4. 사명공동체는 열방으로 지경이 넓어지는 공동체입니다.
로마서와 성경의 목적은 열방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목적은 열방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강한 자가 되어 열방으로 나아가 찬양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을 모르는 인생은 즐거움을 만들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주님만이 찬양과 기쁨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내 옆의 연약한자 담당하다가 더 많은 사람과 열방을 담당합니다. 추수감사 헌금을 교인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방이 소망이어야 합니다(13절). 돕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쁨, 소망, 찬송을 주십니다. 열방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들교회는 아프리카, 브라질, 미국에서 선교하고, OT 선교회도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술 먹고 와서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면서 온갖 민망한 소리를 하다가 잠든 남편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고 아침에 따뜻하게 꿀물을 타주면서 교회 가자고 했습니다. 이것입니다. 이 자매에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자매를 연약한자나 피해자라고 하겠습니까? 온 교회가 자매를 위해 감당하는 사명 공동체입니다. 사명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돈, 능력, 공부, 일, 기도, 건강, 말씀,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야곱과 아들들이 애굽으로 갈 때 문제가 많았습니다. 살인, 동침, 서출의 자녀들이 많았으나 출애굽할 때 200만명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숫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약한자 모인 공동체라도 서로의 연약함을 담당할 때 건강해져서 열방 감당할 이가 됩니다.
적용) 힘든 이 때문에 더 절망적이 된 적 있습니까? 오히려 더 큰 소망으로 부르신 경험이 있습니까?
개척 준비 기도할 때 빚지고 원통하고 환란 당한자만 오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살아나 강한자 되어 약한 자를 섬깁니다. 아둘람 공동체 우리들 교회가 어떻게 살았나 신기합니다. 빚 진자들이 모였으나 빚 없이 헌당하였습니다. 가치관의 변화로 교인들이 놀지 않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자들은 사회 불만 세력이 아니었습니까? 아둘람 공동체는 다윗이 시글락에서 잘못하니 돌로 치려했으나 압살롬의 반역으로 #51922;겨갈 때 다윗을 따랐습니다. 이들의 불의를 못 들었습니다. 힘든 이 돕고자 하면 부흥은 그저 따라옵니다. 상처 입은 이들이 뭉치기 얼마나 어려운가요?
어두움 가운데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나요? 고난을 반짝 반짝 말씀으로 닦아서 내놓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박지윤
- 직장 가정에서 강한자로 순종의 언어 쓸수 있기를
- 고등부 내려 놓는데, 붙여준 사람들 은혜로 섬길수 있기를
- 생활예배
이인학
- 가족구원 중보
- 직장에서 강한자로 섬기기 기도
- 직장 이직 기도
- 신교제 신결혼
하주희
- 직장 기도(사내 결정에 순종)
- 말에 지혜가 있기를
-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