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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마태복음 5:3-10
■ 설교 요약
1. 심령이 가난한 자 (3절)본문에 쓰인 ‘가난하다’는 원어로 ‘푸투코이-웅크리다’에서 유래된 말로 웅크린 거지의 모습, 의지할 곳 없는 거지 나사로나 두 렙돈을 바친 과부에게 쓰인 단어다. 지금 내 앞의 굶주림이 원수가 아니라 내 안의 욕심과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원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구걸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 괴롭힘과 고난을 당하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겸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이다.적용 Q)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난의 내용이 무엇인가? 물질의 가난, 애정의 가난, 건강의 가난이 결국 영적인 가난으로 이어져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는가? 2. 애통하는 자 (4절)애통함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 때의 극한 슬픔’을 의미한다. 바로 내 죄 때문에 그런 슬픔으로 울어야 한다. 죄를 슬퍼하며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얻는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엉엉 우는 자를 하나님이 위로하신다. 가난함과 애통함은 같이 오는 것이다. 부유하면 애통하기가 어렵다. 내가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자이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애통함이 나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탄식이다.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위로가 최고다. 환경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가난하고 애통해야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는 누구도, 어떤 사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적용 Q) 무엇 때문에 애통한가? 절박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도 필요없다고 버둥거리고 있는가? 믿음이 성숙할수록 나의 가난함을 보고 그것 때문에 애통하며 그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천국의 복을 누리고 있는가?
3. 온유한 자 (5절)얼굴이 온유하고 표정과 말씨가 온유하다고 해서 온유한 사람이 아니다. 온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짐승을 길들일 때 쓰는 말로 ‘길들여져 주인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땅을 차지하고 화평을 즐기는 것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등기 소유가 내 것이 되지 않아도 이 땅을 즐기는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모세의 친형제인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할 때 그의 온유가 지면에서 더하다는 말씀이 나왔다. 우리가 온유함을 갖기 가장 힘든 곳이 가정이고 부부지간이고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모세를 통해 보여 주신다.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기 먹던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모세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형제들이 모세를 도와도 시원찮을 판에 도리어 비방을 했다. 이 때 모세가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다 들으실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참았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누가 비방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입을 다물 수 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영육간에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온유다. 우리는 날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누가 나의 죄를 지적하는 걸 못 들어 준다. 누가 나를 비방할 때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할 것 없이 하나님이 들으시겠구나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걸 못 기다리고 내 지위와 능력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온유는 자신의 지위 뒤에 자기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온유는 그래서 성품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무조건 져 주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온유가 아니라 연약함이다. 진짜 온유는 진리를 붙드는 것이고 진리를 붙들기 위해서 순교까지도 하는 강함이다. 온유한 사람은 그야말로 외유내강한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아무리 부드러워도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은 온유는 가짜다. 십자가를 경험한 온유는 내게 많은 재주와 은사와 능력과 지위와 권세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능력만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나를 판단해도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다.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적용 Q)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온유하다고 착각하지는 않는가? 성품이 아닌 십자가의 온유, 하나님 때문에 인내하고 순종하는 온유가 있는가?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절)의는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주리고 목말라 해야 할 의는 내 뜻, 내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마치 환자가 자기 병의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지 않고 그저 고통만 제거해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의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에 주리고, 돈에 주리고, 애정에 주리고 있다. 남편에 주리고, 자녀의 성적에 주리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 없는 것인지 알아야한다. 누군가를 굶주려 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도망가게 돼 있다. 남편, 자식에게 굶주려 있으면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해서 다 밖으로 돈다. 사람에게 주리고 세상에 주린 것은 내가 주릴수록 채워지지 않는다. 더 비참한 목마름과 주림만 경험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뜻에 주리고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 주신다. 인생의 목적, 결혼의 목적이 거룩이라는 것을 알고 그 거룩을 원할 때 주님이 내 인생도 가정도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더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의를 더욱 사모하도록 나를 가난하고 애통하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이 내게 축복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 진정으로 주리고 배부른 자가 되는 것이다.적용 Q) 내가 끊임없이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집, 좋은 차, 사람의 관심과 인정받는 것에 목마른가? 주리고 목마른 환경을 통해 영적인 배부름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드리는가? 5. 긍휼히 여기는 자 (7절)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듯이 아파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아파하고,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듯 남을 이해하고, 내게 관대하듯 남에게 관대한 것이 긍휼이다. 다른 사람의 범죄 소식을 들으면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분노와 상처로 아파서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내 자신이 얼마나 긍휼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아는 사람은 남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 마음으로 불쌍해하고 염려하는 것이 긍휼이 아니라 찾아가서 상처를 만져 주고 안아 주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그 실천까지 가는 것이 긍휼이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으며, 내가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것이 나의 복이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나한테 복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있어서’ 내게 복이 있다.적용 Q) 비록 가족이라도 그 인연을 끊고 싶은 연약한 식구가 있는가? 연민을 느끼지만 찾아가거나 만나기는 싫어서 돈만 부치는 얄팍한 긍휼을 보이진 않는가? 죽으시는 순종으로 내게 베푸신 주의 긍휼을 생각하며 ‘몸으로 실천하는 긍휼’을 보여줄 것은 무엇인가?
6. 마음이 청결한 자 (8절)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내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욕심 없는 빈 마음이나 행위의 청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윗 왕이 유부녀 밧세바와 불륜을 행하고, 계략을 세워서 그 남편 우리야를 죽게 하고 간음과 거짓말과 살인을 행했다. 행위로는 청결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이 청결한 자였다.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했을 때 다윗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다. 자기 죄를 고백하며 흘리는 눈물이 우리 마음을 청결케 한다. 어떤 부도덕과 비리를 저질렀어도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청결한 사람이다.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 불신자는 결코 볼 수 없는 하나님이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적용 Q) 하나님이 내게는 안 보인다고 불평하는가? 내 죄를 회개하는 눈물로 마음이 청결케 되어 주변의 모든 환경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7. 화평하게 하는 자 (9절) 천국에 속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이다. 화평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무려 400번 정도 나올만큼 성경은 평화를 중요시한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내 속에서의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웃과 화평하게 되고 그 일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다면 우리도 남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될 수 있다. 수동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갈등과 다툼과 원망의 자리에 들어가 화목제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적용 Q) 가정과 직장 내의 갈등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내와 섬김을 보이며 화평을 이루는가? 인간적인 의리나 이해타산 때문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비겁한 화평은 아닌가?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10절)주님의 말씀을 듣고 팔복대로 사는 사람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핍박이다. 팔복대로 살기 시작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욕과 핍박과 악한 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팔복의 핵심은 가난이고 주제는 핍박이다. 팔복은 시작도 끝도 천국이다. 주님으로 인해 핍박 받지만 환경을 초월하시는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 주님의 제자가 갈 길이다.복음은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는 말씀이다. 그래서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그를 미워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다. 이것이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를 대하는 태도다.적용 Q) 크리스천으로서 뇌물을 거절하고, 술자리를 거절해서 따돌림의 핍박을 받는가? 믿음 때문에 참고 양보했다가 미련하다는 악한 말을 듣는가? 그것을 참고 인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믿음을 높게 보셨구나.’ 하며 적극적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 팔복 말씀을 거꾸로 풀어 놓으면 이렇게 된다. 심령이 부유한 자는 화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임이요. 죄 때문에 애통하지 않은 자는 화가 있나니 위로받지 못할 것임이요. 혈기 부리는 자는 화가 있나니 땅을 얻지 못할 것이요.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는 화가 있나니 저희가 배고플 것이요.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는 화가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임이요. 더러운 자는 화가 있나니 하나님을 보지 못할 것임이요. 분열케 하는 자는 화가 있나니 사탄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핍박받지 않는 자는 화가 있나니 지옥이 저희 것임이라.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팔복대로 살기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세상에 한눈 팔아서는 안 된다. 성경적으로 가장 확실한 투자는 가난하고 애통하고 의에 주리고 핍박받는 것이다. 팔복대로 사는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다. 천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어떤 환란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괜찮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다. 이 땅에서의 가난과 핍박은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세상을 포기할 수 있다. 그것을 포기 못해서 영원한 천국을 포기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다.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괜찮고 가난도 문제되지 않는다. 유일한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약속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과 환경에서 오는 시험과 갈등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당해도 천국을 놓지 말자.
■ 적용 나눔
Q) 내가 요즘 주리고 끊임없이 목마른 것은 무엇인가?
A자매굳이 꼽자면 연애를 하고 싶다. 지금 안하면 못할 것 같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꼭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할 것 같다. 말씀은 정말 안 들린다. 힘든 것이 없어서 그렇다.
B자매
학점과 외모에 주리고 목마르다. 3학년 때 실습 나가는데 '유치원 선생님스러움'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성형외과도 찾았다. 무섭긴 하다.
C자매피부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365일 중 300일 정도 피부가 안 좋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너무 피곤하다. 공모전 때문에 수요 예배는 2주간 못 갔다. 이제 또 다른 공모전 시작한다. 규모로 따지면 가장 큰 공모전이라서 더 하고 싶은데 결선에 세 팀밖에 진출 못한다고 해서 걱정이 된다.
D자매잠을 자다가 깨다가 해서 많이 피곤하다. 학교에서 하라는 과제가 너무 많다. 꿀이라고 해서 수강 신청한 교양 과목도 교수님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할 것이 많아졌다. 복수전공을 해야할지, 하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E자매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다.
F자매회사 사람으로 연락만 주고 받은지 6개월 정도 된 불신남 얼굴을 지난주에 처음 봤고 다음주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된 데이트 한번 안 해 봤기 때문에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즐기지만, 절대 교제는 하지 않을거라며 합리화 하는 중이다. 그동안 부담스럽게 표현을 많이 해 온 사람이라 얼굴 보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편해서 그냥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오는 연락 다 받아주다가 직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면 그 때 거절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은 매우 불편하고 이래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처방) 그 사람이 좋아 죽겠다고 하면 더 만나보고 하나님을 전해 보라고 하겠지만, 좋아하는 마음도 아닌데 그냥 이렇게 만나는 것은 음란이고 죄다. 함께 영화 보지 말고 그 날 소개팅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리는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 잘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금까지 알아서 잘할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우리 교회에 좋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겠다. ■ 기도 제목
정다은(95)- 과제 잘 할 수 있도록
장연주(87)- 매 순간 하나님께 물으며 갈 수 있게- 세상적인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있도록- 목장 식구들 위해서 애통함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나래(89)- QT 생활 마음 먹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양육 이번주가 마지막인데 끝까지 동반자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 잘 들을 수 있도록- 사람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김소연(95) - QT 매일 할 수 있도록- 목장 식구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명주현(96)- 우리 부목자가 신교제 할 수 있도록
최소정(95)- 휴학 앞에서 연약함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신교제를 목표로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온유한 자의 이름 안에서 져주는게 온유가 아님을 깨닫고 고쳐 나가는 적용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