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승리 합니다. 롬(8:31~39)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탄식할지라도 영과 육의 구속을 단계적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나는 100% 죄인이지만 그런 나를 말씀으로 성화시키면서 영화롭게 성화 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율법으로 나를 정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계명이 되어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는 자는 영화롭게 되어 승리합니다. 어떻게 승리가 가능 할 수 있을까요?
1.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승리 합니다” 라는 뜻은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28~30절을 요약하면 나를 부르시고 정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 5개 복음의 황금 사슬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단에게서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정체와 신분을 알지 못하면 마귀의 공갈에 벌벌 떨며 살아갑니다.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일 을 근심하고 불안해 할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미리 겁을 먹을 때가 많은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갈등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나를 무시하고 짓밟고 괴롭혀도 나를 무시 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특별히 인도 하십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의 행진입니다. “우리”가 열 번 이상 나옵니다. 주일엔 우리의 예배가 있고 우리의 수요예배가 있고 우리의 목장 나눔이 있고 말씀으로 도배하는 우리가 있으니 사단이 대적을 하려다가도 사단이 일곱길로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가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셔서 로마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카타콤에 이 복음을 들었던 성도들은 우리 공동체가 되어서 로마를 결국 변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300년이 걸렸습니다. 결국 우리가 승리 할 것을 믿은 바울 한사람의 확신으로 말미암아 로마가 변화 된 것입니다.
적용 #8211;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남의 편이라고 생각이 되어지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위하셨는가? 하나님은 나를 위해 독생자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그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사랑으로 모든걸 주셨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안주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자기 자식을 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마음이 넓고 관대해도 자식 문제가 나오면 우리는 다 고슴도치가 됩니다. 대놓고 이기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주셨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사랑으로 모든걸 주셨는데 아들까지 주신 창조주가 나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가난을 이기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열등감을 이기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재산,권세,용모 입니까? 우리가 이길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우리 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었으면 나머지 하나님이 다 채워주십니다. 필요한 능력,필요한 물질,필요한 사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그런데 왜 나만 안줄까 생각을 하는건 하나님이 내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안겨서 가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상처도 유혹도 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세우기 위하여 반드시 은사를 주십니다. 그 사랑이 영원불변하니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내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을 때 거대한 카타콤의 성도들이 성화에서 영화로 들어가며 로마가 변했습니다. 300년 기점으로 본다면 그 사람들도 얼마나 안 변한다고 생각을 했겠습니까? 로마가 안 변하면 우리는 언제까지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까? 믿어서 구원을 받았지만 100년, 200년 성화가 점점 300년 마지막 영화로 바뀌어 가기 까지 기다리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는걸 안다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훈련이 되어 성숙으로 가며 성화를 지나 영화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날마다 죄짓고 날마다 똑같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성화에서 영화로 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근데 남들이 볼때는 달라지는 것이 보이지만 자기가 볼 때는 똑같습니다. 로마가 변할려면 30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집은 내가 죽기까지 안 변하는 집도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지 변화될 집들도 있습니다.
적용 - 나를 대적하는 세력 때문에 때마다 주눅이 드는 재물, 외모, 학벌이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까지 나를 위해 내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 아무도 정죄 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 고발과 정죄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고발했을 때 불안 하다면 왜 그런 걸까요? 고발을 했던지 당했던지 불안한 사람은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빛 도 못 갚고 담배도 못 끊고 술도 못 끊었는데 니가 그러고도 신앙인이냐? 고발을 당합니다. 그러면 어느세 내가 구원 받은거 맞아? 그런 마음이 듭니다. 로마서 8장 교리부분에 마지막 영화, 7장이 성화를 다뤘다면 8장은 영화, 마지막 고발부분 까지 영화부분을 다룬 것을 보면 성도는 끊임없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가책, 죄책이 있을수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다지 못 끊는 걸보고 구원은 나와 상관이 없어 생각을 하며 자주 못 끊는 것을 봅니다.
적용 - 끊지 못하는 죄가 있어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외치는 자가 구원 받겠습니까? 아니면 믿는 사람답게 살지도 못하면서 무슨 구원의 확신을 논할 재게가 되느냐? 하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 입니까?
우리가 종일 시련과 고난이 닥쳐 오더라도 도살한 양처럼 못 끊는 것이 있습니다. 사단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나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고 합니다. 끊지 못하는 죄로 우리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을 때 사단은 넌 않되? 하면서 자꾸 고발하고 정죄 합니다. 복음은 상식이면서 상식을 초월합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게 복음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무리 끊지 못하는 죄가 있어도 나를 의롭다 하실 이는 하나님 이시기에 나를 위해 죽으실뿐 아니라 다시 살아 나시니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간구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은자 입니다. 나에겐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구원은 나에게 공로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비밀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성령님이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의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친히 간구하십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마땅히 기도 할바도 알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내 미래도 모르니 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죄,율법,사망 에서 자유 합니다. 아직도 얼마나 이기적인 기도를 하고 얼마나 욕심,형식,입으로 내뱉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요. 얼마나 죄를 짓고도 감추는 기도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성령님이 탄식하십니다. 내가 너를 의롭게 해주었는데 넌 어쩜 그리 안변하니? 나땜에 성령님은 말도 못하십니다..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니가 교회 다닌지 몇 년이냐? 구원 받은지 도대체 몇 년이냐? 하십니다. 탄식을 언어로 보면 해산에 고통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절망의 고통이 아닌 희망의 고통입니다. 진통이 너무 아파서 탄식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아기가 곧 태어난 다는 소망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탄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나의 가족을 사랑하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믿길 원하는 탄식의 고통이 있습니다. 눈물과 탄식은 다릅니다. 탄식은 조용히 우는게 아닙니다. 절규를 하면서도 소리도 못내는 것이 탄식입니다. 우리 집안에 예수가 임하기 위해서 기가 막힌 탄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희망의 탄식입니다. 소망의 고통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죄를 감추고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순전히 아버지 잘 만난 덕에 나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정말 부모를 잘 만났습니다. 우리가 무슨 빽 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서 이런 기도를 받을 수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자녀보다 연약해서 성령이 탄식해 주는 인생이 축복입니다. 눈동자처럼 자녀를 지키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늘 쫓아 다닐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이 도와주시고 잘 못할때는 뒤에서 노려 보시고 힘들 때 는 위로 해주시고 이런 성령님이 도와주시고 경고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수치를 벗어나기 보다 수치를 드러내면서 응답하는 인생을 결국은 승리하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없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끊지 못하는 죄가 있어도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이 나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간구 해주시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얻은 나입니다. 그 하나님 의로 인해 나를 고발하고 정죄 할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정죄 할자가 없는 승리의 몸, 영화의 몸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적용 #8211; 가족이 나의 약점을 가지고 고발하고 정죄합니까? 끊지 못하는 쇼핑과 여러 중독들 때문에 스스로 정죄 합니까?
3. 아무도 그리스도 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리깨로 곡식을 치듯이 몰아치는 것이 성도의 환란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환란,곤고,핍박,기근,적신,위험,칼 이 있습니다. 마지막 영화부분에 가진 고난이 몰려 있습니다. 욥의 고통처럼 자식,재산 다빼앗기는 환란이 있는가 하면 서서히 정신적으로 오는 곤고함도 있고 대인 관계에서 오는 노골적인 핍박도 있고 못먹는 기근도 있고 적신의 수치도 있고 나를 죽일 것 같은 위험과 찌르는 칼이 있습니다. 성화에서 영화로 가면 어떤 고난도 없다고 착각을 하는데 그냥 마지막에 다 몰려 있습니다. 그런 힘든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기에 그 사랑이 오면 이런 것 들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이 땅에 보이는 것이 다라면 보이는 소망이 전부라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구조를 보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생각 과 비교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생각건대는 신중히 생각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면 논리적, 신중히 생각하는 것일까요? 고난은 현재의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을 위한 사역은 3년이었고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신 시간은 6시간 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이 지난 뒤 2000년 동안 영광을 보이시고 앞으로도 영원한 영광가운데 계실 것 입니다. 현제는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시간을 말합니다. 근데 성도의 인생도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가 현재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평생 고난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현제의 고난입니다. 70년 동안 당해도 그것은 현제의 고난입니다. 여기서 생각 할 것은 내 고난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70년 고난이라고 해도 잠깐이라고 생각을 하면 천국을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한 시간을 고난을 겪어도 지옥의 삶을 삽니다. 그렇게 현제의 고난을 생각하고 장차 의 영광과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들 거꾸로 합니다. 우리는 장차의 영광보다 현제의 고난만 생각을 합니다. 현제의 고난만 비교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 하니까 슬픈 겁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부인과 비교 할수 없는 신부입니다. 현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무엇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생각하고 비교하는걸 잘 알아야 합니다.
적용 #8211; 고난이 언제 끝날지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 과 나의 현제를 비교하며 슬퍼합니까? 다른 사람, 남편, 자녀, 직업을 비교하며 슬퍼합니까? 비교할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현제의 고난 속에서도 누리고 있습니까?
환란 중에는 믿는 배우자를 찾다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신결혼 의 환란도 큽니다. 믿음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혼기가 늦어져도 참고 기다리는 형제, 자매를 축복합니다. 기다린 만큼 장차 큰 영광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소망이란 기대에 찬 소원이 아니라 절대적인 확실성에 위에 있는 것입니다. 젊은 날 믿음의 적용으로 참고 기다리면서 간다면 그 영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환란이 계속되면 자꾸 자기를 고발하고 정죄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환란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끊어지지 않는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칼,돈이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입니다. 끊을수 없는 주님의 사랑이 능력입니다. 그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그 사랑을 확신 하므로 세상 것을 내려놓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간다는 적용을 할 때 주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자기 희생이 아닌 확대입니다. 사랑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그 사랑을 확장시켜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의 영육 간에 건강과 성장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적용 #8211; 자살, 파산, 배신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긴 간증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에 두려움 없이 순종한 간증이 있습니까? 나를 해칠수도 살릴수도 없는 피조물에 연연해서 패배감에 젖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리 - 예수님 때문에 포기하고 따돌림 당하고 인제는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기쁘게 십자가 지는 사람, 어떤 환란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고 영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기 도 제 목
권오영
1. 시간관리 잘하기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큐티!
퇴근 후 시간 활용
2. 직장에서 작은 결정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윗질서에 먼저 묻기
조윤성
1. 규칙적인 생활하며 큐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2. 가족구원(아버지,누나)
3. 동반자 잘 섬길수 있도록 지혜주시길
4. 진로 주님께 잘 물으며 알아보고 계획하기
5. 신교제
서진아
1. 피곤한 가운데 지치지 않기
2.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는 습관 들이기
3. 매일 큐티 빼먹지 않기
김효진
1. 외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치료중이신데 회복되실수 있도록
2. 계획세워서 잘 실천하기
3. 멘토링 시간 내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지혜주시기를
4. 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