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 #65279;말씀요약 : 로마서 7:7~16 " 율법이 죄인가? "#65279; ♥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도 율법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천국 가는 그곳까지 성화를 이루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남자들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저자가운데 한명인 프래드 스토커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해도 계속 하나님과 거리감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한동안 괴로웠다고 합니다. 몰랐던 자신의 죄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견한 죄는 주말 신문에 끼워져 온 백화점 전단광고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기 전 신문을 읽는 척하면서 그가 훑어 본 것은 전단에 실린 속옷 모델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야한 잡지나 사보는 사람과는 다르잖아 하면서 위안을 삼았던 것입니다.
율법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1. 율법은 죄를 알게 해줍니다.
율법과 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율법자체는 죄일까요? 율법은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아야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로 죄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표적을 빗나가는 것,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는 것, 건너지 말아야할 곳을 건너는 것, 불법, 불 경건, 불순종, 불의 외적인 악행, 내적인 악행, 정도와 수준에 따라 하는 것, 하지 않는 것 모두가 죄에 해당합니다. 탐심은 내적 악행이라 할 수 있는데 십계명을 보면 첫 번째 계명부터 아홉 번째 계명까지는 외적인 죄를 언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계명에서 탐내지 말라는 내면의 계명을 말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안식을 어기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모든 죄가 탐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탐심을 죄라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욕구라 합니다. 외적인 도적질과 살인만 죄라고 합니다. 그러니 탐심이 죄라는 것을 누가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은 외적인 행동과 언어로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내속에 있는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서두의 저자 프래드가 어떻게 자기 죄를 알게 되었을까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자신이 광고전단을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성적농담이나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거룩을 이루는 영단계 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예수님은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내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했습니다. 마음속의 탐심을 누가 알게 해줍니까? 율법이 알게 해줍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하니까 더 탐이 나서 내 속의 탐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쇼핑중독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에는 보기만 하고 와야지 하지만 보고 와서 하루 종일 짝 사랑하느라고 생각이 맴돕니다. 죄라는 생각이 없으면 누가 말리겠습니까? 쇼핑도 할 거면 해야 되겠는데 중독수준에 가게 되면 날마다 하고 와서 또 가고 싶고 또 가고 싶고 그럽니다. 육신은 죄의 도구입니다.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육신과 죄와 율법과 죽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적용) - 우리의 드러나지 않은 탐심을 율법으로 알게 된 적이 있습니까?
2. 율법은 죄는 살리고 나는 죽입니다.
기회는 거점 이라는 뜻입니다. 죄가 율법을 거점으로 삼아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욱 의심이 생겨서 죄를 짓게 되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동산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되자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말라 했더니 사단이 이것을 기회삼아 원죄를 짓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지 말라하면 더 하고 싶어집니다.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자꾸 만나지 말라고 하면 어떤 사람인데 그러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내 속에는 죄성이 있었습니다. 포도즙에 찌꺼기가 가라 앉아 있을 때에는 잘 모르다가 흔들면 검었게 올라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 속에 죄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자 죄의식이 생기고 내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것입니다.
죄가 살아나는 것은 은혜입니다.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됩니다. 아무리 율법을 읽고 알아도 계명으로 나에게 이르러야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성경지식이 아닌 나에게 일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 알고 내 죄를 깨닫고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에 이르러서 죄를 깨닫고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영원히 회개할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계명이 이르는 것은 참 힘든 가 봅니다.
성적 자극으로부터 눈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강의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는 훈련을 6주 동안 하고나니 대부분의 사람이 자유 로와 짐을 느꼈다 합니다. 어떻게 눈 돌리는가? 야한 여자가 오면 안쳐다보는 것이고 광고전단지도 안보고 교회조차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훈련하는 것과 안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결과를 통해 남성들이 행하는 성적 부도덕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습관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눈이 죄를 행동으로 옮기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피하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하지 않으면 6주 동안의 노력으로 습관을 끊고 온갖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시적일 뿐 일입니다. 또 다른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을 끊고 나면 이생의 자랑이 틈타고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으니 육신의 정욕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아주 수수해 보이지만 눈 돌리는 훈련을 했다는 것 자체가 율법이 죄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냥 훈련이 아니라 계명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기에 훈련이 훈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나를 살리고 있습니까? 나를 정죄하고 있습니까?
죄를 깨닫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에서 문둥병을 저주받은 병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파도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부에 감각이 없어서 잘 때 짐승이 갉아 먹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손가락 발가락을 다 잃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문둥병은 죄에 대해 감각이 없어서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적 문둥병이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죄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없다면 내가 영적 문둥병자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적용) - 말씀에도 죄에도 감각이 없는 영적 문둥병자는 아닙니까?
죄는 언제나 기만을 동반합니다. 죄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자꾸 만족할 수 있다 고 속삭입니다. 너 뭔가 허전하지? 넓은 집에 가봐? 아주 좋을 거야. 애들이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더 이상 만족 있겠어? 이렇게 죄에 대해서 얼마든지 핑계를 댈 수 있다고 속입니다.
죄의 결과를 피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그렇게 속이고 또 속여서 결국 나를 죽이는 것이 기만입니다.
(적용) - 이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살인 한 적도 바람 피우적도 누구에게도 사기 친 적도 없으니까 다들 나만큼만 살라 그래 이 세상이 깨끗해 질거야 라고 믿습니까?
죄의 기만에 넘어가서 회개할 기회를 잃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3.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자기 죄를 똑바로 보게 되는 것은 힘들기가 같은 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죄로 멸망당하는 것이나 자기 죄를 똑바로 직시하는 것은 힘들기가 똑같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픈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뭐가 죽지 않으면 오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 안에 뭐가 죽지 않으면 우리를 이제 참으로 용서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속에 뭐가 죽어야지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7장에는 나라는 단어가 7절에서 25절까지 34번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한 이후에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해졌습니다. 분명 내가 하는 일인데도 나도 모르는 일이 있습니다. 예배와 설교에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기를 기도하고 결단합니다. 하지만 가정과 직장 내 삶의 현장에 가면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 게으름과 거짓말과 중독으로 사는 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율법 곧 말씀이 선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씀이 있어서 말씀대로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는 것 자체가 율법이 죄가 아니고 선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를 때는 죄를 안 지어야지 하는 생각을 못했는데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안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영적인 파워에 넘어갑니다. 놀라운 지식과 능력에 넘어갑니다. 친밀감에 넘어갑니다. 육체적 매력에 넘어갑니다. 감정에 충실하라고 외치는 문화적 메시지에 모두가 넘어갑니다. 선한율법으로 내 죄를 알게 되니까 절망합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시어머니가 힘들게 하는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고난인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고난이 내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더러움을 보고 나도 싫은 내 자신을 보면서 죽을 것 같은 절망을 느낍니다. 나도 싫은 내 자신을 직면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렇다고 율법이 나쁜 것입니까? 율법은 죄가 아닙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이 힘들지만 인정하는 길만이 살길입니다.
죄를 끊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가족 이웃 다 사랑하고 술과 담배도 결국 끊게 됩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음란과 거짓도 끊게 됩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기에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것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죄가 아닙니다.
(적용) - 죄를 드러내는 말씀이 지겹고 힘듭니까?
- 큐티를 해도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큐티를 끊었습니까?
-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서 나의 큐티와 예배와 기도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 합니까?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