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인가"
로마서 7:7-13
■ 설교 요약
1. 율법은 죄를 알게 해준다. (7절)
율법과 죄는 불가분의 관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가 죄와 율법에 대해 죽었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율법 자체는 죄일까? “그럴 수 없느니라”가 바울의 단언이다. 죄와 율법에 대해 죽었으니 자유해지라고 하면 아예 율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은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알아야 죄를 알기 때문이다. 탐심은 내적 악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십계명을 보면 첫 번째 계명부터 아홉 번째 계명까지는 외적인 죄를 언급하고 마지막 열 번째 계명에서 “탐내지 말라”며 내면의 죄를 말한다. 비중이 약해서 마지막에 말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안식일을 어기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모든 죄가 탐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탐심을 죄라고 하지 않으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말한다. 외적인 도둑질이나 살인만 죄라고 하니 탐심이 죄라는 것을 누가 깨달을 수 있겠는가? 율법은 외적인 행동과 언어로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내 속에 있는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온전한 거룩을 이루는‘0단계’여야 한다. 마음 속의 탐심을 율법이 알게 해준다. 육신은 죄의 도구이고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나며 그 결과는 죽음이다. 그래서 육신과 죄와 율법과 죽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적용 Q) 드러나지 않은 탐심을 율법으로 알게된 것이 있는가? 음란인가 미움인가?
음란은 간음이 드러난 것이고 미움은 살인이 드러난 것이다.
2. 율법은 죄는 살리고 나는 죽인다. (8~11절)
8절. 죄가 율법을 거점으로 삼아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한다.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호기심이 생겨서 죄를 짓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동산 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더니 사단이 그것을 기회로 삼아 원죄를 짓게 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율법이 잘못은 아니다. 율법은 단지 거점이 됐을 뿐 이미 내 속에는 죄성이 있다.
9절.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자 죄 의식이 생기고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죄는 살아나고 내가 죽는 것이다.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성경 지식이 아닌 나에게 일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 알고 내 죄를 깨닫고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율법은 알았어도 계명이 그들에게 이르지 못하여 영원히 회개할 기회를 잃었다. 아무리 율법을 읽어도 계명으로 나에게 이르러야 내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을 수 있다. 즉, 율법을 복음으로 깨달을수록 내 속의 가공할만한 죄를 봐야 한다.
적용 Q)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나를 살리고 있는가 정죄하고 있는가?
10절. 생명에 이르는 율법이 도리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갈수록 내 죄가 보여서 죽을 것 같다는 뜻이다. 영적 문둥병은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 가는 병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감각이 살아난다. 이것이 죄가 살아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내게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면 내가 영적 문둥병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명이 나에게 이르면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죄를 알게 되고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적용 Q) 말씀에도, 죄에도 감각이 없는 영적 문둥병자는 아닌가?
11절. 죄는 언제나 기만을 동반한다. 죄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만족할 수 있고 죄에 대해서 얼마든지 핑계를 댈 수 있고 죄의 결과로부터 피할 수 있다고 속인다. 그렇게 속이고 또 속여서 결국은 나를 죽이는 것이 죄의 기만이다. 율법의 요구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외적인 살인과 간음도 안 하기가 어려운데 내적인 미움과 음욕도 품지 말라고 하니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 틈을 타서 사단이 속인다. “너는 살인은 안 했잖아. 간음한 사람하고 넌 질이 틀리다니까. 넌 흠이 없어. 그러니까 넌 구원에 이를 수 있어.” 이것이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는 것이다.
적용 Q) 이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살인한 적도, 바람 피운 적도, 누구에게 사기를 친 적도 없으니 흠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들 나만큼만 하고 살면 이 세상이 깨끗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그런 죄의 기만에 넘어가서 회개할 기회를 잃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죽음 뿐이다.
3. 그러나 율법은 선한 것이다. (12~17절)
12절.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 성경이다. 율법을 보면서 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절망을 하니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 자기 죄로 멸망 당하는 것이나 자기 죄를 똑바로 직시하게 되는 것의 고통의 크기는 같다.
13절.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로마서 7장에는 ‘나’라는 단어가 7~25절까지 34번 나온다.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하다.
16절. 내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 곧 말씀이 선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말씀을 모를 때는 죄를 안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안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내 뜻과 감정을 좇아 행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말씀의 선한 것을 시인하게 된다. 실패를 통해 내 감정과 의지와 세상 어떤 가치보다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율법은 죄가 아니다.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율법은 고마운 것, 선한 것이다. 죄가 드러나고 그 죄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바르게 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내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율법 자체는 너무나 선한 것인데 선한 것을 지킬 수가 없어서 고통이다. 죄가 살아나는 은혜,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은혜는 십자가 없이는 알 수 없다. 율법이 선한 것으로 나에게 역사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죄인인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는 오로지 사랑으로만 끊을 수 있다. 율법을 통해 내 죄가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고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기에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것,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이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적용 Q) 죄를 드러내는 말씀이 지겹고 힘든가? 큐티를 해도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죄를 끊는 대신 큐티를 끊었는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서 나의 큐티와 예배와 기도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 적용 나눔
Q) 나는 영적 문둥병자인가?
A자매
요새 좀 그렇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힘들어봐서 사모함도 눈물도 회개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원망스러워서 감흥이 없다.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 지친다. 아직까지는 힘들 때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는데 이렇게 계속 같은 기도를 하고 싶지는 않다.
처방) 모태 신앙이거나 오래 신앙 생활한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것 같다. '그래, 나는 죄인이야' 하며 다니니 그것이 입술로만 하는 고백인지 진심 어린 고백인지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B자매
말씀은 다 들리는데 적용까지 이어지지가 않으니 좀 무감각한 문둥병자가 된 것 같다. 율법을 내 죄 보는 도구가 아닌 정죄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내 옆의 차장님과 대리님을 여전히 미워하고 있다. 미움은 살인이 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하시는데 관계 문제에서 적용이 안되니 불편하다. 여자 동기의 여우 같은 모습도 점점 보기 싫고 '정말 얘는 세속적이다' 란 생각으로 멀리하고 싶어진다.
A자매
나도 그런 사람이 교회에 있다. 카톡으로는 "우리 보자~" 했다가 막상 만나면 좀 냉랭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있는 모임에 가고 싶지 않고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처방) 나도 그런데 사람 욕심이 있어서 그럴 수가 있다. 관계 중심적인 사람들이 특히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안 맞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성향이 다른 것이다. 본인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상대방도 불편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좀 괜찮아질 것이다. (^^) 하나님이 주신 성향대로 잘 지내면 된다. 지금 그 관계가 사람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C자매
죄는 지으면 만족할 수 있다고 꼬신다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다. 취업 되면 너 행복할 수 있다고 자꾸 사단이 유혹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목장 모임에 오는 것이 정말 좋지만 '당장 내일 시험이 있는데 어떡하지?' 란 마음도 순간 생긴다. 시간도 돈도 다 하나님 것인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우상으로 놓고 내 것이라 여기고 있구나.. 싶다. 목장 가서도 괜찮은 척 할 수 있으니 힘든 내 상황 얘기하는 것이 좀 싫었는데 오늘 말씀 들으면서 내 자신을 직면하는 게 싫은 것임이 느껴졌다.
■ 기도 제목
정다은(95)
- 교지 편집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김소연(95)
- 영적 상태가 회복될 수 있도록
- 회피하지 않고 내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도록
이나래(89)
- 동반자의 나눔이 잘 들릴 수 있도록
- 율법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죄를 볼 수 있도록
- QT를 우선순위에 둘 수 있도록
장연주(87)
- 직면하는 훈련 잘 할 수 있도록
- 세상 기준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 어릴 때 키워주신 외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으신데 건강 지켜주시고 구원 받으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