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성경책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야 열리고, 삼위의 하나님이 믿어지려면 100%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야한다.
회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다. 뉘우치는 인생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 나를 살리는 회개는 어떤 것일까. 다윗이 가장 진실되게 한 회개가 밧세바 사건의 회개고, 분수령 적인 회개다. 밧세바 사건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확연히 다르다. 밧세바 사건 이후의 나를 살리는 회개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나를 살리는 회개는
1. 죄 고백이 있다.
나단의 책망에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했다.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죄를 저지르고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죄고백은 남을 위한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분수령적인 고백이 쉬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있고자 하는 최고봉은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권세가 있으니 죄를 지음을 보게 된다. 환경이 그런죄를 짓게 한다. 회개 안에서 사는 것은 내가 늘 잘 못된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 주제를 알고 자기자리를 찾아야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내면은 항상 창조주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으로 흐려지기 쉽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평생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평생 계속되어야할 삶의 방식이다. 다윗의 밧세바 사건 이후 이어진 회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는 분수령적인 회개가 되었다. 자기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사람보다 위대하고, 자기죄를 위해 한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세상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고, 자신의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다.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것이 얼마나 지식인지 모른다.
나단의 책망을 받은 다윗의 회개가 한줄로 나와도, 즉각적이고 변명없고 겸손한 회개를 했다. 스스로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를 물처럼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모태에서 죄악중에 출생했으며 죄밖에 지을 것이 없는 죄인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셨기에 엄청난 약속의 자손으로 부르고, 네 나라를 영원하리라 약속하시면서 사람의 매와 인생채찍으로 그 죄를 알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음을 아는 사람은 어디서도 못살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몰랐던 다윗은 후반부 인생에서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눈물의 인생이 시작되고, 더는 말이 없어지고 인내하는 인생이 되었다.
내 죄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때 그저 종일 신음하게 된다. 고든도 다윗도 최고의 정점에서 죄를 지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전 세계 적으로 이것을 쓰셔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우슬초는 문등병자를 치료하는 풀이다. 문등병자는 감각이 없어 자기죄를 모르는데, 다윗은 자기를 문등병자보다 못하게 여기기에 자기 형편없는 우슬초로 나를 씻어 달라고 했다. 진짜 자기 죄를 아는 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이런 죄 고백이 나와야 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 한마디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고백이다.
하나님 앞에 제사는 자신의 보잘것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의 의를 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예배드리고 구제하고 헌금하니 죄가 없다 한다. 하나님이 취하시는 제사는 나의 추함과 더러움을 보는 상함 심령의 제사인데, 상한 심령의 제사를 누가 보는가, 한계 상황에 봉착한 노아같은 사람이 본다. 진정한 참회는 단순히 과거를 뉘우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죄를 미래에는 짓지 않겠다는 고백이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다윗이 후반부에 비록 눈물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어느때보다 평강의 인생을 누렸다. 왜냐면 진정으로 낮아짐을 경험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다윗도 사람도 부유할 때는 인간에 대해 죄에 대해 모른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분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도 모르는 것을 우리가 어찌 알겠나.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하루하루 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분과의 관계에 관심이 있으시다. 우리가 잘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함을 가진 우리 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가장 커다란 초점이다. 그래서 신앙이 건강 할 수록 자신을 소중을 여긴다. 성숙은 더 나은 행동이 아니고, 나쁜 행동을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이다. 가지 않아야할 곳, 하지 않아야할 말. 이것이 분별이고 구별된 것이다. 작든 크든 나의 연약함을 현실로 인정하고 또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생활방식이다. 목장에서 날마다 자기죄를 고백하는 것이 그것이다.
- 나는 모든 지적에 대해 옳소이다가 되나, 나의 회개는 밧세바 이전인가 이후인가, 나의 회개는 나를 위한 고백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고백인가
나를 살리는 회개
2. 죄는 반드시 징벌하신다.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죄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렇다. 그런데 사함 받는 죄라도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기에 반드시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고,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렵다면 아직 죄사함의 은총을 모르는 것이다.
다윗의 넘어짐은 원수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이 제대로 넘어지도록 방치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하는 일 마다 꼬였다. 하는일 마다 꼬이나, 하나님이 방치하고 계신 것이다. 회개를 해야지 사람들을 미워하면 안#46080;다. 회개하라고 방치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얼마나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크게 채찍을 드셨다. 나단이 아이가 반드시 죽을 징벌을 예고했다. 그러나 예고된 고난은 아무 준비없이 오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으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과 치시는 고난을 아는 것만도 택자이다.
나단이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해도 살아 돌아갔다. 죄를 지을 때는 충신인 우리아가 있었고, 회개할 때는 나단이 있었다. 정확하게 때마다 다윗을 도울자가 있었다. 하나님은 방치하면서도 지체를 붙여 주신다.
- 징벌에 따른 죄의 대가를 치른적이 있는가, 삶의 결론이라는 고백이 치르는 것이다. 징벌의 때에 신뢰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는가.
나를 살리는 회개는
3. 징벌에 순종한다.
다윗이 무엇에 순종했는가
3-1) 현실을 수용한다.
형벌이니까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형벌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할 자격조차 없음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했다. 지도자는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모든것이 죄이기에 먹지도 않고 기도했다. 나단을 통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그렇게 기도했어도 죽었으면 그것이 응답이다.
3-2)하나님을 신뢰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현실을 수용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윗은 아이가 죽은것이 응답으로 생각했기에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회개 후에 확신의 모습을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 다윗은 아이는 천국에 갔음을 확신했다. 영아구원에 확신에 근거 구절이 이곳에 있다. 아이의 죽음으로 더 절망할 예상과는 다르게 다윗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음식을 먹었다.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모든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천국에 간것을 신뢰한것 처럼 나도 남편의 죽음에 대해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있었다.
3-3)진정한 사랑을 하게되었다.
다윗이 회개하고 나니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불러 주신다. 죄를 범한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했다. 진정한 회개를 한 다윗이 진정한 사랑을 했다. 비록 밧세바는 자기 이름은 아니지만, 마1장에 우리아의 아내로 다윗과 같이 찬란하게 구속사의 명단에 들어갔다. 이것을 보면 밧세바가 다윗과 서로 같은 믿음으로 사랑했다고 보여진다. 땅끝까지 내려간 두 남녀 이기에 다윗이 밧세바를 책임진 것이고, 밧세바도 구속사도 통렬히 깨달았을 것이다. 다윗의 아내가 그리도 많은데, 가장 비참한 환경가운데 있었던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이라는 영적후사를 주심은, 부부간에도 아가페적인 사랑이 가능함을 여자중독자인 다윗이 이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나는 징벌에 순종하나, 그래서 현실을 수용하나, 내 사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정죄받아야할 누군가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를 살리는 회개
4. 회개의 결론은 거룩이다.
다윗이 회개 했기 때문에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긴것이 아니고, 죄를 짓고 있음에도 이기게 하셨다. 먼저 다윗왕국을 견고하게 하신 후에, 강권적으로 다윗을 회개하게 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다윗에게 아무 자격이 없으나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이다. 다윗은 이런 주님을 보며 전율하며 자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죄를 지어도 잘나가면 근심해야 한다. 다윗이 이런 기가막힌 죄를 짓고 있음에도 기가막힌 영원한 적 암몬과의 싸움에서는 이기고 있었다.
요압에게는 반역에 냄새가 있었지만, 다윗에게 인간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결국 요압은 음부에 떨어졌다. 얼마나 잘했으면 다윗같은 자가 요압에게 속았겠나, 오늘같은 회개가 나오지 않은 다윗은 회개의 분량이 적기에 죄를 그만큼 모르고, 그만큼 분별이 되지 않기에 요압같은 자에게 속았다. 요압은 택자가 아닌데도 끌려다니면서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회개를 몰랐기 때문이다. 일생 요압이 다윗이 부하인것 같아도 끌려 다녔다. 이렇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12장 전체는 죄와 수치에 대한 심각한 수치를 다루고 있는데, 맨마지막에 암몬이야기 몇절을 가져다 붙힌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암몬족속을 이긴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름부은자의 순종과 성결이다. 아무리 외적인 다른 열매가 많아도 내적인 거룩이 없으면 끝이다. 다윗은 암몬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실질적인 싸움에서는 졌다. 이것이 암몬의 이야기가 뒤에 나온 이유이다. 나를 살리는 것은 회개 밖에 없다.
- 나의 회개의 결론은 행복인가 거룩인가
[목장 풍경]
입술로는 인정이 되지만, 여전히 듣기 싫은 말이나 지적 앞에 옳소이다가 되지 않고 쉽게 분개하고 변명이 끓어오르는 우리를 나누고 고백하고 공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딱 맞게 붙여 주신 양육자, 직장동료, 동역자들을 인정하며 딱 싫은 자리라도 모이는 자리에 순종하며 나가기로 서로 독려하였습니다. 내게 가장 맞는 사람들을 주변에 셋팅해 주시고, 사람 막대기로 깨어 회개하고 양육받으며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서로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행복이 거룩보다 우선되는 우리의 삶이 오직 말씀과 기도밖에는 답이 없음을 느끼며, 여전히 되지않고 내 맘같지 않아 속상한 우리지만 징벌에 순종하고 현실을 수용하며 거룩을 위해 회개하는 한주 되도록,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기도하며 가기로 하였습니다.
[기도 제목]
- 찬희: 월요일 시험 잘 준비해서 보고 심령이 하나님안에서 안식 누리도록, 하나님의 100% 옳으심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양육 잘 받도록
- 미나: 건강한 한 주되도록, 내가 100% 죄인임을 보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깨어서 기도하는 시간 사수할 수 있도록, 하늘의 소망을 두는 한 주 되도록,
- 보경: 양육 적용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면접 지혜롭게 보고 떨어지면 감사 붙으면 회개 적용 할 수 있도록, 회개가 한순간에 그치지 않도록
- 성은: 옷가게와 백화점을 들리지 않는 적용하도록, 나 자신에 대해 낙심하기 보다 회개하며 하나님으로 소망을 갖도록, 언니의 상처치유와 병로가 교회나올 수 있도록, 이번 한주가 하나님 안에 건강하게 잘 지내도록
* 목장에 나오지 못한 하선이와 은아와 주연언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