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함께 갇힌 자들입니다.
10절 아리스도는 최상의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아리스도는 바울과 함께 갇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함께합니다. 고난까지 함께 하는 사람에 있습니다. 고난까지 함께 한 사람이 없으면 초대교회가 엄청난 일을 하지 못합니다.
11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홀로서기가 되었지만 홀로 사명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들리는 소식과 함께 갇힐 수가 있어야합니다.
* 나의 고난에 함께 할 수 있는 지체가 있습니까?
둘째, 함께 역사하는 자입니다.
11절 이 사람도 함께 역사하는 자입니다. 유스도가 그런 뜻입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자였지만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어요. 교회를 다니지만 바울과 절대로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환난당하고 빚진 자는 왔지만 복음이 사모해서 왔을 것입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이 세 사람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역사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사도가 워낙 대단했지만 유스도 같은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리더십이란 인정이 필요하고 무엇이든지 혼자서 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붙잡는 자가 리더입니다.
* 나는 누구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가? 누구를 신뢰하는 가?
셋째,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
12-13절 사람의 종이 아니고 그리스도 종으로 표현했습니다. 디모데, 에바브라에게만 사용했습니다. 마치 전투를 벌이듯이 열심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완전하게 서기를 요동하지 않고 성숙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이 가보지 않았던 곳까지 동역자로 섬겼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가 세웠습니다. 바울이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에바브라로 인해 교회의 지경이 넓어졌습니다. 바울이 믿음이 좋다고 아무리 인정해주지 않자 섭섭하고 기운이 빠집니다.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에바브라는 애써 기도하고 많이 수고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렇게 표현 받는 목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넷째, 어떤 사람도 용납하는 공동체입니다.
13-14절 3종류의 사람 . 마가 누가 데마
마가 = 실패했지만 돌아온 사람 - 도망자, 실패자였지만 주님의 유익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누가 = 한결같은 누가 - 문필과 의사에 뛰어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늘 자신을 나타날 때 우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가(=빛) 사랑받는 의사라고 바울은 표현했습니다. 누가는 한결같은 사람으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데마 = 동역자로 유다처럼 있긴 했지만 다른 길로 갔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데마입니다. 잘되는 거 같지만 변화하지 않는 데마입니다. 지경이 넓어지려면 데마 같이 배반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합니다.
건강한 교회에는 마가, 누가, 데마 같은 여러 성도가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용납합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실패했지만 돌아온 사람입니까? 한결같은 사람입니까? 완전히 세상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까? 지금 있어도 장차 세상으로 떠나갈 사람입니까?
다섯째, 서로 문안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문안에서부터 시작합니다.누가와 같이 겸손한 사람하고 만나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문안하는 자기 사역자들을 바울이 없어도 함께 사역하라고 서로 소개를 시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하지만 생각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 건강한 공동체 정신입니다. 목장 나눔을 통해서 끊임없는 문안을 합니다.
* 누구를 그렇게 소개 하고 싶습니까?
여섯째, 사명공동체입니다.
골로새의 결론은 사명입니다.
16-18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바울의 매인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수치가 아닙니다. 말씀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짤라내야 할 것들은 짤라내야 합니다. 바울이 메인 것은 옥에 있고 진리에 있다. 건강한 공동체 정신은 사랑받는 형제에게 외로가 되고 애써 기도하고 문안하고 은혜가 있기를 원하며 서를 향한 사랑과 따뜻함이 곳곳에 베어있습니다. 여기에는 권위주의, 시기심, 경쟁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천국이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사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에서 사명을 감당해내니깐 사명 감당한 사람이 또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 나의 매임을 생각하라. -
지도자와 증인으로서 자신의 매임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저절로 사명 공동체로 나가게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해서 살아나서 가정을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