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4:1~6제목 :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김은중목사님.
이번주가 김은중목사님의 고별설교이셨습니다.
우리들교회 만 9년8개월의 시간이라도 안되는 것이있어서 또다른 훈련을 위해서 불러가는 것이지 않을까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들교회 아무리 오래있어도 안되는 구나" 라는 이런 절망의 말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같은 경우은 너무 고난이 없다보니깐, 목사라도 안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부목사로 안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꼭 담임이 되어서 엄청 고생을 해봐야 이렇게 깨달아지는 양육의 남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부교육자에 있으면 늘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기때문에 그런것을 늘 피해왔고, 늘 뒤에서 비판과 불평만 늘어놓던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꼭 책임지는 자리에 담임자리에 서서 마음고생해가면서 그 부담감을 느낄때에라야 쓸수 있는 저의 마지막 구속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저를 불러가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니라 정말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살기위한 갈급함으로 오셨다가 죽을 것 같은 사건이 해결되고 고난이 끝나고 나니깐, 오늘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처럼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아니셨는지? 세상가치관과 타협하고 하나님의것을 어느덧 도둑질하고 있는 그런모습으로 변화고 있지 않은지?
아니면 정반대로 아무리 오랜시간 우리들교회 붙어서 양육받고 훈련받아도 되는 일이 없다. 이게 우리를 사랑하는 일인가?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있지는 않은지? 어제 큐티의 말씀처럼 각종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 유익이 있는가? 차라리 교만한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는 구나 이런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그렇다면 오늘 이말씀은 저와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전에회개하고 돌이켜 잘 준비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되기 위해서 잘 준비하라고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는 교만과 악한행실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1절 : 교만한자와 악를 행한자에게 그날은 용광로 불같은 날이라고 합니다.
뿌리와 가지조차 남지 않는 철저한 심판이 될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과 악한 행실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시고 돌이키시위해 이미 용광로 같은 사건을 우리각자에게 허락하십니다.
부부관계의 문제, 부모자식간의 갈등, 자녀문제, 이혼과 재혼으로 사업부도로 물질고난으로 각종질병으로 용광로 같은 사건을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살라져도 그 고난으로 뿌리가 남아있고, 가지가 남아있다보니깐 우리는 아직까지도 교만에 쉽게 돌아서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많고 크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뿌리와 가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어도 교만과 우리의 악은 질기고 질긴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밖에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그뿌리와 가지조차도 남아있지 않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고서도 당장 나에게 임하지 않는 심판때문에 별문제 없네 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이세상에 있을 동안 심판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거듭 말씀 해 주셨습니다. 필히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당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최종적인 날로 여호와의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 교만한 것과 악한행하는 자를 언급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만과 악한행실을 그저 악한것에 교만도 포함시켜서 설명하며 될 것 같은데 굳이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느 것을 보아도 악행과 교만은 분리해서 따로 늘 같이 등장합니다.
악한행실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교만은 더 근원에 있는 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 교만입니다. 지옥불에서 오는 교만이다 라고 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의 교만한 것을 미워하시지는 성경에 곳곳에 많이 표현되었다고 하는 사실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정말 잘하는 것이 말씀를 통해서 내 죄와 악을 들여다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뿌리깊은 죄악인 교만을 들여다보고 회개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 일수 있습니다.
내가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쉽고 내안에 악을 보기는 쉬워도 내가 교만한자다. 어떻게 교만한자라고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와 전혀 관계없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대표적인 교만입니다.
말씀을들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할수 있지만,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는 태도가 교만한 것입니다.
수많은 지체들의 간증을 들으면서도 저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처음에 간증을 들었을 때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교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정말 포장술에 뛰어나거든요 하지만 처음부터 속지 않고 이미 그런줄 알고 있는 사람이 두명 있었으니 담임목사님과 저의 아내입니다.
제안에 엄청난 차별이 있습니다. 여자에 대한 근원적인 무시와 차별함이 숨어있습니다.
이전교회에 있을 때 여자가 말씀을 하면 잘 듣지 않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양육할때도 여전도사님에게 받는 것을 싫어해서 사무차장에게 받으며 안될까요 하다가 완전 혼났습니다. 우리들교회 10년을 다녔어도 여전히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외에 다른 여자목사님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여자에대한 근원적인 차별과 무시가 있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정말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전에 이러한 질병과 같은 교만이 치료받을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우리 각자 용광로 같은 사건과 고난은 나에 교만과 이러한 악한 행실에서 돌아서라고 주신 사건입니다.
이미 임한 용광로 같은사건를 통해서 나의 교만한 악한 행실를 돌이켜 회개할수 있다면 여호와의 날은 오히려 용광로를 통과해서 정금같이 여러분들을 나오게 하는 그러한 날이 될것으로 믿습니다.
적용질문 : 용광로 같은 사건속에서 내가 돌이켜 회개해야 할 교만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시길 바랍니다.
2~3절 : 교만한자와 악를 행하는 자와는 달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 잡는 날이라고 해석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이는 누구입니까? 어제 큐티인 말씀에서 보자면 하나님백성조차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분위기에서 믿음를 지키는 자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그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슨 유익이냐? 교만한자가 차라리 복되다. 악를 행하는 자가 번성하고 하나님를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멸하다고 원망하는 하나님백성조차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분위기에서 믿음을 지키는 그사람들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교만한자와 악인이 득세하는 곳에 살며서 말씀 붙들고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자포자기 할수도 있고, 원망하면서 보낼수도 있는데 그런시간과 환경을 보내면서도 믿음을 지킨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치유와 회복이 날로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날에 치료의 광선이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권선징악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현재 나온 영화를 보면 적절한 요소가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달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현실에서는 악인의 심판이 철저히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인 득실합니다. 뻔뻔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인내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떠오르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이 득새하는 것은 하나님이 떠오르기 전까지 뿐일 것이라고 오늘 3절의 말씀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면 교만한자와 악인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이 끝이 날것입니다. 모든 것이 바로 잡히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치료하는 광선 = 구부려지고 비뚤어지는 것이 바로 잡히는 날입니다.
각자의 사건에 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고 주신 메세지로 들어야 합니다. 내죄와 악를 적발하실때 거기서 돌아서고 회개하시면 치료의광선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엎드리면 치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앞에 기뻐 뛰어놀수 있는 자유가 그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가족관계에서 사건이 왔다면 잘못된 질서와 관계를 바로 잡으라고 주신 메세지로 들을수있어야 합니다.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탓을 돌리면서 그렇게 하지말고 각자 자신의 죄를 보면 치료의 광선이 가족관계에 임하실 것입니다.
적용질문 :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바로 잡아야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2. 율례와 법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4절 : 율레와 법도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라기 백성들에게는 당연한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이렇게 말씀 붙들고 씨름하는게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정말 오랫동안 성벽을 재건하고 준수했는데, 짠하고 보여지는 것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이 시작됩니다. 어제 말씀처럼 각종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되어가고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드리는 것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명분으로 이방인들과의 불신결혼를 합리화 하고자 합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혼전임신 하지 말아라 , 불신결혼 하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시는냐? 트랜드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타협하는 마음이 우리들 가운데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더욱더 그들에게 주신 율례와법도를 기억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붙드는 것이 여호와의 날를 구원의 날로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교회 처음 왔을 때에 너무나 십자가 복음를 외치고 가는것이기 때문에 우리들교회는 결코 대중적인 교회가 될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믿으며 잘 되고 복된다고 설교를 해야지 그래야 사람이 몰려오지 이렇게 예수믿고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좁은 길이다
그 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외치면 누가 오겠는가? 그래서 저는 많으면 5천명 넘지 않습니다.
1천명 될때 애기했는데, 지금은 만명이 넘었습니다.
제가 완전히 잘못 생각한 것이 처음부터 예수님이 전한것이 십자가 복음이었고, 그 제자의 길이 좁은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만방에 퍼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우리들교회처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화와 대중화의 길로 이어지는 그러한 길이 아닌가 생각해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타협하지 않는 십자가의 복음 이 율레와 법도를 기억하고 붙들어가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말라기백성들처럼 세계화다 선진화다 하는 것을 빌미로 말씀과 삶을 타협할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곡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다시 기복의 가치관으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말라기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본래 선지자들을 통해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셨던 옛날과 똑같은 그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져서 안됩니다. 그래서 말라기 말씀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듣고 있는말씀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온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말씀 이후로 최종적으로 400년동안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도 400년동안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400년을 영적 암흑기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없는 기간에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항상 설교 방송이 있고, 책이나 인터넷방송를통해서 언제듯이 우리가 원하는 말씀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으니깐, 말씀에 대한 기간이 뭔가 이러한 생각를 할것 같습니다.
홍수속에 물이 귀한 듯이 말씀에 홍수속에 정작 우리의 갈급함을 채워줄 그것을 해결해줄 물을 찾기 힘들수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늘 똑같은 말이라도 당연시 하지 말고 지금 이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율례와법도를 기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 듣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 아니면 항상 갈급함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있는지 목장에서 나누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5~6절 : 엘리야는 결국 말라기를통해서 미리 경고하신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엘리야의 신령으로 와서 다시 그말씀으로 기억하도록 전할사람을 보내신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했을 때 그에 역할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히브리어 숙어로 자식들이 부모님처럼 부모들도 자식들처럼 한마음이 된다는 말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총체적인 의미로 한쌍으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말라기는 지금 부모와 자식이 하나되어 함께 여호와께 언약를 준수하는 날이 올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부모와 자식이 하나되어 함께 여호와의 연약를 준수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언급하신 심판과 저주를 내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400년뒤에 나타난 세례요한이 바로 이 예언을 성취했습니다. 그가 엘리야의 신령과 능력으로 와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 바로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회개를 전파 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회개의 세례를 듣고 반응하고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날로 왔습니다. 그러나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축복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위험한 일 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책임을 내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살지 못하는 책임을 교회에 다가 돌리고 교회의 지도자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님땜에 내가 이모양 이꼬라지이다
교회때문에 내가 이모양 이꼬라지이다. 핑계될수 있지만, 우리들교회 속해 있다는 것은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좋은 공동체에 속해있고 좋은말씀을 통해 변하지 않는다면 다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만큼 위험할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목장나눔.
아주 오랜만에 목보를 쓰지만 목보를 쓰고나면 무언가 평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이번주는 새신자가 와서 더욱더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새신자가 오면 사진을 올리는 신고식를 하는데, 차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80또래 김주현 형제님과 89또래 강성우 형제님 우리들 공동체오신거 환영합니다.
이번주는 고별설교를 하신 김은중 목사님의 설교가 있으셨는데요. 우리에게 주신 말라기 말씀을 가지고 어김없이
프리나눔을 한 채진욱목장이었습니다.
신결혼를 하기 위한 신교제 가운데 여전히 절제와의 고군분투를 하면서 어김없이 남자 특유의 늑대본능을 오픈하시면서 그 가운데 자신의죄를 오픈하시는 진욱이형, 일찍부터 사업을 한 주업이가 최근에 다시 사업를 하매 있어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동업자와의 트러블, 부모와 자신 사이에서의 갈등과 이번 남은 1학기 마무리를 해야 졸업를 할 수 있다는 나눔을 해주는 재공이, 처음으로 사업를 진행 하는데 늘 2인 자리에서 책임를 지지 않는 자리에 있다가 책임를 지는 자리로 가는 두려움과 사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나눈 저 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원이 된 주현이형은 올해 2월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나눔, 성우 형제는 더욱더 믿음을 성숙해져가는 나눔.
각자에게 주신 용광로 같은 사건을 심층있게 나누었고, 다음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기도제목
채진욱
1. 1년동안했던 준비했던 프로젝트 오픈함에있어서 기름부를 수 있도록
2. 영육간의 강건함.
3. 판단보단 체휼할수 있도록 ( 체휼하는목자가 되도록 )
강성우
1. 기도많이 하는 한주 되도록
황주업.
1. 동업하는 자와 회복 할수 있도록
2. 기복적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3. 영육간의 강건함.
유재공
1. 마지막 학기 잘 마무리 할수 있도록
2. 사업하는데 개발자와 내일 미팅이 있는데, 잘 마무리 하며 진행할수 있도록
김주현
1. 직장에서 상반기 개인고과가 있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있어도 요동치 않도록
2. 목장 적응 잘 할 수있도록
주금만
1. 사업를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많지만, 조급해 하지 말고 차근히 준비하며, 주위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할수 있도록
2.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이 나에게 있지만, 100%옳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인내하면서 나의 교만함과 완악한 모습을 잘 보면서 갈수 있도록
3.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박영민.
1. 체휼하는 마음을 갖도록
2. 나의 욕심들 내려놓기
3. 주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
이상입니다. 간만에 써서 많이 부족할 듯 합니다. 혹시 보시고 알려주시면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