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환 목사님
눅 19:1-10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
방에서 혼자 놀면서 조리 뽕 먹다가 설교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지난한해 동안 법원에서 16만명이 개명을 신청했다 시대흐름에 사람들이 이름을 개명을 한다. 신학 대학교에는 성경인물이름이 많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자신의이름에 불만이 있다. 이름을 지을때는 이름에 기대가 있는데 이름에 비해서 자신들의 삶이 그 뜻에 부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자기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갈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목사님이 다니던 신학대학교에는 남자이름 요한 25명 여자이름 은혜 77명이라고 하신다. 유다를 뺀 열11제자의 이름이 모두 있었다고 한다. 후배중에 배씨성을 가진 배드로 라는 이름도 있다. 이씨 성을 가진 이사야도 있다. 그들과 함께 학교 뒤뜰에 서있으면그곳이 함께 갯세만의 동산같았다고 하신다. 이름울 말하라고 하면 억울한점이 많다. 자신이 이름에는 같은 글짜가 반복한다. “정”이 두번이다. 그래서 이름을 말하는것이 싫다. 한번에 알아듣지 못한다. 전환장 전환장 한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이렇게얘기한다. 바르고 굳세게 살라고 했는데 그것처럼 살지 못한 트라우만 만 남아 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부모의 기대되는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삭개오가있다. 그리고그는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삭개오를 돌무화 나무꼭대기에서 예수님을 부르신다. 예수님이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면 우리의 삶에 숙명적인 변화를 겪는다.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꽃이 되었다라는시도 있다. 이름을 부르고 이름을 불리어지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이름을 불러 주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냐 하고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펴보자?
1.올라가야 할 나무가 있다.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는 사건은 예수님이 입성 하기전에 여리고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삭개오는 유대땅에서 들어오는 통관세를 받는 사람이다. 로마에 상납하고탈취 한다고 보면된다. 세리의 우두머리이다. 세금에서 막대한부를 축척한다.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의 존재가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그때당시에 사람들이 경멸하는 존재가 세리이고 그들은 합법적으로 거짓말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식민지생활을 했는데 그들의 돈을 착취하고 그런 직업 때문에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삭개오는 자신의민족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마음에 번민이 컸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는 마음에 병들었었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허무하고 그 사람주변에 친구가 없다. 그의사람이 외롭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자기이름에 걸맞지 않는 삶을 못 살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의 이름은 뜻이 정의롭다 순전하다이다. 부모님이 믿음으로 지어준이름과 달리 정작 자신은 정의롭지 않는 생활을 했고 자괴감이 컸을 것이다.
저 자신도 사람들이 전도사라고 부를 때 괴리감이 컸다 사역도 안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으면서 남도 나도 사는 2중적태도에 자괴감이 든다 세리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다. 간절함 사모함이 생겼다. 3-4절 보고자 한다 키가 작고 할 수없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많은 사람들이 길에 서있는데예수님을 볼 수 없다. 그를 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나무로 올라간다. 늘키가 작은 것이 컴플랙스이다. 여자들이 화장을 하듯이 남자들은 열등감을 돈과 권력에 집중한다. 키가 작다는 그 이유로 나무로 올라간다. 그 컴플랙스 때문에 결국주님의 눈에 띈다. 키작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모두 컴플랙스 같은 나의 연약함을 숨기고 싶다. 가리거나 만회하기 위해 예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나를 채우려고 한다 나의 연약함은 예수님을 만나는 통로 경제적으로 힘든 가족 때문에 주님을 사모한다. 컴플랙스같은 나의 연약한 약점의 환경은 오히려 축복이다. 세리장의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가서 보려고 했었고 그의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며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런데 믿음은 자존심을 죽을 때 까지 내려 놓는것이다.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않는 날 장애의 요인이 축복으로 변화된다. 장애 요인을 극복하기위해 우리들교회에서는 오픈이라는 것을한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 우리들 처럼 오픈을하려고 나무에 올랐다. 모든컴플랙스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공개 했다. 그날 삭개오의 자존심을 내려 놓는 오픈이 자신의 한계상황을뚫고 예수님을 본다. 다른사람들이 꾸짖고 나물하는데 더 크게 부르짖는다.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마음을 고치신다. 사람은 상처나 아픔을죄를 고고백하는 것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들어내면 주님이 날 바라봐주신다. 큰 은혜를 누린다.
숨겨온 시간만큼 죄책감이 커진다 들어내고 나니깐 나의 아버지의 사건도 해석이되었다. 그리고 죄책감 상처로부터 자유로졌다. 예수님이 내면을 회복시킨다. 그 상처와 캄플랙스가 사람을 살리는 잎사귀와 약재료가 된다.
다른 교회 성도들의 공통점은 누구에게도 말할 대상이 없다는것이다. 말할 수 있는 지체가 없는것이 고통스럽다. 얘기 할 곳이 없는 사람들 어떻게 할지 모르는데 우리들교회성도들은 매주 목장에서 나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이야기를 못해서 괴로워한다.
체면 때문에 치스럽다는 이유로 나를 들어내지않는다. 목자님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나무위로 올라가는 감당을 하면 구원을 위한 사모함으로 하는 오픈을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알고 계신다.
적용-체면 때문에 감추는 나의 컴플랙스는 것은 무엇인가? 장애요인을 극복하기위해 나무위로 올라가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내집에 유하시는 주님
삭개오의 외침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가든 길을 머추신다. 무리속에서한 사람의 목소리에 가던길을 멈춘다. 주님의 시선이 닿은 곳은 우두머리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도난 죄인삭개오이다. 사람들은 외모와 겉사람을 보고 평가하지만, 예수님은우리의 내면안에 있는 속 사람을 본다. 오랜 기간 비난과 냉대속에 살았던 삭개오의 외로움, 열등감 죄책감에서 벋어나려고 절규하는 삭개오를 부르신다. 그리고너가 왜 거기있냐고 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신다.삭개오야라고 부르신다. 삭개오는 놀라왔을것이다.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는데나의 이름을 불러 주시기만 하셨는데도 고독와 번민의 상처를 고쳐주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3번이나배드로에게 찾아가 이름을 불러주시고 그의 상처 받은 내면을 회복시키신다. 상대방이 나의 이름 안부를묻는걸로도 마음이 열린다. 나의 내면의 상처와 컴플랙스를 가진 그분이 힘들었을 것이다. 닫힌 마음이 열린다. 우리 보다 한걸음 낳아가서 유하신다고 한다. 삭개오에게 집에 까지 간다고 한다. 힘들었던 삭개오는 완전히 무장해재가 된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시겠다고 하신다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생명의공동체에 초대하신다. 삭개오를 자유케 하시고 방문을 해주신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온다는 것이다. 부서지기쉬운 마음이 오는것이다.
판교체플에서 새가족을 섬기고 있는데, 새가족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명찰 사진 찍으라고 한다. 목장에 방문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오는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것인지모른다.
나무위에 있는 삭개오를 내려 오라고 하시고 그를 영접하신다. 내면이기쁨으로 채워진다. 말씀으로 삭개오의 감정의 문이 여신다. 이처럼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지체를 만나고 예배를 드리면 치유를 경험하고 죄와 중독에서 자유로와진다.우리도 누구를 만났나에 따라 인생이 달라 진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이난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말씀 충만 신앙의 방황이 끝이 난다.
적용- 애정을 갖고 이름 불러 줘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관심 가져야 하는 목장 식구는 누구인가?
3.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된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부르는데 그의 주변에 수근거리고 불평하는 사람이 나온다. 죄인가같은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하는 것을 납득 못한다. 야단이라도 쳐주길 기도한다. 그 죄인이 달라지니깐 화가난다. 바닥에 있는 삶의 살아야 할 저인간은 나와 다르고 차별이 되야하는다.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모두에게그런 마음이 있다.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다. 회개가되지 않고 인본적인 가치관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옛사람 행위의 옷을 입고 천박한일을 하는비천한 존재라고 한다.
8주여 보시 옵소서라고 무리들이 불평을 한다. 율법에서는 불법을 행한 사람에게 5분의 1을 배상하라고 한다. 그런데 삭개오는 4배로 갚겠다고 한다. 그러니깐 자신이 불법을 행한것에 20배로 보상을 한것이다. 예수님이 불러 준 사람은 율법을 뛰어넘는철저하게 뉘우치는 행동을 한다. 입으로 하는 회개가 아니다. 삶이동반되는 구체적인 회개이다. 십자가 적용으로 나타난다. 이렇게내가 걸어가던 삶에서 돌키는 것이다. 예전의 목적은 행복에 있지만, 이제는구원에 있어야 한다. 그런 열심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그럴수록 인생이 고단하다 .
삭개오처럼 돈을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의 돈을 가난하사람에 주겠다고 한다. 더좋은 것이 무엇인지 보게된다. 그 어떤것도 내려 놓을 수 있다. 모든것들을치워버린다. 하지만 삭개오 설교 앞에는 부자 청년의 비유가 나온다. 다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거 하니깐 도망간다. 돈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닳지 못한다. 회개가 주는 기쁨을 맛 보지못한다.
썩은 것들을 도려 내고 일어나야 한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하고 피흘리기까지 십자가 적용을 수발한다. 변명 회피 모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는 우리를 자유롭게한다. 내 삶에 없는것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형편에 알맞게 누리고 자족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는 것이 새로운 가치관을 얻은사람이다.그것이 진정한 회개한 사람의 삶의 모습니다.
적용- 여전히 내려놓지도 포기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불평하는 것은무엇인가?
4.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다.
삭개오의 오픈을 통해서 가족 모두에게 구원을 보장하신다. 바울과 신라과옥에 갇혀있을 때 옥문이 열려 죽으려고 했던 빌립보 간수장이 회개를 받게된것과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죄고백한 한사람 때문에 가족구원의 시작인된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아브라함에 자손이라고 선언한다. 가장 영광스러운 새 이름을 주신다. 언약의 자손이라고 구원의 상속자임을보장한다. 민족으로부터 인간 대우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이렇게 까지 선언해 주신다. 구원역사의 반전이다. 내가 얼마나 비천한자임을 알게 될대 스스로겸비하고 의지하는 자들로 변화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이 아니라, 18년 귀신들린 여인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올려 주신다.
공생애마지막 사역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시는 것이다. 구원하려 함이다. 여리고를 지나가시면서 우연이 아니다 구원을 위한 필연적 만남이다. 주님께서삭개오를 찾기 위해 끝까지 찾아 오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나의 가장 초라한 삶까지 오신다 힘든 사람을 통해 고통스러운 사건을 통해 오신다 예수님이나를 찾아 오신다 잃어버린 나의 식구들의 때문에 주님이 나의 집에 오신다. 나를 찾아온 예수님을 만난다.
적용- 내가 찾아야 하는 나의 삭개오는 누구인가?
기도제목
장원영
1. 하던일을 멈추고 계속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2. 같이 일하던 알바를 잘 보내고 새로오는 알바를 잘 맞이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3. 큐티 깊이 오래 묵상하기를 기도합니다.
4. 남동생의 예배회복이 속히 이뤄지기를 기도 합니다.
조은우
1. 생활하면서 나와 상대방의 싫은 모습들이 보일 때 정죄판단이 아닌 기도하고 회개하며 가겠습니다.
2. 전시회 준비중에 있는데 끝까지 묻고 준비하겠습니다.
3. 소명과 사명을 누리고 나눌 수 있도록 말씀안에 잘 서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임미선
1. 직장에서 지체 관계 순종의 훈련 겸손히 받도록
2. 하나님앞에 죄인이라는 것 이전하고 모든 사건들 해석받고 인해 하도록
박지혜
1. 믿음과 예배 회복
2. 관계 회복
3. 아버지 예배 회복
4. 공허함과 고독이 말씀으로 잘 채워지도록
5. 사명과 비젼을 잘 찾고 묻고 가도록
6. 아직 주님 만나지 않는 친구들의 구원
7. 집착이 아니라 복음의 뿌리가 채워지도록
8. 신결혼 교제 사모하는 마음 갖을 수 있도록
홍정아
1. 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2. 말씀 적용 구체적으로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