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2
눅 19:1-10
송민창 목사님
삭개오야!
우리의 낮아진 자존감과 돈과 정욕등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나를 채우려 하는 여전히 교회에 와 있지만 기웃거리는 우리를 보는 말씀입니다. 왜 어떻게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 오셨는지 알아보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이 여러 가지 우리의 사연을 뚫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예수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여정에서 여리고를 특별히 지나가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우리에게 십자가와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리고 성 밖에서는 소경된 자에게 눈을 밝혀 주시고 성 안에서는 마음이 병이든 삭개오라는 한 사람을 만나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사건이 무관하지 않고 영적소경이며 마음이 병든 우리들을 만나주시기 위해 2000년 전에 만나 주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이 우리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우리들 교회에 와서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정의롭다, 순전하다는 뜻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주님에 비친 한 영혼은 눈먼자와 세리장의 신분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자 였습니다.
나의 조상의 족보에 관련되어 찾아보다가 할아버지의 친척이 근현대사에 유명한 친일파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족보를 보고 왜 그러면 똑똑하고 능력있는 분이었는데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던 중 그 분이 서자출신의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도 부모가 지어준 이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당시에 부자라고 명시 되어 있는데 당시에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을 부자라고 칭했습니다. 남들에게 내세울 것이 없어서 돈으로 남을 짓밟고 열등감, 낮은 자존감으로 채우려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서도 자신이 왜 돈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사연에 대해 무지하고 해석할 수 없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주 주일설교를 통해 남편과 아내가 사랑과 복종의 언어를 쓰지 못하는 상대방의 사연에 대해서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사연을 품는 것도 힘든데 남의 사연을 품는 것은 절대로 내힘으로 할 수 없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사연이 과연 남이 받아줄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4절에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앞으로 달려갔지만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보기 힘들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미 왕따 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넘어서 나무위로 올라간 삭개오입니다. 분명 간절한 이유가 있던 삭개오입니다. 교회에서 먼 지역에서 예배를 위해 오는 성도들에게 이곳이 아니면 해결 되지 않고 살기 위해 예배드리러 온 다는 간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의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 였고 이것이 바로 축복의 삶이었습니다. 고난 때문에 예배에 오고 말씀이 들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오르는 것은 우리의 처참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사연(중독, 나태, 음란, 동성애등)을 말씀과 공동체에 오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어느 것으로도 해석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붙잡게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나의 사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가라는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습니다.
나눔) 나를 찾아오셔야 하는 사연은 나에게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만이 품을 수 있는 나와 가족과 공동체의 사연은 무엇인가?
2.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속히 내려오라고 하시는 예수님
5절-6절 삭개오에서 예수님으로 주어가 바뀝니다. 삭개오가 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곳을 찾아오시고 지나가시는 것이 먼저 되었습니다. 모든 사건 앞에서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시고 ‘삭개오야!’라고 먼저 불러주셨습니다. 그가 지음받은 그대로, 원래의 모습그대로 자신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 본연의 이름과 모습그대로 ‘삭개오야!’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정의롭고 순결하다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름그대로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회복의 사건입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삭개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의 사연을 예수님이 알고 계시고 애통해 하셨을 것입니다. 이름대로 살 수 없는 삭개오로 애통하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맹인에게처럼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으시고 바로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사연 때문에 나무에 올랐다면 이제는 내려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 그 사연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 덕분에 살아나는 삭개오입니다.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고 창대와 같은 취급을 받은 삭개오에게 너희 집에 머물겠다고 하는 말로 삭개오를 불러주십니다. 7절 죄를 오픈하고 살아나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을의 모든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과연 저 사람이 예수님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맞는지 수근댑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상대방의 사연을 품으려면 나에게 그런 사건과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내게 예수님이 찾아오지 않으시면 은혜도 없습니다.
나눔) 삭개오처럼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길 원합니까? 예수님이 불러주셔야 하는 내 주변의 목장, 가족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바로 잃어버린 바 된 인생이기 때문에 찾아오시고 불러 주십니다.
절반을 드리고 속인 것은 네 갑절을 드리겠다고 한 것은 더 이상 ‘돈’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큰의미, 사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러주신 것은 삭개오의 오픈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있고 그 가정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 때문에 이 자리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나는 잃어버린 한 자는 아닙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이름을 불러주신 것은 우리가 참된 구원, 회개를 가능하게 해주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나눔) 내가 내려놓아야 할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고은희 80
+ 아직도 올라가지 못하는 뽕나무인 피해의식과 내가족에 대해 기도하기
+ 목장기도
+ 손목과 어깨 잘 회복되기를
라혜지 83
+ 직장생활 및 일상생활에서 다운되지 않고 가족을 객관화
+ 아버지를 용서하고 잊어버릴 수 있도록
+ 욕심과 내 열심 내려 놓을 수 있도록
+ 물질관리
이인학 83
+ 불안증 고쳐주시기를/ 율법주의적인 것 버리고 은혜로 살기를
+ 이직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일 찾기)
+ 아버지 남동생 구원, 가족들 영육의 회복
+ QT,기도 시간내서 하기
+ 신교제/신결혼
윤경주 82
+ 인간관계에서 수치와 조롱 잘 받을 수 있도록
+ 교만과 피해의식에서 내려 올수 있도록
+ 운동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 시골집가서 엄마 잘 섬기고 올 수 있도록
+ 가족 전도의 과정에서 지혜 생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