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소명
골로새서 1:1-2
다윗 때문에 우리 모두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사역에서 섬세함이란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마음의 결을 맞추는 것. 다른사람의 눈물을 먹는다는 뜻, 이것은 눈물을 직접 흘리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에게도 유익하다. 예배공동체인 교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오스기니스는 우리가 본향으로 가는 것은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 곳에서 줄곧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했다. 길을 알기에 내가 쉬고 싶다고 쉬고, 여기까지라고 제한짓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기다리셨던 아버지의 부르심처럼 생애 마지막까지 구원의 복음이 미처 정해지지 못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 교회를 부르신 소명에 응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골로새서는 에배소서와 같이 교회에 대한 쌍둥이 서신이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완전하심과 탁월하심이 있다. 고난이 해결되어서, 고난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는가.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부르신 뜻이 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교회 밖 세상에 예수를 전해야 한다.
1 소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한 개인에 대한 의도와 기대를 말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소명이다. 임금이 신하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 소명은 부르심으로 번역된다. 성경을 소명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그 메세지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만들거나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붙이셨고 자기 백성으로 제정하시고 창조하셨다. 소명이란 현재 우리의 모습 및 행위와 관련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장차 우리의 될 모습과도 관련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그분의 백성이 되게 하심과 같이 신약에서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을 부르셨다. 부르실 때는 개별적인 소명뿐 아니라 공동체적 소명도 부여하신다.
사사기 4장에서 드보라가 사사가 되어 40년 통치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바락이 용사였지만 본인의 영광은 제쳐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드보라 밑에서 철저히 2인자를 자처해서 드보라를 의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죽인 것은 드보라가 아니라 또다른 여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니까 드보라도 야엘도 아니고 시스라를 죽이지도 못한 바락이 믿음의 장에 올라가 있다. 그때나 이때나 여자가 리더쉽을 가지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전쟁없는 태평시대가 80년이 지속이 되어, 이스라엘 남자들이 다 약해지고 야빈이 철병거 900대를 가지고 쳐들어왔고 20년간의 학대를 견디지 못할 때가 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여자 사사 드보라를 세우셨다. 불같은 성질을 가진 남편 랏비돗에서 훈련받은 드보라는 종려나무 밑에서 상담하다가 저절로 사사가 되었다. 군대 만명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자이며 용사인 바락이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고 거기에 순종했기에 믿음장에 올라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에서도 여성지도자는 드보라, 미디암, 훌다 극소수이다. 여성의 역할은 남편과 자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일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말씀이 흥왕하니 늘 제 갈길을 알려주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것이 우리들교회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해서도 안되고, 뜻이면 어떤 것도 해야 한다.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각자의 이런 소명이 있다.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자리가 어디인가.
그 자리가 힘들다면 소명을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소명은 구원과 거의 동의어이다.
2 소명에는 동역자가 있다.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진정한 소명이라면 형제라 부를 수 있는 동역자를 허락하신다. 디모데는 배경이 좋지 못했다.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로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에는 출신이 따르질 못했다. 이런 디모데였는데 1차 전도여행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한결같이 믿음이 성장하여 바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들로 시작된 디모데가 형제로 부름받게 된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가르칠 때 가능하다. 늘 내 힘으로 하면 생색밖에 날 것이 없다. 성경을 가르치며 돈을 받지 않아도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종일 떠들어도 기뻤다. 이것이 소명이다. 자기의 재능과 소명은 다른다. 은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통을 겪어봐야, 십자가를 통과해야 자기의 은사, 소명이 나타나는 것 같다. 정말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세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내려놓게 하셨다. 인간이 잘먹고 잘살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제쳐놓고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서 행복을 발견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오산이라는 것. 인생을 살아봐야 그것을 아는데 우리 자체가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도 불완전하다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세상적 조건, 스펙있는 사람과 주의 일을 하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셔서 동역자로 부르시지 않았다. 그 일을 알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부르짖는 내 인생의 밑바닥 수준까지 내려오셔서 나를 이끌어 주셨다.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의 가치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그렇게 불러 주셨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형제와 동역자로 인정해주신다. 바울은 지금으로 말하면 유력한 집안의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친척, 친구 다 어디가고 끝까지 그와 함께 예수님을 부르짖은 사람은 내세울 것없는 디모데, 브리스길라, 아볼라가 바울을 위해 목을 내놓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떠나서 같은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지체가 생겼다는 것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갖추고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수많은 사역을 하면서 느낀다.
-소명의 자리에 함께할 동역자, 형제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으로 소명을 받고,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가 생기면 지경이 넓어지고 힘을 얻어서 골로새같은 교회로 나가게 된다.
3 소명에는 차별이 없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한 사람에게 차별이 없는 사람이 골로새교회와 같이 공동체적으로 차별없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다. 골로새교회는 터기 서남쪽 리쿠스 계곡에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비옥한 곳이었다. 힘들어지면 신흥이단들이 판을 친다. 내 힘든 환경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기복이나 이단으로 가게 된다. 현식을 직면하기 싫어한다. 나의 명예를 잃기 싫고, 내가 그러려면 아주 죽는다, 그래도 내가 누군데 하며 이 세상에서 회복되는 것을 바라며 이상한 이단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는 절대로 이단에 가지 않는다, 욕심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었기 때문에 학대가 많아서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짖어 사모하게 되어서 2천년이 지난 지금 성경에서 언급하는 교회가 되었다 소명이 있다면, 디모데 같은 사람, 골로새 같은 교회를 찾아가서 차별없이 전해야 한다. 교회는 자발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끈이 우리를 묶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가족의 모습과 유사하다. 가족이란 내가 가면 받아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아니겠는가.
-내가 찾아가야 할 영육간에 힘든 골로새교회는 누구인가.
4-1 소명에는 가장 중요한 은혜와 평강이 반드시 따라온다.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를 바울사도가 잘 쓰는데, 은혜는 카리스라는 헬라식 인사, 평강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식 인사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소수민족이여도 선민의식이 강해서 히브리어만 사용했다. 그러나 이 당시는 팍스로마나 시대로 성경도 헬라어로 쓰였다. 영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과 육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이 불은 붙은 시대에 바울 사도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았기에 두 문화를 다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 서신서에는 헬라식과 히브리식 인사를 겸한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세례와 성찬과 치리가 교회 구성의 3요소이다.
-본질 때문에 비본질을 포기/허용하는가, 비본질 때문에 본질을 포기하는가.
4-2 모든 것을 전할 때 하나님과 연관시켜셔 해야 한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말을 해도 어디를 가도 모두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 빼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평가할 때 자기 관점대로 평가를 한다. 자기 세계관, 가치관을 최고로 여기고 간다. 교회도 자유주의 신학이 있고 해방신학이 있어서 노동운동 민중운동을 외친다. 학교나 교회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하고 있는가.
목장기도제목
슬기언니
-불러주신 소명의 자리(가정,직장,교회)에서 본분에 충실하고 십자가 잘지며 갈 수 있도록
-육적, 정신적, 영적으로 건강하게 회복되어 믿음의 배우자로 잘 준비되며 돕는 배필을 만날 수 있도록
-제주아웃리치를 위해서
재경언니
-아빠의 구원, 가족의 건강과 회복
-믿음이 자라나며 비전을 깨닫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합격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길
-배우자와 취업
미라리언니
-하나님께 물으며 사명을 깨닫고 갈 수 있길
-감정의 방임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보고 죄를 깨달으며 갈 수 있길
유지
-내 감정에 하나님의 뜻이 희석되지 않도록 신뢰하며 한주를 보낼 수 있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회복의 시간으로 채워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