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
사무엘하 24:10-15
다윗이 인구계수하겠다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인데 하나님이 막아주시지 않으셨다. 다윗처럼 나쁜 마음을 먹어도 붙들어주시던지, 교훈하시던지 막아주시기 전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1 먼저 자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윗이 자책을 하였다. 자책이란 손이나 무기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행위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다윗의 마음이 그를 쳤다" 이전에 간음과 살인의 죄를 범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다윗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것. 사울은 여호와의 명을 두번씩이나 어기고 죄를 저질렀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점점 교만해지고 완악해져서 결국 죄악의 노예로 전락한다. 자책(하나님께 회개로 이어지는 것)과 죄책감(사람에게 책임감을 느끼지만 후회로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 인간적인 것)은 다르다. 자책에서 회개로 이어지는 것이 축복인데 다윗은 어떻게 한줄만에 인구조사행한 것을 큰죄를 범했다고 했을까. 남들이 보면 인구조사가 왕으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다윗은 택자이기에 자신의 목적이 야망인것을, 아무리 합리화하려고 해도 인구계수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택자를 어떻게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가. 산전수전 다 겪고 믿음이 성숙한 다윗도 9개월 20일 걸려서 자기 죄를 깨달았는데, 나는 하나님이 버리셨나요, 하나님의 때는 언제인가요, 목장나온지 오래 되었는데 달라진것도 없는 것 같고. 택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이나,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택에 반응하는 것도 택자이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 있는 것처럼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도 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도 있기에 끊임없이 성숙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Already, but yet. 옳고 그름은 아니다. 누가 깨닫고 안깨닫고는 절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 되는 것.
-나는 택자라고 생각하는가
-자책하는가, 죄책감을 느끼는가
요압을 재촉해서 조사를 했지만 자기가 심히 미련하게 행동을 했는데 이제 군사가 몇명이든 무슨상관이 있을까.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야 살인, 압살롬의 반란의 뒷처리를 해준 요압은 인구조사를 지시하고 태도를 바꾸는 다윗을 보며 구제불능이라 생각했을지도, 무시가 깔렸을지도 모르겠다. 구속사가 깨달아 지지 않으면 같이 있는 것이 고역일 수 있다. 자신의 말바꾸기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얘기이다. 조직사회에서는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백성의 유일을 위해 바꿀 수가 있어야 한다. 밑바닥을 경험해보지 않은 원칙은 누구를 위한 원칙인지 세상사람은 알지 못한다. 9개월 20일에 걸친 인구조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께 큰 죄를 범했다고 태도를 바꾼다. 그렇게 구원의 일이 세상에는 미련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다윗은 회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인구조사가 왕인 다윗에게는 큰 죄가 아닐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윗의 깨달음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생각에 다윗의 죄는 눈에 보이는 큰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나 다윗은 현재 왕으로써 통일왕국의 최고봉의 자리에 있고 특별한 고난도, 잘못도 없어 보이는데, 자기의 죄를 깨달았다는 것, 굉장히 성숙하고 믿음의 분량이 높아진 것. 다윗정도 되면 하나님과 굉장히 친하기에 친한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실수한 것이 용서가 되지 않고 어느때보다 비참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내가 기껏 이런것을 자랑하고 있어야 하겠는가, 비열함과 합리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은 슬픔이 들었을 것이다. 다윗의 회개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가는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다. 자기 부분에서 적용해야 할 것이 끊임없이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절대치의 수준이 있기 때문에 다른사람과 자꾸 비교할것이 못된다. 친하면 조그만 것도 잘못이 되듯, 다윗과 너무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한 하나님이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다른사람은 다 몰라도 다윗과 하나님은 알고 있다는 것. 너무나 죄에 대해서 다윗이 민감해졌고 이것을 깨달았다는 것.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음에도 육축과 은금을 풍부하게 얻어나온 것,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재물인가. 하나님 나라가 수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계수를 했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보이는 모습을 넘어서 구속사를 생각해야 하고, 지금 구속사의 어떤 부분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셔서 마지막까지 다윗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하신 것이 축복이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 유혹의 전쟁이었다. 먹고 살만해도 우리는 있으면 다윗처럼 왕궁을 거닐면서 여유가 되니까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그 자리에서 또 회개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대화가 되지 않아서 기쁨이 없다. 내가 기쁨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회개할 일이 있다는 것. 기쁜 것에는 반드시 수고와 고난이 동반된다. 고난을 겪고 나면 내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은사가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지 않고는 은사가 발견되지 않는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목표를 위해 격동시키고 목표를 이루면 기쁨이 없게 하는 것, 예수그리스도 소유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가져도 기쁨이 없다. 내적성전이 지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소명을 느낀다 해도 우리는 일에 치이고 직장동료들에게 짜증을 나고 권태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일을 불필요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구조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힘들다는 것과 비참한 것은 아주 다르다. 자신의 일이 언제나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쁘게 일할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내가 나의 본질에 부합된다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때 찾아온다.
-심히 미련하게 자랑하고자하는 세상 기념비가 있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2 여호와께 피하는 것은 징벌을 잘 받겠다는 것이다.
긴 밤을 자책하고 지새우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역대상에는 없는 아침에 일어났다고 했다. 밤잠을 자고 일어났다면 제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회개한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 교회를 구하는 길이다. 이런 사람에겐 충고해주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선견자에 말씀이 들렸기에, 잘 들리기에 그의 옆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해줄 선지자가 죽을때까지 있었다. 다윗은 때마다 사무엘, 밧세바때는 나단, 인구조사 때는 갓이 있다. 밧세바 사건때는 나단 선지자가 경고함으로 회개를 했는데, 선지자 갓이 오기 전에 다윗이 먼저 회개를 한것이 달라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일어났을때 올바르게 이야기 해줄 목자와 목사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그러나 그 올바른 이야기를 듣기가 싫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항상 충성됨이고 정직함이다. 십자가는 지혜, 지혜는 타이밍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지혜라도 잘못전하면 원수가 된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즉시 인정하는 것, 리더의 첫번째 자질이다. 그래서 다윗은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회개를 하니까 죄를 사해주셔야 겠는데 너를 위하여 징벌을 택하라고 하셨다. 이전의 압살롬의 반역과 삼년기근에는 무엇을 택하라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었다. 우리는 수많은 미래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택할 수도 없는 끔찍한 죄악 세개를 주시고, 회개의 응담이 이렇게 끔찍하게 왔다. 형벌도 회개가 있은 후에는 축복이지만, 회개가 있기 전에는 재앙이 끝날 수가 없다. 내가 매를 맞아서 죄가 끝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로 있는 것이다. 7년 기근, 석달 쫓김, 3일 전염병 중에 택하라고 하신다. 인구조사가 가진 것좀 자랑하기로서니 너무 치명적인 재앙이다. 이럴때 하나님이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세속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1절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하셨다고 했기에 다윗의 인구조사 때문에만 이런 벌을 주셨다면 너무 무서운 분인데, 다윗이 인구조사 하지 않았어도 백성을 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문맥을 따라 읽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압살롬을 쫓아갈 때 다 죽었어야 한다. 사울왕을 세울 때 또 다 죽었어야 한다. 하나님이 치시고자 했기에 기근으로 죽으나 전염병으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것. 여기서 경중을 따질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치시기로 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드디어 다윗이 정신을 차려 세가지 징벌중에 택하라 하시는데 내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는 것은 왜냐하면, 그의 긍휼이 크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이 재앙으로 내가 사람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에게만 요청하고 바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성경을 읽으며 기복을 버리지 못한다. '하나님은 너무하셔, 이렇게까지 하셔야 해?" 이것은 인본주의이다. 기근은 주변나라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 원수가 쫓아오는 것은 주변나라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전염병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하면 이 세가지 재앙을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벗어날길만 있으면 벗어나고파요'가 주제이다. 고난없이 예수믿고, 십자가 없이 영광을 바란다. 성경을 읽어도 모두가 그렇게 해석하기에 기복으로 기도하고 기복으로 응답을 받는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때의 하나님의 방법으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다윗의 온전한 신뢰의 표현이며 어떤 것을 주셔도 잘 당하겠다는 순종의 표현이다. 3일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을지 다윗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다윗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것. "제가 모르겠어요. 어떤 벌을 주셔도 좋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르겠어요. 긍휼이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손에 빠지길 원해요. 매를 맞아도 하나님이 때려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알아서 세번째 전염병을 주셨다. 어떻게든지 이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가 아니라 잘 당하는 것이 맞을 때가 있다. 성경에는 '무리가 줄로 동여 매리니[에스겔]'하면 잘 동여매여 있어야지 이것이 큐티하는 사람의 태도이다. 자신도 죽을 수 있지만 이 징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제일 좋은 것을 주셨다. 죄짓고 하나님께 등돌리는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복이 있는 것. 회개할 줄 아는 자는 생명에 이르지만 회개할 줄 모르는 자는 필경 멸망에 이른다. 다윗으로 인해 전염병이 오고, 다윗의 회개로 재앙이 끝나기도 하기에 믿음의 한사람이 이렇게 중요하다.
-재앙이 왔을때 지연, 학연, 인연을 찾아서 사람의 길을 찾는가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을 기다리겠는가. 지금 볼 때는 너무나 많이 아프지만.
"이에"는 다윗의 기도로, 다윗의 회개로 전염병을 내리셨다는 것. 기도를 했더니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은 것이 말이 되는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이럴 수가 있다. 응답받는 구조속에서 사는 사람은 7만명이 죽어도 그것이 해석이 된다. 전염병은 다른 두가지 징벌에 비해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그럼 하나님이 다윗이 전염병을 택했기에 주셨고, 다윗이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징벌을 내리지 않으셨을까? 내가 기도한다고 내가 미워서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신뢰하는지를 보시는 분이다. 내가 기도해서 떡을 줄 것을 돌을 주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3일만에 7만명이 죽었고, 결정적인 원인은 다윗의 인구조사 범죄라고 한다. 기도했기에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가능했다. 애굽을 치시기 위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이 다윗의 마음을 격동케 하신 것과 같은 단어이다. 사단이 다윗을 격동케 한 것을 잠시 허락하셨다. 다윗이 그러했듯 나도 죄를 지을 때 누군가를 통해 회개케 하실 것을 기도해야 한다. 다윗에게는 성전건축의 준비가 되는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사건마다 하나님이 쓰신다.
-기도로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일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단번에 이루진 구원이지만 내가 이루어갈 구원이 있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어떻게 예수 믿었다고 잘되고 완벽한 이야기만 할 수 있겠는가. 나도 너도 별볼일 없는데 내 속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별볼일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집중적인 고난을 허락하셔서 이스라엘에게 다윗의 죄가 큰 것을 알리셨고, 징계하셨다. 백성이 다윗을 배반했고, 하나님이 다윗을 건져주셨다. 그러나 그 백성은 다윗의 믿음을 위해 수고한 대상이기에 미워할 대상이 아니고 사랑해야 할 백성이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고 다윗의 죄로 백성을 심판하시고 다윗이 아무말도 못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은 믿을 대상도 아니지만 미움의 대상도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다. 내 죄와 연약함을 볼 때 이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의지가 굳세지 못하며 늘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또 예민하지 않은 면도 있기에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육 이생의 자랑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하나님께 늘 죄송하고 말씀을 보며 회개의 내용과 사랑의 내용이 점점 달라져 가기 때문에 감사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으로 부르셨다. 우리가 재앙을 선택함으로 여러가지 좌절에 부딪힐 때 원망없이 계속 감당할 은혜가 주어진다면 바로 그것은 어떤 일이라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길.
누구도 모르는 그 일에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그것을 다윗이 어떤 것도 당하겠다고 기도한 것처럼 천국가늘 그날까지 어떤 일을 주신다고 해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주님이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그 길을 가길 소원한다. 어떤 일에 당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믿으며 자책하고 회개하며, 심히 미련하게 행한것을 인정하며 하나님 손에 빠지길 원하는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되길.
목장 기도제목
슬기언니
-나의 상처에서 나오는 죄에 대해서 죄책감이 나닌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길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마음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속사가 깨달아지도록
미라리언니
-생색내지 않고 상처에서 나오는 나의 죄를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인간관계와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생각을 깊이 분석하려들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영혼구원에 목적을 두는 신결혼
재경언니
- 시험준비에 지혜 주시길
- 가정회복과 아빠의 구원
- 취업과 배우자
-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길
유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주시는 그대로 잘 힘들고 잘 견딜 수 있길
-충실한 한주의 시간 보내기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