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인구조사
[사무엘하 24:1-9]
사무엘하는 인구조사라는 다윗의 죄짓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삼위의 하나님을 찬양하던 다윗이 세력과시를 하며 죄짓는 모습이 슬프기까지 하다. 마지막까지 죄짓는 다윗을 보면서 죄가 무언지 잘 모르겠다. 왜 자꾸 죄를 짓는지. 그래서 인간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다윗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고 다윗의 승리는 일평생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무슨 죄이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에도, 지금도 진노하실 예정이라고 한다. 이유는 본문에 확실히 나와있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조사를 하시고 벌을 내리셨다. 그것이 무슨 큰 죄라고 7만명이나 죽게 하셨는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은 100%옳으시기에 7만명을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왜 진노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고 3년간 기근을 주셨고 그 일로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물을 수 밖에 없었고 기근의 원인이 사울왕이 기브온을 심하게 억압하고 죽인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서 사울의 일곱자손을 나무에 달아 죽이고 리스바의 회개로 기근이 멈추고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고 끝을 맺었다. 그 때도 사울왕과 백성이 다 같이 죄를 지었으나 사울은 너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울시대에 죄를 묻지 않으시고 다윗시대에 조상의 죄를 물으셨다고 하셨다. 다윗은 그 문제를 잘 처리했다. 그런데 다윗시대의 죄를 다윗에게 물으신다. 다윗은 조상의 죄나 자기의 죄나 모든 집안의 죄에 대해서 언제나 혼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왜 내가 이 모든 죄를 다 짊어져야 하나 하는 사람은 '다윗'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은 하나님이 너무 예뻐하신다는 뜻이다.
연대순으로 인구조사는 밧세바 사건 이후에 압살롬의 반역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범죄인 음란과 살인을 저질렀고 그 범죄로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아니하겠고 네 이웃이 네 아내와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의 심판의 말씀을 주시며 당장에 아들을 치셨고, 예언하신 그 일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11장에서 다윗의 범죄는 전적으로 다윗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다윗은 받아들였다. 13-20장까지 다윗자녀들의 강간, 살인, 반역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그 때 다윗은 아무말도 못하고 철저히 무능력한 모습으로 회개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백성들이 항상 지도자인 왕의 잘못으로 모든것을 몰고 갈수 있기 때문에 왕의 잘못은 백성들의 잘못이기도 하다는 것을 마지막에 확실히 밝히고 간 사건이다. 백성들의 잘못이 선행되어 왕이 범죄하게 된 배경을 밝힌것이다.
백성의 죄는 무엇일까.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궁을 떠날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압살롬을 따랐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왕이고, 그의 아들 압살롬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고자 반역을 일으킨 대적자였다. 많은 백성들은 잘 알지 못해서 따라갔다고 하나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 정상적이면 그렇게 훔쳤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외모와 언변에 이스라엘 백성이 넘어갔다는 것. 지금껏 따랐던 하나님의 종 다윗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장과 외모가 탁월한 사울왕때도 무서운 사울의 압제를 경험하고도 다윗이 왕이 되고서도 그 사울왕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세상통치의 전형인 압살롬의 외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윗에게 반역을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잔류에 불과한 베냐민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온 이스라엘과 사울족속이 따랐다. 사울의 고향이 베냐민,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성경에서도 계속 보게 된다. 다윗시대에 이런 만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윗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기에 백성을 치리하셔야 했다. 기근의 문제와 인구조사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징계에 목적이 있다. 백성들이 사무엘을 쫓다가 사울을 쫓고 다윗을 따르다가 압살롬을 쫓았다. 다시말하면 하나님 쫓다가 세상 쫓고 날마다 이렇다는 것. 우리가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되는 것이다. 행위가 없어보이는 다윗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다. 잘생긴 압살롬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자꾸 압살롬을 따르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구원이 어디있는가를 분별해야 하는데, 다윗의 음란, 살인, 간음이 계속 13장부터 오니까 왠만한 사람은 분별이 어렵다. 구원받지 않으면 성경이 이렇게 어렵다.
다윗이 모든 죄와 수치를 다 드러냈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그런데 압살롬은 날마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을 드러내니까 마음을 훔쳤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하지만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력과, 재물, 스펙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아닌 것처럼 날마다 반역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세우신 왕을 반역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참을 한다. 되었나하면 딴데로 하고 팔복으로 가는가보다 하면 기복으로 간다.
-세상 왕을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해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무엇인가.
2 인구조사는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죄에대해 진노하시고 죄를 묻고자 다윗을 격동하셨다고 하셨다. 역대상에 같은 일화를 보면 사탄이 다윗을 충동시켰다고 한다. 격동과 감동이 원어로는 '찌르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미혹하거나 화나게 함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과 사단이 같은 단어의 주체로 기록되었다. 성경에 오류가 없기에 욥기에서도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단이 욥에게 고난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이 그것을 행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다윗이 죄를 범하도록 직접적으로 역사하셨다기 보다는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상태에서 사단이 틈탈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할 시기는 밧세바 사건 이후,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다시 승리를 하고 궁으로 돌아와 다윗에서 등을 돌린 많은 백성들이 돌아오고 왕권이 다시 안정을 찾아갈 시기였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훔친 압살롬에게 백성들의 마음이 향했던것을 알기 때문에 편해지니까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압살롬에게 쫓길때는 수치스러워도 회개가 되었으나 평정이 되니까 시간이 지난 후 일지라도 밧세바 사건의 상처가 열등감으로 올라올 수가 있다. 지난시간의 상처를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기 죄의 결과로 압살롬이 반역을 했으니까 올라올 때가 있다. 열등감으로 상처가 다시 비집고 올라와서 격동이 되어 자기의 군사를 과시하고자 한다. 다윗이 하나님 나라에 충만할때는 지나간 상처가 별이되지만 통일왕국의 왕이되어 부흥일로를 걸을때는 상처를 다 덮고 싶다. 상처가 또다시 상처가 되고 상처가 많은 사람은 교만하게 안해도 될 자랑을 한다. 이 때가 바로 다윗의 그 때인것 같다. 열등감이 들어갈 때가 사탄이 가장 노리는 순간이다. 아마 다윗의 마음속에는 백성이 얼마나 자신에게 돌아왔는지, 백성들의 확실한 마음을 알아서,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던 그런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를것 같아도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한 것을 암암리에 알았기때문에 압살롬에 갔다. 믿음이 충만할 때는 괜찮아도 편안할때는 스물스물 올라온다.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지도 받으시지도 않는다. 시험을 욕심때문이다. 격동, 감동, 충동 다 같은 단어이기에 분별하기가 어렵다. 다윗의 이러한 마음은 자신이 양을 치던 목동시절부터 왕이 된 지금까지 지켜주셨던 하나님이 지금 갑자기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열등감이 막 들어오면 격동되고 충동되는 것이 있다. 고난과 믿음의 아이콘 다윗도 격동될 때가 있는 것이다.
-격동되고 충동된 것을 감동된 것으로 포장하며 합리화한적은 없는가.
-나의 상처가 별이되고 있는가, 상처가 되고 있는가
3 인구조사의 실체는 넘버게임이다.
이제까지는 사단의 사주에 따라 이방세력이 방해를 했지만, 다윗왕국이 확연해지니까 사단이 다윗에게 직접적 방해공작을 하며, 넘버게임을하고 수를 자랑하며 내가 잘했다고 하고 싶어 넘버게임에 말리게 된 것이다. 다윗의 모사 요압이 말렸으나 재촉까지 하며 명령했다. 너무 웃기게도 요압이 다윗에게 옳은 말을 했다. 요압이 옳은말을 했는데 다윗에게 들리지 않은 이유는 우선 격동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말이라도 들을때는 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성경적인 충고이지만 요압이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전달되지 않았다. 말을 안듣는 것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신실하지 못할때 사랑없는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윗이 인구조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만 알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호기심하고는 다른 것이 많다.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는데 나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서 문제가 생길때가 많다. 우리는 늘 숫자에 약하다. 지금까지 다윗의 전쟁은 하나님이 붙이시면 이기고 진노하시면 졌는데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다가 자랑이 나와서 130만이라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적국의 130만 보다 적다면 기도가 안나온다. 적국의 병사가 200만이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두려워서 싸울마음이 없어진다. 뭐할려고 알려고 하나 모르겠다. 사실만 알면 되는데. 물론 인구조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민수기는 이름 자체가 Numbers이고, 모세가 홍해바다 건너서 살아있는 것이 감사한 계수였다. 순수하게 한 것인가 열등감 때문에 과시하고자 한 것인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재물과 구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들교회는 개척하는 첫날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랑하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단이 격동한 것에 다윗이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다.
쓸데없는 것 같은 지명이 쭉 나온다. 우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것 같은 사람도 만나고 가보기도 해야 한다. 9달 20일동안 시간과 인력과 물질이 낭비된다. 9개월 20일동안 다윗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자기가 한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이렇게 사단에게 점령당한 생각일수록 빨리 행하고 싶은 것이 인생이다. 혈기, 욕심이 그것이다. 좋은 생각은 빨리 적용해야 하지만 우리는 오래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적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것을 말릴까봐 빨리 적용하는 것이 욕심이다. 어떤 때는 혈기를 부려도 에스겔처럼 인분을 쇠똥으로 감해주실 때도 있지만 쇠똥을 인분으로 갚아주실 때도 있다. 오늘 재촉하고 싶은 것은 참고,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거꾸로 적용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하지만 맨 마지막에 다윗이 세상복을 자랑하고 있다. 부자가 돈을, 교수가 학위를 예쁜사람은 외모를, 교회의 크기를 자랑하는 모든 것이 넘버게임이다. 다윗의 열등감으로 인구조사가 행해졌듯 열등감은 참 무서운 것이고,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내가 자랑하고 두려워하는 숫자는 무엇인가.
시기마다 죄의 종류만 다를 뿐 죄를 계속짓는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길 바란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을 놓지면 세상자랑이 되는 것을 알고 가길. 다윗도 있었던 열등감이 뿌리깊은 상처속에서 올라오는 폭력과 폭언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날마다 내놓을 수 있기를.
목장 기도제목
슬기언니
-뿌리깊은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길
-생활예배 잘 드리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보낼 수 있길
-신교제와 신결혼을 인도해 주시길, 끝까지 분별할 수 있길
재경언니
-미국에 있는 차가 빨리 팔려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길
-시험준비에 지혜를 주시길
-가정의 회복과 아빠의 전도
-일대일양육으로 다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열등감이 사라져서 내 삶이 구속사로 해석되어질 수 있길
미라리언니
-나의 교만을 깨닫고 내 성벽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길
-날마다 말씀보고 생활예배 드리기
유지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만 믿을 수 있길
-내 속에 행위보다 악한 마음을 날마다 깨어 회개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