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설교에서 우리의 공급자, 보호자,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다. 우리가 이 셋중 어느 부분에 대해서 인정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나누었다. 아직도 우리가 유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다윗이 세력과시를 하는 죄짓는 모습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깝다. 왜 자꾸 죄를 짓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윗의 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이시다. 왜 다시라고 하셨을까? 전에도 진노하시고 지금도 진노하신다. 7만 명을 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을까? 기브온 족속을 심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사울왕과 백성이 같이 죄를 범했다. 사울시대에 죄를 묻지 않고 다윗 시대에 조상의 죄를 물었다. 알아먹을 다윗에게 죄를 물은 것이다. 다윗이 잘 처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 시대에 다윗에게 죄를 물었다. 다윗은 조상의 죄도, 자신의 죄도 책임지고 처리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문제(조상 및 내 죄)를 다 혼자 짊어져야 하나? 하는 사람은 본인이 다윗이란 뜻이고, 그 말은 하나님이 너무 이뻐 하신다는 뜻임을 알아라. 다윗은 죄를 그동안 많이 지었는데 철저히 무능력한 모습으로 인정하고 회개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왕의 잘못이 백성의 잘못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것이 ‘인구조사’이다.
그러면 백성의 죄가 무엇인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할때 많은 백성들은 다윗보다 압살롬을 따랐다. 압살롬은 자기 스스로 반역을 일으킨 대적자였고 다윗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압살롬이 마음을 훔치도록 두었고 압살롬에게 매료되었다. 신장과 외모에 넘어간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고서도 사울왕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세상통치에 전념인 압살롬의 외모를 뛰어넘지 못하고 넘어갔다. 백성들은 외모를 너무 좋아한다. 뿌리깊은 지역감정이 성경에도 있다. 다윗의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기에 백성을 치리하셔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징계의 목적도 있는 것이다. 사울 좇다가 다윗 좇다가 압살롬을 좇은 백성들.. 우리도 하나님 좇다가 세상 좇다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있다. 잘생긴 압살롬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자꾸 압살롬을 따른다. 우리는 항상 구원이 어디 있는가를 분별해야 하는데, 다윗이 자꾸 살인, 음란의 죄를 지으면서 오니까 다윗을 따르기가 어려웠다. 죄와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다윗은 죄와 수치를 다 드러냈는데 압살롬은 맨날 잘생긴 외모와 신장만 드러내니까 백성들이 다 속아 넘어갔다.(잘생긴 외모에 속지말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세상 명예와 스펙과 돈을 주인으로 믿는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반역하는데 돕는다.
Q) 세상 왕을 끊임없이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일은 무엇인가?
(나눔)정말 외모(환경적 스펙, 나에게 잘해주는 것, 보여지는 모든 것들)를 너무 좋아하는 연약한 우리들...내면의 본질적인 것(믿음, 사랑의 의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본질적인 것(표현방식, 나와 맞는 점, 외적인 것)에 더욱 치중하고 이것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들.. (적용)본질을, 내면을, 믿음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2.인구조사는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하신 것이다.
다윗을 충동하고 격동시키시는 것이다. 역대상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시켰다고 하고 사무엘하는 하나님이 주어이다. 격동은 누군가의 마음을 미혹시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오류가 없는데 사탄과 하나님이 같은 일을 하셨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이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할 시키는 밧세바 사건이후 전쟁에서 승리 후 다윗에게 등을 돌렸던 많은 백성이 돌아와서 안정권에 들어왔을 때이다. 다윗은 편해지니까 두려움이 있었다. 압살롬에게 쫓기면서 수치스러울 때는 회개하면서 가니까 해석이 되었으나, 이기고 편해지고 나니까 자기 죄의 결과로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열등감이 올라올 때 격동이 된다. 내가 군사가 몇이나 되는지 아느냐? 하면서 자랑을 하고 싶어진다.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부흥이 되면 자랑하고 싶어진다. 교만하게 안 해도 될 자랑을 하게 된다. 세상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 늘 사탄이 노리는 것이다. 열등감이 들어갈 때가 사탄이 가장 노리는 순간이다.(자랑이 곧 열등감) 다시는 압살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력과시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믿음이 충만할 때는 괜찮아도 편안해 지니까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다. 누구는 깨끗한 그릇으로 주의 일을 하고 있는데 다윗은 죄를 다 짓고 왕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정죄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윗에게 생겼을 것이다. 시험은 욕심 때문에 받는 것이다. 다윗의 마음이 사단에 의해 격동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격동 감동, 충동은 다 같은 말인데 왕이 된 순간까지 자신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갑자기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등감이 올라오면 사단의 충동과 격동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고난과 믿음의 아이콘인 다윗도 격동될 때가 있다.
Q) 여러분은 격동되고 충동된 것을 감동으로 합리화한 적이 있나? 상처가 별이 되고 있나 아니면 상처가 계속 상처가 되고 있는가?
(나눔)정말 페이스북, 카스 등 SNS를 하면 남들이 여러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격동된다. 혹은 남이 나를 무시하거나 간섭할 때 격동 된다. 이렇게 격동되면 무시당하기 싫어서 혹은 지고 싶지 않아서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싶어지고, 사진을 올리게 되는 우리들.. 예쁘게 나온 셀카, 맛집 방문 등 남들만큼 또는 남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질"하는 여자 혹은 남자들의 습성은 곧.." 열.등.감.."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낌.. 자랑은 곧 열등감이라는 말에 많은 찔림을 받음.. (적용) SNS에 자랑질 하지 않기. SNS 끊기.(세상에 발 걸치지 않는 적용) 다른 사람이 자랑질 하거나 무시질해도 격동되지 않도록.. 열등감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3. 인구조사의 실체는 넘버게임이다.
요압이 올바른 얘기를 했는데 왜 들리지 않았을까? 먼저, 격동되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고, 아무리 성경적인 충고이지만 요압이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 들려지지 않았다. 사랑 없는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만 알면 되는데..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이다. 나의 열심히 하나님의 열심보다 앞서서.. 더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때가 있다. 민수기는 그 이름 자체가 Numbers이다. 그럴 때는 넘버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한 것인가, 열등감 때문에 과시하고자 한 것인가가 다르다. 넘버게임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세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시를 당하면 격동이 왜 안 되겠는가? 무시당하면 무시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격동이다. 한쪽으로는 피해의식이 있으니 또 격동을 감동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쓸데없는 것 같은 지명이 나온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 같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가보기도 해야 한다. 시간낭비, 인력, 물질낭비가 일어난다. 아홉달이나 돌아보게 했는데 다윗의 마음에 변화가 없다. 다윗은 계속 자랑하고 싶었다. 사단에게 점령당한 생각일수록 빨리 적용하고 싶은 것이다. 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릴까봐 빨리 하는 것이 혈기이고 욕심이다. 좋은 생각은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적용 못하면서, 하고 시픈 것은 빨리 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하면서 세상 복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구조사가 잘못된 것이다.
Q) 내가 자랑하고 싶은 숫자는 무엇인가?
(나눔)SNS에서 생일이나 음반 냈을 때 엄청난 좋아요 수.. 그 숫자도 넘버게임인것 같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내가 좋은 교회 다니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차인 남친에게는 내가 너보다 훨씬 좋은 놈 만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등 모든 것이 넘버게임인것 같고.. 이런 넘버게임이 열등감을 자랑하는 것일뿐 이라는 것도 모르고 즐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적용)세상의 복을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랑하지 않기. 겸손하게 내 죄보고 회개하며 연약함만 자랑하는 한주 보내기.
"누구에게나 열등감은 참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은 맨날 이렇게 수를 세는데, (우리들 교회 몇년 다녔다.. 몇 년 동안 봉사했다.. 돈이 얼마다... 자식이 몇 명이다... 스펙이 어쩌구 저쩌구.. 왕년에 어쩌구 저쩌구.. 등등등) 우리들 교회 청년들이 이혼하지 않는 것은 믿음으로 인구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남편이 최고다. 결국." "죽는 날까지 죄에 대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