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행 21:37-22:8]
지난 주 설교제목이 마지막 말이었는데 여러분 한주간의 말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말을 잘 준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또는 일주일간 어떤 #65279;말을 가장 많이 했는지 생각해보시고 기억에 남는 말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곰곰이 생각하며 적어보았는데 저의 말 중에 내가 너무 힘들다, 어렵다, 아프다 이런 나를 방어하는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생색내고 원망하고 누군가를 이기려고 공격하고 찌르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화를 할 때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느낍니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병이 생기고 곤란해지는 상황을 한번쯤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는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에 있기에 공격적인 말들보다 훨씬 나은 말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명을 깨달은 바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저는 정말 말에 졸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매번 강단에 서는 것이 두렵고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잊을 만큼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가장 두려운 대상은 나를 적대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21장1절에 변명하는 말을 들어 보아라 이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변명을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바울은 자기 목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변명합니다.
환란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잡혀서 끌려가는 와중에 말할 기회를 얻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은 천부장에게 말을 하고 나아가서 성난 군중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자기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어떻게 그 말을 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땠을까요? 나를 공격하는 자들 앞에서 누명을 벗기 위한 해명을 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이 자기 목숨을 위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부장에게 헬라말로 정중하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 말 한마디가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무자비하고 야만인인줄 알았는데 그 것을 단번에 해명하게 하는 한마디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죽이려는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변명합니다. 바울이 자기들과 동일한 히브리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입이 다물어지고 귀를 귀울이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며 사도 바울의 유언과 같이 느껴졌던 한마디가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아노라입니다. 이 말에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형들아라고 바울이 첫마디를 떼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스데반의 마지막 설교 첫마디인 부형들아와 동일한 말입니다. 실제로 이 간증의 말미쯤에 스데반에 대하여 말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이 분명하기도 했지만 복음에 대하여 빚진 마음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목사님 저서에 복음은 값없이 받았지만 성도는 모두 빚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빚이 많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값을 마음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어떤 빚을 지고 있습니까? 원수도 나의 구원의 공로자이기에 원수에게 빚진 것도 값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를 위해 수고했는지 어떤 것을 값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원수의 구원을 위해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까? 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까? 내가 누구를 위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 또 내가 평생 빚을 갚아야할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봅시다.
2. 바울은 지금 무죄가 아닌 유죄를 위한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변호는 자신의 무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난 군중들 앞에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야기 합니다. 자신도 동일하게 저질렀던 잘못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누군가를 결박하고 위협한 것이 죄임을 알기에 지금은 다르다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당신들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히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내안에 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는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 아닐 적이 많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예수가 없고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해결되는 것을 모르고 간다면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적용-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심을 가지고 내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무죄라는 것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변호하고 계십니까? 내 인생이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변호하고 계십니까?
3. 바울은 그의 인생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가운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구속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맞지만 구속사는 거창하게 인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내 인생 가운데 예수님이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내 인생에 찾아오신 것. 기복이 아닌 팔복의 관점으로 보는 것, 세속사가 아닌 그것이 구속사이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에 열심이던 바울을 찾아오신 사건이 구속사의 사건입니다. 자신들이 가려던 길이 아닌 예수님을 통한 그 길이 참된 길임을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내 구원을 위해 붙여주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수처럼 여기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핍박하고 따르던 자들을 괴롭히던 바울의 열심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하며 끊임없이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열심입니다.
적용-여러분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수고한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보시길, 또한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한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원수 같은 사람 앞에 두려움 없이 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권욱진(81)
공감과 체휼해주는 사람되도록.
회사에서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홍순영 전도사님(86)
삶에 열정을 회복하도록.
김지환(80)
하나님을 조금 더 사랑하는 한 주 되도록.
황태훈(80)
기관지염에 걸렸는데 회복되도록.
황재훈(81)
말씀을 사모하고 큐티하도록.
이승현(83)
양육교사훈련 성실하게 잘 받도록.#6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