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약
오세광 목사님
체포된 바울
사명이 없으니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게 된다. 말씀에 매여 있는 것이 없어서 사건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내 생각이 커지고 나름의 스타일이 생기니 매여 있는 것이 싫었다. 매여 있고, 묶여있어서 체포된 바울처럼 사는 것이 사명인데 나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 비전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성공복음의 자유를 꿈꾸며 어려움을 자처한다는 말뿐이었다. 입으로는 ‘광야로 간다’고 했다. 목자로 사명감당하는 것이 행복하냐고 질문했다. 모든 목자분들께서 ‘목사님이 미친거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행복하면 감정적으로 너무 좋고 원하는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명으로 사는 것은 행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복의 개념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므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 그래서 그 자체가 행복이다. 우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적용기복’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감정적이고 세속적인 가치의 행복이 아니라 오늘 하루 사명을 다하고 사명을 다하면 영광의 낯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이렇게 사명대로 사는 것이 힘들까? 오늘 죽는다면 제일 미련이 남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바로 그것이 내 사명의 길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상이다. 사명으로 사는 나를 방해하고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것을 계속 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사명에 묶이기 힘들 것이다. 사명에 묶이는 것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복음을 위해서 갇히는 것보다 내 자신을 위해서,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복음을 위해서 갇히겠다’라는 고백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갇히면 이 갇힌 것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주님께 기도하게 된다. ‘내가 복음을 위해 갇히는 것이 이렇게도 안되는구나...’ 내 생각, 내 뜻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말씀을 매일 듣는데도 깨어지지 못하고 ‘짠’하고 나타날 나 자신을 꿈꾼다.
이런 것들보다 정말 두려운 문제는 여전히 온전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전히 회개를 했다면 성자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모든 삶에 감사가 나와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 내가 매여가고 묶여가는 내 삶 전체를 감사하고 너무나 즐거워해야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감사함 뒤에 숨겨진 후회라는 것이 그 감사를 집어삼킬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후회가 죽어야 회개가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전히 진정한 회개가 되지 않는구나.’ 모든 인생은 성자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 질문에 정말 진정으로 아멘이 되었다. 복음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었던 나. 야망행전을 만들며 살았던 나. 그 마지막 말을 남기기 위해 세속적으로 살았던 나를 고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행복을 꿈꾸고 나를 위해서 오늘을 디자인하게 될까?
1. 내 생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 내 바람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으로 데리고 갔어도 이것이 구원을 위해서라면 율법에 어긋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심이라’ 구원의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나의 중심으로 생각을 하면 잘못하게 된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힐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바람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 내 삶에 임하기 위하여 내 나라가 먼저 망해야한다. ‘육이 무너지는 만큼 영이 세워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어딘가에 꽂혀 있으면 복음에 묶이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뭔가 내려놓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뭔가 내가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사건을 통해서 그것을 내려놓게 하시는 것이었다. 나에게 고난과 사건을 허락하심으로 내려놓게 되고, 포기하게 되고 말씀에 매이게 하여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안다면, 내 삶에 다가올 고난과 사건이 두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망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고 사명에 매어가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기생각에 가득 차게 되었을까?, 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바운더리를 침범해오는 것을 싫어한다. 복음은 나의 바운더리를 침범해온다. 구속사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이 충돌한다. 나 자신의 삶에 주님이 주인이라고 들어오신다. 내가 사는 이 삶의 자리는 그 자리가 영원하지 않고 예수님이 없는 자리는 우상이지 구원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충돌은 매주 일어난다. 목사님 말씀 하나하나가 나의 세속의 가치관과 충돌한다.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어렵고 힘든 것은 사명에 매여 있는 바울과 같은 설교이기 때문이다. 처방에 화가 나는 것도 내 마음에 비방이 일어나고, 내 마음 가운데에 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분과 화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구속사가 충돌하기 때문인 것이다.
2. 말씀은 없고 나의 이런 말, 저런 말만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명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변명이 많다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자는 분주할 뿐이다. 사건의 진상을 알 수가 없다. 소동만 있고 요란만 있고 분주하고 무질서하다. 내 삶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은 내 물밑을 드러내게 하신다. 내 가치관을 건드리신다. 그러면 소란스러워진다. 소동이 일어나고 마음이 급해진다. 인생 속에 있는 모든 소동과 소란을 잠잠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바울은 한마디 대꾸도, 변명도 없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하다. 그저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은 말씀이 말하라 할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구원과 사명이 아니면 잔가지들이 너무 많게 된다. 욕심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된다. 나를 책망하는 사건이 인정이 되지 않아 불편해지고 주변사람들도 나를 불편해 하게 되었다. 내 죄를 잘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말씀으로 책망을 받을 때 진정으로 회개하면 말이 없어진다. 회개할 때 ‘주님, 아시지요...’ 이렇게 회개하는 것. 포기가 되는 것, 할 말이 없어지는 것. 나는 야망과 거짓과 속임수에 능한 자였다. 나는 죄인이었다. 이런 인정이 안 되서 주저리주저리 말만 많았다. 그렇게 변명하느라고 사명으로 살지 못했다.
3.사랑이 아닌 살기로 살기 때문이다.
사역지를 잃었던 기간 동안 나는 살기가 등등했다.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사랑이 느껴져야 정상인데, 나에겐, 유대인에겐 살기가 느껴졌다. 사명에 매여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볼 때, 삶의 태도에서 사랑이 넘쳐난다. 아무리 교회에 다니고 직분이 있어도 사명에 묶여가는 목자가 아니면 사랑이 아닌 살기가 눈에 서려있다. 여러분은 지금 살기로 살고 있습니까?, 사랑으로 살고 있습니까? 겉으로는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결혼이 조금 느껴지면 이를 갈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응답이 없다고 이를 갈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명과 야망의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아서 분별하기가 너무 힘들다. 내 마음가운데 사랑이 있는가, 살기가 있는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체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바울은 복음에 갇힌 자였다. 복음의 사슬에 매이고 사명에 체포되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가운데에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복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체포된 바울은 묵묵히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이시면 죽이리라.’ 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인생을 마음껏 사용하시고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때문에 오늘을 살고 사명 다하면 할렐루야 하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눔
#65279;#65279;#65279;행섭
설직후부터 감기몸살이라 누워지냈다. 학교 집을 오가는 일상이 답답하여 바람쐬려고 경복궁, 창덕궁을 간것이 화근이었다. 몇 일동안 누워있었다. 논문을 투고하였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면 답답하다. 아버지께서 혼자 뭔가를 하시기 힘들어하시고 어머니랑 성향이 다르시니 어머니도 힘들어하신다. 나에겐 어머니가 더 소중하니까 공유하는 것이 많은데 아버지하고는 관계형성이 안되서 힘든 면이 있다. 설에도 어머니께만 세배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설교 말씀등을 보시고 나선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자고 하시는데 나는 잘 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으로는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해 어려서부터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밉다. 아버진 욱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에 당하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더구나 다른 분들한테는 젠틀하시니 더욱 답답하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행섭이는 상처나 트라우마 등으로 아버지가 하는 행동 모든 게 다 미워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도 갇혀 있으신, 불쌍한 분일수도 있겠다. 어떡하면 아버지와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해 학벌 등 열등감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좀 당당해지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대학, 결혼 등 많은 부분에서 자리잡아 있는 열등감 때문에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주희
졸업, 입학 시즌이라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매일 야근이다. 금요일부터 회사에서 살았다. 수업을 준비하랴, 반별셋팅하랴, 일이 너무 많고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불안하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도 끝을 내야 속이 편하다. 오늘 말씀에서 야망에 매이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데, 딱 내 말이었다. 무언의 압박으로 2년 전에 입원한 적도 있다. 안그래야지, 안그래야지 하는데 잘 안된다. 안 좋은 일들이 생기면 꼭 내 탓만 같다. 맘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고 이기적인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 화가 난다.
->하나님과의 신뢰의 문제와 연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자신을 몰아붙이는가, 너무 애쓰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대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희찬
사랑부 엠티에 다녀왔다. 다른 집사님들이 담배피우고 세상적이셔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체중이 늘어날 정도로 잘 먹고 왔다. 교사분들하고 어울리기 힘든 면이 있어 교사모임이 힘들다.
->섬기는 부서에서는 교사모임도 참석하고 적극적 참여를 해야한다.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고 성격이 예민에서 동네에서 힘들기도 하다. 피해의식이 있어 관계에서 방어적이고 회피를 한다. 밴드에서 형하고 다투고 나오게 되었다. 마음이 한편으로는 편해졌다. 난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사람들은 내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명은 너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가는 것이다. 가다보면 인도하심이 있는 것이다. 변명하지 말고 내 모습이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 기분이 나빠진다. 인정을 살짝하면 아버지는 바로 누르려고 하신다.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말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고 생각하자. 늘 파도가 있다. 나는 죽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그냥 주제파악을 하고 가자. 상대를 싫어하면 다 티가 난다. 상대도 알 것이다. 아버지를 왜 싫어하는지 QT하면서 묵상해도록 하자.
명주
인생의 목적이 구원이 구원이 아니면 늘 분주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다는데 내가 그런 모습이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아닌 것이 인정이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내 모습. 가족들은 나의 이러한 불안해 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사는 것이 힘들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 오늘 김해로 내려간다. 나는 눈물이 없다. 아버지의 결핍 때문인가 생각해본다.
혜정
미련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건강한 종말론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욕심과 열등감을 가지치고, 세상을 향한 소망이 줄어들고, 욕심을 버려지고 있다. 말씀에 근거한 것들에 대한 열심히 부럽다. 주님이 바울을 만나주심이 너무 부럽다.
나는 관계나 타이밍에서 받는 응답이 있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감사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런 내가 소박해 보이기도 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미운 어머니의 말을 들을 귀을 주심에도 감사하다. 지혜가 없는 내가 붙어만 있으니 실수 안하게 해 주시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나를 교육하여 주시니 나는 참 운이 좋게 가고 있는 것 같다.
경훈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나의 짜증과 혈기를 경험한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 말씀이 틀린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 하는 내가 말씀이 아닌 세상에 묶여 있는 모습이다.
미선
사랑으로 살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았음 좋겠다.
QTin간증을 하기로 하였으니 말씀 묵상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행섭
시험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의 건강을 위하여
희찬
사람들과 편하게 지낼 수 있기를
다음 주 간증하는데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양육교사훈련 잘 받을 수 있도록
명주
집에서 가족들과 잘 생활할 수 있도록
직장 구할 수 있도록
오빠 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혜정
말씀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목장, 가족,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직장 문제 인도함 있기를
경훈
짜증내지 않도록
일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미선
말씀 묵상 잘 하도록
사랑으로 잘 살 수 있도록
저녁에 수업을 들으니 감당할 체력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