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 구원은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는 것이다.
36절)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는 주님이시다. 구원은 모든 건에 방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방패는 구원 때문에 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수고와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차별이 없이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원의 방패를 주셨기 때문에 나의 힘과 능력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일을 구원 때문에 생각하고 결정하고, 갈등했더니 그것이 방패가 되었다는 것이다.
본질을 위해서 비본질을 포기했더니 오히려 사단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다는 것이다.
[QT] 여러분들은 구원 때문에 생각하고, 결정하고 갈등합니까? 본질 때문에 비본질을 포기합니까? 비본질을 위해서 날마다 본질을 포기합니까?
에베소서 6장 전신갑주 말씀에서는 구원의 투고, 믿음의 방패라고 했는데 다윗은 구원의 방패라고 했다.
방패는 어떤 일을 할 때 앞장을 세울만한 것이나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정말 모든 사람에게 앞장세울 말은 구원이다.
구원이란,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얻어지는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진노로 힘을 빼고 하나님으로만 힘을 삼게 되면 하나님만이 구원이시기에 저절로 구원이 방패가 되는 것이 있다.
구원은 모든 것의 시작이고, 과정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 읽었던 31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지금 36절에 구원의 방패를 주셨다고 했는데, 그전에 읽었던 31절에는 말씀으로 피하는 자에게 방패라고 하신다.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야 큰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히브리서 1장3절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다고 했다. 만물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덧입으면 우리도 만물을 구원하고 붙들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겠나. 내가 무슨 힘으로 돈, 건강을 붙들 수 있겠나.
구원을 방패삼으면 능력의 말씀으로 돈에서 구원이 되고, 건강에서 구원이 된다. 능력의 말씀으로 죄를 정결케 한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붙잡고 가는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붙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원을 방패 삼는 것은.. 구원 때문에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본질 때문에 비본질을 포기하는 것)
내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면 남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게 하신다. 그러면서 높여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기 때문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았으면 당연히 계속 말씀을 보며 성화를 이뤄가야 한다.
또 QT의 목적은 내 자신의 치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이듯이 말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말씀의 목적은 구원이 되어야 한다.
[QT] 말씀 따로 구원 따로입니까? ‘구원 받았으니 말씀은 필요없다’ 아닙니까? 말씀이 아닌 내 지식, 스펙, 물질, 감정으로 모든 남편, 아내, 자식의 마음을 붙들려고 합니까?
만물을 붙들고, 죄를 정결케 하시는 능력의 말씀인 구원의 방패, 말씀으로 마음을 붙들려고 합니까?
2. 큰 구원은 온유함이다.
36절)구원, 구원, 말씀, 말씀 했더니 주의 온유함이 임했다고 한다.
구원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니 나를 크게 하신 주의 온유함을 경험케 된다.
마태복음 5장.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했다.
첫째 복이 모든 복의 열쇠이기에 가난한 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다음이 애통한 자들이고, 그 다음이 온유한 자라고 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천국을 소유한자는 이 땅에서 기업을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비참한 가난을 보고 애통하지 않는 자는 온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온유’는 짐승을 길들여서 주인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짐승만도 못하기에 주인 뜻대로 쓰임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온유하려면 내가 이 짐승만도 못한 것을 날마다 인정해야 한다. 그 짐승은 주인의 뜻대로 사는데 우린 하나님의 뜻대로-내 주인의 뜻대로- 살지 못하지 않는가.
날마다 내가 짐승보다 못한 걸 인정하게 되면 이런 사람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편 37편에 그런 얘기가 있다.
온유한 자는 땅을 내 소유로 만들지 않아도. 이 세상 땅이 내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민수기 12장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다. 그러면 가장 온유한 모세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고 그곳에서 살다가 가야하는데 바라만 보고 가게 하셨다.
민수기 12장 전에 11장과 14장에 보면 백성이 돌로 치려는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모세의 온유가 지면에서 승했다고 써있지 않고, 형제인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할 때, 온유가 지면에서 승했다고 썼다.
그러니까 식구가 힘들게 할 때, 가장 큰 온유가 나온다는 것이다. 진짜 온유하기가 힘든 곳이 가정이다. 믿는 자라면 집안 식구일에, 형제 일에 회개할 것 밖에 더 있겠나.
그런데 모세, 미리암, 아론이 다 영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 이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은 육적, 정신적인 시험보다 영적시험이 가장 힘들다. 또 영적 지도자들이 집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다. 그때 온유가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를 내려놓기가 어렵다는 것 같다.
그래서 상한 심령이 되니까 저절로 온유함이 생긴다.
온유 vs 나약
그러니 온유는 참는 것이다. 온유는 나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무조건 참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온유가 아니라 연약함이다.
온유한 사람은 진리를 부여잡는 사람이다. 진리를 부여잡기 때문에 진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다. 실제로 온유한 사람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것이다.
온유함은 본래 ‘굽어보심, 도움, 낮춤, 가난함’ 등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이 자기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초라한 목동으로 사울의 미움을 받았고, 동굴에서 연명을 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가난한 날들을 얼마나 살았는가?
밧세바까지 언급한다면 하나님의 온유하심이 아니라면 어찌 왕이 될 수가 있었겠나.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바닥을 치는 다윗을 보며 하나님이 얼마나 참으셨는가.
지극히 높은 데 계신 하나님이시라면 다윗을 구원하시기가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을 위해 자기를 낮추고, 굽어보시고, 찾아오신 주님의 온유하심이 나를 크게 하셨다고 하는 고백인 것이다.
주님의 가난하심으로 나를 부요케 하고, 낮아지심으로 나를 높이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의 하나님의 자기 비하로 죽어지심으로 다윗을 크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고, 낮아지시고, 굽어보셨다.
구원과 말씀으로 온유해가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주신 온유가 있다면 화를 내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화를 내는 것도 온유함이다.
온유는 자기 권리를 쓰지 않은 것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신 주님의 온유가 우리를 살리셨다.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를 주셨기 때문에 다윗을 크게 하셨다.
이것이 구원의 방패를 온유함으로 준비시켜주셨다는 뜻이다.
이것이 최고의 준비이다.
[QT]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함으로 내가 크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낮추고, 굽어보고, 도와주고, 가난함으로 크게 된 경험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 큰 구원은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는 것이다.
37~39절)우리가 싸워야할 사단의 세력은 우리를 멸망에 빠뜨릴 수 있는 아주 절망적인 권세를 가졌다. 결코 용납해서도, 타협해서도 안 된다.
자기를 알아야 상대를 알 수가 있다. 또 상대에 대해 알았다면 결사각오로 나가야 한다. 적당한 것은 없다. 다음으로 미루는 것도 안 된다.
내 속의 사단은 교양 정도 가지고는 안 물러 간다.
대적마귀는 쉬거나 지치거나 하는 것이 없다.
원수를 끝까지 쫓아가서 원수가 망하기 전까지 기필코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방패와 온유함으로 준비된 사람이다.
다윗은 이제는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게 되었다. 주님이 온전히 무찌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당한 모습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다윗은 강한 원수들의 틈새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었던 연약한 자였다.
이런 다윗을 이끌어내셔서 발을 넓게 하시고 넓게 트인 대로를 열어주셨다.
40절)전쟁하려고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는 보통 능력을 주셨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큰 일을 생각한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능력’하면 꼭 세상 자랑을 생각한다.
능력으로 띠 띠우사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늘 하는 말 ‘Doing’이 아니라 ‘Being’ 의 문제라는 것이다.
영적전투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끗함’인 것이다. 깨끗함으로 계속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것이 능력이고 그래야 중간에 다른 데로 세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영혼의 쉼터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불의를 물리쳐야 되는 군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간증이 울려퍼져야 한다.
‘반복되는 죄를 이겼노라고, 죄를 끊었다’고 계속 승전가가 울려 퍼져야 하는 것이다.
41절)원수들이 저절로 등을 돌리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셨다는 것은 이제 다윗에게 미워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원수가 등을 돌리고 패배를 인정했다.
원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온다.
쉼 vs. 똑바로 서있는 것.
영적인 싸움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육적 사건으로만 이 싸움을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이 끝나면 다 쉬고 싶다. 그래서 넘어진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씀을 가지고 잘 싸운 사람은 다윗처럼 잘 서있게 된다.
항상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쉼’이 아니라 ‘똑바로 서있는 것’이다.
이것이 큰 구원이다.
■ 노래의 말씀으로 간증을 하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니까 .. 깨끗함으로 나가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온전함으로 나가게 되니까 큰 구원이 일어나서 곳곳에서 승전가가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땅에서 원수로부터의 승리가 목적 아니겠나.
■ 그런데 이렇게 길고 긴 여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다윗의 여정에 오직 하나님이 동행하셨다는 것이 다윗의 찬송인 것이다.
[QT]큰 일이 지나고 여러분은 이제는 다 내려놓고 쉬고 싶습니까? 여전한 방식으로 똑바로 서고 싶습니까? 무거운 짐이라고 포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42절)그런데 내가 영적 전쟁을 이렇게 해가고 있는데 다윗은 물리쳤는데
악인들, 사단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다.
대답지 아니하실 기도만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곤경을 외면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들 신앙생활을 수 십년 했는데 갑자기 닥쳐온 바람, 부도, 낙방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구조로 살았다면 그것보다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비극, 비참 그 자체인 것이다.
일생 신앙생활을 했는데 나한테 온 진노를 전혀 해석을 못하고, 다 무너져서 서지를 못한다. 다 넘어진다.
43~45절)다윗이 자신의 자리에서 이 글을 쓸 때를 통일왕국 초기로 보면, 17년 정도의 혼란기를 거쳐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 곳곳에서 굴복을 하는 것이다.
사울과의 싸움이 너무 힘들어서 그것에 비하면 열방을 무찌르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내가 남편 한 사람 순종하는 것과 만명 순종하는 것 중에 어디가 더 어렵겠나? 사실 체감온도는 남편 한 사람 한테 순종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순종 잘하는 사람은 만명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신경이 복잡한 건 있지만, 얼마나 사울이 힘들었으면 다윗이 이렇게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겠나.
풍성할 수 없는 환경가운데 풍성을 보여주니까 들은 즉시 순복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어머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러지’
내 소문은 내가 말한다고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들려져서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소문을 말한다고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저절로 ‘원수들이 무찔러져서 굴복했다.’ 이 소문이.. 전도해서 다 굴복했다.
[QT]여러분은 내 소문을 스스로 말하는 편입니까. 남들이 알려줘서 들리는 편입니까.
46절)택함받은 자라면 돈, 권세, 가문 ..어떤 것의 견고함이라도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복음은 그들을 떨게 만드는 것이다. 어찌 돈과 복음을 비교할 수가 있겠나.
내 기도를 통해, 내 순종을 통해 식구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견고한 자기의 성에서 떨며 나온다는 것을 염두해두고 살아야 한다.
다윗의 구원이 가지는 큰 의미는
-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셨고,
- 두 번째는 모든 이방 민족을 굴복하게 하셔서 다윗을 으뜸 삼으셨다. 는 것이다.
==> 그래서 먼저는 우리가 집안에서부터 건짐을 받아야 된다. 그러면 외부에서 우리를 으뜸을 삼으시는 것이다. : 소극적, 적극적 구원을 모두 이루었다는 것이다.
제일 무서운 원수는 내 자신이다. 내 자신의 이기적이고, 남들보다 좀 더 인정받으려는 노예근성 이있다.
우리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인 뿐이었다.
노예는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못했다고 지적하면 슬퍼한다.- 니체
그래서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할 때, 우리는 자신을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된다. 자기를 함양시켜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종이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종노롯을 하면 그 종은 이미 주인인 것이다.
어디서나 누가 나를 무시한다고 하지 말고 내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아내노릇을 하고, 종 노릇을 하면 그 집의 중심을 딱 잡고 있는 것이다.
[QT]여러분은 응답받는 구조 속에 살고 있어요? 힘든 일을 당했다면 여러분의 어려움은 누가 도와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노예근성이 있습니까? 주인의식이 있습니까?
이것은 남의 평가에 민감한가? 나는 하나님의 종인가? 이 얘기이다.
4. 큰 구원의 목적은 감사와 찬송이다.
THINK의 목적은 THANK(감사) 라고 했다.
47절)다윗의 결론은 ‘여호와는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사심을 두고’
수많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아무리 힘든 고통이라도 그 고통은 지나가버린다고 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여호와 밖에 없다고 했다. 다윗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더 했을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따랐던 사무엘도 죽고,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도 죽고, 자기 평생의 모사 아히도벨도 반역해서 자살하고, 압살롬도 죽었고, 요압은 다윗의 충성된 부하로 알려져 있지만 마음이 안통해서 긴장시키는 자이고.
가장 가까운 자가 이럴 때 얼마나 외로웠겠나.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
그럴수록 내 구원의 바위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48~49절)생존하신 하나님의 증거는 나를 위해서 보복하시고, 복종하게 하시고,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고, 대적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강포자에게서 건지신다.
다윗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사울 하나 이겨냈더니 너무나 너무나 하나님께서 ‘너 잘했다 너 잘했다.’
50~51절) 본문이 찬양이 51절까지 나간다.
이러므로 다윗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보존하신 목적은 결론이 우주적인 통치이고,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름 부은 자 다윗의 감사 시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된 것이다.
아브라함도 나중에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것이 자식도 아니고, 땅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랬기에 ‘나그네’라고 고백을 했다. 그 실체가 하나님나라 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나그네 되어서 살았다’ 고 했다.
다윗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서’ 다윗의 전 인생이 사용되고 있다.
다윗은 찌질한 것, 소소한 인생을 다 보였다. 죄책감을 느낄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잃은 양같이 방황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가장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신앙이란,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이것을 아는 것이다.
다윗이 나의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 등등 계속 하나님을 찬양했듯이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사건이 오는 것이다. 내가 깨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다윗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깨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갔다는 것이 너무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모든 구원 역사의 유일한 근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찬양함으로써 결론을 짖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구원하신 목적이 있었다.
흑암과 죄악이라는 적대 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시고, 온 천하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으로써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에게 베푸신 구원의 완성(절정)이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렇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다 언급한 것은 다윗밖에 없다.
대단한 인생이 아니라 시시콜콜한 인생.
감사와 찬송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도제목
장승영
1.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지정의를 통해 알게 되도록.
2.회사에서 노예근성 아닌 주인의식으로 중심 잡고 가도록.
3.구원 때문에 잘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도록.경거망동 하지 않도록.
4.말씀을 붙잡아 사람 마음도, 물질도, 건강도 진로도 인도함 받도록.
5.센터장님께 나약함이 아닌 온유함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6.연휴 가족들과 여행 가는 2박3일 쉴 생각만 하지말고 깨어 있어서 똑바로 서는 시간 되도록.
김경진
1. 지식 스펙 감정으로 붙들려고 하는 것들 말씀으로 인도받도록
2. 직장에서 가정에서 맡은 일을 잘 감당하도록 (처방량 많았던 주)
3.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깨어진 작은아빠네 가정의 구원에 보탬이 되길
4. 하나님 사랑에 몸둘바 몰라 돌아오게 된 나를 돌아보고 순종하는 마음을 좀 가지며. 목장공동체와 가족위해 함께 기도하도록
윤정희
1.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함으로 회사 사람들과 남자친구를 대하도록
2. 결혼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남자친구를 재촉하지 않고 내 안의 죄를 바라보기
3. 가족과 남자친구가 죄를 깨닫고 구속사를 깨닫기를
4. 나이 어린 상사를 인정하지 못하는 죄가 있음을 깨달았음. 아멘하고 순종할수 있도록
윤은영
1. QT말씀을 잘 붙들어 잘 들리고 잘 깨달아져 말씀을 덧입을 수 있기를
2. 내가 해야할 일들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할 수 있기를
3. 체력을 쓸 때를 잘 분별하고 영적 육적으로 회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