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휘문] 2015.2.8 천옥현 목장보고서
멤버: 천옥현(80), 엄정미(80), 김하나(80), 이혜림(81), 김화영(82), 정지윤(83), 이화진(84)
<7명 중 6명 참석: 옥현, 정미, 혜림, 지윤, 화영, 화진>
장소: 센티모르
<말씀요약> '깨끗함' (삼하 22:21~35), 김양재 담임목사님
구별된 가치관은 식당을 해도, 교수를 해도, 목사를 해도 너무나 필요한 가치관이다. 교회뿐아니라 세상에 나가서도 구별된 가치관으로 목회를 하고, 사업을 하며,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교육을 하며, 사랑을 해야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깨끗함, 깨끗한대로, 깨끗한 자, 깨끗하심 들과 같이 깨끗함이 여러차례 나온다. 깨끗함은 착한생각을 넘어서는 구별된 가치관이고, 생각이고, 구별된 언어이고 구별된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사울과의 전쟁과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면서 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나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 수많은 사건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은 깨끗함이다. 노래의 말씀으로 가야할 푯대는 깨끗함이다.
1. 깨끗함이란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사명으로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이 내 공의로움이고 내 손에 깨끗함이라고 한다. 다윗은 자신에게 의도, 깨끗함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셨다고 하고,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다고 했을까? 내 의란, 완전한 인간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을 신뢰하는 믿음에 대해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도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죄를 보는 것이지만, 이 길로 가는데 나는 자꾸 넘어져도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실패한데 하나님은 공평하시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시니까, 내가 그것을 100% 옳소이다 하는 것, 이것이 공의이다. 다윗은 흠도 많고 점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 손에 피를 뭍히지 않았다. 내 손에 깨끗함, 그것은 다윗의 깨끗함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깨끗함이 임한 것이다. 목동하면서 사자도 물리치고, 양도 지키면서, 골리앗도 물리치며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그러나 사울을 만나면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는 사울 때문에 밑바닥까지 내려가니까,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윗에게 하나님 나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롭게 여기시는 공의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면 나에게도 공의가 임하기 시작한다. 교회 다니고 믿기만 하면 그만이지에서 공과 사가 구별되기 시작하고 무조건 떼부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도 지키게 되고 원칙을 위해서 참을 수도 있게 되고, 화평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냥 지나 갈 일에도 자꾸 구별된 깨끗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환난을 겪으면서 주님을 생각하게 되니 주님께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시키지 않았어도 자꾸 자원하게 되는 적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은 이것을 내 공의라고 인정해주시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상을 주신다고 하신다. 공의를 자발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진노의 응답 이후가 되는 것이다. 다윗의 깨끗함이 아니고, 말씀의 깨끗함으로 인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울 때문에 수없이 이기기도하고 실패도 하고 정 견딜 수 없어 피하기도 했다. 자기 맘대로 도망간 블레셋에서 처자가 다 사로잡히는 벌을 주셔서, 그 때 진노를 경험한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묻게 되었다. 밧세바 사건도 실패한 사건이지만, 혹독한 벌을 통해서 여자문제도 끊게 하시고 이스라엘 왕으로 깨끗하게 가도록 도우셨다. 다윗이 진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다윗은 구별되어 가고 깨끗해져 갔다. 다윗 자신의 의는 너무 빈약하지만 말씀보며 적용해가니까, 자꾸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게 되고 깨끗함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게 다가 아니라, 날마다 깨끗해져 가야한다. 적용은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항상 내가 먼저 십자가를 자는 적용을 하는 것이다. #65279;
---적용질문>> 여러분은 삶에서 공의로 여겨주신 적용이 있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있습니까? 모든 믿음의 결론이 보여지는 복이 아니라, 깨끗함 곧 거룩이라는 것에 동의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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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깨끗함이란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깨끗함을 위해서는 여호와의 도, 말씀묵상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악을 행하는 죄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을 또 떠나갔고, 가인들의 후손으로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다. 다윗도 잠시 하나님을 떠나니까 간음과 살인을 하게되었다. 떠나면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도 간음과 살인과 음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도 위대한 성전 역사를 이룬 후에 이스라엘 전체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나님을 떠나니 다 예외가 없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끊임없이 죄에서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죄덩어리 인간이 내가 좋아하는 것, 죄를 버릴 수가 있겠는가, 죄라고 인식조차도 못하는데 이 땅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나의 시간, 자아실현 이것을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다윗처럼 내게 찾아온 고난이 많을 때, 그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서 죄악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고난을 다윗이 잘 살아냈기 때문에 옆의 사람들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까지 자기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고난 가운데 잘 살아낼 때, 자기의 가족과 나아가서 나라까지 살리게 된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고 화평해야한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때 지침서가 바로 여호와의 도인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열심이 아니라, 자기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구속사는 어디나 공식이 같다. 우리가 깨끗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날마다 거룩한 나라의 법도를 주셔서 나를 비춰보게 하시고, 자신과 직면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구속을 모르는 사람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당최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기를 원한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시는 것과 같다.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다윗은 앉으나 서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었다고 했다. 오늘도 눈만뜨면 사울이 버티고 있고, 죽이려고 악신이 들려서 칼과 창을 휘두르니까 하나님을 내 앞에 두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적이 공격할때마다 그의 규례를 보면 대적보다 더한 내속의 악함과 탐심의 현주소를 날마다 보게 되니까, 공격할때마다 내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해져 가는 것이다. 죄인들의 특징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기도를 안하고 말씀을 보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최고의 겸손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에게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믿음의 현주소가 딱 드러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깨끗함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큐티가 즐겁습니까? 형식적입니까? 아예 안봅니까?
3. 깨끗함이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다윗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라 완전한 분 앞에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자신이 완전한 자라고 선포했다. 다윗은 진노를 경험한 후에 적극적인 자세로 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깨끗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온전히 수행하려고 하는 자를 굉장히 도우신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 수있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완전의 뜻은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국어사전), 온전하다의 뜻은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이다. 이 세상의 완전함은 하나님의 완전함과는 다르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사람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완전주의자입니까? 하나님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자입니까?
4. 깨끗함은 성벽을 뛰어넘는 승리를 가져다 준다.
골리앗과의 싸움도 군사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적인 이김이었다. 다윗은 10년이나 계속된 사울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주 깊어졌다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의 도를 지키니 무서운 성벽마다 뛰어넘게 되었다. 대나무는 씨를 부려도 보이는 것이 없다. 1년째에도, 2년째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흔적이 없다가 3년째에 가서 죽순이 30센티 겨우 올라오는데, 그리고 여전히 30센티인채로 2년을 또 보내는 것이다. 어떻게 키워 먹겠는가? 그런데 5년째가 되면 눈에 띄는 성장이 아니라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이것을 퀀텀성장(Quantum leap)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다. 5년동안 보이지 않는 땅속에 깊은 뿌리내림이 서로 얽히고 설켜서 가능하다는 것, 대나무 1시간의 성장속도가 소나무 30년 길이생장에 해당한다. 그래서 하늘 끝에 닿을 만큼 자라고 자라고 자라서 가보니까 하늘이 안보이는 것이다. 사울과의 싸움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다윗에게는 얽히고 설킨 뿌리내림이 있었다. 그 뿌리 내림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하늘로 하늘로 성벽을 뛰어넘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그러나 또 소나무는 소나무의 역할이 있다. 우리에겐 각자 역할이 있을 뿐이다. 뿌리내림의 사람들이 있고, 하늘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에 올라가는 역할이 훨씬 어렵고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기자신 지키기가, 깨끗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깨끗하고자 하는 다윗을 늘 무장시키고 싸울수 있는 힘을 친히 공급하셨다. 우리도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나를 무장시키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오직 말씀을 의지하고 나가니까 곳곳의 성벽이 무너지게 하신다. 성경은 다윗의 스토리에 참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단 한번도 기적의 스토리가 없다. 슬픔, 좌절, 방황, 배신, 범죄, 탄식, 눈물의 이야기가 있다. 다윗의 얘기에는 하늘의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땅의 얘기가 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윗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이다. 일상속에 숨어있는 기적과 일상속에서, 일상의 삶에서 드러내야 될 하나님의 임재하심, 평범한 삶속에서 다윗은 고난 가운데 늘 내 죄를 보았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늘 일상적인 성도의 나눔이 얼마나 다윗의 스토리와 똑같은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나눔이다. 가장 평범한 것이 비범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제목>
천옥현 목자
1. 매순간 감정,생각,행동이 주님 앞에 정직할 수 있도록
2. 말씀으로 일상의 적용 잘 하도록
3.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로 목장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잘 섬길 수 있도록
엄정미
1. 즐겁게 매일큐티 하도록/ 수요예배 갈 수 있도록(수욜8:30퇴근 시간표가...)
2. 유빈이가 전도 되어진 것에 감사하며 유빈이 가족을 위해 기도하도록
3. 사랑 전제 된 가족구원기도, 적용하는 한 주 되도록
김하나
1. 장서폐기기안 무사히 잘 올리도록
2. 졸업식 마무리 잘 하도록
3. 스토리시놉 주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 쓰도록
4. 엄마 마지막 확진결과 정상이도록
5. 교회 예배와 목장 꼭 나가도록
6. 큐티새벽설교 진심으로하기
7. 많은 일들 가운데 피곤치 않게 해주세요
8. 가족구원
이혜림
1. 말씀 제대로 보도록
2. 교회와 지체를 사랑하도록
3. 아이들을 잘 가르치도록
4. 중독의 지속적인 절제
김화영
1. 눈이 회복될 수 있도록
2. 부모님의 건강
3.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4. 앞날을 위해서 지혜를 주시길
정지윤
1. 매일 말씀 보고 듣도록
2. 큐티 보는 시간 앞당기는 훈련 하도록
3. 아버지께 내 죄패를 앞세우는 나눔하도록
4. 빚진 마음으로 네일아트 열심히 배우고 복습하도록
이화진
1. 일주일 동안 낮아진 모습으로 일주일 잘 보낼 수 있도록
2.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3. 나의 가는 길 주 앞에 내려놓고 주께서 인도하는대로 갈 수 있도록 잠잠히 기다리며 기도하기
4. 우리 가족 영적으로 하나되고 굳건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