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
건강한 재료를 이용해서 양심적으로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선정한다. 한번 선정되려면 많은 몰래 카메라로 좋은 재료를 깨끗함으로 관리하는가에 합격을 받아야 한다. 선정되기가 어려운데 맛집이라기 보다는 깨끗함, 건강에 좋은 개념이다. 식당도 깨끗함으로 하지 않으면 갑자기 들어닥치는 몰래카메라에 덜미를 잡혔다. 돈이 목적이면 모든 것이 결국 구멍나게 되어있다. 구별된 가치관은 식당을, 교수를 목사를 해도 너무나 필요한 가치관이다. 교회에서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도 구별된 가치관으로 목회를 하고 사업을 하고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교육을 하며 사랑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은 깨끗함 깨끗한데로 깨끗한 자 깨끗하심 등으로 깨끗함이 여러차례 나온다. 깨끗함은 착한 생각을 넘어서는 구별된 가치관이고 생각이고 언어이고 표정이라고 생각 된다. 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사울과의 전쟁과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렇게 나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기 위해서 수 많은 사건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다. 거룩은 깨끗함이다. 노래의 말씀으로 가야할 표대는 깨끗함이다. 깨끗함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 마지막에 보면 19~20절에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셔서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라고 하였다. 진노가 와서 나의 물밑이 드러나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해서 넓은 곳으로 사명으로 가게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나온 세월들을 생각하면서 사명으로 나아갈 때에 필요한 것이 내 공의로움이고, 내 손의 깨끗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자신에게 의도 없고깨끗함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런데 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셨다고 하고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다고 했을까? 창세기 15장 6절은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겼다고 한다. 내 의란 완전한 인간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신뢰하고 믿음에 대해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죄를 보는 것이지만 자꾸 길로 가는데 나는 비록 실패하고 넘어져도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실패하는데 하나님이 공평하시니까 의로우시니까 내가 그것을 100% 옳소이다 하는 것이다. 깨끗함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흠도 많고 죄도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다윗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았다. 내 손의 깨끗함 그것은 다윗의 깨끗함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깨끗함이 임한 것이다. 그동안 목동하면서 사자도 물리치고 양도 지키면서 그런데로 잘 살아왔다. 골리앗도 물리쳤다. 그러나 사울을 만나면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 았다. 정말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는 사울 때문에 밑바닥까지 내려가니까 육이 무너지는 만큼 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윗에게 하나님 나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윗은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 그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공의를 알게 되었다. 공의가 믿음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면 나에게도 공의가 임하기 시작한다. 늘 이것도 저것도 괜찮고 믿기만 하면 다지 이 것에서 사울이라는 엄청난 시험을 만나고 보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 나라의 깨끗함 이런 공의가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공과 사가 분별되기 시작하고 무조건 떼 부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도 지키게 되고 원칙을 위해서 참을 수도 있게 되고 화평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예수만 믿으면 다지 이런 것이 아니라 예전 같으면 지나가는 일이었지만 구별되는 깨끗함을(내가 이러면 안 되지) 보이게 된다. 나를 구원해주실 주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보이려고 자원하는 적용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도리어 내 공의로 인정해주시고 상을 주신다고 하신다. 공의를 자발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진노의 경험 이후가 되는 것이다. 진노의 경험이 없다면 이것을 깨닫지 못 한다. 그것은 다윗의 깨끗함이 아니고 말씀의 깨끗함으로 된 것이다. 환란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자들이 많이 오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오라고 하니 힘든 일이 많이 있다.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아픈 분들 오라고 하신 분들 이외에도 그들을 돌봐줄 건강한 분들도 많이 오셨다. 진노를 경험하고 내 밑바닥이 드러나서 주님을 경험하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 자신으로 깨끗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말씀을 보면서 늘 갈등한다. 성령충만이고 갈등충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한 적용에 대해서 늘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한다. 내 분량데로 적용을 못 해도 그대로 갚아주셔서 깨끗케 하신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울때문에 수 없이 이기기도 하고 수 없이 실패도 하고 견딜 수 없어서 피하기도 했다. 자기 마음데로 도망간 블레셋에서 처자가 다 사로 잡히는 벌을 주셔서 그 때 진노를 경험해서 다시 하나님께 묻게 되었다. 밧세바 사건도 실패한 사건이지만 혹독한 벌을 통해서 여자 문제도 끊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깨끗히 가도록 도우신다. 다윗이 이긴 적도 많았지만 진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다윗은 구별되어 갔고 깨끗해져 갔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며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것이 슬로건이다.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그렇게 개떡같이 해석을 하면 안 된다. 구속사적으로 찰떡같이 해석해야 한다. 다윗 자신의 의는 너무 빈약하지만 말씀을 보면서 적용을 해 나가니까 자꾸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게 되고 깨끗함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다음에는 깨끗해져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과정이 깨끗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적용이라는 것은 나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내가 항상 먼저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되는 것이 나의 손의 깨끗함을 통해 갚으신다는 것이다.
적용) 삶에서 공의로 여겨주시는 적용이 있는가?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있는가?모든 믿음의 결론이 보여지는 복이 아니라 깨끗함 즉 거룩이라는 것을 동의하는가?
예수 믿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깨끗함이 축복이라는 것이다. 거룩한, 구별된 예수 믿으면 여기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2. 공의를 지키려면 여호와의 도를 지켜야 한다(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깨끗함을 위해서는 말씀 묵상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성경 가장 중앙에 이 말씀이 있다.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악을 행하는 죄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은 결국 하나님의 낯을 피했다(떠난 것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갔다. 가인들의 후손들로 세상의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다. 다윗도 하나님을 잠시 떠나니까 간음과 살인을 하게 되었다. 떠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만 간음, 살인, 음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도 위대한 성전 역사를 이룬 후에 이스라엘 전체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예외가 없다. 우리는 늘 결론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이야기를 같이 듣고 슬퍼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오기만 해도 감사하지만 결국 거기까지 가야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통해서 죄에서 돌아오라고 부르셨다. 어떻게 죄 덩어리 인간이 좋아하는 것(죄악)을 버리겠는가? 죄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 하는데 이 땅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스펙과 내 시간, 자아실현 나의 시간도 누구도 쓰면 안 된다는 이런 것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다윗처럼 내게 찾아온 고난이 많을 때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되어서 죄를 꺠닫게 된다. 그런데 그 고난을 다윗이 잘 살아냈기 때문에 옆에 사람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까지 자기 죄를 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이 고난 가운데서 잘 살아낼 때 자기의 가족과 나가서 교회와 나라까지 살리게 된다. 그러니 고난의 환경이라는 것은 내 식구, 내목장, 내 공동체 자기 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환경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 절제하고 화평해야 한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라는 것이다. 이 떄 지침서가 여호와의 도인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자기 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시는데 자기에게 와 닿지를 않는 것이다. 구속사는 어디에서든 공식이 같다. 우리가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거룩한 나라의 법도를 주셔서 나를 비춰보게 하시고 자신과 직면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구속사를 모르는 사람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기를 원한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큐티도 하기 싫고 공동체도 들어오기 싫은 사람은 이 이야기가 너무 듣기 싫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다윗은 앉으나 서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었다고 한다. 법도를 어떻게 내 앞에 두지 않을수 있겠는가? 오늘도 눈만 뜨면 사울이 버티고 있고 죽이려고 하고 악신이 들려서 칼과 창을 휘두르니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떄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는데 대적이 공격할 때마다 그의 규례를 보면 대적보다 더한 내 속의 악함과 탐심의 현 주소를 날마다 보게 되니까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공격할 때마다 내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하게 되어져 가는 것이다. 죄인들의 특징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말씀도 안 보고 기도도 안 한다. 이것을 정상적으로 하는 것이 구속사적인 큐티고 말씀 묵상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의 딜레마는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최고의 겸손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묻는다 ‘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 이렇내요 저렇내요’ 라면서 그래도 우리가 흉내를 내면서 따라갈 최고의 겸손은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이다. 말씀 묵상, 큐티를 하는 것이다.
적용) 우리에게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믿음의 현 주소가 드러날 것이다. 깨끗함을 위해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큐티가 즐거운가? 형식적인가? 아에 안 보는가? 이 질문만 해도 현 주소가 드러난다.
3.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다윗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라 완전한 분 앞에서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완전한 자라고 선포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 하지만 진노를 경험한 후에 죄악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싸우는 것이라고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했다고 이것이 깨끗함으로 나가는 길이다. 언약을 온전히 수행하려고 하는 자를 굉장히 도우신다.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완전의 뜻은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이다. 온전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라고 정의했는데 가족 모두가 남편을 힘들어 했다. 이 세상의 완전함은 하나님의 완전함과는 너무나 다르다. 내가 완전하지 못 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함이다.
적용) 사람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완전주의 자인가? 하나님의 완전함을 추구하는가?
4. 깨끗함은 성벽을 뛰어 넘는 승리를 가져다 주신다
골리앗과의 싸움도 군사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다. 그러나 그것은 1회적인 이김이었다. 그 떄에 비하면 다윗은 10년이나 계속된 사울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매우 강해졌다. 적진으로 달리면서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의 도를 지키니 무수한 성벽을 뛰어넘게 되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의뢰하고 의지하니까 넘지 못 할 성벽이 없다.
대나무는 씨를 뿌려도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한다. 2년이 지나도 정성으로 돌보지만 아무 흔적이 없다고 한다. 3년째에 죽순이 조금 보이는데 30cm정도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고 4년째에도 30cm로 또 2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5년째가 되면 눈에 띄는 성장이 아니라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고 한다. 이것을 퀀텀 성장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을 향해서 뻗어나가는데 5년동안 보이지 않는 땅 속에 깊은 뿌리 내림이 서로 얽히고 섥혀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나무 1시간의 성장 속도가 소나무 30년 길이 성장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 끝에 닿을만큼 자라고 자라서 가보니까 하늘이 안 보인다. 사울과의 싸움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다윗의 믿음은 얽히고 섥힌 뿌리 내림이 있었다. 그 뿌리내림은 어떤 비 바람이 불어도 하늘로 향하며 성벽을 뛰어 넘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소나무는 또 소나무의 역할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뿌리 내림의 사람들이 있고 하늘에 올라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늘에 올라가는 역할이 더 어렵고 무섭다고 생각된다. 자기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깨끗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뭐가 옳고 그른 것은 없다. 하나님은 깨끗하지 않은 다윗을 늘 무장시키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친히 공급하신다. 우리도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서 나를 무장시키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오직 말씀을 의지하고 나가니까 곳곳의 성벽을 무너지게 하신다. 뿌리내리고 있는 동안 이렇게 말씀 묵상을 많이 했다. 성경은 다윗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뿌리 깊게 내리는 것이다. 일상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우리가 다 평범한 삶인데 평범히 사는 것이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적의 이야기가 없다. 슬픔, 좌절, 방황, 배신, 범죄, 탄식, 눈물의 이야기가 있다. 다윗의 이야기는 하늘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도 많이 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윗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기적과 일상의 삶에서 들어내야될 하나님의 임재하심 이것이 우리가 다 평범한 삶인데 평범한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진짜 기적인데 하늘에서 기적 이런 것이 다윗의 인생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기적 그만 좋아하고 기도 받는 것 그만 하고 내 죄를 보기를 바란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죄를 봤기 때문에 예수님의 조상으로 자리메김을 할 수있었다. 우리들 교회의 일상적인 성도의 나눔이 얼마나 다윗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평범함이 비범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깨끗함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랑이 전제되어져야 한다. 사랑이 없이 혼자 깨끗함을 외치는 인생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 할 수 도 안 할 수 도 있고 말릴 수 도 있고 안 믿는 사람과는 구별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보여야 한다. 정말 사랑 안에서 깨끗하기가 인간의 힘으로는 정말 안 되는 일이다. 초대교회처럼 신앙생활을 잘한 교회는 물지르이 축복도 반드시 주는 것을 교회사에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쓰는 가치관이 세워지기 전에는 물질을 주시지 않으신다. 내가 무언가 다 절제를 할 것 같아도 지금 주시면 도박하고 다른 곳에 쓸거 같아서 안 주시는 것이다. 당대 신앙의 때에는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야 그 후에 제물을 주신다. 그래야 그 제물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내가 힘든 사람을 도우려고 하면 지체가 생긴다. 반드시 우리를 높이실 것을 믿는다. 우리들 교회가 앉으나 서나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내 죄가 보여 잘난척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평안하게 가고 있다. 날마다 애통하지만 늘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주신다. 이 모든 것이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을 목적으로 놓고 걸어갈 때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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