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벽을 넘어’
압살롬에게 왕좌를 주고, 다윗이 사랑의 도피로 어려움을 자처한 시기에, 시바, 시므이 그리고 아히도벨과 같은 인물들이 다윗을 배신한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배신,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배신의 사건에 대해 묵상하여 보자.
1. 물질 때문에 배신한다. (물질의 배신을 겪어야 했다!)
내 것으로 주인 행세 할 정도로 물질에 대한 탐심이 가득했던 시바. 한 순간 다윗으로 인해 므비보셋에게 내 것처럼 여기고 관리하던 물질들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청지기직으로 응당 정산의 시기가 와서 행해진 일임에도 회개함 없이 내어 주었기에 여전히 자기 관리하던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므비보셋의 땅을 돌려받기 위해, 곤경에 처해 도피하는 다윗을 생각하는 척 찾아가 당장 필요할 만한 것들로 대접하며, 아직 왕의 신분이기에 자신의 소유를 인정하는 증거를 주라고 간교한 수를 쓴다. 자신이 관리하던 물질들의 소유권을 므비보셋에게서 뺏어오기 위해 다윗을 이용한다.
우리 또한 돈으로 인해 가치관이 흔들리고, 욕심으로 인해 흩어진 가족이 없는지 돌아보게 될 대목이다.
“지금 얻은 재산은 정당합니까? 물질로 인해 배신하려 하지 않습니까?”
2. 핏줄 때문에 배신한다. (핏줄의 배신을 겪어야 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가의 시므이. 다윗으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왕가에 대한 울분을 토한다. 자신의 민족만이 선민이라 교만하게 생각했다. 또한 비겁하게 힘 잃고 도피하는 때에 수치와 조롱을 주며 터뜨린다. 비겁한 자는 자신의 자리가 안전할 때에만 소리친다. 돈 못 버는 남편 무시하다 돈 벌면 무릎 꿇고 비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악한 자들은 자신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기에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욕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파멸로도 몰아간다. 시므이 처럼 혈육에 얽힌 사람일수록 고향에 대한 애착과 지역 감정도 있는데, 이러한 지파간 우월함을 주장하는 지역 감정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돌아보아야 하겠다.
“고난중에 있는 사람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자식, 내 가족만 옳다 주장하지 않습니까?“
3. 권력 때문에 배신을 합니다. (권력으로 인한 배신을 겪어야 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좌의 자리에 앉았기에, 정통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후새는 다윗의 사람이지만 그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도 거두어 주기를 청한다. 여전히 다윗의 사람일 수 있는 후새를 정통성에 대한 우려와 자신의 교만함으로 그를 받아들이게 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님이 선택한 다윗에게 충성하고 거룩한 거짓말로 압살롬에게 가는 이가 후새였다. 하지만 반대로 다윗의 입장에서 신뢰했지만 배신하고 압살롬 편에서는 아히도벨도 등장한다.
아히도벨은 악한 일을 했지만, 평소 악하지는 않은 인물로 평가 받고 있었다. 오히려 신뢰와 존경을 받던 인물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압살롬과 다윗의 선택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압살롬의 편에서 정치를 펴는 분별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보 같은 인물이 되었다. 다윗의 입장에서 신접할 수준으로 현명하였기에 정말 치명적인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결국 그의 지략으로 압살롬은 다윗을 적대시했지만, 부자간 언제든 화해할 지 모른다는 부하들의 불안 요소에서 자유해 질 수 있는 지략을 압살롬에게 알려준다.. 바로 압살롬이 어머니 뻘 되는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게 하였고, 다윗을 배반하고 자신의 편이 되어준 세력에게 잔존해 있던 불안 요소를 제거해 준다. 또한 그렇게 압살롬은 영원히 다윗을 등지게 하는 선택을 종용하게 된 것이다. 똑똑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별이 안되었기에 바보와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하는 배신자였다.
“우리는 아히도벨과 같은 이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만으로는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분별하게 해달라고 의탁하는 모습을 보이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4. 저주하게 버려두라. (배신을 겪더라도, 저주하게 놓아 두라고 한다.)
도피길에 놓인 다윗을 시므이는 저주한다. 이를 보고 참지 못해 목을 베겠다고 부하들이 나선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으로 시므이가 저주 하고 있음을, 바로 도피길의 당연한 한 단계라 말하며 만류한다.
공동체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체들이 있는데, 그들이 나를 저주하고 욕하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의 회개를 위해 허락하신 것이라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고난 가운데에서 나를 버리고 자기 죄만 보며 가는 공동체가 영적인 공동체인 것이다. 나 같은 자녀에게 수치 당하는 사람이 다른 이의 수치도 잘 받는다. 사명으로 자식에게 배반 당하기 위해 키우는데 혹시 불쾌한 감정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가? 감정을 피하려, 폭식하고 게임하고 공상하지는 않는지, 피하려고 하는 그 한 곳이 예배인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예배는 타협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다윗은 배신의 벽을 넘어, 저주하게 놓아주라 하는 것이다.
“배신 당할 것을 당연히 여길 때, 배신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벽을 넘어야 합니다.“
<말씀 나눔!!!>
명규 형제의 반가운 참석과 지난 주부터 달변가 허준 형님의 가세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 풍성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범희 형님이 전주 목자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FM 식순으로 여전한 나눔이 진행 되었습니다.
도입부로 범희 형님이 혹시 아히도벨 같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모두들 가족이다 대답하는 와중에 승인 형님 혼자 ‘목자님’ 이라고 했다가 Hot한 아메리카노로 샤워하실 뻔하면서 나눔은 점점 더 Hot 해졌습니다. 그렇게 커피숍을 우리들 교회화 시키며 Hot한 나눔을 하였습니다.
[허준] 내가 실적이 올라가면 상대방은 자연히 실적이 내려가는 구조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유리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동료들에게는 피해 아닌 피해가 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그들은 나로인해 배신감 느끼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최근 사업이 성공하여 같은 처지였던 나를 포함한 친구들을 훈계하고 거들먹거리는 친구가 기억이 났다. 보면 혈기 나고 배신감 느껴졌었는데 역지사지 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목장 2번째인데 돈과 이해 관계없이 자유롭게 나누는 우리들 교회가 좋다.
(이범희 목자님: 시므이도 다윗이 돌아왔을 때 먼저 달려와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잘 묵상해보자. 그리고 우리들 교회가 나눔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좋다고 하니 너무 감사하고, 계속 목장에서 함께하길 바란다.)
[채진욱] 항상 첫째인 형을 챙기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던 어렷을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아버지가 긴 투병생활에 들어가시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자 원망되어 아버지께 시므이 처럼 수치 줬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비겁한 자였고 배신하는 자녀가 나였구나 인정 되었다.
또한 다윗은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냥 두라고 하신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지적에 맘속으로 혈기를 내는데 하나님께서 내 죄 보라고 주시는 당연한 사건인데 내가 내 죄를 잘 못보고 있구나 생각되어 졌다.
(이범희 목자님: 진욱이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는 돌아보자. 나눔이 추상적인 경우가 많은데 근본적인 모습을 더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호진] 친척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내가 친척들,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왔지만 내가 필요할 때에 그들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되어졌다.
[이명규] 가족 같은 형님과 동업으로 가게를 하는데 6개월도 되지 않아 불화로 정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꼭 내가 그 형님을 배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 되어졌다.
[황인규] 둘째 매형이 하늘나라에 갔다. 물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무관심하게 지내느라 그 문제가 해결 된 줄 알았다. 싫은 소리 못하던 매형은 어려운 환경에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많이 자책되어졌다. 내가 관심을 주었으면 생전에 도움 줄 일들이 있었을텐데 혼자 가슴앓이 했을 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나의 이러한 이기적인 무관심에 대한 결과라 묵상되어지니 마음 정리가 쉽지 않다. 이 사건으로 힘들어하는 누나를 보면 더더욱이 힘들다.
(이범희 목자님: 인규가 말씀 가운데에 온전히 서 있어야 누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