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약 : (삼하 15:13-37) 사랑의 도망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 중 많이 하신 일이 도망이다(성전 청결 사건 예외). 이 땅에서 싸울 수 없는 일이 많다. 도망가야 할 일이 많은데,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과는 다르다.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랑은 다르다. ‘원수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은 게’ 하나님의 사랑인데 사랑의 도망이 무엇인지 다윗을 통해 살펴보자.
1. 자기방어를 내려놓는 것이다.
14절, 그동안 다윗은 멘탈붕괴가 와서 압살롬을 기다리고 있었다. 압살롬이 사람의 마음을 얻어간 세월이 4년이 되어가니까 ‘압살롬이 마음을 잡았나?’라고 믿고 싶은 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성숙의 가시적 증거란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보이는 행동만으로 측정하기 힘들다. 칭찬, 미소, 격려는 계산된 친절일 때가 많다. 자기가 편하기 위해 은혜스럽게 개발한 기술일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방어를 내려놓고 다가가는 것이다. 사랑은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하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방어를 내려놓고 나라와 압살롬에 대한 사랑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았다. 급박한 순간에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반역이 일어나니까 누가 내 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동족끼리 죽이게 된다. 하지만 다윗에겐 다 자기 편이지만 압살롬에게는 내 편 네 편이 갈라져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압살롬을 훈려시키고자 대할 때처럼 기다릴 틈이 없는 일이었다. 사랑하기에 급하게 도망갔다. 평생 훈련이 되어야 급할 때 도망갈 수 있다. 말씀의 통치를 받아 온 다윗이기에 이 사건이 우연히 온 게 아님을 즉각 알았다.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나단으로부터 영원히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미리 받았기에 즉시 인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묵상의 힘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삶인 것이다.
아들로부터 도망가야 하는 다윗에게 마귀가 이렇게 속삭였을 것이다. ‘네가 왕인데 도망가냐?’ 예루살렘은 천연요새고 다윗은 백전무장이다. 실전 경험이 없는 압살롬을 다윗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압살롬에게 왕위를 물려 줄 텐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이게 안 되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적용을 보여 가는 것이 성숙이고 사랑이고 성도의 의무이다. 다윗은 압살롬과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적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고르고 고르신 제자들도 삼 년을 훈련 받았지만 위기가 오니까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났는데,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숙한다.
다윗은 아들의 반란을 통해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죽었고, 큰아들은 자기 딸을 겁탈하고, 그 이후로 작은아들이 큰아들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기에 도망갔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이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의 영광을 생각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명하고 자기가 옳은 것을 증명하는 것이 먼저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방어 없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훗날에 보면 다윗을 하나님이 얼마나 방어해주시는지 보여주신다.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 타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도망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들이 우상이라고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재산, 중독에서 도망가라는 것이다. 사건의 주체자를 사랑으로 바라보라. 하나님으로 바라보라. 나의 자존심이 상할 지라도 우리 공동체가 상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사랑의 도망을 하려면
2. 환란당한 자를 끝까지 배려해야 한다.
15절, 아둘람 공동체가 신하들이 되어 따르겠다고 한 것 같다. 다윗이 후궁을 남겨둔 것은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압살롬의 엄마 뻘이기에 죽이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이것은 다윗이 사람에 대해 환상을 품은 것을 보여준다. 다윗의 한계였다.
(중요한 지명 : 벧메르학, 기드론 시내, 감란 산)
18절, 생각지 못한 사람, 가드 사람 600명이 함께 행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환난 당한 자 600명이 함께했다. 가드 사람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 당할 때 도와준 사람이다. 블레셋에 망명 갔을 때 다윗의 은혜를 받아 이스라엘에 망명 온 사람들이기에 굉장히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결정적일 때 환난 당한 사람이 늘 다윗 옆에 있는 것이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19-20절, 잇대는 이방인인 동시에 본국에서 쫓겨난 자였다. 이스라엘에서 유리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다위시 블레셋에서 돌아와 유다에서 왕국을 세웠는데, 거기에서 왔기에 양쪽에서 무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다윗과 같이 유랑자가 되어 같이 가기가 쉬웠다. 다윗의 진가를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적용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잘한다. 그런데 상대를 배려하는 다윗의 마음이 우리를 놀랍게 한다.
다윗은 자기는 쫓겨난 나그네이고 정처 없이 가기 때문에 너는 압살롬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라고 한다.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같이 갈 사람과 돌려보낼 사람을 분별하며 끝까지 견디고 준비하게 된다. 시편 3편은 이런 상황에서 쓴 시이다. (관주 성경을 보라.)
이타적으로 적용하면, 베풀어주신 은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다윗은 겉으로 넘어진 자 같았지만 이미 회복되었다. 회복된 넘어짐은 도와줄 게 있는 인생이 된다. 그렇게 남을 도와주고 환난 당한 사람을 배려하게 되면 돕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3. 돕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잇대, 사독, 후새가 나온다.
(1)환난 당한 잇대가 목숨을 걸고 돕는다.
21절, 가드 사람 잇대는 곁에 있는 자라는 뜻이다. 블레셋에서 망명와서 다윗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쫓겨난 나그네와 같이 된 잇대가 하나님 때문에 왔기에 하나님의 종이 떠나는 데 당연히 따르겠다는 것이다. 다윗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격과 신앙을 보면 감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 시대에 가장 힘든 사람만 다윗의 곁에 모여 있게 된다. 그만큼 십자가 복음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실수가 있었지만, 다윗에게서 하나님을 알고 배우며 예수씨를 보고 떠나지 않는 것이다. 다윗이 그 진심을 알고 같이 가자고 한다.
잇대가 도망가는 다윗에게 줄을 섰기에 앞으로 이스라엘의 군대 1/3을 지휘하며 자기와 부하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한 사람은 진리 편에 서게 되어있다.
23절, 모두가 압살롬에게 갔다고 생각했지만, 다윗이 떠나기 시작하니까 대성통곡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생겼다. 그리고 ‘어둠’이라는 뜻의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 천 년 후에 예수님이 갯세마네 동산을 통해 이 기드론 시냇가를 건넜다.
다윗이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백성을 먼저 건너게 하고 자기는 마지막으로 건넜다, 양을 칠 때 사자를 쳐서 양을 구한 다윗은 이렇게 택한 자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가 울면서 회개할 때, 목숨을 걸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생긴다. 40절에도 이런 회개가 또 나온다. 충성과 우정과 사랑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적용 : 나의 충성과 사랑은 어떤 종류인가?
(2) 나를 돕는 사람은 말씀의 인도를 받도록 사독과 아비아달이 돕는다.
양대 제사장가문으로 모두 다윗 편을 들었다.
25절, 레위 사람이 피난을 가는데 언약궤를 매고 같이 간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가져다 놓으라고 한다. 자기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죄 짓고 도망가는 광야 길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죽고 살고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언약궤는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하면 돌아갈 길이 보인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 낮아지는 자는 하나님이 다시 높이신다. 다윗은 언약궤가 아닌 하나님 자체를 섬기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인생 최대의 고난에서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누구보다 엄한 징계를 내리셨지만 하나님은 다시 그를 회복시켰다. 인생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기에 징계를 받는 게 마땅하다. 순히 징계를 받으므로 더 큰 고통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29절, 다윗을 생각하는 두 제사장의 각별함과 충성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은 함께 있어도 따로, 따로 있어도 함께로, 말과 행동을 뛰어넘는 함께가 있다. 이것이 서로 돕는 것이다,
적용 : 징계를 피하기 위해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말씀 자체가 상급인가? 우리는 부적 같은 말씀을 듣기 원한다. 징계를 피하기 위해 말씀을 봐서는 안 된다.
(3) 모사인 후새가 도왔다.
31절, 다윗은 친구 아히도벨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압살롬 편에 갔다. 그래서 다윗은 간절히 기도했다.
32절, 마루턱은 감란산의 정상이다. 기도하며 갔더니 산 정상에서 후새가 등장했다. 하나님이 다윗의 기도를 즉시 응답했다는 것이다. 진실로 기도하면 즉시 응답하는 것을 믿기 바란다.
33-37절, 다윗이 후새에게 압살롬에게로 가서 거짓 투항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모략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모략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바꿀 수 있는 후새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아히도벨과 후새가 동시에 등장하는데, 충성하는 자와 반역하는 자가 함께 들어갔다. 우리의 인생이 치열한 전쟁터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와 반역하는 자가 함께 있다. 후새는 반역하는 자의 작전을 패기시킴으로 다윗을 돕는 데 크게 일조했다. 모든 것에서 나도 사랑의 도망을 해야 하는데, 반역하는 자의 권세가 커서 모략을 패기시키기가 힘들다.
직장에서 어떻게 사랑으로 도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십자가로 도망가야 한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모략으로 피해야 한다.
4. 사랑의 도망은 십자가 지는 것이다.
30절, 맨발로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다. 다윗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고통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하면 십자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확실히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울며 맨발로 올라가니까 다윗의 백성들이 통곡을 같이 하며 모여들었다. 예루살렘도 후궁도, 잇대도, 법궤도, 왕의 권리도 포기하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 하나님처럼 그 사랑으로 가는 것이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이는 그 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 사랑의 도망길이다. 무시와 거절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는 그 일이야 말로 사랑이 측정되는 일이다.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 포기가 쉬운 것이고, 또 구원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경건이 있다. 이 땅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정신이 맑아도 무능한 사람이 있고 술에 취해도 유능한 사람이 있다. 선지자는 지적인 것보다 하나님의 심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에게 피하면 사람들이 다 안다.
한 사람의 실로 가공할만한 죄인 아담의 죄로 인류가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온 세상 사람과 하나님을 눈물짓게 하는 죄 짓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다윗이 생명을 내어주고 가는 데도 압살롬이 돌아오지 않는가. 압살롬은 무엇을 해도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윗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적용 : 내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사랑의 도망을 해야 한다.
목장 나눔 : 사랑의 도망을 하고 있나?
이성은(82) : 지난 주 초원 모임에 가서 욕을 먹었다. 4년 전에 소개팅 받은 사람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올해 월급을 올려주지 않겠다면서 내가 돈을 헤프게 쓴다며 아껴 쓰라는 말을 했다. 시에서 인증을 받으면 연봉을 호봉 수로 받는데, 그러면 ‘나는 여기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예준 : 근데 왜 그게 악해요?
이성은 : 먼저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음란의 죄에 대한 대가로 이 원장님이 그 아들과 나를 결혼 시킬지 모른다는 망상이 시작되었다. 내 휴대폰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리스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어봤다. 사람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그 어린이집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회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갔으면 이제 직면해야 하는데 망상이 심해져서 저녁마다 울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지 못하도록 그 남자와 결혼시킬 거라는 생각에 맨날 울며 말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보니, 예전에 팔 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 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나 모르게 상견례를 잡아서 만났고, 결혼식 날짜도 잡았다. 나는 그때 울었는데, 엄마가 울지 말라는 말이 상처가 되었다. 그 상처를 드러나게 하고 치료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공동체에서 들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정신과에 가서 이런 일을 다 말했는데도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다. 사단이 주는 마음으로 인해 내 안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 직장에서 그 남자가 친밀하게 다가오니까 벽을 치고,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짓말을 해서 좀 거리가 생겼고, 그 남자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말로 그 남자와 관계가 끊겼다. 처음에 이 어린이집에 올 때는 그 남자가 어린이집에 상주하는 게 아니라 차량 운전 하는 시간 삼십 분 정도만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원장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 내 아들이 여기 있지 어딜 가겠냐’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초원에 가서 말하며 위로 받으려고 했는데, 초원에서 하나님이 내 행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왜 네 행복에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멍 때렸다. 그 말에 내가 인정이 안 됐다. 그리고 그동안 나도 꽤 말씀을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들은 말씀이 소화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난이 있고, 힘들었던 삶을 말씀을 보고 내 죄가 깨달아져 평안해지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죽음 이후 돈이건 남자건, 그 모든 일 끝에 행복이 올 거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원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낳으셨는데, 왜 내 행복과 관계가 없다는 거지?’라며 언니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인생이 불행했다고 생각했기에 ‘이러이러 해서 불행해질 거야’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행복해져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망상이었다. 그날 잠자리에 들려는데 마음에 올라오는 게 있었다. 내가 오년 간 이곳에서 말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수준이 드러났다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내가 해결하려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 날, 큐티를 하며 그동안 내가 그 말씀을 내 말씀으로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내가 늘 예수님을 부인했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했는데, 그때 내가 행복을 추구한 것이 예수님을 부인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생각으로는 예수님 따위는 필요 없고, 그분의 계획을 알면 힘든 인생만 살 것 같고, 그래서 군병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지니까 회개가 됐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니까, 내 할일이 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직장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원장님을 싫어하고, 그 망상의 핑계로 이곳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 나를 부인하고, 사랑의 도망을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회피를 계속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멋대로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한 번도 주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이번 주는 학부모 상담을 했는데, 여섯 살짜리가 자기 부모님은 이혼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2012년도에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아직도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그래서 과연 이 아이들을 놔두고 내가 가도 되는가 싶기도 하다. 다른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불안 증세가 있고 적응도 못했는데, 이곳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꽤 적응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두 남편이 있었는데, 한 남편이 돈도 안 벌어주고 도망을 갔는데, 두 번째도 그랬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에 나왔으면 했다. 그런데 그 학부모님이 나에게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 애 보시죠?’라고 하는데, 나는 대답을 흐렸다. 내가 내 생각과 원장, 그 남자에 대한 망상에 빠져 이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해야 하는 데,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내가 사명대로 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예준(85) : 지난 주 몸살기가 있었는데 블랙아웃이 오는 것처럼 토할 것 같고, 예전에 아팠던 기억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토요일까지는 견딜 만했는데, 울고 싶어서 밖에 나갔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엄마 교회에서 온가족 초청 예배가 있어서 엄마 교회에 갔다가 우리 목장이 조인이었기 때문에 꼭 가려고 했는데, 울면서 동준이에게 ‘조인인데도 나 교회 못 간다고’ 그래서 동준이가 자기가 온다는 것을 ‘너는 너 자리나 지키라’고 우는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건, 동준이에게 쌓인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토요일(어제)에 2주 만에 상담을 다녀왔다. 그동안 내가 너무나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말하자면, 동준이, 그 애 부모님이 나를 싫어한다. 나를 만나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런다. 그 앤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나는 그 가족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현명하지 못했던 것도 있는데, 처음 우리가 사귀게 되었을 때 동준이 부모님이 나에 대해 물어봐서 동준이가 우리집을 잘 사는 집이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 말에 나는 ‘내가 숨길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냐’고 했다. 그렇게 나에 대해 말하게 한 것이 동준이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동준이가 카톡 같은 데 내 사진을 올리지 않았는데, 나도 마찬가지여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동준이에게 ‘너 나 숨기고 다니냐?’고 했다. ‘난 부끄러운 게 없는데 네가 거짓말 해야 할 정도냐? 난 쪽팔릴게 하나 없고, 우리 부모님 평생 노력하며 살았다. 난 창피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성은 : 정말 창피하지 않아?
이예준 : 근데 솔직히 창피했었다. :) 우리 집이 정말 많이 망했다. 그리고 그때가 망하는 사건의 최정점을 찍었다. 집까지 뺏기는 일이 있었으니까. 거의 2년 동안 하필이면 성탄절이나 새해에 집이 팔려가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예준이는 성탄절 분위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런 때 그런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동준이네 집안이 나를 싫어하게 되었는데, 기가 막혔다. 날 언제 봤다고. 그 집안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게 느껴졌다. 나에게 어떻게 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난 느낄 수 있다. 동준이가 자기 집을 나올 뻔 했고, 그 애 아빠가 나더러 대기업이라도 들어가면 만나는 줘 보겠다는 말을 했고, 여행 다녀와서 사온 선물에 대해서도 이런 거 사오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내가 ‘걔네 집에서 이런 취급을 당해?’ 그러다가 ‘내가 누구 좋으라고 얘랑 헤어져?’라고 생각하면서 동준이랑 계속 사귀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준이를 내 심복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젠 깊이도 깊어지고 동준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 미친 새끼야 그만하라고!’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내가 얘를 좋아하고, 나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과 같은 관계가 아니라 ‘이젠 나도 잘해줘야지. 상처 주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참은 거였다. 그렇게까지 참고 있다는 것을 동준이에게 몇 번 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동준이가 누나 전화를 받고 나한테 평일 밤에 전화를 했는데, 이제 자기 가족들 구원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집안에서도 동준이가 ‘그 빌어먹을 교회도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상황이 집안에서 계속 진행 중이었는데, 동준이 누나가 우리 편이 되어 줬었다. 그런데 이번에 전화해서 ‘부모님이 반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나하고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 집에서는 동준이가 우리 집을 다 먹여 살려야 하는 줄 안다. 걔네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타입이다. 아버지는 건축회사 사장이고, 그 어머니는 가정 선생님을 하다가 교장이 된지 얼마 안 되었다.
동준이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자기 부모님과 가족들 이야기를 했다. 병신 새끼가 자기 아버지는 회사 사장이고 어머니는 곧 교장이 될 거고 삼촌은 은행장이고……. 이런 말을 했다. 난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동준이에게 ‘있어 보이려고 그런 말 한 거 아니냐!’고 했다. 당연히 동준이는 아니라고, ‘난 예준이 편이지요.’라고 했지만 나에게 상처 받을 말을 왜 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걔가 나한테 다 했다. 지혜 존나 없다.
그러고 나서 잠을 다시 못 자기 시작했다. 걔를 죽이거나 내가 쫓기거나, 복수하려고 쫓아가거나……. 그리고 깨어나면 다시 잠을 자서 꿈을 꿔서 복수해야지 싶었다. 그 집안 식구들 다 죽여 버리고 싶다. 그래서 동준이에게 ‘승연 씨(동준이 누나)에게 나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해. 뒷담화하지 말고. 내가 얼마나 건재한지 직접 이야기 해줄게. 너 못 괴롭히게 직접 이야기 해줄게.’라고 했는데, 더 큰 싸움 만들지 말라는 말에도 내가 너무 화가 나니까 현명한 게 아닌 걸 알지만…… 내가 왜 그 사람들을 위해 내 모든 아픈 것을 참아내며, 기도하고 그 사람들 구원에 대해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동준이도 자기 부모님을 참지 못하니까 ‘예준이에게 어떻게 참으라고 하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데, 말이 이렇게 안 통하다. 그냥 미안하다고, 동준이가 나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매달리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나을 것 같다.
‘미안해. 내가 그 말 전하면 안 되는 거였어.’라는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됐을 텐데, 내가 얼마나 참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애가 알면 좋겠다고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그리고 동준이를 만났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동준이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병신같이 착해서 너무 답답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거’라고 하니까 그게 나한테 하는 말인 것 같으니까…… ‘내가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목장에 왔는데, 하나님이 내 행복에 관심이 없다니까 존나 빡쳤다.
분노와 망상은 나의 힘이다. 어렸을 때 아빠가 칼까지 치켜 들면, 내가 언젠가는 아빠 손에 죽으리라 싶었다. 엄마가 그러셨는데, 어려서부터 아빠가 오면 나는 숨었다고 했다. 난 피해의식이 너무 크다. 열등감도 쩔고. 누가 쫌만 뭐라 해도 망상에 쩔어서 내가 온갖 말로 너를 무너뜨리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서, 아빠보다 더 심하게 했다. 폭력은 절대 안 쓰고 언어폭력을 썼다. 그래서 동준이에게 ‘네가 나한테 얼마나 특별대접 받는지 알아?’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그 애 눈치를 보는 게 찐따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오픈주의라 거의 다 말한다. 그동안 몇 달간 동준이가 야근을 해서 말할 시간이 없었는데, 어제는 이야기를 했다. 오목조목 동준이와 이야기했다.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말하면 풀릴 줄 알았는데, 그 애한테서 내가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오니까…… 난 그 애가 무릎 꿇고 빌 줄 알았다.
잘 봐요!(목장 식구들에게 한 말임.) 우리가 지음 받은 이유가 지저스가 찬양 받기 위한 거면, 그럴 거면 그런 놈들 만들어 놓으면 되지 자유의지니 뭐니를 주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내가 마리오네트 인형이야? 왜 내가 피해자 역할을 하게 하는 건지! 그 집안이 다 망해서 털끝하나 안 남았으면 좋겠다.
이성은 : 예준이는 자기방어가 너무 심해서 하나님이 방어해주실 수 없다. (이하 생략, 여튼 우리 목장 식구들은 모두 예준이에게 많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박진희(84) : 나한테 하나님은 엄격한 분이어서, 인간관계로 말하자면 친하고 싶지 않은 데 안 볼 수 없는 관계 같은 거였다. 내가 하나님을 없다고 하고 떠날 순 없는데, 계신 건 아는데…….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다면서 하나님이 자길 사랑하는 걸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어떤 언니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사탕 사달라면 더 좋은 것도 사주시는 것처럼, 해 달라는 건 다 해주시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기도하면 다 들어주고 자상한 아버지 같은. 어떻게 하나님이 저 사람에겐 잘 해 주시면서, 나는 그렇게 교회에 헌신해도 끝이 없고, 마음이 곤고하기만 하고…… 내가 복 받는다고 애기를 듣지만, 내가 복 받으려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아니고, 벌 받지 않으려고 붙어 있는 느낌이고 그래서 버겁고, 잘못하면 당장 어떤 결과(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내가 죄 가운데 있었고, 그래서 불신교재를 하고, 병에 걸리고 나니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해 해석하지 못한 기간이 길었고, 말씀을 듣고도 그런 현실에 마음이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데 결론은 그런 내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이다.
내가 머리로는 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나님께 서운하고, 내게 온 시련을 하나님이 감하시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가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고 부모님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고,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태도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이 엄격하고 잔인하시다는 생각에 나도 역시 사로잡힐 때가 있지만, 그게 내가 느끼든 못 느끼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십자가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하나님에 대해 착각한 것을 깨닫고 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보호하셨는지 깨달아졌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것도 하나님이 나를 길이길이 싸고 도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압살롬을 왕의 후계자가 아닌 연약한 아들로서 대하고 아버지로서 다윗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했는데, 훈련시키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설교가 끝난 다음에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 자기가 잘못한 게 있다면 다 사과하시겠다는 그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상대방이 잘못해도 믿는 사람이 사과해야 한다고 목사님이 적용하시는 걸 보며 묵상이 되었다. 가족을 체휼하면서, 내가 아빠를 미워한 것과 아빠의 상태가 좋아질 수 없는 것 또한 결국 다 내 잘못으로 생각이 되고, 직접 동생과 아빠에게 사과하는 적용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면서 모든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내 태도에 대해 회개하면서 무조건 인간적으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내가 믿는 사람으로서 사과하는 그런 마음. 하나님을 모르는 아빠와 동생이 불쌍하고 그 마음이 체휼이 되어서 내가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엄마가 우리 집안에서 먼저 믿었으니까 엄마한테 기도 덕을 봤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하나님이 엄마를 봐서라도 자식인 나를 후대해주실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고난을 덜 받을 것 같고, 엄마의 기도로 내가 보호를 받을 것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 그게 아닌 거다. 엄마도 똑같이 연약한 사람인 거다. 내가 대단한 적용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를 통해서 엄마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엄마 말씀에 토 달지 않고 엄마가 본가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시는데, 동물이 크게 되니까 ‘사료가 떨어졌네’라고 하시면, 내가 30킬로를 보내는, 그런 일로 엄마가 하는 말에 나름대로 적용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큰소리 치고 살 수 있는데도 계속 그렇게 참고 계시고, 아빠는 엄마가 당신을 돌보고 살림하는 일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다. 엄마가 본가에 함께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장을 갈 때도 엄마에게 얼마를 주는 식으로 살고 계시는데, 엄마는 밧모섬에 갇힌 것처럼 지내시고 아빠는 군림할 대로 군림한다. 그리고 아빠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쓸 데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는 사람도 친구도 없는 그곳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엄마에겐 소소한 즐거움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료를 보내주면 엄마가 그런 일로 인해 아빠 눈치를 안 봐도 되니까…… 엄마가 뭔가를 사야 할 때 일일이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실 텐데, 내가 필요한 걸 보내주면 그런 스트레스에서 괜히 말다툼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으니까 나름대로 적용했다.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아빠에겐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너무 많은데,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삶을 30년을 해도 사그라들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있다. 누가 그걸 알아주겠는가? 엄마도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분노가 있는데…….
마당에서 사는 개를 아빠가 많이 괴롭혔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다. 아빠에게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보면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게 있는데, 가족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그건 자기가 때릴 만한 사람이 가정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내가 물리적 폭력을 겪지 않고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은 게 하나님이 길이길이 보호하심이란 생각이 들고, 아빠가 뭔가 약한 존재에게 풀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고, 본인이 지쳐 분이 풀릴 때까지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아빠가 그런 사람인 게 여전하다는 것,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아빠를 미워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 제목
이성은(82)
- 직장에서 이번주 서울형 재인증 있는데, 잘 통과되기를
- 직장 그만두는 거 끝까지 인도함 받기를
- 하나님의 계획을 깊이 묵상하며 물으며 갈 수 있기를
- 나의 배우자를 잘 기다릴 수 있도록
박진희(84)
- 가족들 잘 체휼하고, 중보기도 할 수 있도록
- 잘 우울해지는데, 사랑의 도망을 잘 할 수 있도록
- 건강과 신교제를 위해
이윤희(83)
- 서진이 기도로 준비하고 만나고, 꾸준히 사랑의 마음 주시길
- 업무에 마음 졸이지 않고 충성심으로 일하도록
- 계속 엄마의 영적 문제를 놓고 기도해줄 수 있길
이예준(85)
- 지저스와 친해지길
- 이동준의 식구 따위가 내게 아무 문제가 안 되길
- 이번 주 큐티 열심히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