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오 81:
믿음을 추상적으로 접근하며 중독의 현상에만 집착하면,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디테일이 살아있기 때문인데, 연예인들이 몸매를 관리할 때 큰 근육보다는 잔 근육이 보기에 좋아 세세하게 관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
이처럼 믿음생활도 디테일하고 구체적으로 다뤄가야 한다.
오늘 말씀에 요압의 중재는 디테일이 떨어진다. 그 중재에 본능적으로 따라서 부작용이 크다. 사람과의 화해는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가 동반해야 한다. 억지화평은 또다른 분노와 죄를 낳는다. 직장, 교제, 가족관계에서 화평을 누리려면, 칼날 위의 물방울같은 분별이 필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직 그런 영적인 안목이 내겐 없다.
목자가 되고 예배와 목장에 집중하지만 현상유지만 한다. 술끊고 혼전순결 지키고 하는 최소한의 적용은 겨우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적용이 안된다.
질서순종, 혈기, 인내 등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디테일이 떨어진다. 그런 부분에 갈등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내 편한대로 익숙한대로 멍 때린다.
나는 안변해, 예수님이 와도 이 광야는 끝나지 않을거야 하는 생각에 포기하며 큐티와 기도를 하지 않는다.
말씀 듣다보니 감사하게도, 본질적인 화평을 포기한 내게도, 느리긴 하지만 화평을 누리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느꼈다. 일대일 양육과 고등부 제자훈련을 할 때마다 얻는 은혜가 다른데, 이번 텀에 영혼을 붙여주심에 감사와 기쁨을 느끼며 화평을 특별하게 누리고 있다. 예전의 나로써는 기쁨보다는 생색과 매너리즘만 있었을 것이다.
영원한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화평이 깨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일시적인 화평은 좋고 편한 환경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으로 화평이라 착각하는 나의 일시적인 화평을 깨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사람은 고난조차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화평으로 느낄 만큼 미련한 죄인이다. 고난이 해석되어 기쁨을 느끼다가도 그 고난마저도 합리화할 수 있는 죄성이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일시적인 화평이 깨져야 하나?
작년에 어머니 암사건, 파혼, 직장고난 등이 계속 찾아왔지만 때마다 해석을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는 자신을 본다. 그리고 현실을 잊으려고 야동이나 나태에 집착하더라.
하지만 하나님은 중독과 죄를 앞세운 본능적인 화평을 깨주시는 은혜를 부어주신다. 춘천아웃리치와 각종 양육의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말씀을 깊게 보는 환경을 열어주셨다.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결국 회개없고 목적이 불순한 화평들을 깨주시는 시간이었다. 때마다 있는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느 이유가 여기 있다.
목자이다보니 더이상 양육 과정이 없고, 이제는 스킬로 외식하며 믿음 좋은척 하기 쉽다. 하지만 양육을 섬기려면, 때마다 말씀을 깊이 보고, 내 죄를 회개해야만 동반자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억지로라도 깨울 수 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이런 것이다. 나를 살리는 회개는 그때마다 주어지는 섬김의 자리에 내 몸을 던질때 주어진다. 목자든 목원이든 각자 가야 할 그 자리와 역할이 있다.
마음이 내키면 섬김의 자리로 나가겠다는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이다. 공동체를 신뢰한만큼 나를 살리는 자리와 역할에 심플하게 몸을 던져야 한다.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이 자기 감정과 마음을 쉽게 믿어버리면 화평은 이룰 수 없다.
원동훈 85: OFF the record
이동석 83:
지금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다. 아버지 때문에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는데, 면접에 떨어졌다. 긴장을 하다보니 실무면접 시간에 남들보다 업무처리 속도가 떨어지더라. 월급도 박봉이고 복지도 거의 없는 회사인데도 들어가기가 어렵다. 아버지가 떨어졌다고 뭐라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심부름으로 삼겹살을 300g을 사와야 하는데 3만원 어치를 사오는 바람에 혼이 났다.
요즘 TV에 예능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난다. 나는 시사교양을 보거나 예전 CF를 보는 걸 즐긴다. 역시 지금보다 예전이 좋았다.
예전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지만 지금부터 선택을 잘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화만 난다. 정말 예전이 그립다.
Q.아버지와 화해는 했나?
A. 화해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은 갖고 있다.
이양식 83:
직장에서의 평판을 중요시 한다. 동료들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동료의 아이디어에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하는데,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다. 이렇게 도와주면 내가 필요할 때 이 친구가 도와주겠지 하며 보험들듯이 돕는다. 내가 뿌린만큼 힘들때 거둬들이겠다는 생각이다.
Q. 내가 회개하면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는지?
A. 올해 진급 연차 이다보니 내 존재감에 대해 묵상을 많이 한다. 업무상 노하우를 나만 알고 있고 싶다보니, 노하우를 물어오는 동료들을 견제한다. 정 알려줘야 할 때는 꼬아서 알려줘서 다시 나에게 질문을 하게 만든다. 회사 내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는 생각이 있다. 회사사람이 기독교인은 삶 따로 교회생활 따로 이지 않냐고 묻는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이타적으로 살기 어렵고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살고 있다. 순수한 사랑으로 관계 맺는 것이 어렵다. 내가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은 손해를 보아야만 하기에 그렇다. 손해를 보면서도 선행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AA. 예수님 말씀에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 나온다. 그중에 가시떨기가 정말 벗어나기 어려운 마음상태다. 내 유익때문에 염려하며, 유혹에 약한 모습은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직장상사가 퇴사하려다가 이직이 어려워 다시 눌러 앉게 되었는데, 사장님은 내심 그만뒀으면 하는 눈치다. 신입사원에게 인수인계 해주면 바로 퇴사해야 하니까, 그 신입사원을 구워 삶고 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회사의 어려운 점이나 단점등을 이야기 하며 신입이 그만두게끔 꼬시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전 아웃리치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웃리치 기간에 급한 회사일이 있었는데, 신입에게 인수인계 해서 처리하라고 한것을 고집부려서 원격업무로 처리했다. 사실은 회사에서 싫은 업무로 전환이 될 뻔한 타이밍였기 때문에,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괜히 어려운 역할 맡기보단 신입을 그자리에 보내고 싶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어려운 업무를 잘할거란 신뢰를 보낸 것인데, 난 여전히 편한게 좋아서 피했다.
이처럼 가시떨기 밭은 좀처럼 넘기 어렵다. 하지만 좋은 땅은 가장 낮은 땅이다. 높은 곳에서 떠내려 오는 각종 오물이나 더러운 곳이 쌓이지만, 그것이 영양분이 되어 좋은 땅이 된다. 예수님이 비유말씀 마지막에서 좋은 땅은 100배 60배 30배 주신다고 약속해주시는 이유는 내 적용을 그만큼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적용이 안되더라도, 때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해봐야 한다. 그게 바로 신앙의 디테일이다. 직장에서 당장 적용이 어렵겠지만, 그런 마음을 먹어보는 훈련하는 곳 중에 가장 장벽이 낮은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양식이나 나같이 욕심이 많은 사람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있다.
출애굽하고 백성은 광야 초입에서 1년간 예배만 드렸다. 가야할 길이 먼데도 예배만 드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배웠다. 죄인에게 지혜는 회개이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순결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순결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양육을 받아야 한다. 1년간 예배만 드렸던 백성들처럼 양식이도 같은 의미에서 일대일 양육을 현재 받고 있지 않나. 열심히 받아라.
가나안 땅을 가야 하는데 예배만 드리는 것은 참 비효율적인 모습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대로 가면 가나안 땅에 가서 바로 가시떨기 처럼 자기 유혹에 빠져서 죽는다. 가나안에 들어가 겪을 치열한 전쟁들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하나님은 나를 살리시려고 지키시려고 손해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양육환경을 주신다. 억지로라도 말씀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양식이가 손해보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지키시고 채우실 것이기에 지금 양육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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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82
오늘 아침 교회 봉사부서에 너무 오기 싫었다. 직장 고난도 없어지고 힘든 환경이 없어졌는데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고, 부서 섬기는 것이 고난이 되었다. 섬길 때의 초심이 점점 사라지는 데도, 최근의 사건을 유치부에서 나누기 쉽지않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면서 이 많은 지체들 속에서 속 터놓고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어려웠다.
A. 교회를 다니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주변의 처방으로 고등부를 계속 섬겼는데, 겨우 버티며 섬기는 과정 속에서 나 때문에 고등부가 수고한다는 생각을 했다. 게으르고 아침 잠 많은 내가 청년부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목장을 섬길 수 있는 이유가 고등부 예배가 오전에 있기 때문이다.
매번 지각을 해서 눈치보이고,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1년 정도를 헤매다가, 깨달음이 생기면서, 지각도 덜하게 되고 기쁨으로 매너리즘이 극복이 되면서 고등부를 6년째 섬기고 있다. 고등부는 언제든 게으름으로 본 예배를 타협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안전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