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14. 구영미목장보고서
사무엘하 12장 13-31절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말씀요약
사람들은 자신들이 회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윗도 평생 회개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밧세바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다르다. 다윗이 진실 되게 회개한 사건이 밧세바 사건이다. 무엇이 진실 된 것일까. 나단이 1년 동안 죄를 은폐했던 다윗에게 찾아갔다. 나단은 비유로 지혜롭게 책망을 했다. 나단의 책망에 다윗은 회개를 했다. 진실 된 회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진실 된 회개는,
1. 죄 고백이 있다.
나는 죄인이다, 옳소이다 는 고백이 다윗에게 나왔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영혼을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
13절. 건강한 신앙은 죄를 저지르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죄고백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고백이다. 죄에는 음란, 간음, 도적질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창세기 3장 5절). 다윗은 왕이 되고나서 자기 사랑에 취했다. 다윗의 자기애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자리에 자기도 모르게 가 있었다.
참 지식의 시작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밧세바 이전과 밧세바 이후의 회개가 무엇이 다른가?
회개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계속 자기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삶이라고 했다. 우리 내면은 항상 창조주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으로 흐리기 쉽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삶이 회개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 고든 맥도널드 저)
다시 말하면,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 자기의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것이 참된 지식이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받고 한 줄로 회개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의 회개는 즉각적이고, 변명이 없는 회개, 겸손한 회개를 했다. 진정한 회개를 했기에 시편 32편 51편을 보면, 처절한 회개를 했다. 송인규 교수는 회개의 3요소가 있는데 지적으로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하고, 정적으로 자기 죄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얻고자 하는 결단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이렇게 회개의 지, 정, 의가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
1) 자신이 의롭다는 교만에서 무너져야 한다.
2) 자신의 모습을 보고, 늘 슬퍼하며 애통해야 한다.
3)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쓰라린 애통함은 모든 죄를 미워하고 혐오한다.
4) 미워하고 혐오하던 죄가 자신 안에 깊이 있음을 알고 탄식,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부끄러워하는 것.
5) 하나님 앞에서 백일하에 드러나는 자신의 죄가와 약함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것.
6)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 회개를 회개되게 하는 것.
회개는 삶의 방식이다. 평생 계속 되어져야 할 삶의 방식이다.
다윗은 앞으로도 계속 회개하여야 할 일이 있었다. 다만 밧세바 사건의 회개는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는 분수령적인 회개가 된다는 것이다. 시편 51편은 음란, 간음, 살인을 범한 중에 나단이 와서 책망할 때 지은 시이다. 51편 4-5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4)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
=>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지은 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했다, 죄인 중에 죄인이다, 지을 것이 죄 밖에 없는 인생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다윗을 불러주셨지만, 인생막대기와 사람채찍으로 다윗에게 죄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는 것을 알면, 어디서든 살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옳고 그름을 따지니까 못사는 것이다.
다윗 후반부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말이 없어지고, 인내하는 인생이 된 것이다. 시편 6편 6절,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6)
/ 시편 32편 3-4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3)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셀라)(4) => 내 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을 때, 종일 신음하게 된다. 고든도, 다윗도 죄를 짓고 나서 얼마나 눌렸겠는가?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 => 우슬초는 문둥병자를 씻어주는 치료제이다. 문둥병자는 자기 죄를 모른다. 감각이 없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문둥병자보다 못한 자로 여기고, 우슬초로 나를 씻어달라고 다윗이 이렇게까지 내려갔다. 이것이 자기 죄를 아는 모습인 것이다. 한마디로 보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라는 고백인 것이다. 회개가 바로 이런 것이다.
16-17절,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16)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17)
=> 상한 심령의 제사를 말하는데, 구제하고 헌금을 하면서 자기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보겠는가? 한계상황에 봉착한 에노스와 노아가 보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는 과거를 뉘우침만이 아니라 동일한 죄를 미래에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고백인 것이다. 허물의 죄를 사함받은 자는 복이 있는 것이다.
다윗 후반부는 눈물의 인생을 살았지만, 어느 때보다 평강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낮아짐을 경험하면서 회개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부요할 때는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 인간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다. 죄를 모르면 인간을 모르니까 사람에 대한 분별이 없고, 그러면 언젠가는 이 문제가 터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관계에 관심이 있으시다. 불완전함을 가진 우리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가장 커다란 초점이다. 신앙이 건강할수록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된다.
성숙은 더 나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나쁜 행동을 식별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분별이다. 구별된 것이다. 작든 크든 나의 연약함을 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또 인정하는 것이 회개하는 생활방식이다. 가능할 때마다 나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적용) 나는 모든 지적에 대해 옳소이다가 되는가?
나의 회개는 밧세바 이전인가, 이후인가?
나를 위한 고백인가, 남을 위해 보여지는 고백인가?
2. 죄는 반드시 징벌하신다.
14절,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죄는 그 값을 치러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해주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함 받은 죄라도 죄는 미워하시기 때문에, 죄의 책임은 반드시 물으신다. 죄를 사하시고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렵다면, 죄사함의 은총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넘어짐은 원수들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게 된다. 하나님이 다윗이 완전히 넘어지도록 방치하셨다. 다윗에게는 폭력성이 있었다. 사울이 결혼할 때 양피를 바치라고 하니까 무고한 백성들을 죽게 했다. 도덕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이미 죄인이다. 게다가 간음과 살인까지 가게 되었다.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지만 하나님께서 두고 보셨다.
다윗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크게 채찍을 드셨다.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징벌을 받았다. 다윗은 후에 깨달았을 것이다. 구속사가 끊어질 뻔 했구나, 하나님께 중요하게 쓰임받는 사람일수록 다윗의 책망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귀는 늘 구속사의 일을 공격한다. 구원받지 못하도록 한다.
15절, 예고된 고난은 아무 준비 없이 당하는 고난과 다르다. 미리 예방주사 맞은 것이다. 하나님 영광을 위한 고난과 치시는 고난이 있음을 아는 것만 해도 택한 자이다.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무서워하지 말고 경고할 땐 해야 된다.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 감당 했다.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적용) 징벌에 따른 죄의 대가를 치룬 적이 있는가? 정말 신뢰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징벌에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다윗이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것은 진정한 순종의 모습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무엇에 순종을 했는가?
1) 현실을 수용한다(16-19절)
2) 하나님을 신뢰한다(20-23절) => 다윗의 회개 후의 확신.
3)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24-25절)
다윗이 회개를 하고나니, 우리아의 아내를 밧세바 라고 불러주신다. 밧세바처럼 정죄감이 많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진정한 회개를 한 다윗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픔과 수치를 극복한 다윗에게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아라고 하셨다.
여디디아는 여호와께 사랑을 받은 자 라는 의미.
적용) 나는 징벌에 순종하는가, 현실을 수용하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진정한 사랑을 하는가?
4. 회개의 결론은 거룩이다.
26-31절, 솔로몬을 낳기 전의 일이다. 다윗이 회개했기 때문에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고, 죄를 짓고 있는 중에도 암몬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신 것이다. 죄를 짓고 있는데도 잘되는 일이 있으면 근심해야 한다.
요압은 내 이름으로 할까 두렵다고 하면서, 간신이 와서 다 이겨놓았는데, 어떻게 해석을 하겠는가? 요압은, 우리아 사건에 대해 다 알고 있었고, 다윗을 위해 나라를 바쳤다. 하지만, 요압은 택함을 받지 못하였다. 요압 같은 자에게 속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죄를 모르니까 속는다. 다윗은 요압에게 일생을 끌려 다니면서, 언제 비밀을 누설할까 얼마나 전전긍긍했겠는가?
회개를 하고나서 다윗은 요압에게 말한 일을 얼마나 후회를 했겠는가?
범죄 기간 중에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12장 전체는 죄와 수치에 관한 심각한 얘기를 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성결과 순종이라는 것이다. 즉, 외적인 열매가 아무리 많아도 내적인 거룩이 없으면 끝이다.
다윗의 무서운 실패는 사무엘 상하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모든 인물들, 예수님의 조상 다윗까지도 마땅히 죽을 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가 존속하려면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다, 사무엘상하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죄를 끊어보려고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우슬초로 씻음 받기조차 안 되는 존재다. 만물보다도 부패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죄를 이겨보려고 노력을 하는 것 보다는,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이 저절로 죄를 막는 길이다. 저절로 자기 수준에서 늘 하나님을 생각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있다. 붙어 있다 보면 달라졌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나눔
목자언니와 둘이 모임을 하다가 오늘부터 조나래(77)언니와 셋이서 모임을 하였습니다. S전자에서 14년차 베테랑 직원인 언니는 중학교 친구에게 부탁하여 강남의 대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2년 전, 결혼한 남동생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이라는 어색함도 잠시, 유쾌하고 감동이 있는 나눔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나눔이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언니들에게서 유쾌함과 에너지를 배우는 한 텀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나눔을 올려봅니다. ^-^*)
목자언니: 간증을 시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시간을 내 시간으로 쓰려고 했었던 죄”가 바로 내 죄패.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수능 모의고사에서 1등을 하였는데, 담임선생님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1등을 했다는, 당시로서는 자존심이 무척 상한 발언에 그 다음부터는 공부할 흥미를 잃어버려서 성적은 중간까지 쭉쭉 미끄러졌고, 성적에 맞춰서 학교에 갔다가 재수를 하고 졸업 전에 어디든 취업을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있었고, 동기들과 비교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출판사였는데, 내가 잘못 갔다는 것이 인정이 되면, 나와야 하는데, 오기로 버티면서 다녔다. 그런 파업을 하면서 사무실이 폐쇄가 돼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알면 인정하면 되는데, 내가 그리 멋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우울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다 시간을 더욱 낭비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변리사 공부하기를 시작했다. 별로였던 내 모습을 잊으려고 공부를 시작한 건데, 공부도 회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은, 시험이 안 되고 다시 변리사 사무실에서 직원이 되고, 10년이 지나서 원래 자리로 오게 되었다. 2011년 가을에 특허사무소에 들어와서, 지금은 3년 차에 접어든다. 최근에는 야근이 너무 많고 힘이 들었다. 큐티도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너무 눌렸었다.
징벌을 받았다는 것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다가 더 힘들어진 것이다. 시간에 잘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줬으면 좋겠다. 회개의 결론은 거룩이라고 하는데, 오늘 초등부 나눔을 들으면서, 내 삶도 거룩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회사에서 여유가 있는데, 아침에 전철에서 급박하게 하는 큐티 말고, 여유 있게 큐티를 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은화: 저도 목자언니와 동일한 죄패를 가지고 있다. 지난 주 나눔으로 그치려고 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석사 논문을 쓰는데, 무리하게 졸업을 서두르다가 교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 교수님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아직, 철저하게 모두 내 잘못이라고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자포자기 한 채 덮어두고픈 부분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끄집어내시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언니들께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뤄가시려고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라고, 저의 삐딱한 부분을 바로 잡아주셨어요. 특히 나래언니의 맞춤형 설명에, 지도교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유쾌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듯한 예리함에 정말 웃으면서 슬픈.. 그렇지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어드바이스에 아직은 온전히 제 잘못이 인정이 되질 않아서 괴롭지만,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가다보면, 저의 알량한 자존심도 다 밟히고 100% 인정이 되어져서 교수님께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흑흑)
나래언니: 살면서 도덕적인 죄는 짓고 살지 않아서 나의 회개는 밧세바 사건 이전의 회개인 것 같다. 죄패는 교만함이다. 양육훈련 때 양육자로부터, 반듯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교만하기 더 쉽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 중증 아토피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괴물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가정이 화목하진 않았고, 부모님이 매일같이 크게 다투셨는데, 동생들은 그게 제일 힘이 들었고 상처가 되었다고 후에 말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몸이 많이 아파서, 다른 것에 상처받을 만한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불교집안에 불교신자인 아빠의 반대로 유아세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1,2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떠났다. 아토피가 심해졌을 때, 1년간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토피가 더 심해지게 되자, 내 기도를 무시하는 건가? 라는 상실감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에 오자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좋아지는 건 기적에 가까운데 당시에는 내가 철저하게 식단 조절을 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해서 나아진 건 줄 알았었다.
서른이 되어서야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 아버지가 망하게 되니까 엄마가 이혼을 하려 했다. 그러자 배신감에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했다. 답답했던 집안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학을 서울로 가는 거였기 때문에 목숨 걸고 무슨 과든 일단 서울로 가고자 했고, 그렇게 서울에 오게 되었다.
불교집안을 전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시집을 오신 어머니는 힘겹게 시집살이를 살아내셨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모시면서..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증조할머니께서 엄마가 믿는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 같다며 불현 듯 이제부터 우리 집안은 기독교로 개종한다고 선언을 하시면서 온 가족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어메이징한 스토리라서.. 목자언니와 저는 나래언니의 생생한 간증 중 이 부분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너무나 놀라워했답니다. 하나님 므쨍이!!)
아무튼 아버지 사업이 망하게 되자 고모들이 내려오라고 성화였고, 엄마 혼자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서울에 가면 꼭 엄마를 생각해서 교회를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매일같이 말씀문자를 보내셔서 양심상 알겠다고 말한 것이 못내 걸려서 신앙생활에 열심인 친구한테 연락을 해서 나 좀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했고, 당시에 강남에 있는 대형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강남의 대형교회가 알고 보니 제가 10년간 친구들 손을 꼭 붙잡고 우린 여기서 평생 뼈를 묻자던 바로 그 교회였더군요..! 여기서부터 언니의 얘기에 폭풍 공감하느라고 얼굴이 터질 뻔 한 제게, 목자언니께서 이쯤해서 빨랑 실토하라셔서 이전교회를 커밍아웃을 하는데.. 괜시리 짠했지 뭐예요.. 친정 식구를 만난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할까요?ㅎㅎ)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된 계기는. 매일같이 야근하다시피 하는데 주일까지 늦게 끝나니까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아서 말 그대로 “church shopping”을 하던 중이었는데, 남동생이 수고스럽게 3개월을 묵묵히 함께 예배를 드려주었고, 남동생을 통해서 들은 부부목장을 보니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해서 우리들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2년전에 남동생이 먼저 우리들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평소에 다투기도 잘 다투던 동생부부가 서로 대화도 많이 나누고, 목장에가서도 가감없이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부부목장이 참 괜찮아보였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환경과 가족을 통해서 인도하신 것 같다.
지금은, 아버지 빼고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점이 깨달아지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이 느껴지게 되었다. 여전히 기복이 있지만, 아버지께서도 교회에 가끔 나오신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여동생은 남편과 함께 성당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성당에도 잘 나가지 않는 것 같다. 가족들이 함께 가족밴드에서 서로 소식도 전하고 하는 편이다. 거의 조카들 사진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가족들 기도제목을 나누고 삶 나누고 하는 것을 보면서 여동생 부부도 뭔가를 감지하고 있는 것도 같다. 여동생부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한다.
기도제목
목자언니
1.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족의 예배가 회복되도록.
2. 기도시간 확보 많이 하도록.
3. 일상생활에서 바른 몸자세 유지하고 피곤해도 스트레칭과 운동할 수 있도록.
나래언니
1. 생활예배 회복하기.
2. 회사 야근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은화
1.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을 잘 직면하고, 성령님께서 회개의 말을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2. 주일, 수요예배 올 수 있고, 그동안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할 직장 구하도록.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찾도록.
3. 시간을 정해서 말씀보고 기도하며 영적으로 잘 깨어 있도록.
4. 건강관리- 스트레칭 잘해서 근력 키우고, 건강하도록.